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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음악은 러시아의 노래에서 나왔다 -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e단조 Op. 64>

“시작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영감이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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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들어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딱 한 곡 들었습니다. <내 인생의 클래식 101>의 초반부였던 지난해 11월 1일자에서였습니다. 교향곡 4번이었지요. 아시다시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들, 특히 후반의 3곡(4·5·6번)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레퍼토리입니다.

오늘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들어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딱 한 곡 들었습니다. <내 인생의 클래식 101>의 초반부였던 지난해 11월 1일자에서였습니다. 교향곡 4번이었지요. 아시다시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들, 특히 후반의 3곡(4ㆍ5ㆍ6번)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레퍼토리입니다. 그럼에도 1년이 넘도록 그의 교향곡을 미뤄뒀던 까닭은 겨울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추운 나라 러시아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으로 손꼽히는 북쪽 지역, 한때 죄수들의 유형지로도 유명했던 보트킨스트에서 태어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는 추운 겨울에 들어야 제 맛이 나는 특유의 우울감이 있습니다. 특히 교향곡이 그렇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러시아의 음악적 중심은 오래도록 교회음악이었습니다. 로마의 비잔틴 교회에 반발했던 러시아정교회의 음악들이 18세기 말까지 러시아 음악을 대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연주됐던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서민들이 즐겼던 민속음악에까지 러시아정교회의 영향이 뿌리 깊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18세기 중반에 러시아 궁정에 소개됐던 이탈리아 오페라도 왕족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습니다. 물론 당시 음악산업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었던 영국 런던에서도 상황은 비슷했지요. 그만큼 18세기 중후반의 유럽에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파급력은 대단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탈리아류(流)’라고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이에 대한 반발이 생겨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모든 사회문화적 현상에는 나름의 이유와 배경이 있습니다. 러시아인들의 마음속에 민족적 자의식을 갖게 한 계기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이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패한 러시아에는 국가주의적 자의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 속에서 이른바 ‘국민음악파’로 규정되는 다섯 명의 음악가가 등장합니다. 나이순으로 이름을 불러보겠습니다. 발라키레프, 보로딘, 큐이,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입니다. ‘국민음악파’라는 규정은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고 당시에는 ‘모구차야 구치카’(강력한 소수파)라는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그들을 강력하게 옹호했던 음악비평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가 1868년에 붙여준 이름입니다. 살짝 미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 이들 중에서 음악가로서의 독창성과 재능을 확실히 보여줬던 음악가는 두 명입니다. 바로 무소르그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 정도라고 해야겠지요.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88), [출처: 위키피디아]

차이코프스키는 그들의 바로 다음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거의 동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구차야 구치카의 멤버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던 무소르그스키보다 1년 뒤에 태어났으니까요. 자, 어쨌든 당시 러시아의 문화적 분위기를 크게 둘로 나눠본다면 슬라브주의자들과 서구주의자들의 분열과 대립이라고 할 만한 양상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슬라브의 전통적 정신과 문화를 옹호하는 쪽이었고, 또 다른 한쪽은 서구의 발달한 제도와 문화를 빨리 수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지요. 그런 러시아의 상황 속에서 모구차야 구치카의 5인방은 슬라브주의에 가까운 성향을 보였던 음악가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차이코프스키는 어느 쪽이었을까요? 여러 정황으로 추정컨대 차이코프스키는 서구를 지향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그가 이탈리아를 동경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결혼에 실패한 그가 쫓기듯이 도피했던 곳도 바로 이탈리아였지요. 그런데 차이코프스키의 이런 서구 지향은 아주 어린 시절에 뿌리를 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그가 유년기에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웠던 가정교사가 프랑스 여성 파니 뒤르바흐였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좀 산다 하는 집에서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우는 것이 상당히 유행이었지요. 한데 차이코프스키는 이 여자 선생님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합니다. 4년간 함께 공부한 그녀와 헤어지고는 매우 힘들어했다고 전해지지요. 또 차이코프스키가 16살 무렵에 만났던 성악 교사는 이탈리아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 덕분에 차이코프스키는 서유럽을 친숙하게 느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울러 그가 서유럽의 음악가들, 예컨대 베를리오즈와 바그너, 리스트 등의 음악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지점은 역시 러시아적 정서입니다. 차이코프스키가 겪었던 그 모든 교유 관계와 음악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에서 근간을 이루는 정서는 역시 ‘러시아의 노래’입니다. 교향곡에서도 물론 그렇지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들은 베토벤처럼 구조를 쌓아올리기보다는 모차르트처럼 선율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입으로 따라 부르기 좋은 선율이 빈번히 등장합니다. 게다가 그 선율들은 매우 러시아적이어서, 한국인이나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가슴으로 쉽게 밀려오는 본능적인 선율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동양적 정서’를 공유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내 음악은 러시아의 노래에서 나왔다”라는 차이코프스키의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생전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조용한 곳에서 자라났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의 대중적인 노래들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었다. 그리하여 러시아 정신의 모든 표현에 정열적으로 빠져 들어갔다. 간단히 말해 나는 철저히 러시아 사람이다.”

