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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의 엇갈린 운명 <블러드 브라더스>

물 만난 조정석, 3년 만에 돌아온 무대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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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대단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3년 만에 복귀한 배우 조정석의 연기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던지던 개그 연기라든가, 어쩐지 주먹을 불끈 지게 할 만큼 오글거렸던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에서의 진지한 미간 연기는 조정석이 할 수 있는 연기 일부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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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태어나자마자 헤어지게 되는 존재

 

나를 복제한 듯 외양도 나이도 성격도 비슷한 존재가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공간, 한 부모 아래에서도 닮은 듯 다르게 서로를 거울처럼 보며 성장해나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쌍둥이라는 존재는 매력적이면서도 불가사의하다. 이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다큐 <탄생의 신비- 쌍둥이>에서 과학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는데, 거기서는 쌍둥이를 자연적 인간복제에 가장 근접한 존재라고 규정한다.

 

쌍둥이는 태어나자마자 헤어지게 되는 운명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이들은 서로를 모르고 성장하더라도 직업이나 취미를 공유하며 상당히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마법 같은 요소 덕분인지 많은 이야기에서 주연이나 조연으로 쌍둥이라는 캐릭터를 종종 볼 수 있다.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 역시 쌍둥이 형제 미키와 에디의 엇갈린 운명,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 두 사람의 하나이자 두 개의 삶을 이야기한다.

 

배경은 1960년대 영국 공업도시 리버풀이다. 남편이 집을 나가버린 후, 홀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하는 존스턴 부인. 그녀는 남편과 손만 스쳐도 임신이 될 만한 다산왕인데, 키울 능력이 없는데도 자꾸 아이가 생겨, 이번에 뱃속에 들어선 쌍둥이 아이가 기쁘면서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마침 존스턴 부인이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라이언스 부인은 불임으로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으니, 존스턴 부인의 사정을 알게 된 라이언스 부인은 하늘이 주신 기회라며 놀라운 제안을 한다. 한명을 자기에게 맡기고, 언제든 우리 집에 들러 아이를 보러 오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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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선택, 불행한 결과

 

존스턴 부인은 피치 못할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그 아이를 위해서, 또 남은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의 선택이긴 하나, 자신의 핏줄을 남에게 떼어준 채 영영 그 아이에게 가정부로 남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블러드 브라더스>는 이런 사정 때문에 다른 운명에 놓인 두 형제의 이야기지만, 그들의 엄마의 비중이 상당하다. 멋모르고 손잡아주는 남자를 따라나섰다가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되고, 인생을 건 선택 앞에서 스스로 결정을 하게 되고, 그 대가를 치르면서 성장하는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주연 배우들보다 엄마의 연기나 노래 분량이 훨씬 많기도 하다.) 이 운명을 가로 짓는 두 엄마, 존스턴 부인은 배우 진아라, 구원영, 조급해질수록 탐욕의 주머니를 불려가는 라이온스 부인은 배우 김기순이 연기하는데, 안정적인 발성과 성량 덕분에 극이 흔들림 없이 진행된다.

 

한 아이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살게 되고, 라이온스 부인에게 선택받은 한 아이는 더없이 풍요로운 가정에서 사랑과 보살핌을 (과할 정도로) 받으면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두 형제 미키와 에디는 운명처럼 만나고 부딪치게 된다. 두 엄마가 이 비밀을 영원히 감추려고 애를 쓰지만, 이미 의형제까지 맺어버린 미키와 에디 사이에 이 진실은 불행의 그림자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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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웨스트앤드 24년간 흥행작, 비결은?

 

사실 형제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가 뒤늦게 "넌 내 자식이다." "내가 네 형이다." 하는 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워낙 드라마에서 많이 쓰인 이야기라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 어쩐지 이런 줄거리에서 80년대 흥행했던 한국 드라마의 신파적 감수성이 묻어난다 싶었는데, 이 뮤지컬은 1983년도에 초연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블러드 브라더스>는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24년간 10,000회 이상 공연되며 최장기 흥행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인기의 비결은 연출이나 연기다. 제아무리 빤한 이야기라도 연출, 즉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새로우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되니까. 그리고 다섯 살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 성인 연기까지 한 무대에서 보여줘야 하는 배우들의 매력과 개성이 뛰어나면, 또 이 뮤지컬은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이 된다. 지금 대학로에서 펼쳐지고 있는 <블러드 브라더스>의 경우는 어떨까? 전적으로 후자라고 생각한다.

 

대형 뮤지컬다운 화려한 세트, 이야기에 걸맞은 아기자기한 소품과 배경 덕분에 극이 시작되자마자 관객들은 극에 몰입하게 된다. <블러드 브라더스>에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레이터 역이 등장한다. 해설자다. 인물의 사연이나 속마음을 구구절절 노래로 풀어주는 배역이다. 자주 등장해서 앞으로 다가올 불행한 일들을 예고해주기도 하는데 이런 식이다. "과연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불행의 씨앗이 이 순간에 자라고 있네"라든지 "이 행복한 세 사람 사이에 믿기 힘든 불행이 닥쳐온다. 지금은 모르고 그저 즐길 뿐."

