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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단지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는데···”

자전적 이야기 담은 만화 『단지』 출간 필명을 바꾼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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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를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데, 결국엔 저를 위로하며 끝을 맺어주시더라고요. “작가님 힘내시라”고요.

“이런 식으로 보상받는구나. 기쁘기도 씁쓸하기도.” 만화가 ‘단지’가 자신의 첫 단행본을 펴내며 작가 프로필에 쓴 글이다. 작가에게 이 같은 상반된 감정을 준 만화 『단지』는 가정폭력을 소재로 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서 연재 44일 만에 누적 조회 수 300만을 기록하며, ‘최단 기간 최다 조회수’ 타이틀을 걸었다. 『단지』는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심한 차별을 받으며 자라난 ‘단지’의 이야기로, 작가의 필명 또한 ‘단지’다.

 

『단지』에는 가상 댓글(“뭐냐 이 만화는 왜케 찡찡대냐. 개선을 위해 노력은 해봤냐”)을 보는 단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비슷한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작가가 서른이 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왜 이제 와서 과거를 탓하냐”는 독자도 있었다. 반면 작가의 고백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독자들도 상당했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단지 작가를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빨강머리 단지를 쏙 빼 닮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재 휴재 중인 단지 작가는 『단지』 시즌2를 위해 독자 사연을 받고 있다. 대개 가족들에게 차별 받거나 학대 당한 사연이다. 작가는 사연을 읽을 때마다 “기가 빨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단지’는 오늘 또 어떤 차별을 겪고 있을까. 단지 작가는 “누군가 당신에게 『단지』를 보여주면서 ‘나도 얘랑 비슷해’라고 한다면, 그의 아픔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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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가족에게도 만화를 보여주고 싶어요


연재 초반에 악플러가 꽤 많았다고요.

 

오빠, 남동생 사이에서 차별을 받는 이야기니까요. 남자, 여자가 싸울 수 있는 소재잖아요. 악플러가 되게 많았어요. 개인 홈페이지까지 와서 욕을 다는 분들도 많았고요. 악질적인 글도 있었어요. 조금 돌려서 “작가가 스무 살짜리 꼬꼬마인 줄 알았는데 서른이 넘었네?”라고 쓴 글도 있었고, “왜 그렇게 남 탓만 하냐, 나는 너보다 훨씬 더 힘들게 살았는데 지금 잘살고 있다”, “고작 만화로 가족 욕밖에 못 하냐?”는 분도 있었어요.

 

불쾌했을 텐데요.


작가 입장에서 맞받아치기는 또 애매해서요. 보통 내버려둬요. 가끔은 독자 분들끼리 싸우세요. 그러면 전 조용히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고요. 『단지』를 놓고, 작가의 현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왜 아직도 당하고 사냐?”는 거죠. 하지만 전 지금 집에서 나와 혼자 살고 있어요. 부모님께 끌려 다니지도 않고요.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앞으로 잘하려는 작가에게 왜 그러냐”고 대신 화도 내주시고요.

 

『단지』를 그리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 있나요?

중학생 때, 은따를 당했던 에피소드를 그릴 때 가장 많이 울었어요. 후반부에서는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을 그릴 때 그랬고요.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하셨는데요.

 

재작년이었어요. 본가에서 나와 독립하고 1년이 안 된 시점에서 갔으니까요. 만화 연재를 준비해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불안하더라고요. 친구가 가볍게 생각하고 정신과에 가보라고 조언을 해줘서 가게 됐어요.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병원에서는 약만 주더라고요. 제게 더 필요한 건 약보다는 대화라는 생각이 들어 상담센터에도 다녔어요.

 

상담은 도움됐나요?


8개월 정도 다녔는데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만화에 상담 선생님이 등장하잖아요. 단행본이 나오고 나서 선물로 책을 드렸더니, “내가 이렇게 생겼어요?”라면서 반가워하시더라고요.

 

단지는 “문제 제시만 하다 끝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단지가 온갖 차별을 다 받았지만 계속 부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엄마의 어릴 적 성장 배경을 만화에 담기도 했고요. 지금 작가님의 심경은 어떤가요?


이제는 끝났죠. 사실 만화를 그리면서도 알았어요. 개인의 성장 배경이나 환경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결국은 개인의 성향, 기질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교육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교육을 받아도 사람은 다르게 성장하잖아요. 성격인 것 같아요.

 

가족들이 만화를 우연히 보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까?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만화 도입부에 “따져 묻고 싶지만 아마 못 할 거다. 그래서 이 방법을 생각했다”고 썼어요. 하지만 실제 엄마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시도해봤어요. 포문이 약간 싸우는 느낌으로 시작돼서 제대로 터놓지는 못했지만요. 실제로 엄마나 아빠가 만화를 보신다고 하더라도 큰 깨달음 같은 건 없으실 것 같아요. 모든 일이 그렇잖아요. 당한 사람만 기억하니까요.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걸 상처로 갖고 있냐”고 하실 것 같아요.

 

말로 듣는 것과 그림(장면)으로 보는 느낌이 다를 것도 같은데요.


친구들도 그러더라고요. 예전에 우리 가족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만화를 보니까 느낌이 다르대요. 너무 쉽게 말했던 걸 미안해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엄마도 만화를 보면 조금 충격을 받으실까요? 책은 언젠가 보여드리고 싶어요. 보여드리려고 생각도 했고요. 다만, 먼저 순수하게 말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죠.

