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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 <신의 선물-14일>, 작가님 부디 그들을 아껴주세요

유종지미(有終之美)라고,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 중요한 것도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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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최근 시청자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막을 내린 두 작품이 있다. <신의 선물-14일>과 <기황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화제성을 몰고 다닌 이 두 작품은 모두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지만, 이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극을 이끌어왔던 주인공의 죽음에 의아함을 남겼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왜 굳이 그들을 그리 보내야만 했을까?

8년 전, 엑스맨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 <엑스맨-최후의 전쟁>(X-Men: The Last Stand, 2006)이 앞선 시리즈의 영광을 꿈꾸며 야심차게 개봉했다. 감독 브렛 래트너가 1, 2편의 미덕을 계승하려 노력한 티가 역력한 영화였지만, 안타깝게도 브라이언 싱어의 빈자리는 컸다. 영화는 대중과 마니아 양쪽에 큰 실망을 안겼고 결국 혹평을 받으며 물러나야만 했다.

이 영화와 관련된 평가 중 가장 공감했던 것은 “영화가 프로페서 엑스(패트릭 스튜어트 분)와 사이클롭스(제임스 마스던 분)를 다루는 방식을 보노라면 화가 날 정도”라고 했던 어떤 기자의 말이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사이클롭스를 문자 그대로 ‘날려’버리고, 러닝타임의 중간쯤 달려왔을 때 자비에 교수 역시 같은 방법으로 퇴장시킨다. 세 편의 영화를 함께 한 배우들을 퇴장시키는 방법이 상당히 무례한 것은 둘째 치고, 더 아쉬운 것은 이 둘의 사망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엑스맨> 시리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 두 배우는 죽음으로 어떤 메시지도 전달하지 못하고 그냥 스러지고 만다.

등장인물들의 죽음이나 퇴장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나 <다모>의 세 주인공은 모두 죽음을 맞지만 작품은 두고두고 명작으로 회자된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잘 담아냈다면 등장인물들의 죽음은―비록 약간의 충격은 감수해야겠지만―시청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 달리 말해볼까. 시청자들을 설득하지 못한 캐릭터의 죽음은 낭비와 같다. <엑스맨-최후의 전쟁>에서 저지른 패착처럼 말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시청자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막을 내린 두 작품이 있다. <신의 선물-14일>과 <기황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화제성을 몰고 다닌 이 두 작품은 모두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지만, 이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극을 이끌어왔던 주인공의 죽음에 의아함을 남겼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왜 굳이 그들을 그리 보내야만 했을까?


기황후

출처_ MBC

 

 

권력의 종말이 탈탈의 퇴장만큼 허무할까

<기황후>가 종영으로 달려갈수록 두 남자 주인공이 결국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해졌다. 왕유(주진모 분)가 부담하고 있는 비밀은 살려두기에 너무 위험천만한 것이었고, 골타(조재윤 분)의 독약을 먹은 타환(지창욱 분)이 절명할 것임도 분명했다. 결말도 짐작 가능했다. 권력의 허망함을 그리려는 시도는 다소 평면적이긴 했지만 분명히 드러나 있었고, 황금과 권력을 향해 달리는 등장인물들이 어떤 결과를 맞을지도 뻔했다. 말하자면 <기황후>는 시청자들이 예상 가능한 결말로 달려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마지막 회,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 튀어나왔다. 드라마가 탈탈(진이한 분)의 죽음이었다. 승냥의 지도자였던 탈탈의 퇴장은 무성의하기 짝이 없었다. “대승상께서 끝내 전사하셨습니다.” 대사 한 줄, 그리고 마지막까지 승냥에게 헌신했던 탈탈을 회상하며 기황후가 흘리는 눈물이 그를 기리는 조문(弔文) 전부였다. 전쟁 중 죽음을 맞는 장면도, 하다못해 전장으로 출병하는 장면조차 없었다. 하지원의 세 번째 남자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활약했던 탈탈의 마지막이라기엔 허무한 결말이었다.

드라마는 51부 내내 고생한 배우들을 위해 정성스러운 결말을 준비했다. 주인공답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퇴장한 타환과 왕유는 물론이고, 후반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골타, 끝내 탐욕을 버리지 못했던 태후(김서형 분)의 마지막도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끌었다. 대사 한 마디로 끝난 탈탈의 죽음이 가볍게 다뤄졌다는 생각은 과한 것이 아닐 테다. 극중 등장인물의 죽음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인공들이 꼭 죽어야 한다면, 그 과정에서 캐릭터를 낭비해선 안 된다. 하지만 탈탈의 죽음은 원나라의 몰락을 암시하는 것 이외엔 아무런 메시지도 전달하지 못한다.

