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누군가의 수상을 기다리는 기쁨 | 예스24
유상훈 민음사 해외문학 편집자와 함께 살펴보는 2026년 노벨문학상 이야기.
글: 유상훈 (편집자)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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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학을 담당하는 편집자라면, 매년 10월, 이 즈음에 각기 다른 이유로 노벨문학상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하고 넘어갈 것이다. 자신이 소속된 출판사에서 관리하는 작가가 수상할 수도 있고,  (비록 스웨덴 한림원에서 선정하긴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할 수도 있으니, 공연히 마음속이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문학의 동향이라기보다 수상자를 선택하는 방식에 어떤 특정한 공식이, 암묵적으로 생겨난 듯한 인상이다. 

 

애당초 노벨문학상 초기 수상자들만 보더라도 전부 유럽 작가인 데다 남성 중심주의적이었던 까닭에 첫 시상을 1901년부터 시작했음에도 1909년에야 여성 작가인 셀마 라겔뢰프에게 첫 영예를 안겼으며, 다음 여성 작가(그라치아 델레다)가 수상하기까지 십칠 년을 기다려야 했다.(1910, 1950, 1970~1980년대엔 단 한 명의 여성 작가도 수상하지 못했다.) 한편 여기서 노벨문학상의 취지를 굳이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문학 분야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낸” 인물에게 상을 수여한다고 못 박고 있음에도, 앞서 언급하였듯이 유럽중심주의적 ‘입맛’에 걸맞은 작가에게 상이 돌아가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 국가, 그 언어의 문학적 위상을 고려했을 때, 스웨덴 작가에게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자를 결정하는) 이 상이 여덟 차례나 돌아갔음은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가장 광범위한 아시아의 모든 수상자를 합해도 여덟 명이 안 된다.)  

 

사실 노벨문학상이 우리나라에서 범국가적 관심을 받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대해 관심 있는 이가 없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 크게 사랑받아 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 가능성이 급부상하던 즈음부터 한강 작가의 영광스러운 수상으로 노벨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 동안만큼 이 상이 주목받은 적은 없었노라고 조심스럽게 발언하고 싶다. 어쨌든 국제적으로 가장 큰 문학 ‘축제’에 우리나라의 독자들도 마음 깊이 참여하게 되었음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며, 그 정도로 우리 문학의 위상이 크게 신장하였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으레 노벨문학상 시즌이 되면 여러 언론 매체에서 올해는 과연 누가 수상할지를 두고 다양한 기사를 쏟아 낸다. 앞서 2020년대(2020~2025년)에 들어 ‘수상의 공식’이 거의 정설처럼 (물론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가설에 가깝지만) 받아들여짐에 따라, 미지의 수상자를 둘러싼 예언 같은 예측이 더욱 난립하고 있는 듯싶다. 

 

예컨대, 2020년대에 들어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의 수는 각각 세 명으로 동일하다. 만약 이게 하나의 법칙이라면, 지난해 남성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상을 받아 갔으니, 올해는 여성 작가의 수상이 거의 확실시되는 것이다. 또한, 지역 안배가 정설이라면 지난 육 년 동안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서유럽, 북유럽, 아시아 동유럽이 제각기 상을 가져갔다. 물론, 유럽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음은 여전하지만 프랑스와 영국, 독일과 스웨덴 등의 일부 국가가 상을 독식하던 초창기를 생각하면, 스웨덴 한림원이 나름대로 세계 문학의 균형추 역할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매년 수백 명의 후보자 추천이 줄을 잇고, 유럽어권의 작품들과 그 유럽인들의 언어로 번역된 전 세계의 작품들이 스웨덴 한림원의 도서관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 어마어마한 선택의 기로에서, 여전히 ‘수상의 공식’은 유효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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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에 들어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지도의 빈 공간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윤곽이 드러난다. 일단, 2026년에 여성 작가가 수상하리라는 전제를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이 한동안 빈손이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2010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와 2001년 V. S. 나이폴(트리니다드 토바고)이 해당 지역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장 최근의 예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때가 무르익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2024년 한강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아시아 지역 전체(심지어 오세아니아까지)를 ‘퉁친 것’이 아니라면, 인도양과 중동의 여러 국가, 특히나 정치적 선택이 될 수 있어서 양날이 검이 되는 팔레스타인 작가에게 상이 돌아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왜냐하면, 아랍어 작가에게 상이 돌아간 것은 1988년 이집트의 나지브 마흐푸즈가 유일하며, 벌써 삼십팔 년 전의 일이다.(인도는 그 문학적 위상을 고려할 때, 더 심각하게도 1913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유일한 수상자다.)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와 그의 대표작 『릴리아나의 불굴의 여름(El invencible verano de Liliana)』


