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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은 어떻게 나눠야하지?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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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이상해”, “정상이 아니야”라고 말하기 앞서서 정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명확히 안다는 확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상에 대해 깊이 알수록 사실 비정상은 더 쉽게 보인다는 것을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은 분명히 알려준다.

 

격주 월요일,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추천하는 심리책 이야기,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가 연재됩니다.

 

 

“선생님 저 정상이 아닌 것 맞지요? 그러니 이러고 지내는 것이지요.”

 

진료실에 찾아온 30대 직장인 효선 씨다. 큰 문제 없이 회사를 잘 다녔는데, 2년전에 같은 부서의 부장이 새로 부임한 다음부터 직장 생활이 세칭 ‘꼬이기’ 시작했다. 효선 씨가 내는 제안은 사사건건 태클을 걸고, 회의 시간에 후배들 앞에서 면박을 주기 일쑤다. 일요일 밤에 좋아하는 개그 콘서트가 끝나고 나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월요일 아침에 건널목을 건널 때에는 차가 치고 지나가서 다리라도 부러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때도 있다. 며칠 전에는 같이 점심을 먹다가 부장이

 

“효선 씨는 몸매관리 안하나? 잘 먹네..”

 

라는 말을 하고 난에 밥먹다 말고 서러운 마음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러고 나니 도저히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병원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다.

 

효선 씨의 현재 상태는 정신질환으로 진단할 수 있을만한 비정상일까? 부장의 언행은 정상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견디기 어려운 수준일까, 아니면 효선 씨의 자아가 다른 동료들에 비해 약해서 그런 것일까? 단순하게 판단할 만한 일은 아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온갖 패악스러운 짓을 하면서 다니지만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때문에 가족들이 괴로움을 겪는 경우다. 술을 먹고 집에서 심한 주사를 부리고 그날 밤은 온 가족이 잠을 잘 수 없다. 그러나, 다음날 회사에 가면 좋은 직장인으로 잘 지내고,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그의 술문제를 모르고 있다면? 가족들은 그가 비정상이라고 단언하지만, 사회생활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성격좋은 호인에, 술좋아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만 여기고 있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판단해야하는 것일까?

 

한 사람의 정신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해서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요새 우리 사회에서는 정상보다는 비정상으로 보려는 경향이 훨씬 우세한 것 같다. 어떤 사회적 사건이 벌어지거나,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행위를 보고나면 “저건 저 사람이 뭔가 정신적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일 거야”라고 단정짓는다. 혹은, 결정장애와 같이 새로운 사회문화적 현상이 벌어지면 “000 증후군”이라고 이름을 붙이고는 한다. 이는 은연 중에 그 현상이 정상이 아닌 병리현상이라고 미리 가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으로 보려는 보수적인 시각은 새로운 현상을 병으로 규정하고 없어져야할 대상으로 보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이 병으로 규정할 수 있는 비정상 상황인가’를 잘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할 준비단계가 있다. 바로 ‘무엇이 정상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정상성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없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행동, 나의 불편함, 새로운 사회현상을 모두 비정상으로 성급히 판단하려는 경향이 관찰되는 것이 사실이다.

 

야구 심판이 무엇이 볼인지 판정하기 위해 스트라이크존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어야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무형인 인간의 마음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자르듯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십년 가까이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나 자신도 헷갈릴 때가 있다. 처음 초심자일 때는 병리학 공부를 하면서 증상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누구를 봐도 다 환자같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다음부터는 나의 이런 판단에 제동을 거는 본능적 브레이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털어서 먼지가 안나는 사람이 없는 법인데, 먼지 한 톨 나오면 다 환자이고, 비정상이라고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내가 읽는 서적들의 대다수는 병리현상을 규명하고, 증명하고,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었다. 그래서 스트라이크 존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의 범위를 정확히 무엇이라고 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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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한 고민을 그저 고민만 한 것이 아니라, 정말 깊이 공부를 해서 규명한 사람이 바다 건너에 있었다. 미국 하버드 대학 정신과 교수인 조던 스몰러(Jordan Smaller)다. 나는 그저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하버드 대학 교수는 괜히 하버드 대학 교수가 아닌지 5백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The other side of normal)'(시공사)을 써버렸다. 한때 나도 이런 내용을 한 번 다뤄보고 싶었는데 김이 팍 새버렸다. 거기다가 “올리버 색스를 능가하는 통찰력”이라는 찬사를 받았단다. 얼마나 잘 썼나 한 번 보자는 오기가 생긴다. (이런 오기가 생기는 것 정도는 정상적인 인간의 심리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정상성은 마치 공기를 느끼지 못하고 살듯이 모습을 가리고 있어서 잘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라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역사, 철학, 심리학, 뇌과학, 영상진단학, 신경생리학에서 밝혀진 수많은 자료와 증거들, 개념들을 총망라 통합해서 ‘정상성’에 대해 정리를 했다. 그 자신도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약물의존등의 정신질환을 진료하고 연구하면서 들은 의문에서 출발했따. 정신의 기능장애는 그 기능이 방해받을 때 존재하게 하는데, 사실 불안장애의 불안증상은 인간이 위협을 감지하고 반응하도록 하는 뇌의 보편적 메커니즘이 있는데 그게 과잉반응하거나 오작동을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은 같은 상황에 대해 적절히 위협에 대한 반응을 해서 잘 적응을 하고, 다른 이는 불안장애라고 진단을 할만한 수준의 불편감과 증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는 것이 그의 의문이었다.


