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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위로하고 싶어서 시작한 이야기

『내 이름은 술래』 출간한 시인 김선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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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다 괜찮다’고 어깨를 다독여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지난 날의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헤매는 순간 ‘살아있는 이 순간이 아름답다’고 해맑게 웃어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내 이름은 술래』의 이야기를 전한다.

희망 없음을 알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


한밤의 야경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불빛만이 남아버린 그곳에 소리는 없기 때문이다. 빛이 덮어버린 소리-한숨과 탄식, 절망과 눈물이 뒤섞인 그 소리를 듣고도 우리는 야경이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야경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할 만큼 높은 곳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마냥 눈부시고, 따스하고, 크고 작은 웃음소리로 가득 찬 곳이어서 낮은 곳의 소리들이 금세 잊힌다. 그렇게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를 잃어버리고 만다. 김선재 작가의 장편소설 『내 이름은 술래는 바로 그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이야기들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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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동네를 걸으며 불 켜진 창문들을 바라볼 때마다 혼자 안부를 물어요. 잘 지내고 있느냐고. 그 불빛은 모두 똑같지만 각각의 창들 안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는 생각도 하고요.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갖는 이야기는 모두 특별할 거고, 또 각각의 비밀들이 궁금하기도 했어요. 아마, 그런 마음이 이 소설을 쓰게 했고, 희망 없음을 알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물들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몰라요.” - 작가 인터뷰 중에서


『내 이름은 술래』에는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이와 살아있는 것처럼 죽은 이가 등장한다. 납치된 지 2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10살 소녀 술래, 고향을 잃고 떠나온 새터민으로 술래와 친구가 되는 영복이, 전쟁의 상흔을 안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노인 박필순, 어느 날 그의 집 담장을 넘어 들어온 어린아이 같은 노인 광식이. 그들은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죽음과 같은 삶, 삶과 같은 죽음을 살아간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끝내 그것을 잃어버린 이도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박필순의 마당 가득 쌓인 고물들처럼 그 기억들을 깊은 곳 어딘가에 내버려둔 채 돌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네 사람은 만남을 거듭하면서 멀어지고자 애썼던 그 기억 속으로 서로의 발길을 이끈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은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되고 자신의 기억 앞에 마주 선다. 이제 한 사람의 상처는 그만의 것이 아닌 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작가 김선재는 서로 다른 존재가 관계를 맺고, 서로의 삶에 작용하는 과정과 그것이 가진 힘에 대해 말한다.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기억들이 있잖아요. 그걸 내재화해서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의 과오에 치를 수 있는 최소한의 대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요. 『내 이름은 술래에서 노인(박필순)은 전쟁에서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잊지 않고 괴로워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런 것들과 화해할 수 있는 결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바로 보는 것이 가장 솔직한 고백이 아닐까 생각했고요. 이 사람이 지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용서가 아닐까 싶었어요. 어떤 사실을 회피하거나 망각하지 않고 그것과 대면해야 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상투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그것이 인간이 과오에 대해 치룰 수 있는 최소한의 대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아요. 비겁해지지 않는 것만이 나를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위로하고 싶어서 시작한 이야기 『내 이름은 술래』


『내 이름은 술래』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3월. 한겨레의 문학 웹진 <한판>을 통해 8개월 동안 연재되며 독자들과 만났다. <한판>의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인 백가흠 작가의 제안으로 연재를 시작했지만 『내 이름은 술래』의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작가가 구상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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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죽음이라는 것이 결국은 삶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기회들이 있었어요. 죽음을 겪은 당사자의 일이 아니고 남은 사람들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굉장히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이 이야기를 쓰면서 저도 위로를 받고 싶었고, 이런 일을 겪는 누군가가 있다면 위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내 이름은 술래』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노인 광식이는 딸을 잃은 충격 속에 자살까지 시도하다가 기억을 모두 잃었고, 술래의 아빠 역시 술래가 사라진 2년 동안 지하철 행상을 하며 딸을 찾아왔다. 두 사람에게 딸의 죽음은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단지 곁에 없을 뿐, 그 존재가 사라져버리거나 잊히는 것은 아니었다. 죽음 뒤에도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또 새롭게 생겨났다. 소중한 이의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 사실을 작가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통영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는 하루아침에 가까운 사람을 잃는 일이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예사가 아님을, 그리고 그 사실이 주는 공포를 일찌감치 깨달았다. “오랫동안 입에 올릴 수 없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되는” 삶과 그 안에 녹아든 죽은 이의 지워지지 않는 존재까지도. 그러한 유년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내 이름은 술래』 안에 녹여낸 것은 아니지만, 죽음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작가의 인식은 오랜 시간과 경험을 통해서 깊이가 더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노인(박필순)의 이야기는 사실 저희 아버지 이야기와 많이 닮았어요. 아버지가 월남전에 참전하셨는데 평생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셨거든요. 안 그래야지 하시면서도 누군가 곁에 있는 걸 견디지 못하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외상 후 스트레스였던 것 같기도 해요. 아버지는 늘 ‘나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지옥에 갈 거다’라는 얘기를 하셨어요. 전쟁에 대한 이야기나 그곳에서의 기억들은 거의 얘기를 하지 않으셨고, 저는 관심이 없었죠.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아버지와 화해를 했어요.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를 하나의 존재로 이해했던 것 같아요. 그 세대가 가지고 있는 공포와 절망과 고통스러운 기억을 어떤 식으로든지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베트남 전쟁 이야기를 쓸 수는 없으니까, 그 사람 곁에서 다음 세대가 보았던 상흔에 대해서 쓰는 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했죠.”


