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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우아한 거짓말’을 하게 되었나

서천석 정신과의사와 함께 본 <우아한 거짓말> 아이들에게는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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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우아할 수 있나? 우리는 누구를 위해 ‘우아한 거짓말’을 할까?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단체 관람 시켜주면, 참 좋을 텐데.”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이었다.

지난 4월 4일, 서울 마포구 롯데시네마 합정점에서 창비 출판사가 마련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 시사회가 열렸다. 예스24 회원 110명이 참석한 이번 시사회는 영화 관람 후,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의 저자, 서천석 정신과의사의 짧은 강연이 이어졌다. 유독 교사, 학부모 관객들이 많았던 자리. 짧은 토크였지만 여느 행사보다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작가만남-서천석박사

 

 

<우아한 거짓말>은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2009년작)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친구 관계로 우울증을 겪은 14세 소녀 ‘천지’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힘들지 않다” “외롭지 않다” “슬프지 않다”며 자신에게 우아한 거짓말을 해왔던 사람들은 천지와의 이별 후, 진짜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117분 영화에 소설의 모든 이야기가 담길 수는 없었다. 화연(김유정)이 천지(김향기)를 왜 괴롭히게 되었는지, 영화 속에서 발견하긴 어렵다.

 

영화적 비평은 차치하고, 오늘의 시사회는 ‘원작소설 『우아한 거짓말』이 왜 한국사회를 증명하는 작품이 되었나’, ‘지금 학교에서 왕따, 폭력 문제를 겪고 있는 아이들의 현실’을 이야기해보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의 저자인 서천석 정신과의사는 “청소년 자살 문제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굉장히 분개하고 괴로워한다. 이 같은 현상은 저마다의 사람들에게 상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을 때, 말을 거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정신과의사로서 영화 <우아한 거짓말>을 본 소감은?

 

정신과에 찾아오는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이 훨씬 많다. 지금까지 학교 폭력 문제를 겪은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남자 아이들의 폭력성은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고, 여자 아이들은 은근하게 오랫동안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 우아한 거짓말』을 먼저 봤는데, 나도 남자이다 보니 ‘여학생들의 갈등과 고민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배운 점이 많았다.

 

영화를 보면서 여자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됐다. 최근의 연구들을 보면 여자 아이들은 착하고 순종적이어야 하고 남을 잘 돌보아야 한다는 심리가 어릴 때부터 강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자 아이들도 마음속에 공격성이 있는데, 착한 아이여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이 있기 때문에 그 공격성을 잘 표출하지 못한다. 영화 속 화연이도 마찬가지다. 화연(김유정)은 천지(김향기)를 단짝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친구들을 조정하면서 천지를 따돌렸다. 화연이가 이 같은 행동을 하게 된 근거는 무엇일까. 원작 소설에는 화연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자세히 나와 있다. 화연이는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야단을 많이 맞고 자란 아이였다. 산만하고 안정이 안 되고, 주변 아이들한테 배척을 당했던 아이다. 하도 엄마에게 자주 맞다 보니, 화연이는 4학년 때부터 다른 행동을 보인다.

 

자신의 공격성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친구들을 규합해서 숨은 공격성을 드러낸다. 화연은 부모에게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다.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분노를 품고 있는데, 어른들이 이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해주지 못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전하면, “엄마도 먹고 살기 바쁜데, 왜 그런 생각을 하니?”라며 아이의 감정을 수용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남자 아이들은 친구를 때리고, 여자 아이들은 친구들을 험담하고 뒤에서 조정하면서, 공격성을 드러낸다.

 

우아한거짓말-천지화연

 

부모, 어른들은 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걸까.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바라볼 때, 어린이는 착하고 순진한 존재로 생각하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또 그만의 정글이 있다. 부모에게 컨트롤 당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고, 그 감정을 친구에게 푸는 모습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런데 가정 공동체가 깨지면서 그 속상한 마음을 해소할 방법이 없어졌다. 예전에는 그래도 할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지만, 부모들이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가 속상한 이야기를 하면, 부모들은 속으로 생각한다. ‘내일 학원 보내야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음 약해져서 못 보내는데’라고. 부모는 힘들고 피곤하니까 듣지 않으려고 하고, 아이들은 자기의 불편한 감정을 이야기하지 못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천지(김향기)가 엄마 현숙(김희애)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야기해봤자 엄마에게 짐만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지는 착한 딸인데, 자기가 힘든 걸 이야기하면 엄마가 더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천지는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우리 엄마, 다리에 정맥류가 생기면서 마트에서 일하는데 괜히 말을 꺼냈다가 부담만 주는 게 아닐까? 우리 언니는 이런 이야기 하는 거 피곤해 하니까, 짜증낼 거야’라고. 착한 아이들이 더 위험하다. 천지가 영화에서 우울증에 대한 책을 많이 읽는데, 정신과에서 우울증은 ‘자기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한다. 타인에게 공격을 보내지 못하고, 자기 내면에게 보낼 때 우리는 우울증을 겪게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화, 분노, 억울한 마음을 타인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내면으로 표현한 거다. 화연이는 타인, 즉 천지라는 희생양을 만들었지만 천지는 스스로를 공격한 거다.

