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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막이 내려도 음악은 계속 된다

클래식을 기웃거리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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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더 관심이 생겼다면, 이제껏 다뤘던 작곡가들의 다음 곡을 찾아보는 게 좋겠지. 이왕이면 자기만의 테마를 갖고 듣는 게 재미있어. 이번엔 이작곡가의 음악을 다 들어보겠다든지, 이번에는 실내악 유명곡을 다 섭렵해보겠다는 식으로 말야. 좋아하는 연주자나 작곡가가 생기면, 클래식을 즐기는 일이 훨씬 수월해지지.”

<클래식 가이드> 그 마지막 이야기

그게 언제였더라. 우리가 따뜻한 날에 휴게실에 앉아 ‘선배, 저 클래식을 좀 들어볼까봐요.’라고 운을 떼고, 머리를 맞대 커리큘럼을 짜고, <클래식 가이드> 대장정을 시작한 게 말이다. 그 사이에 스무 편의 클래식 음악을 집에서도 듣고, 거리에서도 듣고, 사무실에서도 듣고, 한 장의 앨범이 주어질 때마다 주구장창 음반을 귀에 달고 다니며 듣다가, 가끔은 마음 속에 와락 안기는 선율에 설레 가만히 혼자 웃고 있던 시간도 있었고, 음악이 영 귀에 익지 않아 친하지 않은 친구와 어색하게 옆자리에 앉아있는 기분을 느꼈다. 같은 작곡가가 나왔을 때는 공연히 아는 연주자인양 반갑기도 했고, 클래식 가이드를 통해 만나지는 못했지만, 옆 반의 유명한 친구처럼 내심 궁금했던 작곡가가 몇 명 생기기도 했다.

클래식 초심자에게 <클래식 가이드>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수혜자는 역시 나였다. 그동안에는 록스타로 가득했던 나의 음반장에 이름이 긴 외국의 음악가들 자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클래식 가이드>를 마무리하면서, 선배와 메신저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음반도 들어보세요’ 고심해서 고른 까닭


<클래식 가이드>를 통해 마 선배와 나는
낯설기 짝이 없는 클래식 음악과 연주자에게 열심히 대화를 시도했다.

록 후배: 스무편의 클래식 가이드, 애초 계획보다 훨씬 오랫동안 진행했네요. 즐겁기도 했고, 과연 끝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 싶기도 했는데요. 선배는 어때요?

마 선배: 신이여 우리가 이걸 해냈단 말입니까? ㅋㅋㅋ 최소 락 후배 1명은 클래식의 길로 잘 인도한 거 같아. 물론 마치고 나니 당연히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말야. 뭔가 더 들려주고 더 알려주고 싶은 게 많아.

록 후배: 선배가 고생 많았죠. 틈틈히 시간 내서 음반 소개해주시랴, 끝도 없는 후배 질문에 답해주시랴. 전 이 칼럼을 연재하는 동안 가끔 메일을 받기도 했는데요. 사람들이 ‘정말 마 선배가 실제 인물인가요?’ 하는 질문을 받기도 했어요.

마 선배: 그래. 네가 잘 따라온 덕분에 나도 재미있었어. 넌 음악 들으랴, 글쓰랴 어려운 점은 없었어?

록 후배: 저는 정말 즐거웠어요. 음악 듣는 것도, 그에 관한 감상을 글로 나누는 것도 좋았는데. 어려운 점이라면, 역시 마감의 문제였죠. 정해진 시간에 충분히 듣고, 충분히 감상해야 해서 한 앨범이 정해지면 하루 종일 틀어놓고 눈뜨는 시간 내내 음악만 들었거든요. 그럴 때 정말 신세계처럼 황홀하게 다가오는 것도 있었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되게 하는 음악도 있었거든요. 선배는 제게 음반 골라주시느라 애쓰셨죠?

마 선배: 우리가 함께 들은 음반은 통계에 근거한 것들이라 수월했지. 대신 ‘이 음반도 들어보세요’ 코너가 있었잖아. 그건 고민이 많았어. 통계로 나온 대표음반들이 대부분 표준적인 연주라 그것과는 또다른 클래식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음반을 골라주고 싶었거든.클래식 음악의 매력은 같은 곡인데도 연주자나 상황에 따라 달라져. 클래식도 정형화된 음악 같지만, 연주자나 지휘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맛이 있어. 두번째로 고른 앨범들은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선별한 거니 잘 들어봐.


