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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황현산이 번역한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번역을 할 때 원저자는 갑이고 번역자는 을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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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하루의 끝은 얼마나 폐부를 찌르는가! 아! 괴롭도록 찌르는구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파리의 우울』과 함께 이 계절을 보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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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도 정직한 수사법을 구사하는 문학평론가 황현산이 『파리의 우울』을 번역했다. 문학동네에서 선보이는 『파리의 우울』은 기존의 번역본과는 차별된 면밀하고 충실한 주해가 매 시마다 수록됐다. 보들레르 문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묻어나는 주해는 수많은 보들레르 연구서를 아우르는 정수이며, 독자적으로 아름다운 또 한 편의 산문이다.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번역을 언제 처음 시작하셨고, 시작하셨을 때 어떤 기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시작’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매우 오래 전입니다. 저의 스승이 제자들과 함께 보들레르 전집을 기획하셨는데,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지요. 10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스승의 뒤를 이어 ‘맏제자’인 제가 동료, 후배들과 함께 그 일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기분에 관해 말한다면, 태산준령을 걸어서 넘어가야 하는 사람의 기분과 같은 것이었다고 할까요. 스승은 저 세상에서 염려스러운 눈으로 보시겠지만 무언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지요. 실제로 번역을 시작한 것은 4년 전입니다. 작년에 본문의 번역과 주해의 원고를 넘기고 교정도 끝냈는데, 해설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제가 담도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이 중단되었다가 지난 6월에야 겨우 ‘해설’ 대신 ‘여록’을 쓰게 되었지요. 『파리의 우울』이 발간되니 기쁘기보다는 앞날이 더욱 창창하다고 여겨질 뿐입니다. 이제 다시 『악의 꽃』 번역을 시작해야 합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인생은 한 구절의 보들레르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보들레르는 어떤 시인인가요?


보들레르는 시집 『악의 꽃』 의 저자이기도 한 만큼 인간의 악과 그 악을 조종하는 악마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고, ‘아름다움’을 인간적 가치의 상위에 놓았으며, 마약과 술을 예찬하는 인공 낙원을 썼던 탓에, 한때 퇴폐주의 시인으로 알려졌으며, 한국에서는 그 이미지가 굳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인간의 품성과 윤리에 천착한 모럴리스트였으며, 미적 감수성의 폭과 깊이를 넓히기 위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보들레르 만큼 그의 시대에 자본주의 속에서의 인간의 욕망과 행티를 더 잘 이해한 사람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허약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아름다움’에 대한 상념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고 불멸성에 이를 수 있는지 온갖 장르를 통해 말하려고 했지요.

 

지금 이 시대에 보들레르의 시를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특히 어떤 분들이 보들레르의 시를 읽으면 좋을까요?


보들레르는 시와 예술의 개념에 거대한 변혁을 불러온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를 ‘현대예술의 사거리’라고 부릅니다. 19세기 중엽까지의 모든 예술 경향이 보들레르에 집약되었다가 거기서 다시 사방으로 갈래를 지어 나갔다는 뜻이지요. 보들레르의 150주기를 2년 남겨 놓고 있지만, 지금도 문학과 예술의 현대성을 설명하려는 사람들은 보들레르의 말을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보들레르는 인간의 위대함과 불멸성을 증명하는 예술의 고전적 주제들을 현대생활의 조건 속에서, 현대인의 삶을 통해 구현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파리의 우울』 같은 산문시의 시도도 그런 생각의 결실입니다. 현대의 시와 예술에, 창작자로건 수용자로건,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보들레르를 먼저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박하게는 늘어진 일상 속에서 마음을 고취시키고 싶은 사람은 보들레르를 슬기롭게 참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들레르의 시 「취하라」의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라는 구절은 정말 유명합니다. 선생님이 가장 애착이 갔던 보들레르의 시는 무엇인가요?