 

영화 속 천지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천지가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천지는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한 거다. 죽음 정도가 아니면, 자기 이야기를 진지하게, 의미 있게 듣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천지나 만지(고아성),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극복했다. 천지는 착한 아이가 되는 방법으로, 친구들에게 불평이 있지만 그래도 착한 모습을 보이면 최악의 왕따는 당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언니 만지는 방어벽을 튼튼히 쌓는 방법으로 살아남았다. 누가 나를 공격해도 내 미래는 내가 계획한다고 철저하게 생각했다. 두 아이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야기해봐야 짐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지가 살 수 있으려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했다. 천지도 극 중 친구 미라(유연미)가 자기에게 말을 걸어줬을 때는 밝아지지 않았나? 말 걸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 사람은 힘들어 한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을 때, 말을 거는 게 필요하다.

 

가정환경이 어려운 한 아이가 있는데, 어느 날 문학수업 시간에 시를 읽다가 “나는 너무 불행하다”라고 토로했다. 담임 선생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상담자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 중 하나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괴로워진다”는 말이다. <우아한 거짓말>에서 만지가 쿨한 모습을 보인 것도 다르지 않다.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를 해줘야 하니까, 내 마음이 부담스러워지는 게 싫어서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누구 하나라도 네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나에게 계속 의존하지 않을까? 걱정이 생기면, 끝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 차갑게만 끝나지 않으면 된다. 그건 그 사람이 가진 기회가 그만큼인 거다. 아이한테 몇 가지 권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것도 좋다. 아이들이 그동안 누군가가 자기 말을 들어준 경험이 없어서, 상담센터에 가서 과연 해결이 될까? 라는 두려움이 있는데, 처음은 어렵지만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다. 겁내지 말고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받으라고, 나도 그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면 아이들의 마음도 열릴 수 있다.

 

우아한거짓말-만지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다. 아이가 학교에서 맞고 왔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학교 선생님한테는 “말하면 우리 엄마 걱정해서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말을 안 해주니까 더 걱정이 돼서 학교를 보내지 않고 있다. 부모가 어떤 노력을 하면 아이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아이가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창피하고 수치스럽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러운데, 정신적인 고통이 그 이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맞았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감정의 깊이가 좁고 덜 성숙한 아이들이 이야기를 한다. 상당수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 학교에서 맞고 돌아오면 흔히 하는 말이 “왜 맞고 다녀? 너도 한 대 때리지”다. 한 아이에게 직접 들은 말이 있는데, 부모가 술을 마시면서 “난 맞는 애가 내 애인지 몰랐어. 우리 애는 안 맞을 줄 알았는데, 너무 창피하다”라고 했단다. 아이가 우연히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아이가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부모가 걱정이 너무 많은 경우에 이야기를 못 한다. 부모가 걱정이 많고 불안이 많다고 느끼는 아이는 엄마의 반응이 두려운 거다. 영화 속 천지는 사려 깊은 아이라서, 자기가 보기에는 씩씩해 보이지 않고 약해 보이는 엄마한테 자기가 힘든 걸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더 힘들까봐, 이야기를 못하는 거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폭력을 당했을 때, 부모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같이 울고 껴안는 건 좋지 않다. 담담한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하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앞으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엄마가 이렇게 계획적으로 처리하겠다. 방법이 있다”라고 말해주는 게 필요하다. 불안한 부모에게는 아이도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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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거짓말 김려령 저 |창비
평범하게만 보이던 열네 살 소녀 천지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천지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언니 만지는 동생이 남긴 흔적을 좇으며 퍼즐을 맞추어 가는데, 차츰 가슴 아픈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는 과정은 등장인물들의 심리 탐구와 더불어 양파처럼 쉽게 속이 드러나지 않아 팽팽한 긴장감을 전하고, 결국은 풀릴 거라고 믿기에, 갈수록 꼬이는 털실 뭉치를 쫓아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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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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