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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 11번’ 3악장,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고?

이 곡을 들으면 당시의 유행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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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듣는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조 K.331’은 모차르트가 남긴 18곡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곡입니다. 아마 이 곡의 3악장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살다 보면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가끔 생깁니다. 최근 제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을 저는 항상 일요일에 쓰는데요, 후배들과 함께 사용하는 작은 집필실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집필실을 이전하면서 LP 음반들이 한 뭉텅이 없어지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한 200장쯤 사라진 것 같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저는 그 음반들의 실종 때문에 몇 시간 동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쓰린 속을 달래면서, 다행히 사라지지 않은 애장음반 중에서 하나를 꺼내듭니다. 안드라스 쉬프(51)가 연주한 모차르트 소나타 전집입니다. 데카(Decca)에서 1980년대 초반에 발매한 LP입니다. 자동차를 몰고 집필실로 나오면서 오늘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하나를 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차였습니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출처: 위키피디아]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모두 18곡으로 셈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모차르트가 피아노 독주용으로 작곡한 소나타는 모두 22곡이라고 하는데, 열 살 때 쓴 4개의 작품은 현재 악보가 전해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또 후기 소나타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는 ‘소나타 F장조 K.Anh.135(K2.Anh.138)’는 그의 다른 작품을 편곡한 것인데다 위작 논란까지 있어서 전곡(全曲)을 셈할 때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그 곡까지 포함하면 19곡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 18곡으로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모차르트의 작품 뒤에 따라붙는 K는 ‘쾨헬넘버’라고 읽는다고 이전 칼럼에서도 얘기한 것 같습니다. ‘K’만 쓰기도 하고 ‘KV’로 쓰기도 합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대순ㆍ주제별로 정리한 오스트리아의 음악문헌학자 루드비히 폰 쾨헬(1800~1877)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한데 소나타 F장조의 경우에는 ‘Anh’이 또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Anhang(추가)의 약어입니다. 작품목록을 만든 뒤에 추가했다는 의미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차적인 설명에 너무 귀 기울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음악은 가슴으로 듣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렇게 정서적으로, 혹은 감각적으로 음악과 친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음악적 지식들’은 자연스럽게, 차츰차츰 따라옵니다.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조 K.331 3악장 도입부분 [출처: 위키피디아]

오늘 듣는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조 K.331’은 모차르트가 남긴 18곡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곡입니다. 아마 이 곡의 3악장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알라 투르카(Alla Turca)라는 지시어가 붙은 알레그레토(조금 빠르게) 악장인데요, alla는 ‘~풍으로’라는 뜻이고 ‘turca’는 터키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대개의 음악적 지시어들이 그렇듯이 이탈리아식 표기입니다. 바로 이 3악장이 ‘터키 행진곡’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까닭에, ‘소나타 11번 A장조’는 모차르트의 그 어느 피아노 소나타보다 많은 이들에게 친숙합니다.

이제 모차르트의 20대 초반 무렵을 되짚어보겠습니다. 1777년 가을, 그러니까 스물 한 살의 모차르트는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그 여행은 낭만적인 휴식이 아니었지요. 모차르트는 그해 여름에 자신의 고용주였던,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대주교에게 사표를 던집니다. 콜로레도는 비서를 통해 ‘맘대로 하라’고 통보했지요. 그래서 모차르트는 다른 곳에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한 ‘구직 여행’을 떠납니다. 그해 가을부터 1779년까지 어머니와 함께 만하임을 거쳐 프랑스 파리까지 가서 취직자리를 알아보고 다닙니다. 하지만 운이 나빴는지 모차르트를 받아주는 궁정악단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차르트가 파리에서 취직할 수 있기를 학수고대했던 모양입니다. 당시 그가 아들에게 보냈던 편지 중에는 “파리에서 귀네(Guines) 공작과 친하게 지내라. 그의 호의와 도움을 얻기를 바란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귀네 공작은 당시 프랑스 궁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귀족이었다고 하지요.

