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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체크, 현악4중주 1번 ‘크로이처’

카밀라와 열애에 빠진 이후에 작곡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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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4중주 1번 ‘크로이처’는 말년의 작품답지 않게 감성적이고 격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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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 이어 체코의 음악가 레오시 야나체크의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전해지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는 성질이 굉장히 불같았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야나체크의 사진에서도 그런 성품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진은 1920년대에 촬영된, 은발의 곱슬머리에 콧수염마저 하얀, 거의 말년의 모습입니다. 얼핏 봐도 성질 급한 노인네가 분명합니다. 물론 야나체크는 카메라를 다소 의식한 듯, 적당히 살이 붙은 얼굴에 살짝 미소마저 머금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볼수록 굉장히 자의식이 강하고 성격이 급한 예술가의 인상이 드러납니다. 청년 시절의 모습도 그랬습니다. 독일 라이프치히음악원에 유학했던 1879년의 사진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때는 노년기와 달리 얼굴에 살집이 전혀 없어서 뾰족한 턱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결혼하기 직전이었던 2년 뒤에 약혼녀 즈덴카 슐초바와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갸름하고 뾰족한 얼굴에 고집이 굉장히 세 보이는 곱슬머리의 청년이 어딘가를 무표정하게 쏘아보고 있는 표정입니다.

 

성격이 과격하고 급했던 그는 말하는 속도도 아주 빨랐고, 필체도 급하게 갈겨쓰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또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는 말을 돌직구로 쏟아내는 스타일이었다고 하지요. 스무 살에 프라하의 오르간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바로 그 독설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불화가 잇따랐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비평을 종종 쓰곤 했는데, 과격한 독설이 문제가 돼 심지어 학교에서 잠시 쫓겨난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그런 성격은 별로 고쳐지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의 삶을 들여다보노라면, 차갑고 냉정하고 이지적인 모습보다는 불 같이 뜨거운 열정과 남을 의식하지 않는 고집 같은 것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음악에서도 그랬지요. 그는 체코의 선배 작곡가들인 스메타나, 드보르작 같은 이들보다도 민족적인 요소에 더욱 매달리면서 서유럽적인 것과 거리를 두려 했습니다. 라이프치히와 빈에서의 짧은 유학 시절에 그가 확인한 것은 서유럽적인 것과의 불일치, 혹은 갈등이었습니다. 곧바로 체코의 브르노로 돌아와서 거의 평생을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아울러 작곡가로서의 그는 영감과 직관이 유난히 두드러졌던,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스타일에 가까웠지요. 대개의 음악가들은 청년기에는 감성적이다가도 점점 그런 측면을 의식적으로 절제하거나 자연스럽게 줄어들기 마련인데, 야나체크는 외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감성적인 음악을 구사했습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야나체크는 1881년에 즈덴카 슐초바와 결혼했는데요, 열한 살 연하였던 즈덴카는 원래 야나체크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학생이었습니다. 게다가 야나체크가 다녔던 브르노 사범학교의 교장 에밀리안 슐츠의 딸이기도 했지요. 슐츠는 말하자면 야나체크의 은사였습니다.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들어갔던 것, 또 독일의 라이프치히로 유학을 떠났던 것도 다 뒤에서 그가 돌봐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나체크는 열두 살에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어찌 보자면 슐츠 선생이 ‘대부’ 역할을 했던 셈이었지요. 결국 1881년에 피아노를 가르치며 정이 들었던 그의 딸과 결혼해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됩니다.

 

