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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굴』을 쓰면서, 늘 영화화를 상상했다

영화 「퇴마; 무녀굴」 원작소설 『무녀굴』 신진오 작가 7문 7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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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오 작가는, 그간 발표된 작품들을 통해 ‘마치 영상을 보는 듯 생생하게 묘사하는 필력이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장본인으로서 『무녀굴』에서도 그 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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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사굴의 설화는 제주에서 내려오는 뱀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설화다. 중종10년, 제주의 한 동굴에 수십 척이 넘는 큰 구렁이가 은거했다고 전해지는데, 오래 전부터 사람들을 괴롭혀왔기에 마을에선 해마다 열다섯 살이 된 처녀를 제물로 바쳐 화를 달랬다고 한다. 그러던 중 신임 제주 판관으로 부임한 ‘서련’이 제물이 된 처녀를 사경에서 건져내고 구렁이를 죽였으나, 돌아오는 길에 붉은 기운에 변을 당해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무녀굴』은 바로 이 설화로부터 정확히 500년이 지난 현재를 시점으로 새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최근 개봉한 「퇴마; 무녀굴」의 영화 원작소설이기도 한 『무녀굴』의 저자 신진오 작가는, 그간 발표된 작품들을 통해 ‘마치 영상을 보는 듯 생생하게 묘사하는 필력이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장본인으로서 『무녀굴』에서도 그 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출간된 지 5년 만에 영화로 제작되면서 다시금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한국 토종 공포소설 『무녀굴』, 그 오랜 시간을 돌아온 소감을 담은 신진오 작가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제주의 유명한 ‘뱀 설화’와 ‘빙의’를 소재로 한 『무녀굴』은 출간 이후 한국 토종 공포소설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독자들의 평도 매우 좋았고요. 이 소재들을 연결짓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처음 이 작품의 집필을 계획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처음부터 설화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꾸준히 단편을 쓰다가 이제 장편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재를 찾고 있었죠. 정통 심령 호러를 쓰고 싶었습니다. 귀신이 등장하는 내용이다 보니 귀신의 존재가 특별해야 했는데, 저는 기존에 등장하지 않았던 귀신을 써보고 싶었어요. 여러 의견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제 친구가 ‘무당이 귀신이 되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해주더군요. 꽤 괜찮을 것 같아서 그때부터 자료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제주도 김녕사굴 설화를 접하게 되었는데, 독특하게도 그 설화는 반드시 선이 승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그게 마음에 들어서 모티브로 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백 년도 넘은 설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려다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2015년 8월 중순, 작가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퇴마; 무녀굴」이 개봉했습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 공포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작가님께서도 애초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쓰셨다고 했는데, 원작가로서 작가님의 작품이 대중 공포영화로 만들어지게 된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감개무량하네요. 『무녀굴』을 쓰는 동안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를 늘 상상했습니다. 처음엔 시나리오로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죠. 하지만 시나리오로 만들면 이야기의 풍부한 재미를 다 담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했습니다. 대신 소설을 쓸 때 각색이 쉽도록 구성을 하고 묘사를 했죠. 꼭 영화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최대한 시각적인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무녀굴』을 출간한 지 5년 만에 제 소원이 이뤄졌습니다. 좋은 감독님과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 분들이 참여해주셔서 개인적으로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꿈꾸던 일이 이뤄졌다는 게 가장 기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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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영화 「퇴마; 무녀굴」을 보셨다면 간단한 감상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영화적으로 볼 때는, 사실 좀 아쉬워요. 감독님이 직접 각색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원작을 너무 충실히 따라가려고 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좀 더 과감한 각색을 하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또, 충무로에선 공포영화는 저예산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사실 『무녀굴』은 마지막 장면을 그대로 옮겼으면 제작비가 꽤 많이 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나름 현실에 맞게 각색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녀굴』은 김녕사굴 설화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비극으로 남은 제주 4ㆍ3사건을 ‘빙의’, ‘퇴마’와 같은 주요한 공포적 요소와 장르적으로 굉장히 잘 엮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력한 원한을 지닌 악신의 탄생 배경으로 이 사건을 결부시킨 이유가 있다면요? 여담이지만 제주도 사투리는 어떻게 연구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영화에서도 사투리 고증은 꽤 부지런히 한 것 같았습니다.

 

순서상으로 본다면 빙의, 무당귀신, 김녕사굴 설화, 제주 4ㆍ3사건이라고 해야겠네요. 제주 4ㆍ3사건은 제가 소설의 후반 작업을 할 즈음에 떠올랐습니다. 제주도는 이야기가 많은 섬이지만, 그 못지않게 한도 많은 곳이죠. 어떻게 하면 ‘심석정’이란 인물을 비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 배경으로 제주 4ㆍ3사건을 넣기로 했습니다. 사실 그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자칫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질 위험이 있었고, 공포소설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담는 것이 옳은가 하는 작가로서의 윤리적인 고민도 있었죠. 하지만 이 부분을 매끄럽게 넣을 수만 있다면 소설에 무게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더불어 심석정을 그 사건에 개입시킴으로써 역사적 비극과 개인의 비극을 모두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독자 분들이 그 부분을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오락적인 요소가 다분한 장르소설에서 실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공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제주 사투리 고증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아는 지인의 지인을 통해 제주에 사는 분에게 직접 부탁을 드렸어요. 그런데 사투리가 너무 어려워서 번역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최대한 순화해서 쓴 게 그 정도니……. 그냥 쓰지 말까 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제주도민이 서울말을 쓰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쓰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정말 많이 나오더군요. 배우 분이 고생 많으셨을 거예요.