『내 이름은 술래』를 읽고 시인 허수경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당신의 삶이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면(어떤 의미에서 모든 삶은 중심부이고 주변부이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사랑할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누구의 삶도 중심부 혹은 주변부의 어느 한 곳에만 귀속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이름은 술래』 속 인물들의 삶은 중심부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전쟁의 상처, 소중한 이를 잃는 아픔,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고통, 그것들로 인해 뒤틀린 삶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 그래서 끝내 잊힌 이야기를 품고 있는 까닭에 그들은 도심의 주변으로 밀려났고 관심의 주변으로 비켜서있다. 


“제가 위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고 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부분들이 문학이 위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싶어요. 문학은 무용한 것이고 무용해서 유용하다고 하지만, 무용해 보이는 것들-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이들이 결국 이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굉장히 유용한 존재들이고요.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운,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러 군데에서 많이 하고 있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보이지 않고 무용해 보이는 존재들을 발견하고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다면 문학과 작가의 역할이란 주변부의 삶을 위로하는 것일까. 김선재 작가에게 물었다. 


“문학의 역할이 위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각하게 하는 거죠. 문학은 도피의 공간이아니라 삶을 재인식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 이름은 술래』를 쓰게 된 시작이기는 했어요. 그런데 동시에 이런 존재들을 잊는 사람들에게 자각하게 하고 재인식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어요. 여전히 재개발의 거대 논리에 맞서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고, 유괴되어서 죽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사각 지대에서 죽어가는 노인들도 있고요. 이런 이야기를 환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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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길로 이끈 작품은 최인호의 「술꾼」  


『내 이름은 술래』는 김선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2006년 <실천문학>을 통해 소설을, 이듬해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그녀는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 와 시집 『얼룩의 탄생』을 출간했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탄탄한 서사와 간결한 문체는 『내 이름은 술래』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스스로 가장 뿌듯했던 건 이제 소설을 좀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소설이 무엇이라는 이야기는 늘 했지만 사실 소설이 뭔지 모르고 썼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내 이름은 술래』를 쓰고 난 뒤에 이제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가장 기뻤어요. 단편소설을 쓸 때는 삶의 한 단면을 통해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장이나 언어에 대해서 강박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장편소설을 쓰면서 ‘맞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어깨에 힘을 빼고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선재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시를 쓸 때와는 또 다른 문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시와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작가에게 물었다. 


“아주 단적으로 예를 들면 시는 삶 이전의 세계나 세상을 이루는 근본 같은 것들, 즉 시원을 향해 가려는 시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소설은 철저히 삶 중심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예전에 사막에 간 적이 있었는데 가기 전에는 많은 계획들을 세웠어요. 사진도 많이 찍고, 시도 많이 쓰고, 소설도 한 편 구상해 오겠다고요. 그런데 결국 다녀와서 얻게 된 건 시 한 편이었어요. 사막이라는 곳이 문명과 동떨어져 있는, 시원에 가까운 곳이더라고요. 그곳에서 뭔가 소설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사막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소설을 쓴다면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 인간 혹은 조난을 당해 그곳에 떨어진 인간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시와 소설의 가장 분명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작가 김선재를 소설가의 길로 이끈 것은 최인호 작가의 단편소설 「술꾼」(『타인의 방 수록)이었다. 대학교 시절 소설론 강의를 통해 「술꾼」을 만난 후, 그녀는 처음으로 소설 쓰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소설가나 시인의 길을 꿈꿔본 적 없었던, 그저 잘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학생이었다. 그런 그녀로 하여금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그것은 「술꾼」의 마지막 문장에 적힌 ‘내일’이라는 하나의 단어였다. 