다시 중남미로 돌아와서 수상자를 예측해 보자면, 역시나 올해는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멕시코)가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필자도 해당 작가의 작품을 서너 편 검토했고 비록 계약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주요 작품의 한국어판 판권이 이미 어느 출판사의 손에 들어갔음을 알고 있다. 대표작 『릴리아나의 불굴의 여름(El invencible verano de Liliana)』은, 1990년 전 애인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한 여동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멕시코에 만연한 페미사이드(femicide)와 가부장제의 폭력을 신랄하게 고발한 회고록이다. 가르사는 이 작품으로 멕시코의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하비에르 비야우루티아상뿐 아니라 영어판으로는 퓰리처상(논픽션 부문)을 수상했으며,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밖에도 가르사는 『목화의 자서전(Autobiografía del algodón)』이라는 논픽션을 통해 조부모 세대가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이주와 노동의 역사를 재구성해 냈으며, 『아무도 내가 우는 걸 보지 못하리(Nadie me verá llorar)』 등 훌륭한 소설 작품도 다수 발표했다. 이렇듯 오늘날까지 사회 참여적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선뵈고 있는 가르사의 행보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고 있으며, 한동안 산문 작가(2015년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수상자 명단에 오르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더욱 주목할 만하다. 

 

또 오랫동안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어 온 칠레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 마찬가지로 칠레의 시인 라울 주리타와 우루과이의 시인 이다 비탈레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런데 유럽에 속한 나라(그중에서도 미국을 포함해 12개국)를 제외하면 여태껏 세 차례 이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나라가 없으니, 칠레 작가에서 세 번째 영광이 주어질지는 정말 미지수다. 한편, 20세기 현대 문학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친 보르헤스와 코르타사르,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 등을 배출한 아르헨티나에 단 한 번도 상이 수여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세사르 아이라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카리브해 지역에 상이 가야 할 차례라면, 저메이카 킨케이드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왼쪽부터 이사벨 아옌데, 세사르 아이라, 저메이카 민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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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해까지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헝가리)나 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루마니아) 중 한 사람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가리라는 확실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진심으로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전 세계 독서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수상의 공식’이 깨질지, 아니면 더욱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지가 판가름 나는 해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1년 사실상 ‘수상 경력’이 전무한 압둘라자크 구르나를 선택하거나 미국의 위대한 작가들(코맥 매카시, 돈 드릴로, 토머스 핀천, 필립 로스)을 전부 외면(무시)하고 밥 딜런에게 영광을 선사하기도 했다.(그레이엄 그린이나 존 밴빌처럼 장르 문학을 선보이거나 마거릿 애트우드처럼 SF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도 박한 평가를 주는 듯 보이기도 한다.) 또한, 냉전 시대의 과감한 선택에 비하면 굉장히 무사안일한 결정을 내리는 추세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최근 거물급 문학 에이전시에서 관리하는 작가들이 줄줄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놀라운 우연도 빚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모든 선택은 열려 있고 그저 즐겁게 수상자를 축하해 주면 될 일이다. 지상 최대의 문학 축제를 즐기는 데에 무슨 철두철미한 전략이 필요하겠는가.

 

그럼에도 오늘 한 도박 사이트(왜 도박 사이트가 노벨문학상 후보자를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됐는지는 미스터리이지만)에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걸고 판돈을 불러들이고 있다. 중국의 작가 찬쉐,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멕시코의 작가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가 순서대로 상위권을 다투고 있다. 도박 사이트에서 1위 자리에 오르면 수상을 못 한다는 불문율이 있는데, 이 또한 두고 볼 일이다. 아예 그 목록에 오르지도 않았던 한강 작가가 수상하던 순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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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송얀증

2026.10.01

노벨상 문어 상훈 편집자님의 픽이 누구일지 기대돼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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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gten

2026.09.30

편집자님 올해 라이브엔 드레스 입고 나오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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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훈 (편집자)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좋은 책을 찾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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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아이라

