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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에서 겸재 정선과 송중기를 만나다

명승 전문가 김학범 교수와 함께한 포천 답사 볼거리 가득한 한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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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지역은 예부터 산이 아름답고 물이 깨끗한 고장이었다. 옛 영평지역의 절경 8곳을 영평팔경이라 불렀다. 이곳은 조선 중기 영의정을 지낸 사암 박순과 명필가인 석봉 한호 그리고 한시의 대가인 봉래 양사언의 작품으로 유명해졌다. 영평팔경은 금강산 유람길의 노정에 있어, 당대 유명한 선비나 화가가 들렀던 명승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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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중기의, 송중기를 위한, 송중기에 의한 영화 <늑대 소년> - 하지만 필자는 박보영이 더 좋았다 - 의 마지막 장면을 당시에는 연인이었고 지금은 아내인 여성과 보며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제주에서 찍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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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소년>의 그 장면


99.9%의 확신에 찬 발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포천에 위치한 ‘비둘기낭’에서 <늑대소년> 포스터를 발견하고 받은 충격은 꽤 컸다. 기존에 믿고 있던 세계관이 무너지는 느낌? 북한이야 잘 모르겠고,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현무암을 볼 수 있는 화산지형이 제주에만 있다는 게 내가 알고 있던 세계관이었다. 그런데 대륙에도 화산지형이 있다고 한다. 바로 한탄강에!

 

‘책 속 그곳’ 6월의 주인공은 경기도 포천이다. 포천에는 국립 수목원, 산정호수, 백운계곡 등 아름다운 장소가 참 많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한탄강이다.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 일대에서 발원하여 철원과 포천을 거쳐 임진강과 합쳐진다. 이번 답사에서는 포천 아트밸리, 화적연, 멍우리 주상절리대, 비둘기낭을 들렀다. 특별히 명승 분야의 권위자인 김학범 교수와 예스24 회원 20여 명도 함께했다.


김학범 교수는 국내 문화제 분야에서 ‘명승’의 토대를 다진 선행 연구자다. 10여 년에 걸쳐 진행한 명승 기초자원 조사와 지속적인 연구로 국가 지정 명승을 결정하는 데 이바지했다. 2003년에 단 7곳이었던 국가 지정 명승은 지금 110여 개소로 늘어났으며 앞으로도 증가할 전망이다. 그가 쓴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 기행』은 명승지를 담은 자연유산 순례기라 할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지형 중에서는 포천에 있는 명승도 있다. 특히 2권에서는 화적연이 등장한다. 본격적으로 한탄강 답사에 나서기 전에 포천 아트밸리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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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교수

 

포천 아트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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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아트밸리


포천은 예로부터 돌이 유명한 곳이다. 품질이 우수해 다양한 건축에 사용되었다. 서울지하철, 인천공항, 청와대, 국회의사당 등 수많은 건축물에 포천석이 들어갔다. 포천 아트밸리는 화강암 채석장이었던 곳을 친환경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꿔놓은 공간이다. 산 정상에는 호수가 있고, 기암절벽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이곳에서는 전시 공간에서 포천의 역사와 지질을 배울 수 있다. 본격적으로 한탄강 유역 답사에 나서기 전에 들러서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한탄강

 

한탄강(漢灘江)은 큰 여울이라는 뜻이다. 한국전쟁 때 강을 건너지 못한 피란민들이 한탄스러워 했다고 해서 한탄강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으나, 잘못된 정보다. 포천 한탄강은 최근에야 상수원보호구역에서 해제되어, 철원 쪽보다 덜 알려졌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나 지질학적으로는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역사적으로는 한탄강은 분단을 상징하는 강이다. 한탄강 상류인 강원도 평강은 북한이다. 강물은 흘러 휴전선을 관통해 남으로 흐른다.

 

그리고 지질학적으로 한탄강은 한국에 흔하지 않은 화산지형이다. 이쪽 일대는 특이한 지질 형성 과정을 거쳤다. 중생대 형성된 화강암 지질 위에, 철원 북쪽 지역에서 많은 양의 용암이 분출되어 흘러내려 철원 평야를 만들었다.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한탄강 수계를 따라 지형이 침식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래서 한탄강에는 평야가 이어지다 갑자기 절벽이 나타나고, 그 아래로 강물이 흐르는 형태의,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깊은 협곡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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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특이한 형성 과정 덕분에 한탄강은 대한민국 단일 하천으로는 최다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 협곡, 비둘기낭,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화적연과 멍우리 주상절리대는 명승이다. 천연기념물과 명승은 다소 혼돈되는 개념인데, 쉽게 구분하는 법은 이렇다. 역사,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면 명승이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역사, 문화적인 사연은 그리 많지 않다면 천연기념물이다.


