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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찰소설이 대단하다

경찰소설이라고 하면 경찰, 형사가 주인공인 소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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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소설’이 단지 캐릭터가 누구인지만으로 규정이 된다면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경찰이라는 캐릭터는 최소한의 조건이고, ‘경찰’이라는 조직, 집단 그리고 경찰로서의 개인의 정체성 등등을 다루지 않으면 굳이 ‘경찰소설’이라 부르기 꺼려진다. 경찰 조직 내부의 갈등이나 고발, 경찰이라는 직업인으로서의 고뇌와 애환 등이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사건 자체보다 조직 내부의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다루는 경찰소설도 있다.

일본에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라는 책이 매년 나온다. 1988년부터 시작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는 매년 일본과 해외 미스터리 베스트를 선정하고 해설과 기획 기사를 덧붙인다. 일본에서 어떤 미스터리, 스릴러 등이 출간되고 인기가 좋은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가이드북이다. 오리지널이 인기가 좋으니 ‘이 만화가 대단하다’, ‘이 아니메가 대단하다’, ‘이 라이트노벨이 대단하다’ 등도 나오고 있다. 가끔은 특별판도 낸다. 2012년에 나온 ‘이 경찰소설이 대단하다’도 그런 특별판의 하나다.


경찰소설이라고 하면 경찰, 형사가 주인공인 소설을 말한다. 하지만 ‘경찰소설’이 단지 캐릭터가 누구인지만으로 규정이 된다면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경찰이라는 캐릭터는 최소한의 조건이고, ‘경찰’이라는 조직, 집단 그리고 경찰로서의 개인의 정체성 등등을 다루지 않으면 굳이 ‘경찰소설’이라 부르기 꺼려진다. 경찰 조직 내부의 갈등이나 고발, 경찰이라는 직업인으로서의 고뇌와 애환 등이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사건 자체보다 조직 내부의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다루는 경찰소설도 있다.


‘이 경찰소설이 대단하다’에서 선정한 역대 경찰소설 베스트 20의 1위에 오른 작품은 요코야마 히데오의 제 3의 시효』다. 『64』 『클라이머즈 하이』 『사라진 이틀』 등으로 유명한 요코야마 히데오는 경찰 ‘조직’을 그리는 작가 중에서는 그야말로 최고라 할 수 있다. 『64』 『그늘의 계절』 『동기』 『제 3의 시효』 『종신검시관』 등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은 대개 도쿄가 아닌 지방의 현경을 배경으로 한다. 살인이나 폭행 등 강력 사건들도 있고 출근길에 사라진 여경이나 퇴직을 거부하는 전직 경찰처럼 사소한 사건들도 있다. 경찰만이 아니라 법관과 신문기자 때로는 범죄자의 입장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생관계이면서도 서로의 약점을 캐내려는 경찰과 기자의 미묘한 긴장감. 현장 수사에 약한 상관이 경험 많은 베테랑 형사와 일하면서 느끼는 갈등, 일본의 경찰 소설과 드라마라면 언제나 나오는 캐리어와 논캐리어의 노골적인 대립, 구체적인 수사와 심문의 다양한 기법 등 구체적인 상황들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거대 조직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과 고뇌는 요코야마 히데오 소설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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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직’의 내면을 야수처럼 찢어발겨놓긴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하게 인간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난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성숙함이 있다. 그 성숙함이란, 사건과 인간을 그저 다정하거나 연민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기자의 시선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경찰 소설은 당대를 읽어내면서, 세파에 흔들리며 뒤틀린 인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해 준다. 『땅의 소리』에서 너무나도 선량한 경찰이 왜 거짓 밀고를 했는가를 들려준다. 『동기』에서 일괄 보관한 경찰수첩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진짜 ‘동기’를 전해준다. 요코야마 히데오가 정말로 들려주고 싶은 것은, 범죄와 트릭의 기발함이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진실한 모습이다. 우리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잊어버리고 있던 진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요코야마 히데오 소설은 마치 논픽션을 읽는 것처럼 ‘조직 안의 인간’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대학 졸업 후 신문사에 들어가 12년간 기자로 일했던 요코야마 히데오는 직접 경찰과 대면하며 정보를 캐낸 취재 이력 덕분에 ‘조직’의 이면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포착한다. 또한 기자 생활을 통해 배운 다양한 테크닉을 소설에서도 탁월하게 활용한다. 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서 주변의 모든 것을 파헤치고, 그가 맺은 모든 관계를 낱낱이 드러낸다. 유능한 기자라면 얼핏 사소한 것 같아 보이는 사건이나 현상에서 본질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면에 드리워진 검은 손이나 사회적인 모순을 냉철하게 짚어내야 한다. 더 나아가 최고의 기자라면 비정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엄정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잡아내야 한다. 신문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휴머니즘이 아니라 진실이다. 그러나 진실을 파헤치다보면 자연히, 인간을 만나게 된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미스터리 기법을 빈번하게 사용하긴 하지만, 트릭에 크게 흥미를 느끼는 작가는 아니다. 『그늘의 계절』 표지를 넘기면 요코야마 히데오의 ‘세상사는 미스터리요, 호러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그 말을 보면 요코야마 히데오의 관심이 무엇인지 넘겨짚을 수 있다. 요코야마는 미스터리를 쓰기 위해 세상을 분석하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 사람들을 파헤치고 있다. 사람들이 왜 살아가는지, 왜 범죄를 저지르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 등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다. 오랜 시간 공들여 쓴 근작 『64』를 읽고 있으면, 그렇게 조직 속의 인간을 파헤치며 ‘경찰 소설’의 대가가 된 요코야마 히데오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찰 소설이 대단하다’가 꼽은 베스트 20에는 국내에 나온 작품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사사키 죠의 『경관의 피』, 곤노 빈의 『은폐수사』, 다카무라 카오루의 『마크스의 산』, 오사와 아리마사의 『신주쿠 상어』, 가노 료이치의 『제물의 야회』, 혼다 테쓰야의 『지우』, 누쿠이 도쿠로의 『후회와 진실의 빛』 등등. 이 경찰소설들의 방향은 제각각이다.『경관의 피』는 3대에 걸쳐 경찰에 투신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수 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경찰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개인의 삶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보여준다. 요코야마 히데오처럼 경찰 ‘조직’을 파고드는 곤노 빈의 『은폐수사』는 경찰 조직 내의 모순, 문제점을 치열하게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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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는 탐정과 달리 경찰은 조직으로 움직인다. 내부의 경쟁도 있고, 조직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경우도 있다. 『신주쿠 상어』의 사메지마는 경찰 내부의 비리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기에 한직으로 좌천되고 대신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혼다 테쓰야의 『스트로베리 나이트』 등 히메카와 형사 시리즈는 그녀와 경쟁하는 쿠사카와 카스마타를 통해 경찰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서로 싫어하면서도 인정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이면서도 하나의 조직을 위해서,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뭉치게 된다. 조직과 집단을 대단히 중시하고, 집단에서 밀려나거나 혼자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일본에서 경찰소설은 범죄소설의 중요한 하위 장르로서 존재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에드 맥베인의 『킹의 몸값』 등 87분서 시리즈, 펠 바르와 마이 슈발의 『웃는 경관』 등의 고전이 있고 1950년대 LA 경찰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제임스 엘로이의 『LA 컨피덴셜』 등을 ‘경찰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형사가 주인공이라면 일단 기본 요건은 충족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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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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