 

소설 전체를 아울러 보면, 반복되는 의문의 실종과 죽음 등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독립적으로 발생하다가 어느 순간 퍼즐을 맞추듯 하나로 모이는 지점이 생깁니다. 그 원한의 배경을 차례대로 파헤쳐 나가는 추리 형식을 빌린 공포소설이라는 점이 흥미로웠고, 바로 이런 지점이 작품을 읽어나가는 데 몰입도와 흡인력을 높여 준 원동력이 아닌가합니다. 단순하게 하나로 함몰되지 않는 다층적인 장르 설정이나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어떻게 고민하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이야기의 몰입도는 추리 스릴러 장르를 따라가기 어렵죠. 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이런 다층적인 구조는 추리 소설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요, 흩어진 사건이 하나로 모일 때의 쾌감은 추리 마니아라면 다들 느껴보셨을 겁니다. 그런 흐름은 추리뿐만 아니라 역사물이나 심지어 로맨스 물에서도 나타나고 있죠. 독자가 좋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또 이런 구조는 필연적으로 미스터리를 불러오는데, 저는 예전부터 추리와 공포가 결합된 장르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로부터 시작된 이 두 장르는 애초에 그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죠. 저는 공포소설이나 영화에도 약간의 추리적 기법이 들어가야 재미를 느낍니다. 빤한 이야기더라도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따라 이야기가 확 달라지거든요.

 

빙의된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다가가는 주인공 ‘신진명’은 훤칠한 외모부터 의학도라는 출신 배경까지, 법사 캐릭터 자체가 워낙 독특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독자들 사이에서도 신진명을 주인공으로 한 『무녀굴』 후속작 언급이 꽤 있었습니다. 신진명이라는 캐릭터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부분들이 있다면요? 또, 신진명을 주인공으로 한 후속작이나 시리즈에 대해서 계획하는 바가 있으신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진명은 저도 무척 아끼는 캐릭터예요. 법사가 정신의학을 공부했다는 설정부터가 사실 아이러니거든요. 저는 이런 아이러니한 설정을 좋아합니다. 아마 독자들도 그 부분에 흥미를 느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처음 신진명이라는 캐릭터를 구상할 때 떠오른 이미지는 의사도 법사도 아닌 ‘마술사’였어요. 명절 TV프로그램 중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마술쇼였죠. 거기서 검은 정장을 입은 마술사가 카드마술을 보여주는데 정말 카리스마가 넘치더군요. 그렇게 눈을 확 잡아끄는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나중에 꼭 내 소설에 등장시켜야지 하고 생각했다가  『무녀굴』에서 드디어 써먹게 되었습니다.


마술은 허구죠. 하지만 그것을 완성하려면 예술적 재능과 교묘한 심리술이 필요합니다. 가짜지만 진짜처럼 믿게 하는 힘이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진명은 의사였다가 법사가 된 캐릭터죠. 귀신은 없다고 믿는 집단에서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집단의 일원이 된 겁니다. 그렇기에 확실한 자기 철학과 냉철한 카리스마로 무장되어 있어야 했는데, 바로 이런 부분이 그가 마술사와 닮은 점이었습니다.


사실 이 소설이 나온 지 5년이나 지났는데, 속편을 기다리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속편은 없다고 못을 박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아껴주시니 저도 좀 고민이 되네요. 5년간의 공백이 있었던 만큼, 만약 쓰게 된다면 지금 추세에 맞는 이야기로 써야겠죠.

 

최근에도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품이나 활동 계획이 있으신지, 또 차기작을 기다리는 독자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매드클럽 작가님들과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품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아직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지금은 공포장르에서 좀 벗어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중입니다. 그렇다고 공포를 영영 떠난 건 아니고요. 요즘엔 공포가 여러 장르와 섞이는 추세입니다. 최근에 재미있게 봤던 「오 나의 귀신님」도 공포와 로맨스를 절묘하게 혼합한 장르죠.

 

근데 공포작가라는 직함 때문에 계속 공포만 쓰다 보니까 생각이 자꾸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더군요. 저는 독자에게 멀어지는 작가는 작가로서 생명력이 다한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는 더더욱 그렇죠. 독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왜 그런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다시 공포소설을 쓴다면 아마 그런 부분들이 달라져 있을 거예요. 물론 재미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거고요. 이 자리를 빌려 부족한 제 소설, 『무녀굴』을 아끼고 사랑해주신 독자님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엔 좀 더 세련되고 오싹하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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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굴신진오 저 | 황금가지
제주 김녕사굴에 라이딩을 하던 매드맥스 동호회 회원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6개월 후, 실종자 중 한 명이 살아 돌아오지만 의식불명에 빠진다. 그녀의 상태가 원혼과 관련이 있을 거라 추측한 케이블 TV의 PD 박혜인은 퇴마의식을 빌미삼아 평소 취재하고 싶어하던 퇴마사 신진명을 불러낸다. 마지못해 퇴마의식을 하게 된 진명은 생존 여성이 강력한 원혼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강력한 원혼은 결국 수사 담당자이던 형사와 검사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진명 역시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원혼의 저주는 끝나지 않고 새로운 인물을 희생자로 만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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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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