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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음악 시벨리우스 , 〈핀란디아〉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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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에 이 지면에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설명했습니다. 한데 당시의 글에서 아주 잠깐 언급했던 음악이 한 곡 있었지요. 바로 교향시 <핀란디아>(Finlandia, op.26)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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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에 이 지면에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설명했습니다. 한데 당시의 글에서 아주 잠깐 언급했던 음악이 한 곡 있었지요. 바로 교향시 <핀란디아>(Finlandia, op.26)입니다. 사실 이 곡은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시벨리우스의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로 손꼽힙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시벨리우스의 음악들은 이밖에도 더 있지요. 그는 모두 8곡의 교향곡(‘쿨레르보 교향곡’ 포함)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2번과 5번이 자주 연주됩니다. 또 극음악 <쿠올레마>에 수록돼 있는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의 ‘슬픈 왈츠’, 연주시간 5분가량의 이 짧은 곡도 인기곡으로 손꼽힙니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그 좋은 곡들을 모두 언급하지 못해 아쉬울 뿐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애호하는 음악을 중심으로 한 곡씩 소개해나가고 있는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 교향시 <핀란디아>를 빼놓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핀란드는 인구가 600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노르웨이, 스웨덴과 더불어 북유럽의 복지국가로 손꼽힙니다. 다시 말해 작지만 강한 나라인 셈이지요. 한데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핀란드는 외침에 시달여야 했던 약소국이었습니다. 서쪽으로는 스웨덴과 어깨를 맞댔고 동남쪽으로는 거대한 러시아가 버티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이리 맞고 저리 터지면서 오랜 세월을 견뎌왔던 나라였습니다.

 

수백년간 스웨덴의 영지(領地)로 존립했던 핀란드는 1809년부터 러시아의 지배 아래에 놓입니다. 스웨덴이 러시아의 침공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영지였던 핀란드를 빼앗겼던 것이지요. 한데 이 전쟁, 그러니까 러시아-스웨덴 전쟁(1808~1809)은 나폴레옹이 일으킨 유럽 전쟁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1806년에 영국과 유럽 대륙 국가들의 교역을 금지시킬 목적으로, 다시 말해 영국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로 이른바 ‘대륙봉쇄령’을 발표하지요. 그 이듬해에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에게 일종의 외교적 협조를 요청합니다. 스웨덴에 압력을 넣어 대륙봉쇄령에 참가시키라는 것이었지요. 이때만 해도 나폴레옹과 러시아는 ‘같은 편’이었습니다. 물론 이후에 나폴레옹과 러시아는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지요. 러시아가 대륙봉쇄령을 깨고 영국과 교역을 했고, 이에 화가 난 나폴레옹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진격했다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퇴각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 참패로 인해 나폴레옹의 권력은 크게 흔들리고 맙니다. 그게 1812년의 일이었지요. 훗날(1880년)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1812년 서곡’은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808년에는 나폴레옹의 의도에 의해 러시아-스웨덴 전쟁이 발발했고, 이 싸움에서 패배한 스웨덴은 러시아에게 핀란드 땅을 넘기고 대륙봉쇄령에 참가합니다.

 

한데 또 하나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거의 전유럽을 상대로 일으킨 전쟁이 유럽의 여러 나라들, 특히 강국의 압제에 시달렸던 작은 나라들에서 민족의식과 애국주의를 불러일으킨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이지요. 그것은 전쟁의 필연적 부산물입니다. 당연히 핀란드에서도 민족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등장했던 유명한 인물이 엘리아스 뢴로트(1802~1884)였습니다. 그가 쓴 민족영웅 서사시 <칼레발라>(Kalevala)는 19세기 중반에 핀란드 사람들의 민족의식을 고양시킨 대표적인 문학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뢴로트가 시를 직접 썼다기보다는 1000년 넘게 구전돼오던 전승 시가들을 수집해서 정리했다는 말이 더 옳겠습니다.

 

당시 핀란드의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너나없이 이 영웅시에 매료됐습니다. 물론 시벨리우스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는 베를린과 빈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1892년, 그러니까 27세의 나이에 <쿨레르보 교향곡>이라는 광대한 규모의 음악을 초연해 ‘핀란드 음악의 새로운 별’로 떠오릅니다. 이 곡이 바로 서사시 <칼레발라>를 토대로 한 음악이지요.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처럼 관현악에 독창과 합창이 어우러지는 ‘칸타타 심포니’인데, <칼레발라>의 텍스트를 가사로 삼고 있습니다. 이처럼 관현악과 성악이 어우러진 거대한 교향곡이, 당시만 해도 음악적 변방으로 치부됐던 핀란드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 해에 시벨리우스는 음악계의 떠오르는 별로 명성을 얻었고 사랑하는 여인 아이노 예르네펠트(1871~1969)와 결혼도 합니다.

