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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선물-14일> 기동찬에 주목하라

조승우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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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우가 돌아왔다. 브라운관 데뷔작인 50부작 사극 <마의>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후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역량을 아낌없이 뽐내던 그가 다시 드라마로 돌아온다는 소리에 환호한 사람은 한둘이 아닐 터다.

조승우가 돌아왔다. 브라운관 데뷔작인 50부작 사극 <마의>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후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역량을 아낌없이 뽐내던 그가 다시 드라마로 돌아온다는 소리에 환호한 사람은 한둘이 아닐 터다. 덤덤히 전하던 연기대상 수상 소감도 그렇고, 약 9개월 여간 본인의 다짐대로 무대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은 드라마에 욕심을 버린 듯 보였으니까.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조승우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브라운관으로 복귀했고, 팬들은 소망대로 ‘안방 1열’에서 조승우의 연기를 맘껏 감상하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다소 의아했던 점은 그의 복귀작이 <신의 선물-14일>이라는 것이었다. 딸이 죽기 14일 전으로 돌아가는 어머니와 그 모정을 그릴 예정이라 홍보하던 드라마에서, 주인공 김수현(이보영 분)의 남편도 첫사랑도 아니라던 조승우의 역할을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자칫 드라마에서 이도저도 아닌 조력자 역할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던 팬들도 꽤 있었을 테고. 하지만 극이 막을 올린 후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조승우는 드라마의 중심에서 종횡무진하며 자신의 매력을 뽐냈고, 분량과 관계없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챘다. 그야말로 열렬한 인기와 지지를 한 몸에 얻고 있대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의 역할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감히 단언하자면, 시청자들은 조승우의 매력 이상으로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 기동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간단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모정의 교차점에 있는 것이 바로 동찬이기 때문이다.

 

 

조승우

출처_ SBS

 

 

가제부터 <마더>인 데다, 기획 의도만 봐도 드라마가 모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극의 표면에서 이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수현이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정이 얼마나 무모하고 맹목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수현은 연쇄살인사건의 미끼가 되겠다 자처하기도 하고, 거리낌 없이 흉악범의 집에 숨어들기도 하며, 무기를 든 범인에게 달려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무모함에 혀를 내두르게 만들지만, 한편으로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절박함을 제대로 전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모정을 그리는 것은 수현뿐만이 아니다. 이 작품엔 숨겨진 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동찬과 동호(정은표 분)의 어머니 순녀(정혜선 분)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시청자들은 점차 동호가 범인으로 구속된 무진 살인사건의 진상에 대해 의혹을 느끼게 된다. 순박하고 꾸밈없는 성품의 동호가 끔찍한 살인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을 쉽사리 믿을 수도 없을뿐더러, 드라마도 끊임없이 사건의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진상이 숨어있음을 암시한다. 10년 전 사건의 진실을 숨기고 있는 듯한 지훈의 태도나, 의문의 인물이 찍어준 수정과 남자들의 사진도 그렇고, 샛별의 납치 사건이 궁극적으로 10년 전 사건을 향해 흐르는 것도 그렇다. 그리고 누구보다 동호의 결백을 강하게 믿고 있는 것이 바로 순녀다. 순녀는 동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지훈의 집에 들어가기도 하고, 서류를 훔치기도 한다. 드라마의 대척점에서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길도 불사하는 모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두 모정이 교차되는 지점에 서 있는 그, 기동찬에게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동찬은 샛별(김유빈 분)을 살리려는 수현을 돕는 인물인 한편 자신의 말은 믿지 않고 동호의 결백을 주장하는 순녀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아들이기도 하다. 두 어머니와 개인적 접점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은 그뿐인 셈이다. 그가 사건 밖에서 단순히 조력자나 해결사 정도의 소극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으리라는 확신도 여기서 나온다.