194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콜로넬프링글레스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부터 마르셀 프루스트를 비롯해 프랑스의 최신 문학을 탐독하며 작가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다. 1968년 시인 아르투로 카레라와 함께 문학잡지 ≪엘 시엘로≫를 창간하고, 1975년 소설 『모레이라』를 발표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한다. 그 뒤로 100여 편의 작품을 꾸준히 출간하며 아르헨티나, 더 나아가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자리매김한다. 한편 문학 연구자이자 번역가이기도 한 세사르 아이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에서 아르헨티나 작가 코피와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를 가르치고, 로사리오 대학교에서 구성주의와 스테판 말라르메에 대해 강의하며, 생텍쥐페리와 얀 포토츠키, 제인 오스틴과 레이먼드 챈들러, 프란츠 카프카 등의 작품을 번역한다. 1993년 소설 『나는 어떻게 수녀가 되었나』로 국내외적 성공을 거두며, 1994년 코넥스상과 1996년 구겐하임 펠로십을 받고, 로베르토 볼라뇨로부터 “스페인어로 글을 쓰는 최고의 작가”라는 격찬을 듣는다. 그 뒤로 매년 100쪽 남짓한 작품을 한두 권씩 발표하며,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독자적이고 실험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해 간다. 그리하여 아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환상, 고정 관념과 실체, 하위문화와 고전, 리얼리즘과 SF 장르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이른바 ‘앞으로의 도주(Fuga hacia adelante)'라고 불리는, 허구로부터 추진력을 얻어 종잡을 수 없는 세계를 끊임없이 창조해 나아가는 아방가르드 미학을 확립한다. 이러한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2014년 로제 카유아상, 2016년 아메리카 문학상, 2021년 포르멘토르상 등을 수상하고, 2014년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최종 후보, 2015년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다.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 플로레스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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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메이카 킨케이드

1949년 5월 25일, 서인도 제도 앤티가섬의 수도 세인트존스에서 도미니카 출신의 어머니 애니 리처드슨과 친아버지로 알려진 로더릭 포터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일레인 포터 리처드슨이고, 카리브 원주민 외할머니 곁에서 어린 시절 내내 큰 영향을 받는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좋아해서 여러 차례 읽을 만큼 열렬한 독서광이었지만 학교생활에는 그다지 적응하지 못한다. 1965년 집안의 생계를 돕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1966년 뉴욕으로 건너가 스카스데일에서 입주 보모로 일하기 시작한다. 곧 가족과 연락을 끊고 자발적 유배 상태에 들어가며, 이십 년 뒤 앤티가섬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절연한 채 지낸다. 뉴욕에서 생활하는 동안 야간 학교를 통해 학업을 이어 가며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한다. 이후 사진을 공부하고 비서, 모델, 클럽의 보조 가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수차례 잡지사의 문을 두드리지만 좀처럼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 마침내 십 대 소녀들을 위한 잡지 ≪앤저뉴≫에서 '내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라는 제목으로, 저명한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인터뷰하며 이름을 널리 알린다. 이 무렵부터 보다 자유롭게 글을 쓰기 위해 ‘저메이카 킨케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1976년 ≪뉴요커≫에 구 년 동안 '마을 이야기'라는 칼럼을 기고하고, 이후 1996년까지 이십 년간 ≪뉴요커≫의 전속 작가로서 활약하며 여러 단편들을 발표한다. 1979년 ≪뉴요커≫의 편집장 윌리엄 숀의 아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앨런 숀과 결혼하고 아들 해럴드와 딸 애니를 얻지만, 2002년 이혼한다. 이때 버몬트에 거주하며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 교수로 자리 잡고, 2004년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다. 오늘날 카리브 문학을 대표하는 저메이카 킨케이드는 제국주의와 탈식민주의, 인종과 계급, 젠더와 섹슈얼리티, 피식민자 경험과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집요하게 천착하며 고유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다. 1983년 단편 소설과 수필을 엮은 첫 책 『강바닥에서(At the Bottom of the River)』를 출간하고, 1985년 자전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첫 장편 소설 『애니 존(Annie John)』을 발표한다. 1988년 앤티가섬의 수탈과 타락의 역사를 신랄하게 고발한 에세이 『어느 작은 섬(A Small Place)』을 펴내며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1990년 『루시(Lucy)』, 1996년 펜포크너상 최종 후보이자 애니스필드울프상 수상작 『내 어머니의 자서전(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1997년 페미나상 외국어 소설 부문 수상작 『내 남동생(My Brother)』을 출간한다. 2002년 아버지를 잃은 소녀의 삶을 그려 낸 『포터 씨(Mr. Potter)』, 2013년 작가 자신의 결혼 생활을 짙게 반영한 『그때 지금을 보다(See Now Then)』를 발표한 뒤 다방면에서 작가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2021년 영국 왕립문학학회의 국제 작가로 선정되고, 2017년 인류 역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댄데이비드상, 2022년 파리 리뷰 하다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