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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와 2NE1, 혹은 바로 지금 여기의 한국 팝

음원의 시대, 앨범의 정체성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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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해, 두 앨범의 격돌은 간만에 팝 음악 안에서의 몇 가지 화두를 환기시킨다. 한국 팝의 글로벌리즘, 혹은 K-Pop이라 명명된 스타일의 장르화, 그리고 걸 그룹 세계에서 작동하는 젠더, 또 SM과 YG엔터테인먼트가 지향하는 가치 등에 대해서 곱씹어 볼만한 지표라는 생각도 든다.

소녀시대와 2NE1은 SM과 YG 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걸 그룹으로 늘 비교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이 둘은 한 번도 비슷한 시기에 컴백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컴백 시기가 겹쳤다. 소녀시대는 지난 2월 24일, 1년 2개월 만에 『미스터 미스터』 를 발표했고, 27일엔 2NE1이 4년 만에 2집 『크러시』 를 발매했다. 덕분에 이 걸 그룹의 라이벌 구도가 더 부각되는 것 같다. 사실 이 둘은 2009년 한국의 걸 그룹 폭발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명백히 다른 콘셉트와 음악적 지향이 그룹 뿐 아니라 기획사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여겨졌고 해외 팬덤 확장에 앞서며 둘은 K-Pop의 확산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런 두 그룹이 이번엔 정면으로 격돌했다.


2월 28일, 소녀시대의 신곡 「미스터 미스터」 가 유튜브에 공개됐다. 이 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수 350만 건을 넘겼다. 「아이 갓 어 보이」 와 비교해서 직관적인 구조에 간결한 라인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2NE1의 신곡 「컴 백 홈」 은 그간 이 그룹이 선보인 레게나 힙합, 트랩(잘게 쪼갠 드럼 하이햇 리듬이 특징적인 음악장르)의 요소를 늘어놓은 뒤 록 비트로 맺음한다. 특히 서태지와아이들의 히트곡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샘플이 90년대 한국 대중음악(가요)를 연상시키고 역사적 맥락을 환기시킨다.

「미스터 미스터」 는 미국의 언더독스가 작곡한 곡으로 비욘세, 크리스 브라운 등 팝스타들과 작업한 세계적인 프로듀싱 팀이다. 가요적 색깔이 사라진, 깔끔한 팝인데 엑소(exo)나 샤이니의 노래에 참여한 조윤경이 작사한 노랫말은 ‘망설이는 남자아이를 격려하는 내용’이다. “날 가슴 뛰게 한 Mr. Mr. (최고의 남자) Mr. Mr. (그게 바로 너) / 상처로 깨진 유리조각도 별이 되는 너 Mr. Mr. Mr. Mr. / 나를 빛내줄 선택 받은 자! 그게 바로 너 Mr. Mr.”란 노랫말은 이제까지 소녀시대의 노랫말이 겨냥하는 태도를 이어받는다. 요컨대 여기에는 ‘자신이 선택한 남자를 칭찬하면서 여성적 매력을 손해 보지 않으면서도 자존감도 지키는 태도’가 있다. 2NE1의 「컴 백 홈」 은 최근 이들이 구현하고 있는 여성성의 연장으로 보이는데,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비교적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 「파이어」 나 「내가 제일 잘 나가」같 은 노래에서 일관되게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구현한 것과 달리 「론리」 와 「아이 러브 유」 에선 지나치게 감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 극단의 거리가 2NE1의 노래를 규정하기도 한다는 생각이다(여기에 대해선 언젠가 더 자세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두 팀의 음악적 특징은 대표 싱글이 아니라 앨범의 구성을 통해 드러난다. 두 그룹의 앨범은 싱글을 모아둔 것 이상의 완결성과 지향을 선보인다. 소녀시대는 타이틀 곡 「미스터 미스터」 외에 「굿바이」, 「유로파」, 「Wait A Minute」, 「백허그」, 그리고 「Soul」 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세계 시장을 겨냥하는 여성 보컬 그룹의 정체성을 지향하는 동시에 국내(그리고 소수의 해외) 팬덤과 소통하는 아이돌 그룹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균형을 지킨다. 「백허그」 를 제외한 곡들은 모두 록 비트를 베이스로 삼은 팝이거나 유로 댄스 팝의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굿바이」 는 원 디렉션과 셀레나 고메즈 같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팝스타들의 곡을 만든 린디 로빈스와 미국 밴드 스파이몹(Spymob)의 멤버인 브렌트 파쉬크, 그리고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제나 앤드류스가 참여한 곡이고, 「Soul」 은 스웨덴의 작곡 그룹 디자인뮤직의 멤버들이 만든 곡이다. 디자인뮤직은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아이 갓 어 보이」 등을 작곡했고 이효리의 「배드걸스」 에도 참여한, K-Pop의 인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곡그룹이다. 앨범의 커플링 곡(타이틀과 쌍을 이루는 곡)인 「백허그」 는 소녀시대 정규 1집의 「Honey」, 「Complete」, 「Tinkerbell」 을 작곡한 인그리드 스크레팅의 곡으로 예쁘고 귀여운 발라드다. 「미스터 미스터」 와는 정반대의 곡이란 점에서 앞서 언급한 일반 청자들과 오랜 팬덤에 대한 나름의 균형감이 여겨진다.

