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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K.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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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40번 g단조 K.550>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많이 애청되는 곡입니다. 아마 모차르트의 작품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인기 있는 곡들 가운데 하나일 성싶습니다. 특히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연주하는 1악장의 주제 선율을 모르는 분들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가 남긴 교향곡은 모두 41곡입니다. 동시대의 작곡가 하이든이 썼던 100곡 이상에 견주자면 적은 분량이지요. 하지만 모차르트는 자신보다 24세 연상이었던 하이든보다 훨씬 먼저 이 세상을 떠났으니, 35년간의 짧은 생애에 41곡의 교향곡을 썼다는 사실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표라고 하겠습니다. 첫번째 교향곡은 고작 여덟 살이던 1764년에 작곡됐지요. 아버지 레오폴트에 이끌려 서유럽 곳곳을 여행하던 시기에, 사실 그것은 결코 안락한 여행이 아니라 혹독한 연주투어였지만, 어쨌든 그 시기에 런던에서 작곡됐습니다. 자필악보에 ‘볼프강 모차르트의 교향곡, 런던, 1764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물론 여덟 살이었던 모차르트가 그렇게 썼다기보다는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가 기입해 넣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출처: 위키피디아]

아시다시피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태생이고, 그곳에서 노상 툴툴대면서 콜로레도 대주교의 ‘음악하인’으로 살았지요. 지금도 이 작은 도시는 ‘모차르트’라는 브랜드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생가가 보전돼 있는 이곳에서는 매년 7월에서 8월까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숙소가 모자랄 정도입니다. 그중에서도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가 가장 붐비지요. 6층짜리 건물이 1917년에 모차르트 박물관으로 조성됐는데요, 사실 모차르트 가족은 그 건물의 2층에 세들어 살았습니다. 저는 한 4~5년쯤 전에 잘츠부르크에 간 적이 있었는데, 모차르트 생가를 들어가 보려다가 그만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구요? 입장료가 상당히 비쌌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용 자체가 아까워서 그랬던 건 아닙니다. 사실 그날 저는 심사가 좀 뒤틀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차르트를 소비하는 방식’에 왠지 진절머리가 났던 까닭이지요. 게트라이데 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명품숍들, 쇼핑을 하느라 북적대는 인파를 헤집고 걷는 것에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식당마다 만원이어서 맥도날드에 들어가 햄버거로 배를 채웠는데, 세상에나, 그렇게 맛없는 햄버거는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축제 기간이 아니었는데도 그랬습니다. 모차르트의 생가에 도착해서는 급기야 실망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는 1781년에 콜로레도 대주교와 결별하고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갑니다. 그것은 자신을 옥죄던 권위로부터의 탈출이었습니다. 궁정의 안락한 월급쟁이로 살기보다는 자유로운 음악가로 살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지요. 아울러 ‘아버지와의 결별’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차르트가 빈으로 가는 걸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릅니다. 이때부터 세상을 떠나던 1791년까지를 ‘모차르트의 빈 시절’이라고 합니다. 모차르트의 나이 스물다섯에서 서른한 살까지입니다. 모차르트는 그 10년 동안 수많은 걸작을 작곡했는데 그의 작품목록 중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곡들을 이 시기에 썼습니다. 교향곡은 모두 여섯 곡을 썼지요. 빈에 도착하고 1년 뒤에 썼던 교향곡 36번 K.385 ‘하프너’부터 마지막 교향곡인 41번 K.551 ‘주피터’까지, 말하자면 오늘날까지 빈번히 연주되는 모차르트의 교향곡들입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으로 작곡한 세 곡을 ‘최후의 교향곡’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최후의 3대 교향곡’이라고 칭하지요. 이렇게 세 곡을 한 덩어리로 취급하는 까닭은 1788년 여름, 불과 1개월 보름이라는 짧은 기간에 거의 동시에 작곡됐기 때문입니다. 모차르트가 남긴 ‘자작품 목록’에 따르면 39번은 6월 26일, 40번은 7월 25일, 41번은 8월 10일에 각각 완성했습니다. 이 세 곡은 모차르트 교향곡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면서, 교향곡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꿔놓은 중요한 모멘트로 서양음악사에 자리해 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18세기에 교향곡은 그다지 비중 있는 장르가 아니었지요. ‘오페라의 서곡’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 세 곡은 그런 관념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습니다. 말하자면 음악적 규모와 완성도, 드높은 정신성의 추구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물론 하이든이 영국 런던에서 발표했던 일련의 교향곡들도 규모가 훨씬 확장됐고 이전의 교향곡들과 구분되는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차르트가 남긴 세 곡의 교향곡보다 몇 년 뒤에나 가능한 일이었지요. 베토벤이 교향곡 3번 ‘에로이카’를 통해 교향곡을 ‘음악의 황제’로 격상시켰던 것은 1804년, 그러니까 19세기로 접어들어서의 일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모차르트가 남긴 마지막 교향곡들이야말로 18세기 교향곡의 정점을 찍으면서 19세기로 진입하는 장면을 가장 먼저 보여준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교향곡 세 곡은 동시에 작곡됐음에도 스타일과 분위기가 각기 다르지요. 이 또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국내에도 번역ㆍ출판돼 있는 『교향곡과의 만남』 (앤드루 후스 지음ㆍ김병화 옮김)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모차르트 최후의 교향곡 세 곡은 각 작품들이 가진 스타일과 분위기의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충격적이다. 39번 E플랫장조는 고요하며, 40번 g단조는 열정적으로 강렬하며, 41번 C장조는 찬란하게 빛난다.”