요즘 이 사람이 핫하다! 말러


클래식을 들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실감하는 순간이 늘어났다는 거다.

록 후배: 네. 꼭 챙겨 들어 볼게요. 선배랑 20장의 음반을 들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브람스를 만나지 못한 게 아쉬워요. <클래식 가이드> 하기 전에도 궁금했던 작곡가였거든요. 얼핏 듣기에 제가 좋아할만한 연주자 같더라고요. 또 올해 말러에 관한 연주가 많던데, 말러도 선배의 도움이 필요한 작곡가가 아니었나 싶어요.

마 선배: 브람스도 훌륭한 연주자이긴 한데, 초심자 가이드에 ‘이거다!’ 할만한 대표작을 꼽기 어려웠어. 요즘은 네 말대로 말러가 뜨고 있지! 사람들이 이제 모차르트나 베토벤 말고, 새로운 걸 듣고 연주하고 싶어하는 거야. 말러는 <교향곡 5번>이 가장 유명하지만, <1번> <2번> <8번>도 참 좋아. 말러는 대중적인 연주자라기보다 매니악한 데가 있어. ‘덕후’라고 칭할 만한 팬들도 많고 말야. 좋은 말러 음반이 많이 나오고 있어. 얀손스와 로열 콘세르트허바우(RCO Live)가 요즘 가장 핫한 연주자지. 합창단 1천명이 나오는 <천인교향곡>도 꼭 들어봐. 그러고보니 현악 사중주를 다루지 못한 것도 아쉽다.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나 <송어 5중주>도 참 좋거든.

록 후배: 그렇게 음악단의 규모를 결정하는 건 작곡가의 맘이죠?

마 선배: 그렇지. 엑스트라를 얼마나 투입할지를 결정하는 게 감독 마음이듯이 몇 개의 악기로 음악을 표현할 수 있을까 결정하는 건 작곡가지. 일단은 악기 3개로 연주하는 것과 수십 개로 연주하는 건 다르잖아? 현악기는 섬세하고 우울한 감정을 다룰 수 있고, 반면 관악기는 소리 자체 만으로 음악에 힘이 들어가잖아. 그런 걸 고려해서 악단을 짜는 거지.

록 후배: 선배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도 같이 들어봤어야 하는데. 선배가 좋다고 계속 추천했던 성악가 있잖아요. 요제프 카우프! 선배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연주자나 작곡가는 누구에요?

마 선배: 나는 서정적인 연주를 좋아해. 악기별로 좋아하는 연주자가 있는데, 피아노는 빌헬름 켐프, 바이올린은 지노 프란체스카티랑 미샤 엘만, 지휘자는 칼뵘. 올드한 느낌의 옛날 연주자인데 프란체스카티는 앨범은 눈에 띄면 다 모으고 있어. 칼뵘은 연주가 느릿한 편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지. <쇼생크탈출> OST 중에 나오는 모차르트 음악이 칼뵘이 연주한 곡이잖아. 칼뵘의 <레퀴엠>도 섬세한 건 섬세하게, 강렬한 부분은 화끈하게 연주하는데 참 좋아. 칼뵘과 모차르트의 조합이면 동양권에서는 무조건 흥행이라고 볼 수 있지. 서정적인 연주에 끌리는 동양사람들에 비해 유럽 사람들은 좀더 이성적인 연주를 선호하는 것 같고.

록 후배: 그럼 우리가 같이 들은 앨범 중에서 선배가 최고로 꼽는 건요? 저는 <레퀴엠>이요! 처음엔 어려웠는데 한번 빠져들고 나니까 시도 때도 없이 찾게 되요.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고 새롭고요. 정말 압도적일 만큼 아름다운 음악인 것 같아요.

마 선배: 나도 레퀴엠. 사실은 누구나 사랑하는 음반이라고 할 수 있지.

록 후배: 영화 <퓨어>에 그런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모차르트를 듣고 난 이후, 모든 것이 시시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마냥 허세스럽다고 생각했을 텐데, 한참 <레퀴엠>에 빠져 있을 때라 무척이나 공감됐어요. 다른 <레퀴엠>도 찾아 비교해보고 싶었는데, 아직은 잘 안들리더라고요.

