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김신록, 절룩거리는 마음으로 나를 긍정하기 | 예스24
영혼에 바람이 통하고, 다시 시작할 힘을 회복하는 순간을 찾아서.
글: 염은영 사진: 표기식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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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랬는데 말이죠. 아, 만성피로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 자투리 시간마다 자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며칠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피곤이 풀리기는커녕 마음 한구석이 콱 막힌 기분이 듭니다. 그런 상태로 『절룩거리며 찾아나선 정화의 순간들』을 읽었습니다. 배우 김신록의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에세이집인 이 책은 “예술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믿음과 실제로 그러했던 경험을 담습니다. 정말 그럴까. “전력을 다한 누군가의 가장 깨끗하고 사심 없는 한순간을 목격”하는 일은 “정화하고 활력 있게 만드는 힘”(24쪽)을 가져다준다는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피곤한 몸뚱이를 이끌고 예술의 자리 앞으로 나아가 본 것입니다. 몸은 여전히 찌뿌듯하지만 영혼엔 혈색이 도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김신록 배우는 그 감각을 “관통”, 즉 “영혼에 구멍이 나면서 바람이 통하는” 것이라 표현합니다. “다시 0점이 맞춰지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요. 나아가 “예술과 함께 살면서 다른 방식으로 보는 법,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이 있다는 걸 몸으로 차근차근 알게 됐”다고도 하죠.

 

비단 예술의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자기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가장 마음이 맞닿아 있는 곳에서 정화의 순간을 발견하는 것 같”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 일상에도 그런 자리들이 숨어 있을 겁니다. 절룩거리는 발목으로도 영혼이 즐거워하는 일을 향해 나아가보는 것. 그 보석 같은 일을 찾는 즐거움을 조금씩 회복하는 것. 어쩌면 구원은 그런 순간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해 나가는 사람의 마음

 

『절룩거리며 찾아나선 정화의 순간들』은 배우님의 두 번째 책이지만, 배우님의 글로만 이뤄진 첫 책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느껴집니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마음이 어떠하신지요.

2023년에 출간한 『배우와 배우가』는 25명의 배우를 2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두 번씩 인터뷰한 인터뷰집이었어요. 그러니까 제 말보다는 상대의 말을 더 경청해서 실은 책인데, 이 책은 어쨌든 책 한 권을 다 제 생각들로 채우다 보니까 좀 쑥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렇게 책의 꼴을 갖추고 나왔다는 게 뿌듯하고, 또 시간과 돈을 들여서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신다는 게 정말 감사해요.

 

책을 읽는 내내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약간 산만한 것 같아요. 어제도 생활하다가 문득 ‘지금 누군가 나를 찍고 있다면 정말 정신없다고 생각하겠지’ 싶었어요. 저는 앉아서 밥만 먹는 것도 너무 지루해서 먹다가 뭐 하다가, 또 뭐 하다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더 여러 일을 하는 것처럼, 바쁜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과도한 각성 상태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상승하는 에너지를 오래 느꼈어요. 글을 쓰는 이 사람은 얼마나 단단한 자아를 가진 사람일까 생각했고요.

저도 제가 단단한 줄 알았는데,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걸 최근에 알고 깜짝 놀랐어요. 그동안 불안이라는 걸 심리적인 것, 일종의 감정이라고 잘못 이해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불안은 신체적인 상태가 아닐까 해요. 그런 신체적인 상태를 굉장히 잘 경험하는 사람이 저고요. 예를 들면 머릿속에서 상황이 두세 수 앞까지 막 전개되어 조바심이 난다거나, 그것 때문에 어떤 선택을 굉장히 서두른다거나, 결과를 봐야지만 직성이 풀린다거나. 그런 것들이 다 불안에서 기인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유예된 시간을 견디기보다는 그냥 해버리는 거죠.

 

저질러버리는 거네요.

저질러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긍정적인 어떤 진취성 때문이라기보다, 물론 그것도 있었겠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 충동적으로 해버리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성향에서 비롯된 것도 있었던 거예요. 불안 자체가 나를 몰고 간 게 있었구나. 그걸 최근에 깨달은 거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굉장한 긍정감으로 보인다는 게 재미있어요. 발신한 대로 수신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 의도로 발신하셨어요?