이화여대 출판부에서 십여 년 전에 번역ㆍ출판했던 『음악의 즐거움』 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차이코프스키가 동생 가운데 한 명에게 보낸 편지에 등장하는 문구라는데, 어떤 동생에게 보낸 편지였는지는 제가 미처 확인하질 못했습니다. 아마 막내인 모데스트가 아닐까 추정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형제 가운데 모데스트에게 가장 많은 편지를 썼지요. 하지만 정확하진 않으니 그냥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앞의 인용 구절은 제가 이런저런 강의에서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요체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아주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한데 이 책은 요즘 절판돼 구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읽을 수 없어 안타깝군요. 이 기회를 빌어 이화여대 출판부에 재판 발매를 권해봅니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은 번호가 붙은 것이 모두 여섯 곡(1번부터 6번까지), 번호 없이 표제로 출판한 곡(만프레드 교향곡)이 한 곡입니다. 그중에서도 <교향곡 5번 e단조 Op. 64>는 4번을 작곡하고 11년이나 세월이 흐른 뒤에 작곡했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졌을까요? 객관적 사실로는 차이코프스키가 그 중간의 기간에 오페라 작곡에 많은 신경을 썼고 유럽 각지를 다니면서 여러 음악가들과 친교를 나눴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동분서주하느라고 교향곡을 작곡하지 못했다는 것은 왠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보다는 교향곡 작곡에 대한 자신 없음 때문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잘 짜인 구성, 미묘한 관현악법을 적절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교향악의 작곡 수법에 그는 매우 중압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1888년에 후원자였던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음악에 대한 형식을 파악하고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때문에 평생 괴로워했습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것을 스스로 “선천적 약점”이라고까지 털어놓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독일-오스트리아의 고전주의 혹은 낭만주의적 수법에 대한 열등감이었을 겁니다. 교향곡 작곡의 대세이자 표준은 바로 그 지역이었으니까요. 말하자면 차이코프스키의 예술적 유전자였던 러시아적 감성, 자신의 음악이 “러시아의 노래에서 나왔다”는 고백은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었던 동시에 콤플렉스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차이코프스키는 1888년에 러시아로 돌아오지요. 그 이전에는 주로 서유럽에 머물렀습니다. 연주여행이 많았던 까닭입니다. 러시아로 돌아오기 직전까지도 라이프치히, 함부르크, 베를린, 프라하, 파리, 런던을 한 바퀴 도는 연주여행을 치렀지요. 그 과정에서 브람스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로 돌아온 차이코프스키는 모스크바 북서쪽의 도시 클린((Klin) 근교의 전원마을 프롤로프스코예에 집을 마련합니다. 숲에 둘러싸인, 넓은 정원을 가진 저택이었다고 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그해 5월 동생 모데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여름에 교향곡을 한 편 쓸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한 달 뒤에는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향곡을 한 곡 쓸 생각이라고 말씀드렸는지요? 시작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영감이 온 것 같습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자, <교향곡 5번 e단조 Op. 64>을 듣기에 앞서 <교향곡 4번>을 잠시 복기해보겠습니다. 제가 이미 말했다시피(2012년 11월 1일자) 교향곡 4번의 1악장은 호른과 파곳이 연주하는 격렬한 팡파레로 시작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그것을 “이 교향곡 전체의 핵심이며 정수”라면서 “운명”이라는 말로 폰 메크 부인에게 설명했지요. 한데 차이코프스키의 ‘운명론’은 11년 뒤에 쓴 교향곡 5번에서 한층 짙어집니다. 이번에는 아예 장송행진곡 풍의 어둡고 무거운 운명을 첫머리에 등장시킵니다. 1악장 서주에서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음울한 선율이 그것입니다. 게다가 그 운명은 불가항력적으로 인생 전반을 지배합니다. 이 음울한 선율은 교향곡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악상으로 계속해 얼굴을 비춥니다.

