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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포구로(浦口路)

파도가 들려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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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는 바다로 통하는 문턱이다. 바다와 육지를 이어주는 실전화기다. 조용히 말을 건네면, 줄을 떨리게 해서 소리를 전달하는 이 오래된 방식이야 말로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투명한 통로이다. 포구는 바다로, 섬으로 가기 위한 선착장이며,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대합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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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미국 단편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아들의 생일날,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게 되는 한 부부와 그들에게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독촉 전화를 하는 빵집 주인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참다못한 그들 부부는 스코티의 장례를 치르고 난 이후에 빵집을 찾아가게 된다. 상황을 몰랐던 빵집 주인은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고, 오븐에서 막 꺼낸 따뜻한 계피롤빵을 부부 앞에 내어준다. 주인은 부부가 롤빵을 집어먹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며 이런 말을 한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신의 허기를 채워줄 빵 한 조각이 아직 남아 있다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신이 잠시 쉴 수 있는 의자가 있다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당신이 곁에 있다면. 지금 당신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혹, 당신이야말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사람인 지도. 분명 그럴 것이다.

 

시드니-롱그빌.jpg

 

도움이 되는

 

Mer는 불어로 바다를 뜻한다. 그런데, 이 바다에 여성형 정관사인 La가 붙는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엄마를 뜻하는 M?re와 발음이 같다는 것은 인류가 바다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려주는 증거가 된다. 가장 작은 개체들이 사랑하고 번식을 하는 우주 같은 이 공간은 세상의 모든 별을 비출 만큼 거대하고 또 아름답다. 인간의 몸의 70%가 수분이듯이, 지구의 70%도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 창조적 신을 만들어내고, 기도를 드리며, 굴복하기도 하지만, 끝없이 우리는 바다를 알고자 했다. 따뜻하고 안온하고 희미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어머니의 자궁으로, 그 텅 빈 공간으로부터의 그리움 혹은 상실감이 이토록 바다를 찾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수많은 비극으로부터 저항할 권리가 있고, 통증으로부터 피할 자유가 있다. 그럼에도 이 바다는 곁에서 무심결에 파도를 만들어내고 또 파도를 흘려보낸다. 파도의 방향을, 바람의 방향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몸을 맡겨 자연의 힘을 삶에 보태고자 하는 것이다. 파도가 멈춰버린다면, 그 바다는, 지구는 거대한 무덤이 될 것이다. 파도가 몰아치는 동안은 영원히 생명이 번식할 것이다.


휘몰아치는 파도의 부딪힘 속에서 휴식을 찾는 일이란 여간 쉽지가 않다. 우린 이 바다의 위협을 멀찌감치 혹은 한 발짝 벗어나서 구경꾼이 되려 한다. 그 거리는 죽음이 몰아치지 않을 정도의 긴장을 유지하기 때문에 묘한 안도를 불러일으킨다. 그리스 비극만큼의 카타르시스를.


포구는 바다로 통하는 문턱이다. 바다와 육지를 이어주는 실전화기다. 조용히 말을 건네면, 줄을 떨리게 해서 소리를 전달하는 이 오래된 방식이야 말로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투명한 통로이다. 포구는 바다로, 섬으로 가기 위한 선착장이며,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대합실이다.


작년 겨울, 이모부를 바다에서 잃었다. 명절이면 늘 그렇듯이 먼저 떠난 자들이 원망스럽다. 보름달이 바다에 비쳐 아름다운 은백색 물결이 될 때, 은결의 그 길로, 잠시라도 이리 오셨으면 좋겠다. 그 바다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돌아가야 할 수밖에 없겠지만, 포구는 어느 때고 열려 있으니, 꼭 다시 오실 거라 파도가 말해준다. 그 파도의 이야기를 나는 영원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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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소년의 포구이야기 오성은 저 | 봄아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축복받은 자연환경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아름다운 포구를 간직하고 있다. 마도로스의 아들로 부산에서 태어나 아직 청춘의 바다를 건너고 있는 젊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그곳에 서서 잠시 읽어보는 것, 그려보는 것, 그리고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누구나 지금 당장 푸른 바다를 품은 포구를 향해 떠날 수 있다. 이들 포구로 향하는 길은 분명, 언제나 청춘 같은 삶의 힘찬 생명력을 발견하는 기쁨이며, 다시 삶의 소중함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바다를 통해 더 넓고 깊은 마음을 품게 된 자신을 발견하는 만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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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성은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씨네필
문학청년
어쿠스틱 밴드 'Brujimao'의 리더.

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

<오성은> 저13,500원(10% + 5%)

바다를 품은 서른 곳의 포구, 물결치는 삶의 생명력을 만나는 여행 KBS TV(부산) ‘바다 에세이 포구’ 1년간의 방송과, 온라인 연재를 통해 사랑을 받은 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가 책으로 출가되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축복받은 자연환경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아름다운 포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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