칼 뵘(Karl Bohm)

그중에서도 <교향곡 40번 g단조 K.550>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많이 애청되는 곡입니다. 아마 모차르트의 작품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인기 있는 곡들 가운데 하나일 성싶습니다. 특히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연주하는 1악장의 주제 선율을 모르는 분들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서주 없이 곧바로 등장하는 주제 선율입니다. 이른바 ‘한숨의 동기’로 불리는 단2도의 음형이 몇 차례 이어지다가 하행하는 선율이 연주되지요. ‘단단다안’ 하고 전개되는 이 동기를 잘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등장하면서 구조적 통일감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두번째 주제는 바이올린에 목관이 합세하면서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느낌으로 펼쳐집니다. 슬픔과 불안의 정조를 밑바닥에 깐 채, 하지만 겉으로는 애써 슬픔을 지우면서 격정적으로 흘러가는 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

2악장은 위로의 느낌으로 가득한 안단테 악장입니다. 앞의 8마디에서 바이올린이 비선율적인 음계를 연주합니다. 8분음표의 리듬 음형이 잔잔하게 반복되지요. 그 반복 리듬을 밑에 깔고 호른과 첼로가, 이어서 바이올린이 상승하는 주제 선율을 연주합니다. 두번째 주제는 반대로 하강하지요. 부드럽고 평화로우면서도 짙은 슬픔의 그림자를 느끼게 하는 악장입니다. 뒤로 갈수록 고통스러운 느낌이 점점 배가됩니다. 앞의 악장에도 등장했던 ‘한숨의 동기’가 좀더 흐릿한 형태로 등장하면서 슬픈 탄식의 분위기를 자아내지요. 마지막 종결부에 들어서면 자조하듯이 스르르 흩어지는 음형을 연주하면서 끝납니다.

3악장은 짧은 미뉴에트 악장이지만 ‘프랑스 궁정의 우아한 춤’이라는 고전적 의미와 판이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춤의 리듬을 밑바탕에 깔고는 있지만, 가볍고 우아하기보다는 장중한 쪽에 가까운 선율들이 펼쳐집니다. 큼직하고 대담한 음형들이 긴장감 있게 펼쳐지다가 트리오 부분으로 넘어오면서 현악기가 연주하는 평화롭고 다정한 목가적 선율이 등장하고, 이어서 클라리넷을 비롯한 관악기가 아련한 느낌으로 호응합니다. 그러다 다시 장중한 분위기로 돌아오지요. 4악장도 3악장처럼 짧은 악장입니다. 템포는 알레그로 아사이(allegro assai). ‘매우 빠르게’라는 말답게 속도가 격렬해집니다. 뭔가 급박하게 상승하는 선율이 첫번째 주제로 등장합니다. 긴박감 넘치는 선율이라고 할 수 있지요. 관현악이 힘찬 경과부를 연주한 뒤 이어지는 두번째 주제는 좀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선율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슬픔의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칼 뵘(Karl Bohm)ㆍ빈필하모닉/1976년/DG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음반이다. 칼 뵘은 1961년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레코딩도 남겨놓았다. 두 음반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좋으나 국내에서는 빈필하모닉을 지휘한 음반이 좀더 애청된다. 템포는 약간 늦은 편이고 음색은 다소 무똑뚝하다. 어찌 보면 모차르트의 음악적 특징과 궁합이 잘 안 맞는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하지만 전체적 조형감이라는 측면에서 칼 뵘의 모차르트는 여전히 필청 음반의 반열에 올라 있다. 특히 교향곡 40번에서는 3악장의 연주가 호평받는다. 교향곡 41번 ‘주피터’를 커플링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ㆍ유럽챔버오케스트라(Chamber Orchestra of Europe)/1991년/TELDEC

원전악기를 사용하고 있는 연주다. 이 계열의 연주로는 프란츠 브뤼헨이 18세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녹음(Phillips)도 호평받는데 현재 매장에 재고가 보이지 않는다. 아르농쿠르의 연주도 현재 품절 상태로 확인되지만 곧 수입될 전망이다. 두 연주 모두 원전악기의 따뜻한 생동감이 느껴지는 수연이다. 지휘자 아르농쿠르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와도 같은 곡을 녹음해 음반으로 내놨지만, 오늘은 원전악기의 특성을 제대로 전해주는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와의 녹음을 권한다. 칼 뵘의 연주와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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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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