저는 완벽이나 완성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해 나가는 것 같아요. 계속해 나가다 보면 어떤 꼴을 갖출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거죠. 「인터미션: 구슬들이 스르륵 꿰어지며」(136쪽)에 쓴 것처럼, 마음에 드는 구슬들을 주워 모아 닦아 주머니에 넣고 굴리며 이런저런 구상을 하다 보면, 더 거대한 어떤 힘에 의해 구슬들이 꿰어지는 때가 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내 눈에 좋은 귀한 것을 열심히 찾아가 만나는 일인 것 같아요.

 

서른에 첫 연출작 〈connecting〉을 발표하고 나서 부끄러워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중요한 것은 그저 계속해 나가는 것”(219쪽)이라고 하신 것이 기억나네요.

처음에는 정말 고양됐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부끄러워졌죠. 실제보다 너무 크고 거창했구나 깨달았거든요. 그러다가 시간이 더 지나고, 특히 에필로그에 쓴 에피소드처럼 나이 든 교수가 자신의 젊은 시절 작업을 공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래, 내 젊은 날의 노력이나 치기 어린 시간들도 계속하는 삶 속에서는 가치 있어지는구나.’ 그걸 한 번 겪었기 때문에 이 책을 쓸 때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connecting〉 때와 가장 다른 점이라면, 지금 조금 부족하고 부끄러워도 책을 쓰고 내는 과정과 결과가 나에게 좋은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거죠. 그래서 예전처럼 부끄러움이나 절망감에 깊이 빠져들지는 않아요. ‘훗날 돌아보면’이라는 감각이 지금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아요.

 

그건 굉장히 큰 힘인 것 같아요.

〈connecting〉과 관련해서 책에 쓴 그 에피소드가 저한테 준 게 정말 컸어요.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때마다 ‘나중에 보면 괜찮을 수 있어, 지금 내가 전력을 다한다면’ 하고 믿어요. 지금의 전력이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완벽이나 완성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는 것. 그게 전제가 된다면 지금 뭐든 할 수 있는 거죠.

 

 


중요한 것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순간

 

책에는 어떤 작품 앞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순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배우님은 그 감정을 그대로 두기보다 이유를 발견해 글로 기술하는데요. 작품에 관통당하고, 뒤늦게 감정의 정체를 발견하는 순간이 배우님이 말하는 ‘정화의 순간’과 가까운 것인가요?

제가 30대 초반에 유럽의 어느 미술관에서 세잔의 인물화를 본 적이 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에 ‘세잔=정물화’ 식의 공식으로만 외웠던, 저에겐 재미없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편견이 있던 세잔이요. 그런데 미술관에서 무심결에 그 인물화를 봤는데 눈물이 펑 솟는 거예요. 그림 속 인물은 코와 얼굴의 균형이 맞지 않고, 어깨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어요. 실루엣도 선명하지 않았고요. 그걸 보는데 굉장히 깊은 곳에서부터 이런 고통이 삶의 숙명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요즘 내가 힘들어서 그랬나’ 하고 치부하기에는 조금 다른 경험이었어요. 의식의 영역으로 건져 올리지는 못했지만, 아주 깊은 곳에서 내가 감각하고 있던 세계의 진실을 저 사람도 알고 있다는 느낌. ‘저 그림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품고 있구나.’ 일종의 관통의 감각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관통당했을 때 어떤 진동에 의해서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관통!

연기 훈련 과제 중에 ‘사운드 하모나이제이션’이라는 게 있어요.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손바닥을 서로 맞대고, 얼굴도 가까이 마주한 채 서로를 향해 ‘아-’하고 소리를 보내요. 그런데 이게 음역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소리 기둥’이 딱 만나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럴 때는 1+1의 소리가 아니라 소리가 굉장히 증폭되고, 몸 안에서 와글와글 진동하는 것까지 느껴져요. 그때 처음 소리가 나를 관통하는 느낌을 경험했어요. 어쩌면 관통의 감각이라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예술 작품과 내가 순간 서로를 꿰뚫어버리는 거죠. 그러고 나면 구멍이 뚫리잖아요. 그 구멍을 통해서 바람도 들고 나고, 숨도 들고 나고요. 약간 혈이 뚫리는 것처럼요.

