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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규의 바다이야기, 대한민국을 흔든 도박을 그리다

한 시대를 휩쓴 불편한 소재인 도박 게임을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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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가 건드리고 있는 소재는 충분히 ‘불편’하다. 도박 외에도, 피라미드 사업이나 사회적 불평등 등의, 눈부신 발전을 이룬 한국 사회의 이면에 도사리는 불편하고 어두운 이면을 정면으로 찌르고 있다. 바다이야기를 위시한 다양한 도박들, 그리고 그러한 업소를 운영하는 조폭과 지역 경찰의 밀월 관계, 미성년자 주주와 빈부의 대물림 등 뒤틀린 욕망이 얽힌 사회의 그림자를 들춰내고 있다.

바다이야기라는 이름이 한국에 처음 선을 보인 것은 2004년 경이라 알려져 있다. 당시 스크린 경마를 만들던 모 업체가, 일본의 빠칭코 회사가 개발한 동명(海物語, 우미모노가타리)의 게임을 원작으로 만들었다(혹은 배꼈거나). 알다시피, 바다이야기는 출시되고 곧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장이 셋방을 전전할 만큼 어려웠던 업체는 단숨에 부활했고, 전국에 바다이야기라는 이름을 넘실거리게 했다. 여기에는 2000년대 초 댄스게임의 열풍이 식은 후 휘청대던 오락실 업계가 바다이야기를 마지막 탈출구로 여겨 힘을 보탠 것도 있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 시대를 거친 독자라면 잘 알 것이다. 사행성 게임 논란과 영등위 비리에서 시작한 문제는 정치권으로 옮겨가며 2006년 하반기를 휩쓴 거대한 태풍이 되었다. 태풍이 휩쓸고 간 뒤에 무엇이 남았는가. 오락실 업계는 다시 5년간 반쯤 시체였으며, 여러 정치인들이 오점을 안고 몇몇은 퇴출되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닷속으로 허망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던 바다이야기는 아직도 남아있다.


『바다이야기』는 원래 대학 졸업작품으로 제작하며 디씨인사이드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이후 야후 코리아 카툰세상으로 자리를 옮겨 정식 연재를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동인 연재작이 인기를 끌고 정식 웹툰으로 연재되는 사례는 흔한 편이다. 네이버와 다음은 이런 식으로 신인을 발굴하는 체계를 확립한 상태이다.)

이 만화의 작가 박병규 또한, 바다이야기를 굴리던 업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후기에서 고백하고 있다. “‘일확천금’.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 다들 그렇게 믿고서 찾아오는 곳. 하지만 결국은 절망만이 남게 되는 곳.” 1화에서 업소를 표현하는 이 문장은, 그가 목격한 시궁창을 한 줄로 표현하고 있다. 아니면, 적어도 표면상으로 볼 수 있는 시궁창 만을 표현하고 있던가…

그런 작가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바다이야기』는 실제 업장의 행태를 상당히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바다이야기』는 그래서 (그런 걸 정상적인 직업으로 봐야 하는가는 둘째치고) 한 가지 직종이나 업계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전문직 만화’의 한 부류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문직 만화는 작가가 해당 업종에 종사한 경험이 있거나 해당 분야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좋은 작품을 만달 수 있다(예를 들어, 전문직 만화의 시초로 꼽히는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잭』은 작가 본인이 의사 자격증과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박병규는 『바다이야기』라는 만화를 그리는 데 있어서 이미 유리한 고지에 서 있었던 것이리라.

물론, 필자는 업소에 발을 들여본 적이 없고, 아마 독자 여러분 또한 그럴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작중에서 그려지는 업소가 얼마나 정확하게 그려지는지 모른다. 그러는 게 좋은 것이고. 물론 실제 경험을 가지고 그것을 다룬 작품을 접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SF 영화를 보자고 우주 수명 은행의 행장을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닌 법이다. 그럼에도 『바다이야기』는 실제 업소를 보고 있는 것처럼 상당한 설득력을 준다.

피라미드 사업에 빠져 젊은 나이에 빚을 지고 바다이야기 업소에서 일하는 주인공이라는 실제로 있을 법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해서, 업소의 다양한 영업 수단과 은어 등을 포함하였다. 직접 접해보지 못했다면 허구처럼 느껴지기 마련인 소재를, 대단히 설득력 있게 풀어내어 내가 정말로 현장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듯이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한편, 이 만화는 물론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웹툰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바다이야기라는 소재를 잘 살려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이야기』의 결말을 놓고 보면 공익적 목적으로서의 도박에 대한 경고를 담은 권선징악 스토리를 전개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바다이야기를 중심으로 음지의 도박계 그 자체를 극한적으로 묘사하려 한 것인지. 즉, 스토리 전개의 방향성이 애매하다. 물론 결말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결말 직전까지 치달아 있던 긴박감이 해소되지 않고 갑작스레 사라진 엔딩이란 아쉬운 점이다.

그럼에도 이 만화가 건드리고 있는 소재는 충분히 ‘불편’하다. 도박 외에도, 피라미드 사업이나 사회적 불평등 등의, 눈부신 발전을 이룬 한국 사회의 이면에 도사리는 불편하고 어두운 이면을 정면으로 찌르고 있다. 바다이야기를 위시한 다양한 도박들, 그리고 그러한 업소를 운영하는 조폭과 지역 경찰의 밀월 관계, 미성년자 주주와 빈부의 대물림 등 뒤틀린 욕망이 얽힌 사회의 그림자를 들춰내고 있다. 밝은 부분만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물론 이러한 부분은 ‘불편’하리라…

그나저나, 2012년 말 야후 코리아가 문을 닫으면서 물론 야후 카툰세상 또한 문을 닫았다. 『바다이야기』 또한 함께 날아갔다고들 생각했지만, 이후 박병규가 네이버 웹툰에서 신작 『장미아파트 공경비』를 연재하면서, 네이버 북스에 등록되어 (유료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유료 결제를 거쳐야 하는 점이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우리들이 등지고 있는 가장 가까운 어둠을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언제든 빠져들 수 있는 위험하고 가까운 어둠, 『바다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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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제훈

90년대 서울 출신.
길지 않은 세월 속에 이야기를 모으고 즐기는데 낙을 두고 있다.
또한, 누군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부지런히 설명하는 것 또한 좋아한다.
그렇기에 이 지면에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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