 

드라마 <응답하라 1988>를 보셨는지 궁금해요. 굉장히 애틋한 가족애를 다룬 작품이었는데요.


봤어요. 처음에는 가족 코미디인줄 알고 보기 시작했는데 아니더라고요. 1회였던 것 같아요. 덕선이가 언니 보라랑 싸우는 장면인데, 덕선이가 너무 불쌍했어요. 언니가 동생 머리끄덩이를 잡는데, 엄마 아빠는 그냥 한숨만 쉬면서 외면하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덕선이가 너무 불쌍한데, 연출은 코믹적이고 배경은 웃기게 깔리니까 너무 슬펐어요. 마지막엔 덕선이가 터지더라고요. ‘나도 덕선이처럼 소리를 질렀어야 했나?’ 싶었어요.

 

부럽다는 느낌도 들었나요?


보기 불편했어요. 예쁘고 따뜻한 장면들을 보면서, 이게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 같은데 아닌 경우가 많으니까요. 다 저래야 할 것 같은데 세상 속 가족들은 아니니까요.

 

작가님이 과거를 극복했기 때문에 『단지』를 작품화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생각이 많이 정리된 것 같아요. 보통 가족이랑 다퉈도 그냥 기분이 나쁠 뿐이지 그 상황이나 이유에 대해 분석하지 않잖아요. 그것도 스트레스니까 어떻게든 감정을 털어내고 잊으려고만 하는데요. 만화를 그리다 보니, 여러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됐어요. 내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정리하다 보니까 확실해졌어요. 내 감정이 어떤지, 엄마를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요. 예전처럼 가족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흔들리는 일이 줄어든 것 같아요.

 

만화에서 인상 깊었던 단지의 혼잣말이 있습니다. “성격 형성 얘기는 사실 가정환경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말하기 어려워. 내 기본 성격과 가정환경의 영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있지. 그건 바로 결혼관”이라는 문장이었어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하고 싶다’ 이런 단순한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을까? 잘 키울 수 있을까? 라는 문제에서는 머뭇거려져요. 보고 자란 게 있으니까 잘 키울 자신이 없어요. 아이에 대한 생각은 더 어려워요. 바뀌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요. 억지로 해야 하는 부분, 의식해야 하는 부분이 생길 테니까요. 그건 제 진짜 모습이 아닐 거고요.

 

만약 부모가 된다면, 자녀에게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싶나요?


글쎄요. 그냥 이름을 자주 불러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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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위로를 만들었다


 

작품 제목도 ‘단지’, 주인공 이름도 ‘단지’, 작가의 필명도 ‘단지’예요. 어떤 뜻인가요?


단지는 잘린 손가락이에요. 잘라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란 뜻이죠.

 

『단지』를 보고, 작가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지인들도 있나요?


몇몇 친구들이 알았어요. 만화를 보고서 “이거 네 작품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평소에 가족 이야기를 종종 했으니까요. 하지만 제 가족들은 몰라요. 친척들도 모르고요.

 

만화가 데뷔는 어떻게 하셨나요?


네이버 도전만화에 작품을 몇 편 올렸어요. 그러다 연이 닿아 연재를 시작했고요. 되게 오래 전 일이에요. 그림을 좋아했지만 꼭 만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대학에서는 프로그래밍을 했어요. 부모님이 제가 만화 그리는 걸 싫어하셔서, 관련 학과에 진학하진 못했어요. 졸업하면서 처음 연재를 시작했는데 집에서 매일 만화만 그리고 있으니까, 좀 싫어하셨어요.

 

‘단지’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지만, 다른 작품을 연재할 때는 또 다른 필명이 있다고 들었어요. 전작들은 어떤 소재였는지 궁금해요.  


『단지』는 네 번째 작품이에요. 예전 작품은 밝은 만화가 대부분이었어요. 4컷 만화도 있고 순정만화도 있고요. 『단지』와는 너무 다른 작품이죠. 전작들을 그릴 때는 재미적인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하지만 『단지』는 어떻게 하면 내 감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할 수 있을까,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많이 달라졌죠. 되게 힘들었어요. 아마 독자 사연을 받지 않았다면 시즌2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 휴재 중이신데요.


독자 분들 사연을 받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대개 가족들에게 차별 받거나 학대 당했던 사연들을 보내주시는데, 제 이야기가 아니니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사연을 읽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리는 느낌이에요. 거의 범죄에 가까운 이야기도 많고요. 『단지』를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데, 결국엔 저를 위로하며 끝을 맺어주시더라고요. “작가님 힘내시라”고요.

 

어떤 독자들이 『단지』를 읽으면 좋을까요?


저처럼 상처가 있지만 미처 말을 꺼내지 못한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말하지 못한 걸 만화로 그렸듯이, 가족 안에 상처가 있는 친구가 있다면 『단지』를 주면서 “이 책, 한 번 읽어봐”라고 손을 내밀어줬으면 좋겠어요. 되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다음 작품은 어떤 필명으로 발표할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고민이 많아요. 원래 쓰던 필명을 써야 할지, 단지라는 이름을 갖고 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나름 그림체를 바꾼다고 했지만, 한계도 있을 테니까요. 제가 원래 하던 이야기는 순수 창작인데, 사람들은 『단지』를 더욱 기억할 테니까요.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다만 어느 분야에 있어서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막 대중적인 작가가 되길 꿈꾸진 않아요. 만화가로서는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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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1단지 글,그림 | 레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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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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