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하게 바스락거리는 봄의 추파(秋波), <마담뺑덕>
단어가 가진 원래의 뜻과 달리 세속적인 의미가 훨씬 더 낮아지는 경우가 있다. 가을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 혹은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은근히 보내는 눈길이라는 뜻을 가진 추파(秋波)라는 단어가 그렇다.
글 : 최재훈
20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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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어가 가진 원래의 뜻과 달리 세속적인 의미가 훨씬 더 낮아지는 경우가 있다. 가을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 혹은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은근히 보내는 눈길이라는 뜻을 가진 추파(秋波)라는 단어가 그렇다. 단어가 가진 원래의 뜻은 좀 더 은은하고 설레는 느낌이지만,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단어의 어감은 조금 즉물적이고, 세속적인 느낌이 강하다. <마담뺑덕>이란 영화가 주는 느낌이 아쉽게도 그렇다. 추파의 서정적인 원뜻에서 시작해, 세속적인 이해로 끝나버린 달까?


임필성 감독은 2007년, 동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헨젤과 그레텔> 이후 7년 만에 다시 한국의 고전을 현대로 불러들였다. 당시 흥행이나 평가 모두 미지근한 반응을 얻었지만, 어른들이 만들어낸 공포에 짓눌린 아이들이 다시 공포의 주체가 된다는 설정은 흥미로운 영화였다. 그런 점에서 <심청전>의 악역이자 조연이었던 뺑덕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마담뺑덕>은 색다르고 재미있는 작품이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정우성의 첫 노출이라는 자극적인 이슈와 색다른 매력을 가진 이솜이라는 배우에 대한 기대가 더했다. 


취미에 눈뜬 남자, 집착에 눈먼 여자



기대한 만큼 <마담뺑덕>의 도입부는 충분히 매혹적이다. 벚꽃이 흩날리는 지방 소도시, 세련되고 퇴폐적인 중년 남성, 그리고 순진하고 멋모르는 한 처녀의 사랑. 물처럼 고여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일상 속에 다가온 남자의 매력에 빠진 순진한 처녀는 사전적 의미에서의 ‘추파’를 던진다. 설레고 두근거리는 첫사랑의 매혹과 거칠 것 없는 집착, 마음과 육체가 함께 열리는 이 순수한 열정은 뭔가 아슬아슬하지만 편을 들어주고 싶은 정서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우리는 순수한 덕이의 몸과 마음이 곧 누더기가 되리란 걸 안다. 시골 생활을 따분해 하는 학규에게 친구가 툭 던지는 한 마디, “뭔가 취미라도 가져봐.” 그때 오버랩 되는 덕이의 클로즈업된 얼굴. 딱히 나쁜 남자 같지 않지만, 학규에게 덕이는 사랑하는 여인이 되진 못한다. <마담뺑덕>은 이렇게 지루한 일상의 ‘취미’로 여자를 취한 남자와 깊은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는 여자의 어긋난 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면서 앞으로 벌어질 치정극의 불길한 기운을 꽤 매혹적으로 깔아둔다.


기대했지만 문제는 화재로 엄마를 잃은 덕이와 자살한 아내 덕에 홀로 청이를 키워야 하는 학규가 재회하는 8년 뒤, 본편으로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중심을 잃어버린다는데 있다. 이제부터 모티브를 따온 <심청전>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덕이와 학규의 관계 속에 ‘청이’가 섞이는 순간, 이야기는 점점 더 인위적으로 가공된다. 익숙한 원작의 이야기와 그것을 접목시키는 방법에 대한 궁금증은 <마담뺑덕>을 끝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덕목이기도 하다. 특히 ‘공양미 300석에 팔려간 청이가 금의환향하여 아비의 눈을 뜨게 하는’ 장면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되살릴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이 현실이 되는 기법은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설화의 판타지에서 용인될 수 있었던 사건들이 현실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우연으로 이어지는 순간, 이야기의 균형도 매혹도 윤기를 잃어 바스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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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 이솜이 보여주는 연기는 신선하다. 순수와 열정이 뒤섞인 묘한 표정과 흔들리는 눈동자가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버린 여자의 마음을 보여준다. 장애인 엄마에게 더 없이 착한 딸이지만 사람이 찾지 않는 놀이공원 매표소 안에서 인생의 따분함을 견뎌야 하는 덕이가 서울에서 온 중년 남성에게 푹 빠져버리는 과정은 이솜이라는 배우가 가진 다양한 매력 때문에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어느새 중년 남성의 진중한 모습으로 다가선 정우성도 한마디로 인생 격변을 겪어야 하는 학규가 되어 자연스럽게 극 속으로 관객을 이끈다. 속물근성을 숨기고, 우아한 척 하지만 퇴폐적인 교수에서 시력을 잃고 나락에 빠지는 학규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는 충분히 성숙해 보인다. 조금 아쉬운 점은 덕이가 사랑에 빠진 학규의 모습은 여전히 너무 매력적이어서, 두 사람의 화학작용이 불륜의 아슬아슬함 위를 거니는 느낌 보다는 자연스러운 연정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아쉬운 점은 끝내 이야기를 설득하려 하는 두 사람의 멋진 연기 위로 균형을 잃은 이야기의 부스러기가 뒤덮인다는 점이다.  


‘눈이 먼다’라는 <심청전>의 이야기는 <마담뺑덕>에서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로 사용된다. 사랑에 눈 먼, 욕정에 눈 먼, 복수에 눈 먼, 어떤 것으로도 적용 가능하다. 하지만 학규가 물리적인 자극으로 정말 눈이 먼 순간, 심정적으로 사랑에 눈을 뜬다거나 속죄의 마음에 눈을 뜬다거나 하는 대비도 상징적이고 효율적으로 쓰였다면 조금 더 효과적인 복수 치정극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다시 관계가 역전되어 물리적으로 눈 먼 덕이와 눈을 떠버린 학규의 관계가 조금 더 애잔한 로맨스로 남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우성 #마담뺑덕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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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