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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들

『판사유감』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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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걸, 마냥 즐거워하던 때가 있었다. ‘있었다’, 즉 과거형인 까닭은 점점 사람 보는 눈이 생겼기 때문이다. 손철주의 저서 『사람 보는 눈』과는 다른 ‘눈’이다. 슬프게도, 매우 까다롭고 인색한 눈이 생겨버렸다.

‘거절의 미학’. 내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상대를 언짢게 하는 ‘거절’이 아니라 진짜 겸손해서 하는 거절, 상대를 배려해서 하는 거절을 당할 때, 참 좋다. 두 달 전 즈음인가, 한 출판사의 마케터가 아직 나오지 않은 책의 표지를 들고 회사를 찾아왔다. 『판사유감』이라는 다소 딱딱한 느낌의 표지였다. 인터뷰이로 꼭 추천하고 싶은데, 현직 부장판사이기 때문에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인터뷰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아직 책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책이 좋을지, 나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저자’의 인지도나 특이성이 없다면 끌리지 않을 수밖에 없으니까.

 

솔직히말해서

 

몇 주 후, 따끈한 책을 받았다. 책 판매에 도움이 되기 위해 어떻게든 인터뷰를 하는 게 보통인데, 결국 인터뷰 진행은 어렵다고 했다. (난 의외로 이런 저자에게 끌린다) 하지만 역시나,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았기에 『판사유감』은 후 순위로 밀려났다. 책상 모퉁이에 올려 놓고자 무심코 뒤표지를 보게 됐는데, 어랏! 추천사 필자들이 화려했다. 가수 유희열,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정신과의사 정혜신. 책으로 한 번씩은 만났던 저자들의 추천사가 호기심을 끌었다.

 

그의 글들을 읽으며 한동안 밀쳐놓았던 ‘판사’라는 직업, 그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판사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를 받아 든 느낌. 판사들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고맙고 치유적인 숙제다. -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마인드프리즘 대표)

 

어느 조촐한 저녁 자리에서 처음으로 문 선배에게 지금 우리나라의 사법계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냐는 조금 추상적이며 안타까운 마음이 담긴 질문을 던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욕심을 버리고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거야. 지금 우리에겐 그게 제일 필요해.” 궁금하다. “학생 시절에 왜 판사가 되고 싶으셨어요?” 책 속에 나오는 어느 여고생이 던진 질문의 답이.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묻고 싶어졌다. “문 선배, 지금 당신은 어떤 판사가 되고 싶으세요?”  - 유희열 (뮤지션)

 

추천사를 읽고 나니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봐야겠네’ 싶었다. 단지 지인이라서 좋은 이야기를 써준 느낌이 아니었다. 또 며칠이 흘렸다. 강한 인상만 받은 채, 책장을 한 장도 넘기지 않은 상태로. 그러다 무심히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고 있는데, 글발 좋은 한 페친이 『판사유감』 리뷰를 올렸다. 저자와 같은 대학을 나온 모양이었다. 문유석 판사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책에 대한 느낌을 적었는데, 책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저자’에 대한 관심까지 생겼다.

 

첫 장을 열어 프로필을 읽었다. “소년 시절, 좋아하는 책과 음악만 잔뜩 쌓아 놓고 섬에서 혼자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개인주의자였으면서도 ‘솔직히 그저 좋은 직업을 갖고 싶어서’ 고시공부를 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97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부끄럽게도 판사의 일을 하면서 비로소 사람과 세상을 배워 가고 있다.” 장문의 프로필 소개는 내 취향이 아니건만, ‘솔직히 그저 좋은 직업을 갖고 싶어서’라니. 거참, 무척 솔직하다 싶었다.

 

‘판사유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判事有感. 즉, 판사로서 재판하면서 느낀 인간으로서의 감정. 둘째는 判事遺憾, 많은 사람들이 판사에게 느끼는 아쉬움과 불만을 알기 때문에 이를 고민하고 반성한다는 의미. 책의 부제는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였지만 책의 내용은 딱딱하지 않았다. ‘막말 판사의 고백’, ‘음주운전, 어찌 하오리까’ 등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와 퍽 다르지 않은 판사의 속내가 드러난다.

 

솔직히말해서

 

책을 읽으며 재판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됐고, 피고인의 속사정, 판사의 속내도 조금을 알 것 같았다. 판사가 갖고 있는 마음이 우리와 썩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적잖은 위안도 받았다. 꽤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책장을 닫으려는데, 에필로그가 또 한 번 시선을 끌었다.

 

“사실 저는 다른 월급쟁이들처럼 적당히 나쁜 짓 할 때도 있고, 게으름도 피우고, 불평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지독한 이기주의자에 개인주의자라서 멸사봉공할 뜻도 없고 제 자유와 행복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입니다. (중략) 세상에 신경 끄고 쿨한 개인주의자로 내 인생이나 행복하게 살든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바꾸기 위해 성실하게 헌신하며 살든지, 뭐 둘 중 하나로 정리되는 성격이면 편하겠는데 이건 본질은 전자인 주제에 후자를 감기처럼 가끔 주기적으로만 앓고 나니 남는 건 자기모멸일 때가 많습니다.” (『판사유감』 244~245쪽)”

 

책을 내며 부끄러웠다는 이야기는 상투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저자의 속마음이 보였다. 『판사유감』을 펴내며, 자신이 마치 훌륭한 판사처럼 여겨질까 마치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선뜻 인터뷰에 나서지 않은 까닭도 읽혔다. ‘근본적으로 지독한 이기주의자’로고 자평하는 모습은 마치 내 모습을 들킨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타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 또한 없지 않으니, 그 삶이 힘들면서도 행복하리라 생각됐다.

 

평소 솔직히 인터뷰하고 싶은 저자는 이처럼 ‘솔직한’ 사람이다. 최근 『김규항의 좌판』을 펴낸 칼럼니스트 김규항은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한결같이 머뭇거렸다고 한다. “내가 인터뷰를 할 깜냥이 되냐?”는 반응을 보였단다. 들을 귀는 없고, 말할 입만 있는 세상에 보기 드문 경우다. 오늘도 나는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내며, 혹시나 ‘거절의 미학을 맛볼 수 있을까?’를 기대한다. 거절해주시라, 그렇다면 더 끈질기게 인터뷰를 요청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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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문유석 저 | 21세기북스
『판사유감』은 저자 문유석이 법관 게시판과 언론 등을 통해 지난 10여 년간 국민과 법정 가운데서 균형 있는 시각으로 써 온 글들을 엮은 책이다. 1부에서는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재판을 통해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에 대한 생각을, 2부에서는 법원이라는 조직을 통해 깨달은 한국 사회의 단면과 판사 이전에 조직인인 판사의 입장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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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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