이외에도 한탄강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데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탄강 8경을 모두 둘러봐도 좋을 것 같다.

 

화적연

 

한탄강 제3경에 해당하는 화적연은 볏짚단을 쌓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기우제를 행하기도 했다. 특이하게 생긴 암석의 정체는 화강암이다. 그리고 강변에는 현무암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곳은 화강암과 현무암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지질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곳이다. 세계적으로도 화강암과 현무암을 한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고 한다.


화적연01.jpg

화적연 앞을 흐르는 강물.

검은 현무암이 눈에 띈다.

 

포천지역은 예부터 산이 아름답고 물이 깨끗한 고장이었다. 옛 영평지역의 절경 8곳을 영평팔경이라 불렀다. 이곳은 조선 중기 영의정을 지낸 사암 박순과 명필가인 석봉 한호 그리고 한시의 대가인 봉래 양사언의 작품으로 유명해졌다. 영평팔경은 금강산 유람길의 노정에 있어, 당대 유명한 선비나 화가가 들렀던 명승지다.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도 화적연을 표현하기도 했다. 진경산수화는 자연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아 그리는 한국 고유의 풍경화다. 진경산수화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인물화가 중심이었다. 화적연에 관한 작품으로는 겸재 정선 외에도 이윤영, 정수영 등의 작품도 있다.

 

신룡이 돌이 되어 깊은 못으로 들어가니
볏가리 높이 쌓아 별천지가 되었구나
푸른 절벽 아래로 천천히 걸어가서
벽옥 같은 여울에 앉아 낭랑히 노래하네 - 최익현, <화적연>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2』 364쪽에서 재인용)


화적연02.jpg

중앙에 거대한 암석이 화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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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이 그린 화적연

 

멍우리 주상절리대

 

다음으로 간 곳은 멍우리 협곡 조망지였다. 멍우리 협곡 조망지는 한탄강 어울길 2코스에 위치한다. 멍우리 협곡 조망지에 오르면 드넓은 평야 사이로 움푹 파여서 흐르는 한탄강이 잘 보인다. 멍우리 협곡은 한탄강 제4경으로, 명승 제94호에 지정돼 있다. 멍우리는 ‘멍 을리’가 합쳐진 지명이다. 멍은 황금빛 수달을 뜻하며, 을리는 한자의 乙처럼 강물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의 주상절리대는 높이가 30~40m에 이르며, 4km 넘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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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날씨가 흐린 탓에 한탄강의 전경이 뚜렷하게 보이진 않았다. 옅은 운무 사이로 흐릿하게 보였지만, 주상절리의 웅장한 크기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조망지까지는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데, 사람의 손이 덜 미친 덕택에 각종 야생화와 곤충, 생명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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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낭

 

비둘기낭은 한탄강 지역에서 일반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장소일 것이다. 이곳은 신비한 풍경 덕분에 영화 촬영지,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이 높다. 영화 <늑대소년>, <최종병기 활>과 드라마 <선덕여왕>, <추노> 등이 비둘기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비둘기낭은 불무산에서 발원한 대회산천의 하류에 있다. 현무암이 침식하면서 형성된 협곡으로, 절벽 사이로 떨어지는 물이 폭포를 이룬다. 폭포 양쪽에는 동굴이 있는데 특히 오른쪽의 동굴 규모가 크다. 한국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돌인 현무암으로 이뤄진 데다, 현무암이 절리를 이루고 있어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둘기낭’의 어원은 이곳에 비둘기가 많이 서식해서다. 요즘에는 산새가 이곳에 살지는 않으며, 이날은 공교롭게도 가문 날이 이어진 탓에 물줄기도 없어 폭포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비둘기낭 아래로 보이는 협곡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이곳을 찾은 보람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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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마른 비둘기낭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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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낭 폭포 하단

 

앞으로 탄생할 한탄강 이야기를 기대하며

 

지난 2회의 보령 편에서는 문학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에 비해 포천 한탄강 편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행했던 포천의 학예사에게 이곳을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이 많은지 물었다. 예전의 선비와 화가들이 담기는 했지만, 근대에 와서는 특별히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된 사례는 많지 않다고 한다. 아마도 이곳 일대가 오랫동안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탓일 클 테다.

 

앞으로 한탄강에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발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일 테다. 이미 비둘기낭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자연적 아름다움 외에도 한탄강은 분단을 상징하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고, 대한민국에서 거의 없는 화산지형의 표본으로 지질학적 가치도 높다. 요즘 이곳 일대는 래프팅 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이처럼 이야기 소재가 많은 한탄강에서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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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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