동찬과 순녀의 관계는 여느 모자와는 다르다. 순녀의 태도는 시청자들에겐 확신을 주지만 동찬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 초반부 놀라울 정도로 냉랭하던 그의 태도는 어머니에게 입은 상처 때문임이 드러난다. “뭐가,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건데! (…) 아직도 내가 거짓말 했다고 믿는 거야? 그래? 그게 아니면 뭔데! 도대체 당신이라는 사람한테 나는 뭐야? 난 뭐냐고! 그 살인마 새끼만 자식이야? 난 뭐냐고!” 독한 소리를 쏟아내면서도 떨리는 목소리와 흔들리는 눈동자는 그가 어머니의 집념에 긴 시간 상처받아왔다는 것을 내비친다. 쉽게 이해 가능한 일이다. 그의 인생은 무진 살인사건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무진 연쇄살인사건 이후로 동찬은 그 사건으로 인해 제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왔다. 그는 동호와 관계없이 경찰 기동찬으로 살기 위해 증언을 하고, 온갖 모진 소리를 감내하고, 부러 더 공정하고 결점 없는 경찰이 되려 안간힘을 썼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항변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인간 기동찬일 뿐이라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조승우

출처_ SBS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 순녀가 동찬이 부평초처럼 의미 없는 인생을 사는 데에 가장 큰 원인이 된 것도 그래서다. 어머니조차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동찬에게 깊은 절망을 안겼을 테다. 형이 자신의 연인을 참혹하게 살해했다는 사실 이상으로, 동찬은 순녀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순녀의 비난과 불신은 자신의 선택에 회의감을 느끼게 만들고, 어머니가 그 사건 이후 달려온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순녀와 동찬의 뿌리 깊은 갈등은 여기서 발생한다. 동찬은 자신의 선택과 인생에 당위성을 얻으려 발버둥치고, 순녀는 동호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고착상태가 계속되는 이상 이 두 모자는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수현과 동찬의 특별한 관계가 더해진다. 수현에게 동찬은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고 조건 없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며,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처음엔 나름의 이기(利己) 때문에 사건에 뛰어들었던 동찬은 차츰 변하기 시작한다. 수현 모녀의 몸과 마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동찬은 이미 자신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미 유형적 보상 이상의 가치를 깨달았고, 자신의 동인이 돈에서 수현에 대한 인간적인 친애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현이 동찬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수현과 동찬의 관계가 단순히 이성애를 염두에 두고 발전하는 관계는 아니다. 두 사람은 어머니와 조력자로 만났고, 앞으로도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과정에서 삶과 가족, 사랑의 가치를 깨달을 것이며 특히 동찬은 과거의 사건과 관련된 자신의 깊은 상처를 치료하게 될 테다. 10년 전 사건으로 비틀린 가족의 상처를 보듬고,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 잘못을 용서하고 용서받을 것이 틀림없다.


<신의 선물-14일>이 기동찬의 드라마가 되는 것은 바로 이때다. 수현과 샛별을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는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진 살인사건의 진실에 접근함과 동시에 어머니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일견 어리석고 맹목적으로까지 보이는 모정과 아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마음도, 사건의 진상과 함께 이해하고 손에 움켜쥐게 되리라. 기나긴 모자의 반목도 갈등도 그때서야 끝이 날 테고. 그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함은 물론이고, 인간 기동찬으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 신의 선물로 얻은 시간이 수현뿐 아니라 동찬에게도 기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10년간 잃었던 형과 어머니를 다시 얻고, 병우(신구 분)가 말하던 ‘제대로 된’ 인생을 살 힘을 얻게 될 테니까.

 

이 드라마가 모성이 완벽하다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드라마들처럼 모성은 위대하며 모든 장애를 이겨낼 것이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끔은 어머니도 비겁하고 불합리한 일을 저지르는, 불완전한 한 인간임에 불과하다 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화가 나고 가끔은 갑갑함에 한숨도 나오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수현과 순녀의 분투에 응원을 보내고 싶은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의 어머니도 저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현과 샛별을 통해 불완전한 어머니를 이해하고 결국 감싸 안게 될 기동찬에 주목할 필요는 충분하다. 배우 조승우의 매력과 재기(才氣)에 감탄하는 한편으로 기동찬의 행보에도 관심을 잊지 않길 바란다. 지난한 10년의 세월을 떨치고 결국 두 어머니의 상처를 감싸 안을 이 인물이 전달할 메시지는 분명 눈여겨볼만한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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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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