2NE1은 정규 앨범이란 점에서 소녀시대의 『미스터 미스터』 와는 약간 다른 질감을 보여주는데, 이제까지 이 그룹이 얻은 명성과 성취를 집대성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만큼 집중도와 완성도가 높은 앨범이다. 물론 기존의 2NE1의 팬들이라면 약간 의아하게 여길만한 여지도 있다. R&B와 힙합,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 세련되게 조화를 이루지만 2NE1의 거친 이미지가 다소 누그러진 분위기를 남기기 때문이다. 「CRUSH」 가 대놓고 2NE1이 소비되는 지점을 명시한다면(“난 모든 여자들의 뜨거운 crush / 너의 심장을 뛰게 하는 rush / 예쁜 언니들은 날 좋아해 / 날 좋아하면 예뻐지니까”) 「살아봤으면 해」 는 그 정반대의 정서를 노래한다(“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네 / 온종일 나 너만을 위해 보냈는데 / 네가 가장 좋아하는 옷을 꺼내 입고 / 거울에 비친 가장 아름다워야 할 내 모습은 / 초라하게만 보여”). 이 간극을 제외하면 『Crush』 는 기존에 발표된 곡을 재수록하기보다 새로운 곡으로 모두 채웠다는 점에서 앨범에 기울인 노력과 의지, 애정이 남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알앤비, 힙합이 록 스타일로 통합되는 소리도 인상적이다. 각 곡에 적용된 리듬의 변화가 곧 전체 앨범의 조화로 이어지는, 특유의 그루브가 강조되는 구성도 인상적이다. 사운드의 완성도란 점에서 2NE1의 앨범에 대한 만족도는 꽤 크다.

결론적으로 말해, 두 앨범의 격돌은 간만에 팝 음악 안에서의 몇 가지 화두를 환기시킨다. 한국 팝의 글로벌리즘, 혹은 K-Pop이라 명명된 스타일의 장르화, 그리고 걸 그룹 세계에서 작동하는 젠더, 또 SM과 YG엔터테인먼트가 지향하는 가치 등에 대해서 곱씹어 볼만한 지표라는 생각도 든다. 소녀시대의 「미스터 미스터」 는 명백하게 미국 팝의 영향력에 놓인 곡이고, 2NE1의 「컴백홈」 은 한국의 90년대(혹은 서태지와 아이들)란 맥락이 작동하는 곡이다. 하지만 이 두 곡이 보여주는 차이는 각 회사들이 지향하는 시장보다는 각 회사가 추구하는 ‘비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양쪽 다 결과물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기겠지만, 그게 세상에 보이길 원하는 바람의 차이 같은 것이다. 내게는 종종 SM은 성과를, YG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사실 이것은 나의 딜레마이기도 한데, 물리적인 개념으로서의 ‘앨범’이 사라진 시대에 (제작자든, 비평가든) 앨범의 완결성을 따지거나 고려한다는 것은 왜인가, 라는 질문은 남는다. 음원의 시대에 굳이 앨범으로서의 정체성이 필요하냐고 묻는 건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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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차우진

음악웹진 <weiv> 편집장. 『청춘의 사운드』를 썼다. 대체로 음악평론가로 불리지만, 사실은 지구멸망과 부동산에 더 관심이 많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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