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갑
"풍류는 매일 드는 가방에 매단 인형처럼 늘 제 마음 한편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말이에요. 한국의 문화와 놀거리를 이루는 그윽하고 풍성한 면을 읊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어요."
『애주가의 결심』 『세 개의 푸른 돌』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등 다정한 생활 감각으로 일상의 섬세한 결을 포착해 온 소설가 은모든이 첫 에세이 『서울 풍류』로 독자들을 만난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맛과 멋, 흥을 논하는 풍류 에세이이자, 자타 공인 꽃과 술 애호가인 ‘현대판 풍류가’ 은모든이 서울 곳곳을 누비며 발견하고 감각한 것들의 기록이다. 소설가에게 오래 쓰기 위해 잘 노는 일에 대해 물었다.
그동안은 쭉 소설로 만나왔는데, 이번에는 『서울 풍류』라는 에세이로 독자들을 만나게 되셨어요. 작가님의 출간 소감이 궁금합니다.
열린 창으로 들이치는 바람이 반가워서 틈만 나면 한강 변이나 공원을 찾게 되고, 야외 음악 축제가 풍성한 계절이 왔네요. 풍류를 즐기기 그만인 가을의 초입에 발간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에세이로는 첫 번째 단행본이라 더욱 두근거리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풍류’라는 주제가 흥미로워요. 표지에도 갓을 쓰고 풍류를 즐기는 작가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서 웃음이 나더라고요. 언뜻 예스러운 말 같기도 한데, 어떻게 풍류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되신 건가요?
풍류는 사실 매일 드는 가방에 매단 인형처럼 늘 제 마음 한편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말입니다. 몇 해 전에는 한동안 친구에게 매달 어디 어디에 놀러 가자는 제안을 적어 ‘월간 풍류’라는 제목으로 메일을 보냈던 기억도 나네요.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감각하고 다양한 예술을 접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설의 실마리나 힌트를 마주하게 되는 일도 잦았기에 점점 더 잘 노는 일은 제 삶을 이루는 중요한 축 중 하나로 우뚝 서게 되었어요. 한편으로는 ‘K’로 표상되는 콘텐츠가 도파민을 터트리는 자극성으로 대표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서 아쉽던 마음을 담아 한국의 문화와 놀거리를 이루는 그윽하고 풍성한 면을 읊어보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고요.
풍류를 논하면서 서울의 이야기인 점도 독특해요. 책의 부제 역시 “멋스럽고 운치 있게 서울을 감각하는 법”인데요. 서울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었는지, 작가님께 서울이라는 도시는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서울은 자연과 예술 양쪽을 아울러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한 도시라고 느낍니다. 서울타워가 자리한 남산만 해도 그래요. 우선 도심과 산이 이토록 가까운 점이 감사한데 산책로도 참 다양하지요. 둘레길 중에서는 국립극장에서 백범광장 방향으로 향하는 북측순환로가 특히 완만해서 봄꽃과 가을의 단풍을 만끽하며 산책을 즐기기 좋은데, 난이도가 더 낮은 ‘하늘숲길’이 지난해 개방되었죠. 무장애길로 쉬엄쉬엄 이삼십 분만 걸으면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높이까지 오를 수 있는 이 길의 시작 지점 맞은편에는 다산 정약용과 퇴계 이황의 동상이 우뚝 선 남산도서관이 자리해서 독서 욕구를 부추기기도 하고요.