 

이 무렵의 시벨리우스, 대책 없는 술고래이자 콧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근사한 양복을 빼 입은 패셔니스타, 낭만과 열정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지녔던 젊은 예술가의 모습은 한 편의 회화 작품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벨리우스와 동갑내기 친구였던 화가 아크셀리 갈렌-칼레라 (Akseli Gallen-Kallela, 1865~1931)의 유화 작품입니다. 이 화가 역시 당시의 핀란드 민족주의(국민주의)를 강하게 드러냈던 예술가였지요. 그림의 제목은 <심포지움>입니다. 화면의 가장 오른쪽에 시벨리우스가, 가운데에는 시벨리우스의 많은 음악을 초연했던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로베르트 카야누스, 그리고 오른쪽에는 화가 자신이 등장합니다. 제목은 ‘심포지움’이지만 세 남자가 무뚝뚝하게,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림이 그려졌던 해는 1884년이었지요. 그로부터 5년 뒤, 34세의 시벨리우스는 드디어 핀란드의 애국주의를 표상하는 교향시 <핀란디아>를 작곡합니다. 앞에서 제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를 잠깐 언급했는데, 이후 러시아의 황좌는 니콜라이 1세를 거쳐 1894년부터 니콜라이 2세에게로 넘어갑니다. 이 사람이 바로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의해 쫓겨난 마지막 황제이지요. 한데 그는 과거의 황제들에 비해 속국이었던 핀란드에 더욱 강경한 정책을 펼칩니다. 그나마 좀 유지됐던 핀란드의 자치권을 거의 빼앗아버린 것이지요. 그러자 핀란드의 예술가들과 언론인들이 이에 반발합니다. <핀란디아>는 바로 그런 저항의 일환으로 태어난 음악이었습니다.

 

1899년 11월에 열린, 언론 탄압에 항의하는 3일간의 행사에서 마지막으로 순서로 열린 것이 연극 <역사적 정경>을 공연하는 것이었지요. <핀란디아>는 바로 이 연극 공연에서 사용한 일련의 음악들 가운데 한 곡이었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연주된, ‘핀란드여 깨어나라’라는 곡이었지요. 오늘날 우리가 듣는 <핀란디아>의 원형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시벨리우스는 이날 공연을 직접 지휘한 직후에, ‘핀란드여 깨어나라’를 별도의 교향시 <핀란디아>로 개작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7월에 ‘심포지움’이라는 그림에도 등장했던 로베르트 카야누스가 헬싱키 필하모닉을 지휘해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합니다. 1900년의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초연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연주회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이들에게 핀란드의 독립 의지를 음악으로 천명했던 역사적 장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국민음악답게 <핀란디아>는 듣기에 쉬울 뿐더러 8분가량의 짧은 곡입니다. 느릿하고 묵직한 안단테 소스테누토(andante sostenuto)의 서주로 막을 열지요. 금관악기와 팀파니가 음산하면서도 장엄한 사운드를 연출합니다. 오랜 고난의 역사를 표상하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목관과 현악기들이 비탄에 빠진 듯한 탄식조의 선율을 연주합니다. 차츰 음악이 고조되면서 관악기가 급박한 사운드를 토해내기 시작하지요. 현악기들의 호흡이 점점 빨라지고 관악기들은 의지를 고취하고 투쟁을 독려하는 것처럼, 선동적으로 연주됩니다. 하지만 이어서 목관과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가 등장하지요. 평화로우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맥박이 고동치는 느낌으로 음악이 전환돼 강렬한 관현악으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6년/Warner Classics

 

카라얀은 이 곡을 여러 번 녹음했다. 대부분의 녹음들이 수작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1964년 녹음한 음반(DG), 말년이었던 1984년 역시 같은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음반(DG)도 빼어난 연주들이다. 디지털로 녹음한 1984년 음반은 카라얀이 여섯번째로 진행한 <핀란디아> 레코딩이고 마지막 녹음이기도 하다. 오늘 이 지면에서는 1976년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녹음을 권한다. 약간 느릿한 템포의 연주, 금관의 찬란함이 명불허전이다. EMI가 몇해 전 ‘Great Recodings’로 발매했다가 최근 매장에서 눈에 띄지 않았던 이 음반이 ‘Warner Classics’로 옷을 바꿔 입고 이달 16일부터 시판될 예정이다.

 

 

 

▶파보 베르글룬트(Paavo Berglund),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1972년/EMI


국내에서 카라얀 외의 <핀란디아> 명연을 구입하기가 영 쉽지 않다. 수많은 음반들이 품절 상태다. 예컨대 바비롤리가 할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1966년 녹음(EMI) 같은 것들이다.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음반은 핀란드 태생으로 시벨리우스의 명연을 숱하게 남긴 파보 베르글룬트의 음반인데, 이 역시 품절로 표시돼 있다. 그는 1972년에 본머스 심포니와, 또 1982년에는 헬싱키 필하모닉과 같은 곡을 연주한 수작을 남겼다. 두 녹음 모두 차갑고 음울하면서도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핀란드적 정서를 빼어나게 구현하고 있다. 비록 품절 상태이지만 놓칠 수 없는 음반인 까닭에 추천목록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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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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