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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니스 해변을 사랑한 당신들

프랑스 남부 니스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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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는 ‘코트 다쥐르(Cote d'Azur)’라고도 불리는 지중해 연안에 있었다. 세계적인 휴양지답게 고급호텔과 카지노, 미술관과 아틀리에가 즐비해 있지만 무엇보다도 영국인 산책로라 불리는 해변이야 말로 니스의 대표적인 명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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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를 사랑한 당신들
  
파가니니의 연주를 즐겨 듣는다면, 당신은 적막이 주는 매혹을 느껴본 사람이 분명하다. 말과 말 사이의 쉼, 그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반응하며, 제자리에서 기다리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와인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하지만, 그는 활로 자신의 심장을 켜고 있었다. 마티스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주말에 열릴 파티의 초대장을 보낼 것이다. 당신의 옷장에는 독특한 문양이 그려진 원색의 선드레스가 걸려 있을 테니.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관심이 있다면, 나는 당신의 긴 목을 좋아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샤갈에게도 흥미가 있다면, 나는 이제 당신의 꿈속으로 들어가길 원한다. 염소와 닭이 날아다니는 그 꿈속에서 나는 르 클레지오의 소설을, 그의 첫 작품인 조서』를 소리 내어 읽어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무더운 여름 어느 한때 한 사내가 열어젖힌 창문 앞에 앉아 있었다. 키가 무척 크고 등이 구부정한 그 사내의 이름은 아담, 아담 폴로였다.   


이 문제적 주인공은, 더군다나 그를 만들어 낸 작가는 니스 태생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지병을 앓고 있을 때, 니스를 찾았다. 첫 아이를 가진, 그곳은 니스였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머무른 곳은 바로 니스였다. 당신과 내가 가야할 그 곳 말이다. 프랑스 남쪽 해변, 니스. 지중해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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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가 누구지?

 

반 고흐의 족적을 따라서 여행을 한 적 있다. 고흐가 태어난 네덜란드에서 출발하여, <밤의 카페테라스>와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렸던 아를을 둘러보고, 동생 테오와 함께 말년을 보냈던 파리의 근교로 마무리 지을 예정이었다. 누군가의 행적을 찾는다는 것은 의미가 깊었다. 서경식 선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와 구스타프 야누흐의 『카프카와의 대화』 같은 역저가 그것을 증명해냈다.

 

나에게도 장황한 야심이 있었다. 그랬기에 떠나기 전날까지 고흐의 그림을 찾아보고, 그의 생애를 공부했다. 10시간 16분의 비행 끝에 스키폴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제법 지쳐 있었다. 해는 저물어 있었고, 곧장 호텔로 가서 짐을 풀었다. 나는 반 고흐의 생애를 더듬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거리로 나왔다. 암스테르담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I amsterdam 문구 앞에서 차려 자세로 소심하게 사진을 찍기도 하고, 운하를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기도 했지만 이곳에 머무는 중요한 이유는 반 고흐 뮤지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램브란트에 매료되었고, 베르메르의 그림 앞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아주 잠깐 한눈을 팔았을 뿐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소형 비행기를 타고, 니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나는 반 고흐, 그의 이름을 입 안에 든 사탕처럼 굴려댔다. 하지만 니스의 바다를 보는 순간, 목적을 잊게, 아니 잃게 되었다. 그때의 기분을 나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는 분명 이렇게 중얼거렸다.

 

“반 고흐가 누구지?”

 

니스는 ‘코트 다쥐르(Cote d'Azur)’라고도 불리는 지중해 연안에 있었다. 세계적인 휴양지답게 고급호텔과 카지노, 미술관과 아틀리에가 즐비해 있지만 무엇보다도 영국인 산책로라 불리는 해변이야 말로 니스의 대표적인 명소였다. 해가 뜨지 않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우기를 피하여 휴양을 온 도시라고 하니, 그들에겐 파라다이스였을 것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해질녘의 해변을 걸었다. 노을빛이 사라지고 있는데도,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니스를 찾았던 이유는 따뜻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니스는 시간을 잊게 만들었다. 어쩌면 예술이란 시간과의 싸움이지 않을까. 무조건 직진하는 시간이라는 자동차에 제동을 걸게 하고, 창밖을 보게 하고, 멈추게 하고, 더디게 하고, 되돌려놓는 것. 그것은 죽음이라는 한 세계에 대한 저항이 아닐까, 도전이 아닐까, 결국 받아들이겠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작은 승리가 아닐까. 나는 고흐를 찾으러 왔다가, 니스에서 멈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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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

 

 니스는 매년 2월 중순부터 카니발을 개최하는 도시였다. 18세기 베네치아 카니발의 전통을 이어받은 유일한 카니발로 세계적인 축제에 속했다. 다행히도! 내가 니스를 찾았던 때는 1월이었기에 니스 카니발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니스는 매일 매일 축제였다. 지중해는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바람을 선물했다. 건물은 낡고, 낮고, 덕분에 파란 하늘을 가리지 않았다. 단 10분만 니스의 해변을 걷게 된다면, 왜 이곳에서 세계적인 카니발이 열리는 지 알 게 될 것이다. 하늘은 하늘이요, 바다는 바다니. 


니스 곳곳에는 모나코로 가는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태리의 국경과도 멀지 않았다.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면, 깐느가 나왔고, 그 길로 쭉 달리면 스페인이 나왔다. 국경에 금이 그어진 국가는 드물었다.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문제될 건 없었다. 더군다나, 자유의 프랑스이지 않는가. 자유라니, 내겐 너무 먼 것만 같던 그 단어가 문득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나는 니스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무엇도 나를 붙잡을 수 없다. 영국인 산책로를 따라서 해양박물관까지 걷는 코스는 니스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망대에서 구시가지와 항구를 내려다보는 것도 아마 더없는 휴식이리라. 골동품 시장에서 쇼핑을 하거나 화분에 꽂을 꽃을 고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지갑에서 몇 유로만 빼들고, 카지노에 가는 것도 기분 전환으로는 더할 나위 없을 테다. 샤갈 미술관과 마티스 미술관을 가는 것도, 르 클레지오가 다녔던 니스 대학을 방문하는 것도 오래도록 남을 추억이 될 것이다. 그저 니스 빌 역 앞 벤치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언제든 니스의 바다에 뛰어들어도 좋다. 태양은 물기를 말려줄 것이고, 바람은 온 몸을 감싸 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반 고흐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왔다면 니스는 비켜가는 게 좋겠다. 일정이 바뀔 테니 말이다. 아니, 역시 여행은 옆길로 새는 맛이다. 문득, 입에선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nice.” 

 

이름부터 즐거운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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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성은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씨네필
문학청년
어쿠스틱 밴드 'Brujimao'의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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