먼저 저자는 정상(normal)이란 절대 ‘올바름(right)'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원래 대략 1820년대까지, ‘정상’이라는 말은 기하학에서 쓰는 용어였으며 ‘수직’ 또는 ‘직각’이라는 의미였다. 철학자 이언 해킹 Ian Hacking이 저술한 내용대로,‘정상’은 나중에 가서야 ‘올바른’이라는 또 다른 함축된 의미를 획득했다. 그러나, 정신과적 의미에서는 정상성은 훨씬 가변성을 갖고, 역동적인 상황이다.

 

그는 정신 질환을 유용하게 정의내리는 작업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단일하고 ‘진실한’ 경계를 찾고 확인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이 같은 경계선이 사실 어느 수준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더라도, 항상 유용하고 ‘현실적인’ 구별을 만들어내기 위해 경계선으로 구분 지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대적이고 변화무쌍하다. 그런 면에서 마치 정상과 비정상은 낮과 밤의 관계와 비슷하다. 즉 양쪽 모두, 누구나 서로 다르다고 인지하는 두 가지 상태를 의미심장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상태 사이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정확히 낮은 언제 밤이 되는 것일까?


3월달에 6시면 밤이라고 할만하지만 7월의 6시면 아직 낮이라고 할만하지 않을까? 만일 몸에 1센티미터 크기 이상의 암세포가 발견되면 그게 10센티미터이건 아니건 분명히 비정상 상태라고 분명히 판단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신적인 문제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어느 시점인지, 또 객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에 따라 낮과 밤을 결정짓기가 어렵듯이 구별하기가 어렵다. 물론 일몰 때로 하자고 결정할 수도 있다. 일몰은 낮과 밤을 구조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시간대이나 역시 임의적이고, 시기별로 달라진다.

 

또한 시대적 유행, 문화적 요인에 따른 국가적 정상성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경계선이란 매우 불명확하고, 우울증이 사실은 인간심리에서 상당히 정상적인 기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증거들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위한 유전학으로 밝혀진 최신 과학적 증거들, 양육과 천성의 논쟁속에서 정상성의 위치, 남녀의 성차가 각각의 성별에 따라 정상성의 정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모든 인간행동은 거의 대부분 처음부터 비정상은 없고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타고난 기질과 민감기의 경험, 그리고 살아온 궤적에서 적응하는 과정의 상호작용이 정상성이 어느 순간 비정상으로 양질전환하는데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의외로 큰 사건보다 사소한 경험의 축적이 뇌나 마음 모두에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기에 지금 우리가 주요정신질환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뚜렷한 단일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저 사람 이상해”, “정상이 아니야”라고 말하기 앞서서 정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명확히 안다는 확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단숨에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정상에 대해 깊이 알수록 사실 비정상은 더 쉽게 보인다는 것을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은 분명히 알려준다. 정확한 음정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음정이 틀린 것을 잘 잡아내듯이. 정상성에 대해서 살짝 깊은 공부를 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공부를 하면서 정상에 대한 개념이 분명할수록 내 삶의 반듯함도 나아질 것이란 부수입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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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 비정상의 시각으로 본 정상의 다른 얼굴조던 스몰러 저/오공훈 역 | 시공사
이 책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원제 : The other side of normal)은 비정상을 정의하기에만 바빴던 현대 정신의학과는 반대로, ‘정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본(정상)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그것을 벗어난 것들(비정상)을 확실히 정의할 수 있을 테니, 새로운 정신 질환을 정의하고 그 범위를 넓히기 전에 정상에 대한 논의부터 마치자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상성’을 정의하기 위해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유전학, 심리학, 그리고 사회문화적 영향까지 다양한 학문 분야를 총망라한다. 그 결과 이 책은 보다 깊이 있는 논의와 전문성을 갖추어, 정상과 비정상을 둘러싼 끝나지 않는 논의에 대한 중요한 한 수를 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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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조던 스몰러> 저/<오공훈> 역20,700원(10% + 5%)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은 비정상을 정의하기에만 바빴던 현대 정신의학과는 반대로, ‘정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본적으로 우리 뇌와 마음의 정상적인 메커니즘을 밝히면서 이것을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정신 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그 해결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연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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