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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올해의 가요 앨범

김태춘 < 가축병원블루스 > 부터 진보 < Fantasy >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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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의 자리를 놓고 난투가 벌어지는 싱글들의 각축전은 표면에 자리한 현상의 일부다. 앨범의 단위에서 싱글의 단위로 좁아지는 최근의 음악 산업 구조 덕택에 그 주목도는 떨어지나, 언급을 피한다면 아쉬울 작품들이 이번에도 한 해를 멋지게 빛냈다. 댄스 팝에서부터 록, R&B, 우리나라에는 아직 낯선 포크 블루스까지, 면면을 장식한 색깔들은 실로 다채로웠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즘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자들과 외부에서 활약 중인 음악평론가들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으며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순위와는 무관하다.

1.jpg김태춘 < 가축병원블루스 > 


철저한 반동분자다. 누구에겐 행복하기 그지없는 세상이지만 그의 눈에는 탐욕스러운 '개들의 세상'이자 쓸모없는 자들을 가차 없이 '가축병원'으로 몰아넣는 잔인한 세상일 뿐이다. 김태춘은 억세기 짝이 없는 쉰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사회의 더러운 면모들을 냉소적인 비판의 단어들로 내뱉는다. '욕을 할 만큼 어둡고 더러운 이야기는 욕을 해야만 제대로 표현이 된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신념이 어색하고 과격하게 들리는 이 사회에서 '혁명, 혁명, 혁명'을 외치는 목소리의 가치는 이루 셈할 수 없다.






2.jpg브로큰 발렌타인(Broken Valentine) < 알루미늄 (Aluminium) >


'록=강렬함'의 등식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피 끓는 젊음을 대변했던 록 음악의 현재 추세는 강성 배척과 거부다. 브로큰 발렌타인은 '잘 만들어진 하드록'으로 연성화의 늪에 빠진 시류에 반기를 든다. 작품이 훌륭한 이유는 강력한 사운드 사이에서 선명하게 들려오는 멜로디 라인에 있다. 밴드가 하고자 하는 음악적 방향과 대중의 기호를 적절하게 가미하는 영민함을 보였으며, 팀 본연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성장 역시 이뤘다. 또한, 지향점인 포스트 그런지와 헤비메탈의 적절한 접합면을 구현한 이들의 연주력 역시 최상의 지점에 이르렀음을 확인시킨다. 록음악 본연의 다양한 테제를 녹여 낸 입체적인 조성은 이들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드러내며 앨범의 완성도 역시 흐트러짐 없이 명징하다. 하드록 밴드로서의 확고한 지위, 이제 팀은 장기 노선에 안착했다.



3.jpg샤이니 < The Misconceptions Of You >


'반(反)아이돌 화(化)'라는, 아이돌 양산을 전문으로 해온 거대 기획사에서 내놓은 이 역설적인 플랜은 격월로다가 하나 둘 노래만 내놓고 사라지는 단발성의 시장 틈바구니에서 샤이니에 차별성을 부여했다. 활동의 중심이 되는 개별 곡으로 시점을 모아보면 분명 여파의 세기가 떨어지나, < The Misconceptions Of You >로 시작해 < The Misconceptions Of Me >, 종래의 < The Misconceptions Of Us >로 연결되는 이 삼부작에는 작금의 주류 무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거대 규모의 기획력이, 그리고 세계관이 담겨있다. 시즌 별 싱글보다도 전체적인 순행 위에서 이들에 점수를 매겨야 할 당위가 여기서 생긴다.


올 한 해의 시작점에 무게가 쏠린다. 「Dream girl」로 시작해 「Runaway」로 마무리되는 이 앨범에는 유기성으로 시작해 높은 완성도로 끝나는 상당한 수준의 짜임새가 담겨있다. 곡과 메시지, 이를 전제하는 맥락까지 한번에 가져가는 기획력이 우선 훌륭하며 이를 구현해내는 그룹의 역량 역시 모자람이 없다. 기억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연말 결산에서도 이즘은 올해의 모먼트 중 하나로 샤이니를 꼽은 바 있다. 2년 연속으로 언급되는 이 일을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단순한 우연의 나열일까. 단언컨대, 기획력의 승리다. '어쩌다'라는 수식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필연의 연속인 것이다.


