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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묻다 (2)

온 몸에 번지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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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은 얘기를 듣고 글을 읽어도 짐작하기 어렵던 태동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바람의 온도와 냄새에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처럼 밑에서부터 천천히 움직임이 느껴졌다. 태동은 그 시각적 세계가 촉각으로 변해 온 몸으로 번져나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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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구와 나잇살에 대해 이야기하며 ‘중부지방’이 문제야, 하곤 한참 웃었다. 너무 비옥해져서 큰일이야. 등과 배, 허리, 팔뚝과 허벅지에만 살이 붙고 얼굴은 해쓱해져서 볼품없어지는 게 중년의 모습인가 싶어서 좀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팔이나 허리를 잡으면(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푹신한 살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졌다. 그런데 임신한 뒤로는 중부지방에 살이 더 찌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이나 지인들이 배를 만지는 것에도 너그러워졌다. 태동을 느끼게 된 뒤로는 동생들이 수시로 배에 손을 올려서 공동의 몸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아무리 많은 얘기를 듣고 글을 읽어도 짐작하기 어렵던 태동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바람의 온도와 냄새에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처럼 밑에서부터 천천히 움직임이 느껴졌다. 뱃속이 전반적으로 꿀렁거리는 느낌이 들 때는 소화가 안 돼서 그러는가 싶었지만 강도가 낮은 지진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연달아 찾아오자 이게 태동인가 싶었다. 시간이 지나자 뱃속에서 물방울이 연속적으로 튀어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이어졌다. 초음파 화면을 처음 봤을 때, 저게 내 뱃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이 신기해서 입이 벌어졌는데 태동은 그 시각적 세계가 촉각으로 변해 온 몸으로 번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 지날수록 느낌은 훨씬 강해졌다. 안에서 누가 움직인다는 걸 확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옆 사람과 동생들은 툭하면 내 배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어떤 메시지를 수신하듯 조용히 움직임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기는 잘 움직이다가도 누군가 손을 대면 눈치 빠르게 알아차리고 시치미를 뚝 뗐다. 축복아, 아빠야. 이모야. 옆에서 인사를 건네고 모종의 협박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치사하다며 손을 치운 뒤에야 조심스럽게 툭툭 신호를 보냈다. 나 여기 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라고 말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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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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