취직을 위해 떠난 여행이었으나 그 어디에도 자리를 얻지 못했으니 당연히 여행은 고달팠을 겁니다. 물론 모차르트는 때때로 현지의 귀족들에게 환대를 받기도 했고, 작곡을 하거나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생계에 필요한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남긴 서간문들을 훑어보면 이 시기는 모차르트는 매우 절망하고 외로워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그 고달픈 여행길에서 사랑하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으니(1778년 7월 3일) 슬픔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한데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곧바로 알리지 않습니다. 그저 위독하다고만 알리면서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지요. 하지만 같은 날 잘츠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친구 불링거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씁니다. “나와 함께 애도해다오. 오늘은 내 생애에서 가장 슬픈 날이야. 나는 이 편지를 새벽 2시에 쓰고 있어.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가 더 이상 살아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구나.”

게다가 모차르트는 이때 또 하나의 실연을 겪습니다. 만하임에서 머물던 시기에 베버(Weber) 집안과 알게 됐고 그 집의 딸인 소프라노 알로이지아와 사랑에 빠졌는데, 파리에서 어머니를 잃은 모차르트는 귀환하는 길에 다시 만하임에 들르지요. 사랑하는 여인 알로이지아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알로이지아는 모차르트를 위로해주지 않았지요. 무직자로 돌아온 모차르트를 시쳇말로 그냥 차버렸다고 합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떠났던 여행은 그렇게 고통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시간이 되고 맙니다. 결국 모차르트는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궁정의 오르가니스트로 재취업하지요. 그리고 이후 2년간 그 자리에 머뭅니다.

하지만 모차르트, 철없던 개구쟁이였던 그는 여행 중에 겪은 갖가지 시련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성숙해집니다. 고달팠던 구직 여행과 어머니의 죽음, 첫사랑의 실패를 이 자리에서 거론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1777년 가을부터 1779년까지의 여행은 모차르트의 ‘성장’이라는 맥락에서 빠뜨릴 수 없는 사건입니다. 말하자면 인생의 쓴 맛을 봤던 것이지요.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모차르트는 2년간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잘츠부르크 궁정에서 다시 일하면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인내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1781년, 그는 잘츠부르크 궁정의 콜로레도 대주교와의 고용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빈으로 떠납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쓴 ‘어른 모차르트’의 선택이었지요. ‘독립한 음악가’로서의 행보가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실패한 첫사랑의 동생이었던 콘스탄체와 결혼하지요. 이 역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쓴 선택이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조’의 작곡 연도는 파리 여행중이었던 1778년 여름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리 소나타’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지요. 하지만 최근의 자필악보 연구에 의해 1783년에 작곡된 것으로 수정됐습니다. 그렇다면 모차르트가 빈에서 피아니스트로 한창 이름을 날릴 때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모차르트가 당대의 피아니스트로 첫손가락에 손꼽혔던 이탈리아 출신의 클레멘티(Muzio Clementi, 1752~1832)와 황제 요제프 2세 앞에서 그 유명한 ‘피아노 즉흥 배틀’을 펼쳤던 것이 1781년 12월 24일의 일이지요. 누가 이겼냐구요? 글쎄요. 승부를 단정하기는 좀 애매합니다. 이 일과 관련해서 누가 이겼다는 둥, 클레멘티는 모차르트를 칭찬했지만 모차르트는 그 반대로 질투를 했다는 둥 여러 가지 설이 떠돌고 있지만 다 정확한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황제가 그들을 불러 경연을 펼치게 했을 정도로 두 사람 모두 내로라하는 당대의 피아니스트였다는 점은 기억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왜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조’에는 ‘알라 투르카’(터키 풍으로)라는 특이한 스타일이 등장하는 것일까요? 쉽게 말해 그것은 당대의 유행이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터키는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에 걸쳐 유럽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을 하나 꼽자면 바로 커피라고 할 수 있겠지요. 특히 모차르트가 활약하던 시기의 빈에서는 터키풍의 의상과 가구, 음악이 상당히 유행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터키류(流)’라고 부를 만한 문화적 풍조가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모차르트가 터키풍을 보여주고 있는 음악은 ‘피아노 소나타 11번’ 외에 또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후궁 탈출>은 아예 터키의 하렘(harem, 후궁(後宮))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인데요, 이 오페라에는 터키풍의 선율과 리듬이 자주 등장합니다. 또 1790년에 작곡한 오페라 <코지 판 투테>에도 터키풍의 의상과 음악이 등장하고, 1775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5번 A장조 K.219’에도 터키풍 선율이 나옵니다. 모차르트뿐 아니었습니다. 이 지면에서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음악가들이 터키풍을 자신의 음악 속에 도입했습니다. 베토벤조차도 1811년 작곡한 극음악 <아테네의 폐허>에 ‘터키 행진곡’(Marcia alla turca)을 포함시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지만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어느 정도로 터키풍이 유행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사례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의 3악장을 들을 때마다, 이 곡이야말로 당시의 유행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피아노 소나타 11번’은 모두 3개 악장으로 이뤄진, 연주시간 약 23분가량의 곡입니다. 사실 ‘터키 행진곡’이라는 별명을 지닌 3악장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곡이지요. 안단테 그라치오소(Andante grazioso 느리고 우아하게)로 시작하는 1악장의 주제 선율부터가 귀에 쏙 들어옵니다. 그 아름답고 산뜻한 주제를 여섯 차례 변주하면서 펼쳐지는 악장입니다. 2악장은 포르테로 강하게 건반을 짚으면서 시작하는 미뉴에트 악장이지요. 중간부의 트리오에서 오른손과 왼손을 바쁘게 교차시켜야 하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들을 애먹게 하기도 합니다. 3악장은 바로 그 유명한 알라 투르카, 이른바 ‘터키 행진곡’입니다. 부담 없이, 즐겁게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p.s. 릴리 크라우스가 연주하는 모차르트 소나타는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전통적인 명연(EMI)입니다. 현재 품절 상태여서 추천음반 목록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마리아 주앙 피레스(Maria Joao Pires)/1990년/DG

