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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평범한 인간 고흐의 속마음을 말하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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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지난해 초연에 이어 다시 한 번 관객들과 만난다. 작품은 단순한 보완이 아닌 또 다른 변화를 선택했다. 새롭게 선보이는 고흐의 작품들이 3D 프로젝션 매핑으로 생생하게 살아나고, 추가된 넘버들은 고흐의 미세한 감정들까지 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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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고흐의 자화상,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고흐의 자화상을 떠올려 본다. 꿈틀거리듯 생동하는 터치와 강렬한 색채의 한 가운데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퍼석한 느낌을 뿜어내는 남자. 액자 밖에서 바라본 고흐의 모습은 그랬다. 움푹 파인 뺨과 건조한 눈빛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처럼.

 

그러나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려내는 그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텅 비어 있는 듯 보이는 두 눈 속에 사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세상과 사람과 사랑, 그토록 뜨거운 것들을 담고 있었다. 스스로 한쪽 귀를 잘라내고 붕대를 칭칭 동여맨 미치광이의 모습도 아니었다. 작고 약하고 상처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했던 여린 영혼이었다. 현실의 벽 앞에서 이상이 가로막히고 진심이 튕겨져 나올 때, 자책하며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존재였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보며 고흐의 자화상을 떠올린 것은 그런 이유였다. 이 작품이 또 다른 고흐의 자화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품은 거대한 캔버스와 같은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온통 새하얀 그 무대 위에 두 명의 ‘반 고흐’가 서있다.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 반 고흐. 형제가 주고받은 700여 통의 편지는 서사의 중심이 된다. 고흐가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를 관통했던 사건들과 감정들이 편지 속에서 되살아난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오롯이 받아내야 했던 창녀 시엔과의 사랑, 그보다 아팠던 이별, 아버지의 죽음, 깊은 상처를 남긴 고갱과의 인연… 관객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사건들은 이미 익숙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 중심에서 들려오는 고흐의 목소리는 낯설다. 한 번도 그의 진심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날 닮은 여자” “상처 많고 겁이 많은 여자” 시엔을 두고 돌아설 때, 고흐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세상 사람들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었다. 목사의 장남이 어떻게 남의 아이를 가진 창녀를 사랑할 수 있느냐고, 너는 집안의 수치이고 한심한 놈이라고, 비난하는 아버지 앞에서도 고흐는 스스로를 향해 원망의 화살을 겨눴다. 기대감을 안고 찾아간 아카데미에서는 그림의 기본기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평가 앞에 좌절해야 했다. 떠나려는 고갱의 앞을 막아섰던 것은 집착 때문이 아니었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질까 봐” 그는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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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그가 사랑했던 풍경과 사람들


이렇듯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고흐의 진짜 속마음을 들춰낸다. 그가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서, 그리고 두 사람이 따로 또 같이 부르는 넘버를 타고 절절한 마음이 전해진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희망과 절망의 순간을 오갔던 고흐의 삶처럼, 작품 속 사건과 음악들은 농담(濃淡)을 달리하며 이야기의 탄력을 잃지 않는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간 축 사이를 오고가는 구성 역시 탁월하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후 그의 유작전을 준비하는 동생 테오의 ‘현재’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되살아나는 고흐의 ‘과거’가 교차하는 것이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마치 모자이크를 만들 듯 조각조각의 순간들을 이어 붙여 고흐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데, 그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입체적 구성이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탄탄하게 짜여진 2인극이라는 점에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강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사실 작품 속에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숨어있다. 바로 고흐가 남긴 작품들이다. 무대라는 캔버스 위에 3차원 영상으로 펼쳐지는 그의 그림들은 결코 박제되어 있지 않다. 고흐가 바라보았을 모습 그대로 밀밭에는 바람이 일고 한 무리의 까마귀가 날아간다. 「별이 빛나는 밤」의 하늘은 물결치고 「카페 테라스」의 거리는 빛으로 물들고 「감자먹는 사람들」의 불빛은 작게 흔들린다.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 「아를의 여인」 「오귀스틴 룰랭의 초상」 속 인물들은 관객을 향해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고흐가 세상을 떠나고 125년이 흐른 지금, 다시 새롭게 태어난 그 그림들은 관객들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다. 고흐가 사랑했던 풍경들과 고흐가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사람들을.

 

결국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전하는 것은 고흐와 만나는 경험이다. 그리고 고흐를 이해하는 경험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화가로 기억될 만큼 그림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던 이유, 그래야만 했던 까닭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운 색채와 터치로 화폭을 가득 채운 이유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세상에 무릎 꿇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였던, 그래서 많이 아파해야 했던,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 고흐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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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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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르: 뮤지컬
    •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 등급: 만 11세이상 관람가(초등학교 5학년 이상 관람가)
    공연정보 관람후기 한줄 기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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