한데 당시의 체코는 오스트리아에게 지배를 받던 시기였지요. 문화적으로는 게르만주의에 저항하는 체코인들의 자각이 한창 번져가던 때였습니다. 슐츠 선생은 바로 독일-오스트리아 혈통의 사람이었고 그의 딸인 즈덴카는 유난히 독일적 정체성이 강했던 모양입니다. 체코에서도 상류층의 언어로 통했던 독일어를 선호했고, 일상생활에서도 독일적인 방식을 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데 야나체크는 모국의 음악적 전통, 특히 모국어의 억양과 리듬에 담긴 음악성에 매우 천착했던 작곡가였지요. 물론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성격 차이로 비롯한 갈등이 결혼 초기부터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결혼 이듬해에 딸 올가를 낳고 잠시 별거했다가 재결합, 1886년에는 아들 블라디미르를 낳았지만 두 살 때 아이가 사망하면서 부부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집니다. 사랑했던 딸 올가마저 1903년에 스물 한 살로 세상을 떠나자 부부는 거의 남처럼 살게 됩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야나체크는 새로운 사랑에 빠져들게 되지요. 자신보다 서른여덟 살이나 어린 카밀라 슈테슬로바(1892~1935)라는 여성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온천휴양지에서 1917년에 ‘운명적으로’ 처음 만난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 2년 전에 이미 만난 적이 있습니다. 1915년에 야나체크가 고향인 후크바르디를 찾았을 때, 유태인 골동품상의 아내였던 카밀라를 처음 봤던 것이지요. 아마 야나체크는 그 첫 만남에서 카밀라에게 반했을 겁니다. 이성에게 매료되는 것은 본능의 영역에 속하는 행위이고, 아주 짧은 순간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나체크는 그 순간의 감정을 애써 억눌렀겠지요. 아무리 그가 뜨거운 남자였다 할지라도, 어느새 예순 살이 넘은, 당시로서는 이미 노년에 접어든 나이였기 때문일 겁니다. 카밀라는 겨우 스물세 살, 게다가 이미 결혼한 여자였습니다.

 

한데 2년 뒤에 모라비아의 온천휴양지 루하코비체에서 카밀라와 재회하면서, 야나체크는 걷잡을 수 없는 연애감정 속에 빠져들고 말지요. 사진으로 전해지는 카밀라의 외모는 즈덴카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즈덴카는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살집이 좀 있는 편인데 비해, 카밀라는 약간 마르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입니다. 검은 머리카락에 어딘지 집시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지요. 실제로 야나체크는 그녀를 ‘집시 소녀’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한데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이 휴양지에 각자의 공식적인 파트너와 함께 왔다는 것이지요. 야나체크는 즈덴카와, 카밀라도 자신의 남편과 함께 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재회 이후에 야나체크의 가슴 속에서 카밀라는 운명의 여인, 혹은 창작의 뮤즈로 자리합니다. 이 연애는 야나체크의 후반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야나체크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사랑에 빠진 그에게 카밀라는 음악적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습니다. 이후 그는 ‘말년의 전성기’라고 부를 정도로 창작에 몰두합니다. 새로운 사랑에 빠져들면서 가장 먼저 썼던 곡은, 그가 남긴 유일한 연가곡집 <어느 사라진 자의 일기>였지요. 집시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절절한 사랑을 읊고 있는 노래들입니다. 1921년에 완성한 비극적 오페라 <카티아 카바노바>도 카밀라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밖에도 야나체크는 말년의 뮤즈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아 후반기의 걸작들을 속속 써냅니다. 그리고 1928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카밀라에게 자그마치 700통이 넘는 사랑의 편지를 보냅니다.

 

생애 말년에 작곡한 두 곡의 현악4중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야나체크에게 가장 비중이 높은 음악적 장르는 오페라였지요. 현악4중주는 딱 두 곡을 남겨 놓고 있는데, 1번은 ‘크로이처’, 2번은 ‘비밀편지’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두 곡 모두 카밀라와 열애에 빠진 이후에 작곡됐지요. 지난 회에도 언급했던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피아노곡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와 함께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진 곡들이기도 합니다.
 
표제가 암시하듯이 현악4중주 1번 ‘크로이처’는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1889)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야나체크는 악보에서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읽고’라고 밝히고 있지요. 그러면 『크로이처 소나타』는 어떤 소설인가요? 이 또한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이기도 합니다. 음악애호가였던 톨스토이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서 영감을 받아 쓴 중편 분량의 소설이지요. 아내를 살해한 포즈드니셰프라는 남자가 기차에게 만난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털어놓는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는데,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종의 ‘불륜 치정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피아니스트인 자신의 아내가 바이올리니스트 트루하체프스키와 베토벤의 소나타를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같은 질투에 사로잡힙니다. 두 사람이 음악으로 맺어진 ‘음욕의 관계’라고 확신하고는 결국 아내를 살해하지요.