2악장은 안단테 칸타빌레(느리게 노래하듯이)로 시작하는 악장입니다. 현악기들이 이끄는 도입부에 이어 호른이 노래하는 인상적인 선율이 등장합니다. 뭔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애상감이 가득한 선율입니다. 여기에 다른 악기들이 가세하면서 선율이 점점 강력해지다가 다시 고즈넉해집니다. 이어서 클라리넷이 등장해 중간부의 선율을 이끌다가 드디어 운명의 악상이 강렬한 음향을 뿜어내며 작열합니다. 1악장의 첫머리에서 만났던 바로 그 암울한 선율입니다. 그렇게 폭발했다가 다시 원래의 고즈넉함으로 회귀하지요, 마지막 코다는 잦아들듯이 끝납니다.

반면에 3악장은 따뜻합니다. 왈츠 악장입니다. 차이코프스키가 즐겨 작곡했던 발레 음악이 연상되는 몽환적인 느낌의 왈츠입니다. 3악장에 느닷없이 왈츠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 초연 당시에도 이런저런 비판들이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는 아주 적절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ㆍ2악장이 춥고 암울했던 까닭에 3악장에서라도 뭔가 따뜻한 것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 성냥팔이 소녀가 그리워했을 따뜻한 불빛이 느껴지는 악장입니다.


이어서 1악장 서주의 주제 선율이 다시 등장하면서 마지막 4악장이 문을 엽니다. 애초에는 단조였던 선율이 장조로 모습을 바꿔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현악기들이, 이어서 관악기들이 웅장한 느낌으로 연주합니다. 팀파니가 으르렁대는 소리를 배경에 깐 채 광포한 분위기의 첫번째 주제가 연주되고, 잘게 부서지는 음형들로 표현되는 두번째 주제는 목관이 연주합니다. 무거운 1주제에 비해 두번째 주제는 환한 분위기를 구사합니다. 그리고 잠시 뒤 1악장 서주에서부터 이 교향곡을 관통해온 음울한 주제 선율이 당당하게 모습을 바꿔 다시 등장합니다. 아주 늠름한 행진곡풍입니다. 그래서 4악장에 내려진 일반적인 해석은 ‘운명을 극복한 승리의 행진’이라는 식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차이코프스키의 맨얼굴이었을까요? 어쩌면 차이코프스키는 이 마지막 악장을 쓰면서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p.s. 개인적으로 즐겨 듣는 음반은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가 소련 국립 교향악단을 지휘한 1990년 녹음(Pony Canyon)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두 번 들었습니다. 도쿄 산토리홀에서 가졌던 실황입니다. 질풍처럼 내달리는 연주입니다. 스튜디오 녹음과는 맛이 다른 흥분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브라보!’와 박수소리도 음악입니다. 음질도 좋습니다. 현재 절판 상태이지만, 눈에 띄면 망설이지 말고 구입해도 좋은 음반입니다.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60년/DG

50년이 넘은 녹음이지만 언제 들어도 좋다. 호쾌하고 섬세하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악단의 호응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지는 명연이다. 구소련이라는 정치ㆍ사회적 배경 속에서나 가능했던 연주이니, 이제는 ‘역사적 녹음’이라고 규정해도 될 성싶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연주한 음반들은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이 한 장의 음반’을 꼽는다면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이 연주야말로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75년/DG

음질을 중시하는 경우라면 카라얀의 1970년대 음반을 권한다. 생전의 카라얀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일곱 차례 녹음했는데, 1971년에는 EMI에서, 1976년에는 DG에서 녹음했다. 모두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녹음이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무방하나 오늘은 DG의 음반을 권한다. 치밀한 합주력이라는 측면에서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에 버금갈 만한 연주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하고 세련된 연주다. 하지만 러시아적 야성이라는 음악의 본질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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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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