 

나레이터가 불안감, 기대감 등의 분위기 조성을 하는 건 맞지만, 문제는 너무 자주 등장한다. 아주 사소한 일이나 사소한 소품에도 달려들어 앞으로의 불행을 예고하고, 두 사람의 운명을 일찌감치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자칫 극을 지루하게 이끌어간다. 그야말로 80년대 옛날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줬다. 그러니까 관객이 불안하다, 기쁘다고 극의 정서를 느끼기 이전에 먼저 등장해서 썰을 풀어서 말이다.

 

또 이야기에서 중요한 단서로 제공되는 미신- 테이블 위에 신발을 올려놓으면 무시무시한 일이 생긴다 등등-이 미국문화를 기초로 한 것이어서일까,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복선을 깔아놓는 데 있어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차라리 문지방을 밟으면 재수 없는 일이 생긴다는 식의 우리나라 미신이었으면, 좀 더 와 닿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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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 3년 만에 무대 복귀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은 대단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3년 만에 복귀한 배우 조정석의 연기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던지던 개그 연기라든가, 어쩐지 주먹을 불끈 지게 할 만큼 오글거렸던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에서의 진지한 미간 연기는 조정석이 할 수 있는 연기 일부분에 불과했다.

 

무대 위에서의 조정석은 TV나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아우라를 발산한다. 일단 기본적으로 코미디 연기라든가, 진지한 미간 연기가 되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성량 좋은 저음의 목소리가 대단히 매력적이다. 뮤지컬 배우로서 기본에 충실하다. 송창의가 같은 역할로 캐스팅되었다. 이 뮤지컬의 흥행에 배우 연기가 상당수 빚지고 있다는 것은 공연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극적 전개와는 상관없이, 조정석이 등장해 애교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거나, 훌쩍 자라서 등장할 때마다 커튼콜에 비하는 함성이 터져 나오니 말이다. 조정석이 연기하는 미키와 쌍둥이인 에디를 연기하는 장승조 역시 대학로에서 대단히 인기 있고 실력 있는 뮤지컬 배우지만, 역동적인 미키 캐릭터에 배해 소심한 모범생 에디라는 인물 자체의 매력이 떨어진다. 배역도 연기도 평면적이다. 오종혁이 장승조와 더블캐스팅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공연을 볼 때 꼭 연기가 어떠네, 연출이 어떠네 평을 하기 위해서 보는 것만은 아니다. 종합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좋은 음악과 좋은 연기 덕분에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다. 두고두고 의미를 곱씹을 만큼 예술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보고 나왔을 때 아, 재밌었다고 옆자리의 친구와 조잘조잘 수다 떨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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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1980년대의 영국. 그 커다란 빈부격차 속에서 둘 다 최선을 다해서 성장했다는 가정을 해도, 빈익빈 부익부를 뛰어넘기 어려운 구조라는 사회상을 무대 위에 담아냈다. 노동자는 해고되고, 그 노동자를 해고하던 직원 역시 마지막에는 해고되는 풍경이라든지, 노동자들이 범죄 같은 한탕에 솔깃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몇 곡의 노래를 통해 인상적으로 풀어낸다. 그게 미키와 에디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시대상을 그저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에 녹여냈더라면 마지막에 두 사람이 다다를 수밖에 없는 비극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이러저러한 시대 상황은 관객들에게 잘 전달했는데, 그와 별개로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의 대치하는 상황은 갑작스럽고 조금은 뜬금없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관객들은 다들 이런 질문 하나씩은 마음에 띄워봤을 테다. 만약 내가 미키였다면, 에디였다면? 쌍둥이인데 나만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면, 나만 부잣집에서 자라게 됐다면? 무엇이 행운이고 무엇이 불행이 될까? 풍요와 빈곤은 제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블러드 브라더스>를 보고 있자면, 진정한 비극과 슬픔은 내가 가난하고 못났다는 사실보다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초라하게 보이는 일, 비교되는 일에서 비롯된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가난이 주는 가장 큰 불행은 배고픔보다도 견딜 수 없게 하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아닐까. 이것만큼은 1980년대의 일만은 아닐 테다. 씁쓸한 일이다.

 

<블러드 브라더스>의 연출을 맡은 글렌 웰포드는 이 작품이 "삶과 죽음의 찬란한 영광에 관한 이야기"라고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한 사람의 출생에서 죽음까지 지켜보는 일은 그게 어떤 이야기라 할지라도 지금 한순간에 놓여 있는 관객에게 인상적인 자극을 주기 마련이다. 이게 예술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이기도 하고 말이다.

 

무대 1층부터 3층까지 빼곡히 차 있는 라이브 연주에 맞춰서, 곡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멜로디가 있는 노래를 듣다 보면 무대에 그려낸 기쁨도 슬픔도 객석에서는 즐길만한 것이 된다. <블러드 브라더스>는 9월 14일까지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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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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