보들레르는 「취하라」에서, 도취를 통해 시간을 압박과 권태를 동시에 잊으라고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집중에 의해서만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평소의 철학을 말하고 있지요. 『파리의 우울』에서 저는 마지막 시편인 「착한 개들」을 좋아합니다. 산문가로서의 보들레르의 능청스러움과 유희하듯 할 말을 다하는 돌려차기식 능변을 구경할 수 있지요. 예술의 이상 앞에서 열정의 무한함과 인간적 조건의 유한함을 처절하게 표현하는 ?예술가의 고해기도?도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

 

“좋은 번역은 있어도 성공한 번역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요?


좋은 번역이란 무엇보다도 원문에 충실한 번역입니다. 번역을 할 때 원저자는 갑이고 번역자는 을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원저자는 고인이 되었거나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알아볼 눈도 항의할 입도 없는데, 번역자는 제 것도 아닌 권력을 휘둘러 원문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지요. ‘부처님 살찌고 여위기는 석수장이 손에 달렸다’는 속담은 번역의 경우에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부처를 새기는 석수는 부처를 먼저 공경해야겠지요. 번역도 원저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제가 “성공한 번역은 없다”는 말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외국어와 우리말은 서로 겹쳐 통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통하지 않는 부분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우리말의 역량을 밑바닥까지 끌어 모아야 하는데 그 밑바닥에 닿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원문은 고정되어 있는데, 원문에 대한 이해도 늘 변화하고, 그것을 번역하는 말도 늘 변화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완벽한 번역도 석 달만 지나면 저절로 틀린 번역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을 길게 하면 번역의 생명도 길어지겠지요.

 

소설 번역도 어렵지만, 시는 모국어의 맛과 운율을 살려야 하기에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를 번역하실 때 어떤 점에 가장 주의하시나요?


앞에서 했던 말과 같은 말이 되겠습니다만, 시의 번역이 모국어의 맛과 운율을 살리기 위해서는 원문을 우선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번역해야 할 가치가 있는 원문은 당연히 훌륭한 글입니다. 그 훌륭한 글이 가지고 있는 힘을 번역에서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그것이 우리말 문장력으로 이어지고, 역으로 우리말로 문장을 잘 쓸 수 있는 실력이 있으면 원문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다고 봅니다. 물론 문학에 대한 수련이 어떤 글이든 글에 대한 이해와 어떤 글이든 글쓰기의 역량을 높이지요.


『밤이 선생이다』는 첫 산문집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혹시 두번째 산문집 출간 계획이 있으신지요? 혹은 번역하고 계신 작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일보에 <황현산의 우물에서 하늘보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이 책으로 묶여 삼인출판사에서 곧 나오게 됩니다. 시에 관한 이야기를 카페에서의 이야기처럼 풀었으니 ‘시화집’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책의 제목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번역하고 있는 작품도 있습니다.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를 지금 <현대시학>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내년 여름이면 번역이 다 끝날 것입니다. 창비에서 내년 봄쯤 『프랑스 상징주의 시집』이 나올 예정이고, 이미 번역을 끝낸 (그러나 부속을 만들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걸릴) 랭보 전집도 조만간 출간될 것입니다. 쉴 틈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쉬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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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우울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저/황현산 역 | 문학동네

낭만의 대명사 ‘파리’도 19세기에는 급속도로 변화하는 괴물과도 같았다. 『파리의 우울』은 근대화의 폭력성을 혐오하면서도 파리의 몰골을 사랑한 보들레르의 혁명적인 산문시 50편이 실린 시집이다. 아름답고도 정직한 수사법을 구사하는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이 번역한 『파리의 우울』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기존의 번역본들과는 차별되는 면밀하고 충실한 주해가 매 시마다 함께한다. 보들레르 문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묻어나는 주해는 수많은 보들레르 연구서를 아우르는 정수이며 독자적으로 아름다운 또 한 편의 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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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의 우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저/<황현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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