4.jpg선우정아 < It's Okay Dear > 


국내 대중음악과 인디음악의 고질병인 천편일률적인 트렌드 추종에 반격을 가한 앨범. 유사한 소재와 비슷한 장르의 운용이 난무하는 가운데 선우정아는 익숙하고도 낯선 음악을 들려준다.


리듬 앤 블루스와 재즈라는 장르 속에 시도된 대중적인 접근은 독특한 음색과 탄탄한 기본기의 보컬을 타고 흐르며 우월성을 획득했다. 대중음악의 클리셰와 기시감을 파괴하는 익숙함 속의 낯설게 하기 기법은 순수하게 그의 실력과 연륜을 토대로 발아한 것이다. 선우정아는 그 존재만으로 우리나라 싱어송라이터의 오늘과 내일을 보여주고 있다.




5.jpg윤영배 < 위험한 세계 >


'자본주의'에 대해 '몇몇 사람의 난폭한 결정'이라고 노래한 아티스트는 자신의 앨범조차 홍보를 거부한다. 그의 앨범이 아니면 「선언」, 「구속」, 「점거」라는 노래제목을 어디서 목격할 수 있을까. 대상과 이데올로기를 직접 겨냥하고 있지만 거친 선동가와는 차원이 다르다. 목놓아 '혁명'을 부르짖기 보다는 시인의 필체로 비참한 현장을 진술하며, 유려하게 흘러가는 기타 연주로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욕망과 불안, 슬픔이 뒤엉켜 있는 위험한 세계. 그의 무기력하고 연약한 보컬은 소리 죽인 우리의 초상을 보는 것 같아 쓰리고 아프다. 목소리는 작지만 '크고 지르는' 목소리가 담지 못하는 '한숨'과 '비탄'의 여운을 남긴다. '흔한 사람이 투사되고 열사되는 흔지 않은 지금 이 순간'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된 시국에 그가 발표한 '소신'은 자체가 투쟁이고, 고고하게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다.



6.jpg이승열 < V >


모호하고 난해하며 혼란스럽다는 여러 말이 앞섰으나 지금껏 이승열이 음악으로 너그러웠던 적은 없다. 유앤미블루 때부터 유지되어온 이질적인 감성은 그를 현 위치로 이끈 밧줄이기도 하다. < V >는 좁게나마 틔어있었던 길을 흙으로 덮어버리고 거친 동작으로 음을 내던졌다. 두 곳의 다른 장소에서 녹음된 변칙투성이 울림은 무겁고 음울하지만 차분히 또 나란히 같은 지점을 향한다. 연출을 위한 정제가 없고 모든 퍼포먼스는 오로지 한 공간을 공유하는 소리로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얼핏 보면 탈경계와 탈원칙의 무모한 기록에 불과한 결과물은 놀랍게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작가 이승열의 껍질을 또 한 꺼풀 벗겨냈다. 



7.jpg자우림 < Goodbye, Grief >


이전까지의 그들이 다소 즉흥적인 접근법을 보여 왔다면, 이번엔 정확히 그 반대편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풀어놓은 대로, 흘러가는 대로 느껴주길 바라던 이들의 음악은 아홉 번째 여정에 도달해 굉장히 치밀하고 계획적인 모습으로 듣는 이들을 유린하고 있다. 의도되어졌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점층적 구성과 템포 변화, 이에 따른 기승전결에 대한 강박은 그간 밴드의 커리어를 따라왔던 이들에게 강한 역공을 날린다. 그야말로 카운터펀치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바로 그것이다. 그 흐름이 결코 폭력적이지 않다.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 겨우겨우 절정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손을 잡고 끌어주며 카타르시스의 지점까지 우리를 안내한다. 이 강제성 없는 '기분 좋은 권유'가 이끌어낸 변신, 그것은 음반의 흥행도 흥행이거니와 듣는 이들이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공감과 일체화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었다. 자우림이라는 팀이 가진 결코 끝나지 않을 꿈의 조각, 나는 이 앨범을 들으며 그것을 주웠다.