포르투갈 태생의 피아니스트 피레스(70)는 1996년에, 또 지난해에도 내한한 바 있다. 올해 2월에도 한국을 찾아와 스코티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예정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프랑스의 에라토 레이블에서, 중년 이후에는 DG에서 모차르트 소나타를 녹음했다. 두 녹음 모두 연주자의 진심이 갈피갈피 서려 있는 호연(好演)이다. 오늘은 1990년의 원숙한 녹음을 권한다. 1악장의 서정미와 2악장의 생동감이 잘 살아 있다. 3악장은 다른 연주에 비해 템포를 느릿하게 설정하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음반은 6장의 CD로 이뤄진 전집이다. 낱장의 CD로도 구할 수 있지만, 모차르트의 다른 소나타도 함께 맛볼 수 있는 전집이 가격적 측면에서 유리해 보인다.


알프레트 브렌델(Alfred Brendel)/1990년대/PHILIPS

지금은 무대에서 은퇴한 피아니스트 브렌델(83)은 70년대와 90년대에 각기 두 가지 녹음을 남겨놓고 있다. 두 연주가 모두 좋지만 오늘은 만년의 연주인 후자를 권한다. 실황을 녹음한 음반이다. 음 하나하나를 허투루 누르지 않는, 이 사려 깊은 피아니스트의 연주라면 일단 믿어도 좋다. 아울러 90년대 녹음은 70년대에 비해 음질이 더 낫다는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중용적이고 부드러운 연주로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음악적 흥취가 덜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소나타 11번의 경우에는 다소 해석의 변화도 보여준다. 특히 3악장이 그렇다. 70년대에 빠른 템포로 몰아친 것에 비한다면, 90년대에는 좀더 느긋한 속도를 보여준다. 현재 일시 품절 상태이지만 곧 수입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도 생계형 가장이었다
-서커스단에서 줄타는 소녀와 육군 중위의 비극적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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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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