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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줄 놓고 놀아봐? 에고펑션에러

에고펑션에러(Ego Function Error) < Ego Function Err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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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펑션에러의 데뷔작은 레트로에 기대고 있으면서도, 딱히 그 레퍼런스를 언급하지 않아도 그 매력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작품임을 강조하고 싶었다.

에고펑션에러(Ego Function Error) < Ego Function Err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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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주위 사람들과 잭 화이트(Jack White)의 「Lazarreto」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로 파이 질감을 완벽히 살려낸 기타 사운드, 개러지와 블루스의 완벽한 해석,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가 떠오르는 날카로운 보컬 등과 같은 이유를 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서로 최고라 칭송했던 그 곡. 그렇게 한참을 떠들고 나니, 어쩐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이 노랜 1960~70년대의 고전양식을 2000년대에 잘 '재현'해 놓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인가.

 

물론 위의 설명이 곡의 가진 매력의 전부는 아닐 뿐 더러, 잭 화이트를 폄하할 생각 또한 추호도 없다. 단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색깔을 만들려 노력하는 이들보다 그저 예전의 것들을 그저 원본에 가깝게 구현한 이들에게 더 높은 지지를 보내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는 느낌은 확실하다. 멀리로는 블루스나 사이키델릭, 가까이로는 개러지 록 리바이벌을 그저 '원형 그대로 잘만 가져다 놓는' 듯한, 맘먹고 그 레퍼런스를 찾으려면 모조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악들. 과연 그러한 결과물들을 단순히 '완성도가 좋다'는 이유로 감싸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약간의 회의감이 스치던 차였다.

 

서두가 길었다. 에고펑션에러의 데뷔작은 레트로에 기대고 있으면서도, 딱히 그 레퍼런스를 언급하지 않아도 그 매력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작품임을 강조하고 싶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언급했듯, 이들에겐 포스트 펑크와 사이키델릭의 흔적이 남아있고, 여기에 1980년대의 가요의 감수성이 스며있다. 신시사이저의 몽환적인 느낌으로 따지면 도어즈(The Doors), 보컬로 보자면 삐삐밴드가 떠오를 법하다. 그럼에도 기시감 없이 확실한 존재감을 알리는 것은, 자신들만의 것이 정립되어 있는 음악을 하고 있는 덕분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노래엔 '훅'이 명확하다. 대중들의 귀에 내리꽂는 '흡인력'이 곡의 매무새보다 우선적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내가 그러려고 그러는게 아닌데」의 첫 소절은 그야말로 미트 한가운데에 꽂히는 스트라이크다. 간단한 리프에 얹혀 나오는 발랄한 음색은 듣는 이를 휘어잡음과 동시에 밴드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만든다. 뜸들이지 않고 바로바로 쾌감을 전달하는 아드레날린과 같은 이들의 노래는 그렇게 '이성'으로 판단하기 전 '본능'을 꿰뚫는다.

 

카멜레온과 같은 김민정의 음색은 차별화의 일등공신이다. 최근 만나본 어떤 밴드의 것보다도 날카로우며 활기가 있고, 메시지를 이미지화 하는데 특히나 강점을 가지고 있다. 별 의미 없는 단어들의 나열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관을 단박에 전달하는 「내가 그러려고 그러는게 아닌데」에서는 최대한 화려하게,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몽유병」은 조금 더 진지하게, 사랑에 두근대는 마음을 고전적으로 표현한 「흔들리는 오후」에서는 두 곡의 중간지점에 있는 듯한 표현으로 각 트랙의 방향성을 정확히 부여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사운드는 과거의 것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 외에는 철저히 자신의 것들로 채워넣었다는 사실이 레퍼런스의 언급만으로는 이들의 음악을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팀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은 노래 한 곡 한 곡이 보여주는 별난 정서이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 괴물 > 이 생각나는 스토리를 가진 「도마뱀」의 판타지와, 누구나 공감할 법한 소재의 「통쾌하도다!」의 일상성의 공존. 넓지 않은 폭의 프레이즈와 동요에 비견할 만한 가사가 돋보이는 「애벌레 라이프」의 단출함과 9분에 가까운 시간을 노이즈 가득한 즉흥연주로 채워넣은 「파인」의 대조. 자칫 어수선할 수도 있는 구성에 납득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모두 '에고펑션에러'라는 스타일을 명확히 규정한 뒤 펼쳐놓은 소우주이기 때문이 아닐까. 연주 또한 짧은 활동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이처럼 데뷔작이 너무 완성되어 있는 나머지, 후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적재적소의 치밀함이 느껴지지만, 굳이 설명 없이 '그냥 좋다'라고 퉁치고 싶은 작품이다. 그 정도로 악기의 음 하나하나, 수록곡들의 멜로디와 음절 하나하나가 정말 집요할 정도로 스트레이트하게 꽂힌다. 예전의 것들을 가져다 사용했음에도 그것을 굳이 의식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점 역시 좋다.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는 시대이기에 자꾸만 과거로 향하는 시선을 간만에 현재로 붙들어 맨, 2015년 언더그라운드의 첫 번째 성취라 할만하다. 어디로 튀어나갈지 알 수 없는 자유분방함, 그 속에서 느슨히 유지하고 있는 팀만의 질서. 이러한 이들의 애티튜드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정줄을 적당히 놓고 사는 게 더 좋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 그렇다면 이 앨범을 들으며 우리도 함께 에러 상태로 돌입하자!

 

2015/02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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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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