8.jpg장필순 < Soony Seven >


어떤 이는 옛날만큼은 아니라고 하고, 어떤 이는 레전드에 대한 예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맴맴」을 들으며 느꼈던 막연한 먹먹함을 과연 어느 가수의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을 불쑥 꺼내놓게 만든다는 점, 그 힘이 10년이라는 공백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없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이 앨범의 가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리곤 급하게 이어폰을 찾게 된다. 방금 맛 본 생명력을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어서.


세상이 강요하는 좋다/싫다, 기쁘다/슬프다라는 감정의 이분법적 선택지에 무한한 보기를 제공해주는 일곱 번째 앨범 속 그의 음색과 노래는, 뮤지션이란 무엇인지를 정립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기준이자 엄격한 심사위원이라 할만하다. 장필순이 장필순으로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 그것이 있었기에 2013년이라는 해의 소중함은 더욱 각별해진 것이 아닐까. '아직 살아있는 걸 보여주고 싶어' 수줍은 기색 너머로 슥 들이밀어 보았다는 간만의 작품,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그 울림의 파장이 제법 만만치 않다. 



9.jpg조용필 < Hello >


대중음악의 역사가 숭배하는 게 열풍과 현상이라면 2013년 국내 대중가요에서 그것은 4월과 5월을 판쓸이한 조용필의 「Bounce」 바람 밖에 없었다. 동세대에게 재활의 용기를 자극하고 오십 살이나 밑인 10대까지 사로잡은 것은 1960년대 이래 처음 보는 진정한 신구 양(兩)세대 포획이었다.


그것은 위험을 감수한 채 '뽕끼'라는 이름의 전통성을 걷어내고 모던 록, 브릿 팝, 일렉트로니카, 랩 등 철저히 '지금'에 봉사한 올드 맨의 영 스피릿이 가져온 성과였다. 놀라운 CD 판매량, TV 가요차트 1위, 연말 대상 수상 등 전리품도 엄청났다. 공연에 모든 것을 거는 가수의 진정한 정체성이 진정한 2013년의 선풍을 만들어냈다.



10.jpg진보 < Fantasy > 


항상 분명하고 독보적인 컨셉을 가지고 작업에 임해온 진보의 2013년 캐릭터는 공상 과학 키덜트. 그 관점에서 음반 속에 짧은 에피소드들을 담았다. 깊은 일렉트로 소울이 먼 미래의 우주를 그리고 재단한다. 주인공은 휴머니티를 동경하는 휴머노이드고, 주제는 물론 사랑. '슈퍼 프릭'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발상부터가 엉뚱하지만 탄탄하다. 관능적이면서도 순수하고, 상쾌하면서도 끈적하다. 이제껏 없었던 음악이다. 


진보는 한 박자 빠르게 빌보드 차트의 작법을 차용하는 얼리어답터가 아닌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트랜드세터인 것을 증명한다. 길을 뚫는다. 그의 본질, '괴짜스러움'이란 언제나 모두의 시선 밖이었지만 사실 모두가 찾고 있었던 것. 작년 < KRNB >에 이어 진보는 이번에도 한국 힙합, 올해의 발견이다. 



선정인(가나다 순, 20명) : 김도헌, 김반야, 배순탁, 소승근, 신현태, 여인협, 위수지, 윤은지, 이기선, 이대화, 이수호, 이종민, 임진모, 전민석, 정우식, 조아름, 한동윤, 허보영, 홍혁의,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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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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