마 선배: 너무 어렵게 비교하려고 애쓸 것 없어. 그냥 내가 들어서 좋은가, 나쁜가로 따지면 되는거지. 내가 들어서 이것도 저것도 좋은 거면, 둘 다 좋은 음반인 거야.


클래식, 자기만의 테마를 만들자


가이드는 끝. 클래식 자유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록 후배: 영화나 공연, 가깝게는 TV 방송 등 저는 주로 종합예술을 즐기는 관객인데요. 클래식은 온전히 소리로만 승부하는 예술이잖아요. 그래서 클래식을 처음 들으면 뭘,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어려운 거고요. 하지만, 모양도 메시지도 없는 소리에 심취되면, 정말 무궁무진한 감정과 감성, 상상력의 세계가 펼쳐지더라고요. <클래식 가이드>를 쓸 때도, 그렇게 소리를 통해서 보고 겪고 느낀 걸 썼어요. 꼭 대단한 지식이나 계보 없이도, 이런 방식으로도 클래식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마 선배: 나도 처음에 클래식을 일로 접했어. 내 일이기 때문에 듣기 시작한 거지. 그러니 처음에는 뭐가 매력인지 잘 몰랐어. 그런데 접할수록 계속 생각나고, 그 깊이가 조금씩 느껴지더라고. 그러다가 비발디의 <사계>를 듣고 처음으로 클래식의 매력을 느꼈어. 이전에 내게 클래식은 깊이는 있는데, 대중음악에 비해 상당히 밋밋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카르미뇰라가 연주하는 <사계>를 들으면서, 특히 폭풍우 치는 장면을 악기로 연주하는 대목을 듣고, 클래식이 표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실감하게 된 거지.

록 후배: 자, 그럼 저를 비롯해 선배에게 <클래식 가이드>를 받은 독자들이 앞으로는 어떻게 음악을 즐기면 좋은지 조언을 부탁드려요!

마 선배: 사실 우리가 다뤘던 곡들만 제대로 즐길 수 있어도 기본은 다 됐다고 할 수 있어. 더 관심이 있다면, 이제껏 다뤘던 작곡가들의 다음 곡을 찾아보는 게 좋겠지. 여행도 주제를 갖고 가면 좋듯이 클래식도 그냥 마구잡이로 듣는 것보다 나름의 테마를 갖고 듣는 게 재미있어. 이번엔 이작곡가의 음악을 다 들어보겠다든지, 이번에는 실내악 유명곡을 다 섭렵해보겠다는 식으로 말야. 좋아하는 연주자나 작곡가가 생기면, 클래식을 즐기는 일이 훨씬 수월해지지.

록 후배: 선배. 이제 정말로 <클래식 가이드>를 마무리할 때가 됐는데요. 이 자리에 어울리는 곡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안드레아 보첼리의 ‘Time to say good bye’를 들을까요?

마 선배: 마무리에 어울리는 곡? 그런 건 없다!왜냐면 이제 시작이니깐! 스무 장이 넘는 음반을 들었는데, 이제부터 진짜 클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지, 마무리라니! 당치도 않다. 20개나 들었는데 더 들어야지 마무리라니 당치도 않소.

록 후배: ㅋㅋㅋ 그럼 새출발에 어울리는 곡을 골라주세요.

마 선배: 새 출발이라면, 역시 빈 신년음악회 때마다 연주되는 왈츠를 들어야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15년동안 클래식 MD일을 하다보니, 신년 음악회 음반이 나와야, 한해가 시작됐구나 실감돼. <클래식 가이드>의 마무리와 클래식 입문의 시작도 이 곡으로 해보자.

록 후배: 긴 시간, 수고 많으셨어요. 즐거운 드라이브였습니다 ^^

마 선배: 우리 글은 이렇게 마무리 되지만 읽는 사람들에겐 이게 마무리가 아닌 시작이었으면 좋겠어. 클래식이 고상하거나 어려운 음악이 아니라 대중들이 좋아해서 살아남은 음악이라는 걸 늘 기억하고 편하게 접근하면 좋겠구 말야. 너도 수고 많았다. 그런데 이제 정말 끝이야? 아, 속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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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축복” - 모차르트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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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무슨 음악 어떻게 골라 듣지?” - 작곡가 열전
-새로운 음악을 넘어 독특한 소리가 담긴 앨범 - 크로스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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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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