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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끝이어선 안 될 우리,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이 속에 담긴 삶이 그들의 ‘끝’이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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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중심 서사와 중심인물 없이 늘어놓은 에피소드들은 한결같이 우울한 현실을 반영하지만, 그 속에 역시 시작되는 설렘과 끝내 놓아버릴 수 없는 꿈까지도 담아낸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을 얼마나 많이 진열하느냐는 편의점의 주요 덕목 중 하나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인구가 500만 명이 넘는다는 2014년 대한민국에서, 편의점은 청춘들이 가장 용이하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편의점은 생계를 위해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또한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사람 혹은 진상들을 대면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잡다한 편의점의 물건들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고 만나는 곳. 하지만 선뜻 새로운 세상이 나타나주지도, 돌파구를 찾아내기도 힘든 곳. 김경묵 감독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변두리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끝’ 혹은 궁지에 몰린 아이들이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의 덫처럼 활용한다. 그리고 수많은 인물들이 층위의 조절 없이 뒤섞인 이야기는 그 자체로 편의점을 닮았다.



 

주인공들은 편의점에서 최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젊은 노동자들이다. 과거에 이들이 가졌던 직업이나 막연하게 꾸는 꿈도 다양하다. 배우 지망생, 탈북자, 대학생, 중년 실직자, 자퇴 고등학생이라는 편의점 알바들과 각양각색 손님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히 만나는 인간 군상들을 영화 속에서 차례차례 만난다. 시작된 사랑, 힘겨운 사랑, 탈북과 동성애, 노동 착취와 좌절된 꿈을 나열하는 방식은 신선하고 재기 넘치는 젊은 배우들 덕분에 때론 상큼하고 때론 무섭게 표현된다.

 

그 진열방식이 너무 많은 물건들이 놓인 편의점식 나열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면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나열된 이야기들 속에서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발견한다면 <이것은 우리의 끝이다>는 충분히 공감하고 동감할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끝’이라는 선언 같은 제목과 달리 김경묵 감독은 여전히 이 속에 담긴 삶이 그들의 ‘끝’이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이미 중심 서사와 중심인물 없이 늘어놓은 에피소드들은 한결같이 우울한 현실을 반영하지만, 그 속에 역시 시작되는 설렘과 끝내 놓아버릴 수 없는 꿈까지도 담아낸다.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알바비도 제대로 주지 않는 전두환 사장과 진상 손님들에 맞서는 청춘들의 아픔 속에는, 대기업 편의점 본사로부터 착취당하는 전두환 사장의 현실도 녹아들어 있다. 사장과 편의점 알바들은 노동력 착취와 억압이라는 고리 속에 얽혀 있지만, 또한 그 누구도 편의점을 벗어날 수 없다는 힘겨운 현실은 삶의 공포처럼 영화 속에 드러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 잠든 시간에 깨어있는 이들이 정작 자본화된 사회의 소외계층이라는 그 적나라한 민낯을 김경묵 감독은 일상처럼, 진열된 물건처럼 나열한다.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똑 같은 유니폼을 입고 서 있는 모습에서 이 다양성이 편의점 알바라는 하나의 계층으로 묶이는 현실은 지독하고 씁쓸한 일이다.

 

이미 과감한 표현으로 화제가 되었던 <얼굴없는 것들>과 재심의 끝에 개봉된 <줄탁동시> 등 제한상영 등급을 받을 만큼 과감한 표현으로 화제를 모은 김경묵 감독이 한결 편안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시종 활기차고 가벼운 외형으로 드러나지만, 곱씹어 볼수록 점점 더 뒷맛이 쓴 슬픔을 그 속에 녹여낸다. 전작들을 통해 타협 없는 주제의식에 주목하던 그가, 상업영화의 틀 속에 표현하고 싶은 화두를 녹여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  독립영화계의 스타 이주승, 이바울, 김새벽과 그룹 서프라이즈의 공명, 아이돌 그룹 헬로비너스의 유영, <막돼먹은 영애씨>의 안재민을 비롯하여 정혜인, 김희영, 신재하 등 앞으로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갈 신인배우들을 한 곳에 불러 모은 감독의 혜안 역시 이 영화가 이룬 성과 중의 하나이다. 이 유망한 배우들이 성장할 때마다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수시로 꺼내보게 되고 언급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것이우리의끝이다.jpg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스틸컷

 

등급유감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15세 관람가 등급이었지만, 극장 개봉을 앞두고 청소년관람불가등급을 받았다. 욕설, 비속어, 모방위험 등이 그 이유지만 정작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그 관람등급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4년 개봉한 유하감독의 <말죽거리잔혹사>가 폭력적인 장면과 욕설, ‘학교는 좆같아.’라는 도전적인 대사를 포함하고도 15세 관람가를 받았던 것에 비한다면 10년이나 지난 지금, 영상물등급위원회의 팍팍한 기준은 유감스럽다. 앞서 <줄탁동시>는 화장실에서의 오랄 섹스 장면이 문제가 되어 제한상영 등급을 받았고, 문제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여 개봉했다.

 

최근 등급문제가 불거진 영화는 남기웅 감독의 <미조>이다. 제한상영가 판정에 불복, 무삭제 버전으로 문제 장면에 블러처리를 한 채 재심의를 했지만 지난 6월 26일 다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사실상 국내 개봉이 어렵게 되었다. 영등위는 버림받은 아이가 친부를 찾아가 복수를 하고, 그 과정에 근친상간적 설정이 문제시되어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의 정서를 현저히 손상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가 근친상간의 직접적 표현을 했음에도 검열에 문제가 없었던 점과 비교한다면, 그 기준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2013년 레오 까락스 감독의 <홀리모터스>는 발기된 성기가 등장하는 장면 때문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후, 역시 블러 처리 후 개봉되었다. 영화사에 남을 명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을 고작 성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못 볼 뻔 했던 셈이다. 문제는 풍자의 의미를 담고, 전혀 야하지 않은 성기 노출 장면이 모자이크를 덧입으면서 그 의미가 왜곡되어 보였다는 점이다. 주요 장면을 모두 블러 처리하여 무삭제 개봉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매니악>도 비슷한 케이스다.

 



[관련 기사]

- 감정(感情)의 감정(鑑定), <베스트 오퍼>

- 촘촘하게 직조된 미스터리의 유혹, <오큘러스>

- 색, 녀의 속사정 <님포매니악 볼륨 1>

- 꽈배기의 맛 - <끝까지 간다>
- 함축으로 보존하고픈 사랑, < H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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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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