책은 맛과 멋과 흥이라는 3부 구성으로 되어 있어요. 과연 ‘21세기 풍류가’라는 말에 걸맞게 작가님의 풍류 내공이 느껴집니다. 특히 봄꽃, 굴 이야기에서 벅차오르는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읽으면서도 즐겁더라고요. 책 속에서 작가님이 특히 좋아하는 장면이나 풍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봄꽃이 주는 극락마저 떠올리게 되는 황홀감과 겨울의 동반자인 굴의 맛은 저도 처음부터 반드시 쓰기로 마음먹은 소재였어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관해서도 꼭 담고 싶었고요. 궁 안에 미술관이 있다는 점부터 매력적인 데다 미술관을 마주하고 선 거대한 능수벚나무도 볼거리를 더하고, 지난해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전시를 비롯해 한국의 근현대 미술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는 전시가 자주 열려서 항상 배움과 발견이 있는 곳입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한다면 한강 변을 원 없이, 마음껏 걷는 일이 선사하는 감정에 관해서도 공들여 적었습니다.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불안을 자극하는 목소리가 넘치는 시대니까요. 무용한 소비 없이도 무언가를 마음껏 누렸다고 여길 수 있는 취향을 하나쯤 가지는 일은 마음의 지지대로 작용한다고 느끼는 터라 널리 권하고 싶은 일이에요.
또 책에는 작가님께서 소설 창작 수업을 하면서 느끼는 소회들이 담겨 있어요. “꾸준히, 오래 지속합시다, 세상 구경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라는 이야기가 곳곳에 들어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창작자들이나 각자의 일을 해나가는 독자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사실 책의 맨 첫 문장이 국악 공연에서 곧잘 듣는 “잘한다!”라는 추임새로 시작하는 것도 몇 해 전부터 소설 쓰기 수업을 진행한 경험에 의한 것이었어요. 수강생에게서 ‘잘한다’라는 말을 둘러싼 불안과 죄책감을 호소하는 말, 더 열심히 해야 했다는 후회를 수도 없이 들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저는 열심히‘만’ 해서 될는지 반문하게 되었고요. 어차피 내 작품이라고 일컬을 만한 것을 세상에 내놓으려면 대체로 오래 해야 하는데, 과연 가혹한 채찍질만으로 오래 할 수 있겠느냐고도 덧붙였지요. 내가 가진 리듬과 멋을 알아야 신나서 창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과 예술을 두루두루 접해야 영감도 받고 자신과 거리가 먼 인물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지 않겠어요? 하고 옆구리를 쿡쿡 찔러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습니다.
게다가 잘 노는 일은 영감을 품은 당근만이 아니라 진정한 채찍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요. 책상물림에게 꼭 필요한 정신교육이 절로 된다고 할까요? 글을 쓰는 일은 본질적으로 고독하고 고독한 데다 괴로우면 자칫 자기 연민으로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잖아요. 그런데 글쓰기보다 훨씬 긴 시간을 작업해야 하는 화가들의 작업을 접하고, 엄청난 규모의 무대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러 가서 그 소박한 무대를 지키는 음악가들을 보면, 담대함도 꿋꿋함도 절로 마음에 새기게 되니까요.
책에 미처 못 담은 이야기나,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서울이 아닌 곳에서 대면한 풍류는 아무래도 빠지게 되었으니 언젠가는 ‘팔도 유람’도 써볼까? 하는 생각이 아련하게 들어서 일단은 폴더를 하나 열어두었습니다. 서울에서 즐긴 풍류에 관해 적다 보니 서울살이를 테마로 소설집을 묶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지막으로 이 계절에, 혹은 남은 올해에 추천할 만한 풍류를 소개해주세요.
방금 서울 외의 지역을 언급해서 말인데 올해는 박경리 선생님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니 가을 나들이로 토지 문학관에 가봐도 좋지 않을까요? 저는 뚜벅이라서 마음은 통영으로 향하지만 일단은 가까운 편인 원주 쪽으로 가볼까 합니다. 물론 『토지』를 천천히 독파해보셔도,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오랜 산책을 즐기셔도 좋고요. 산책하는 데 또한 최적인 장소는 궁인데 시월이면 궁중문화축전도 열리지요. 외출할 여유를 내기 힘든 분이라면 집에서 햇밤과 따스한 차 한 잔을 즐기셔도 좋겠고요. 쌀쌀해지는 계절은 현악기와 유독 합이 좋으니 첼로나 어쿠스틱 기타의 음색이 도드라지는 음악도 곁들이면서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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