승냥이 타환의 후궁으로 입궁한 이후, 제2막을 올린 드라마에서 탈탈은 승냥의 충실한 벗이자 스승이었다. 처음엔 그녀의 선택에 의구심을 표하며 입궁을 반대했지만, 승냥의 진심을 확인한 후에는 묵묵히 그녀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원 황궁에서 승냥의 유일한 조력자이기도 했거니와, 보국위민(保國爲民)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죽음을 통해 전달할 바가 많았던 인물을 허무하게 날린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끝내 반성 없이 고려의 약한 국력만을 탓하던 염병수(정웅인 분)의 죽음에도 굳이 애도를 전하는데, 왜 탈탈은 그리도 쓸쓸히 퇴장해야만 했을까. 의아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권력과 탐욕의 종말이 결국 죽음이라는 피상적 주제의식도 아쉽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열흘 붉은 꽃이 없듯이 권력도 부귀영화도 영원할 수 없다. 당연한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말미에서 그 허망함을 깨닫고 후회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훨씬 더 좋은 결말이 되었을 터다. 이 경우, 탈탈이 승냥의 스승으로서 마지막까지 그녀를 인도할 수도 있었을 테고. 여러 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신의선물

출처_ MBC

 

기동찬은 왜 굳이 죽음을 선택해야 했나

어머니가 샛별(김유빈 분)을 죽였다고 오해한 동찬(조승우 분)은 샛별을 안아들고 성큼성큼 강으로 들어간다. 그때 돌아온 기억, 꿈에서 본 남자의 모습은 바로 자신이었다. 결국 지나온 미래에서 샛별을 죽인 것은 동찬이었던 것. 샛별이 죽지 않았음을 알고 환희에 찬 것도 잠시, 이내 동찬은 직감한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한다는 말은 자신과 샛별을 이르는 것이었음을. “그래서 아줌마랑 나를 14일 전으로 돌려보낸 거야…. 아줌마 걱정하지 마. 샛별인 내가 지켜줄게.” 그리고 첨벙, 거친 물소리와 함께 페이드아웃되는 장면. 22일 종영한 <신의 선물-14일>의 결말이다.

문제는 동찬을 범인으로 만드는 구조도, 그가 죽음을 선택하는 결말도 시청자들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16부 내내 드라마의 중심에서 샛별 모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동찬은 시청자들이 범인이라 절대 의심치 않았던 사람이었다. 대통령부터 친아버지까지, 모든 사람이 속내를 감추고 의뭉스런 행동을 일삼던 이 드라마에서 그는 유일하게 수현(이보영 분)의 편이 되어 준 사람이었기에. 굳이 동찬을 범인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범행의 고의성을 시청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다. 사건 전반에서 동찬도 결국 피해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십분 양보해서 그를 납치살해사건의 범인으로 만들려는 이명한(주진모 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이명한이 정작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추측에 맡기는 부분에서는 다시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기동찬은 제 어미의 죄를 뒤집어쓸 겁니다. 제 형이 그랬듯이.” 이 모든 계획은 동찬이 순녀(정혜선 분)의 죄를 뒤집어쓰리라는 빈약한 추측에 기반하는데, 이 추측에는 어떤 논리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동찬이 샛별을 강에 유기하지 않는다면, 어머니의 죄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면, 어머니의 전화가 아닌 것을 눈치 챈다면…,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무시하고 계획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마’라는 말로 에둘러치는 부분은 안이하기 그지없다.

동찬이 범인이라는 결말이 ‘반전을 위한 반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다. 스릴러의 힘은 반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조의 충실함에서 오는 것이며, 반전은 그 이후다. 개연성이 전제되어야 반전의 의외성이 힘을 받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의 선물-14일>은 이 모든 것을 놓치고 질주하고, 반전은 충격 이상을 남기지 못한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동찬이 죽음을 택하는 장면도 시청자들에게 찜찜한 뒷맛을 남긴다. 기나긴 진실의 끝에서 속죄하고 성장한 동찬에게 가혹한 결말인데다, 죽음을 선택할 근거도 미약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은 결국 10년 전 무진연쇄살인사건의 연장인 셈인데, 과거의 잘못을 부담하고 속죄하는 것은 동찬 혼자다. 타인을 위해 조건 없는 희생을 보여줬던 동찬에게 마지막까지 짐을 지우는 것도 안쓰러운 일이거니와 결국 거대한 운명에 희생당하는 결말도 상당히 순종적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예언에 모든 것을 걸고 자살을 선택하다니, 운명에 맞서길 선택했던 그간의 동찬과는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무엇을 위한 ‘신의 선물’이었느냐는 근본적 질문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샛별의 목숨은 살렸지만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수현은 남편과 후배에 대한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되었고, 모녀를 살리기 위해 희생을 주저하지 않았던 동찬은 죽었다. 오랜 기간 동호(정은표 분)을 마음에 묻고 살았던 순녀는 이제 더 긴 시간 동찬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만 한다. <신의 선물-14일>이 모든 등장인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듬었던 시청자들에게 허무한 여운을 남기는 까닭이다.

드라마 속의 세계는 작가가 창조하고 이끌어가지만, 그 속에서 캐릭터와 함께 웃고 울며 숨 쉬는 것은 시청자들이다. 우리는 가끔 그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기도 하고, 힘든 현실에 따뜻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단순히 허구의 세계라 쉬이 넘길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들이 극 전반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시청자들에게 극적 재미 이상의 가치를 전달해주었기에 더욱 서운한 것일 테다. 드라마가 그린 그들의 모습이 그만큼 사랑스러웠기에 아쉬움의 쓴 소리도 나오는 것이고. 다만 유종지미(有終之美)라고,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훌륭히 완성된 캐릭터가 그에 걸맞지 않는 미비한 결말을 맞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러니 ‘작가님 조금만 더 아껴주세요’, 부탁하고 싶다. 돌이켜 짚어봤을 때 그들의 종막까지 미소로 회상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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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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