 

야나체크는 폭력에 희생당하는 아내의 모습에 연민을 느꼈던 듯한데,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사랑했던 카밀라를 소설 속의 여주인공과 동일시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카밀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 등장하는 고통 받고, 아파하며, 쓰러져가는 가련한 여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라고 썼지요.
 
현악4중주 1번 ‘크로이처’는 말년의 작품답지 않게 감성적이고 격렬합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어울려 비감한 분위기의 짧은 선율을 연주하면서 1악장을 시작하지요. 이어서 첼로가 춤곡풍의 리듬을 연주하면서 따라붙습니다. 이 두 개의 선율을 교차시키고 변형하면서 1악장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딘지 불길한 느낌이 감도는 격렬한 선율, 때로는 지치고 힘든 표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2악장은 바이올린이 집시풍의 노래를 부르면서 시작하지요. 그 노래가 점점 어두워지면서 비올라와 첼로가 웅얼거리는 것처럼 배경으로 깔립니다. 집시풍의 노래가 느림과 빠름을 반복하는 동안, 첼로가 불투명한 음향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3악장에서는 아름다운 노래와 격렬한 괴성이 뒤섞입니다. 마치 아름다움을 방해하려는 듯이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어울려 크로테스크한 음향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다가 애매하고 모호한 마침표를 찍으면서 악장이 끝납니다.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를 일컬어 “표현주의의 정수”라고 표현했던 밀란 쿤데라의 언급이 떠오르는 악장입니다. 4악장은 느린 호흡으로 문을 엽니다. 1악장에서 들었던 선율이 다시 얼굴을 드러내고 변주되면서, 피치카토와 분절적인 음형들이 가세하면서 음악이 점점 불길하게 전개됩니다. 그렇게 불안하게 허공을 더듬던 음형들이 다시 편안한 호흡으로 돌아오면서 곡을 마무리합니다.

 

야나체크는 또 하나의 현악4중주곡인 2번 ‘비밀편지’를 생애 마지막 해인 1928년에 작곡합니다. 말 그대로 카밀라와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담아낸 곡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는 야나체크의 법적인 아내 즈덴카와 카밀라의 남편조차도 둘의 관계를 익히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야나체크의 가슴 속에서 카밀라와의 열애는 ‘비밀스러운 것’이었나 봅니다. 야나체크는 현악4중주 2번을 작곡하면서 “나는 뭔가 좋은 것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삶이 거기 담겨 있다”라고 카밀라에게 편지를 보냈지요. 같은 해에 그는 토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바탕을 둔 마지막 오페라 <죽은 자의 집으로부터>를 작곡하고, 그해 8월에 세상을 떠납니다. 고향인 후크바르디의 작은 집에서 카밀라와 그녀의 아들을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폐렴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감기에 걸린 것이 화근이었다고 합니다. 향년 74세였지요. 카밀라는 그로부터 7년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p.s. 야나체크 현악4중주단의 1963년 녹음(Supraphon), 스메타나 현악4중주단의 1976년 녹음(Decca)이 애청반으로 손꼽혀왔는데 현재 국내 매장에서 품절 상태로 확인됩니다. 구입이 용이한 음반 중에서는 파벨 하스(Pavel Haas) 4중주단을 권합니다.

 

 


▶ 파벨 하스 4중주단/2007년/Supraphon
2002년 체코 프라하에서 창단된 젊은 4중주단이다. 2차대전 시기에 아우슈비츠에서 생을 마감한 체코의 작곡가 파벨 하스(1899~1944)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내세웠다. 창단 이후 10여년간, 실내악의 강국으로 손꼽히는 체코의 레퍼토리에서 특별히 장점을 보여왔다. 야나체크의 1번 ‘크로이처’을 수록한 이 음반은 2008년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BBC 뮤직매거진의 챔버 초이스 등에 선정됐다. 신선하고 현대적이면서도 야나체크 특유의 감성을 제대로 포착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보다 앞서 녹음된 2번 ‘비밀편지’(Supraphon)도 별도의 음반으로 시판중이다. 이 역시 그라모폰과 BBC 뮤직매거진의 호평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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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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