 “「술꾼」은 미래가 없고, 절망적이고, 슬픈 시대를 한 소년의 사적인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이야기잖아요. 그 이야기 끝에서 ‘내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가슴이 뛰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많이 비뚤어지지 않고 너무 비겁하지 않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희미하지만 그래도 내일이 있다는 것에 대한 희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일이라는 희망에 대한 낙관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같아요. 그때도 그런 이유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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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다워


김선재가 「술꾼」 안에서 내일을 발견한 것처럼, 오늘의 우리도 『내 이름은 술래』를 통해 내일을 그려볼 수 있을까. 해답은 이야기의 결말이 아닌 과정에 숨어있다. 『내 이름은 술래』의 목적지는 누군가의 정체가 밝혀지거나 어떤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는 지점이 아니다. 인물들이 서로의 곁에 서게 되는 과정, 그 안에서 떠올리는 지난 시간들과 알게 되는 삶의 진실들, 그 모든 순간들이 이야기의 목적지다. 비유하자면 『내 이름은 술래』의 장르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로드무비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가 아니라 ‘길 위의 사건들을 통해 변화하는 그들의 관계와 감정’이다. 그 여정에 길잡이가 되어줄 작가의 이야기를 전한다.


『내 이름은 술래』의 인물들은 결말에서 뭔가 기대할 수는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영복이와 술래의 관계, 광식이라는 인물과 박필순이라는 노인의 관계가 결국 우리 얘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냉소적이고 비관적일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늘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한 번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광식이처럼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계속 얘기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 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는 것과 ‘인생은 별 거 아냐, 그냥 아무렇게나 살면 돼’ 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는 건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존재가 이 세상을 지탱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내 이름은 술래』는 한 존재가 갖고 있는 서사보다 그들이 타자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알아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요.”


『내 이름은 술래』 안에서 광식이는 노인 박필순을 향해 끊임없이 말한다. 세상이 아름답고, 살아있는 게 아름답다고. 그런 광식이를 두고 작가는 ‘가장 아프고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라고 말했다. 자신에게도 광식이와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독자들은 광식이를 중간에 죽은 사람으로 읽을 수도 있고, 끝까지 죽지 않고 박필순이라는 인물 옆에 있는 친구라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그 부분은 독자의 해석에 맡겨 놓고 싶었어요. 제가 워낙 이 캐릭터에 애정이 많아서 누군가가 그렇게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광식이라는 캐릭터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존재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바람은 누구에게든 광식이 같은 존재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광식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은 『내 이름은 술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살아있는 이 순간이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이의 곁에 머무르는 것, 혹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내 이름은 술래』 안에서 찾게 되는 희망의 단서일지도 모른다. 상처받은 이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따스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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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죽은 것처럼 살아있는 노인도 결국은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데에서 끝이 나고, 술래와 아버지의 관계도 결국 그걸 서로에게 확인시키면서 끝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느끼는 순간 어떤 이야기는 끝나지만, 그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 이야기가 또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그런 얘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광식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뜬금없이 ‘아름다워, 아름다워’ 라고 얘기하는 거고요. 결국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두가 그걸 확인하게 되는 얘기라고 할 수 있죠.”


 악몽 같은 현실 속에서도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다정하게 어깨를 흔드는 손길과 뒤이어 전해지는 ‘괜찮아, 다 괜찮아’라는 따뜻한 음성이다. 김선재 작가의 『내 이름은 술래』는 그렇게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는 주변부에 머무르며 중심부를 동경하고, 중심부에 머무르며 주변부를 경계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의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아빠는 그때마다 나를 세게 흔들어 깨웠다. 악몽은 누군가 곁에 있는 사람이 깨워줘야 하는 잠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 잠들면 안 된다고, 혼자 사는 건 악몽 같은 일이라고 했다. 나는 아직도 아빠의 그 말이 슬퍼서 목이 메곤 한다. 내가 없으면 누가 아빠를 깨워줄까. 혼자 잠들고 혼자 일어나야 하는데. 그럼 사는 게 매일매일 악몽일 텐데. 노래를 불러줄 사람도 없을 텐데. 잠에 취한 채 일어나 비틀거리며 물을 떠다줄 사람도 없을 텐데. 그러니 아빠에게는 내가 필요하고 나에게는 아빠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런 사이다. (내 이름은 술래,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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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술래』의 주인공 술래는 자신의 이름에 담긴 뜻처럼 “잘 안 들리는 소리나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기 위해” 죽은 듯 살아가는 이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작가 김선재는 한 사람의 술래를 자청해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와 만난 이들은 어떤 모습의 술래가 될까. 잊고 싶어서 잊었고 그래서 끝내 잃어버린 우리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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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술래 김선재 저 | 한겨레출판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재의 첫 장편소설 『내 이름은 술래』가 출간되었다. 촘촘한 심리 묘사와 탄탄한 서사, 시적인 문장과 간결한 문체로 인정받은 그의 소설 세계는 첫 장편소설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이 소설에는 이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열 살 소녀 술래, 언제나 술래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아빠, 고향을 잃어버린 탈북 소년 영복이, 아파트에 둘러싸인 채 고물 더미가 가득한 집에서 혼자 사는 노인 박필순과 담을 타고 필순의 집으로 들어온, 어린아이 같은 노인 광식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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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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