 

영혼의 혈이 뚫리는 거네요.

그렇죠. 마치 공간에도 바람이 통해야 다시 활력이 생기잖아요. 그것처럼 내 영혼에도 구멍이 나면서 바람이 통하는 거예요. 다른 표현으로는 0점이 맞춰진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0점이 맞지 않다가 딱 관통되는 순간 다시 0점이 맞춰지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흙탕물이 가라앉고, 시야를 가리던 안개가 걷히면서 다시 명료하게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배우님을 괴롭히는 것으로 ‘사사로움’을 말씀하셨어요.

뉴욕에 있는 시티 컴퍼니(SITI Company)라는 극단에서 운영하는 두 학기짜리 실기 학교를 다닌 적이 있어요. 그때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와 작품 하나를 일종의 실험 공연으로 만들어서 졸업 작품처럼 발표했는데, 테네시 윌리엄스의 〈벌사에게 안부를(Hello from Bertha)〉이라는 2인극이었어요. 처음에는 어떤 역할을 맡을지 탐색하면서 역할을 번갈아 연기했어요. 제가 벌사를 맡았을 때였는데, 상대역을 맡은 친구가 저를 끌어내야 하는 장면에서 제 머리채를 탁 잡았어요. 그 친구가 굉장히 훈련이 잘되어 있는 배우였거든요. 머리채를 잡히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못 나가, 못 나가” 하게 되는 거예요. 그전까지는 ‘못 나가’라는 걸 이런저런 상태로 표현하고 있었다면, 머리채를 탁 잡히는 순간 정말 해야 할 일을 하게 된 거죠. 나머지는 전부 부수적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사사로움은 정말 해야 할 일, 정말 중요한 것을 가리는 모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인정 욕구일 수도 있고, 더 잘되고 싶은 마음이나 경쟁심, 이해타산일 수도 있죠. 그런데 꼭 이렇게 부정적인 것만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현장의 분위기를 잘 읽는다거나, 시스템을 잘 이해한다거나, 지금 일어나는 일의 마케팅 포인트를 잘 파악하는 것처럼 주변을 인식하는 좋은 눈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일을 단단하게 붙들고 있지 않으면 그런 좋은 눈조차 사사로움으로 흐르기 쉬운 것 같아요. 주변부에 대한 노하우만 능숙해지는 거죠. 그것도 일종의 사사로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사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배우님에게는 예술이 말 그대로 ‘머리채를 잡는’ 역할을 해준 셈인데, 예술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그런 정화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자기 일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 같아요. 저는 예술 안팎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술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한 거고요. 그래서 아주 드물게 예술을 통해 머리채 잡히는 순간도 발견하는 거죠. 저도 머리채를 잡혔던 게 30대 초반이니까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흔히 있는 일은 아니죠. 예술 안팎에 머물면서 그런 순간을 아주 드물게 만나요. 물론 그보다 작은 순간들, 저에게 위안과 격려를 주는 순간들은 더 자주 있고요. 예술을 통해 경험한 그런 크고 작은 순간들을 이 책에 적어본 거예요. 저는 예술이라는 통로밖에 모르기 때문에 이걸 권해 보는 거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꼭 예술이 아니더라도 돌이켜보면 자기 일을 통해서 그런 순간들을 만났을 것 같아요. 특히 육아하시는 분들은 아이를 통해서 그런 순간을 많이 경험하잖아요.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요. 결국 자기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가장 마음이 맞닿아 있는 곳에서 정화의 순간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

 

「레디, 액션, 컷, 오케이」에서 당시 동료들을 “여기 모인 모두가 스스로 그리고 서로 간에 레디, 액션, 컷, 오케이를 주고받은 사람들”로 부르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동료를 그렇게 바라보게 된 경험은 언제였고, 배우님께 어떤 힘을 주었나요?

아무래도 처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는 긴장도 많이 했고, 일과 일터와 사적인 자아를 굉장히 분리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ENA 드라마 〈당신의 맛〉을 계기로 현장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어요. 강하늘, 고민시, 유수빈 배우와 저, 이렇게 네 명이 ‘정제’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멤버였어요. 박단희 감독님의 입봉작이었고, 젊은 감독님의 현장이어서 그랬는지 위계가 없었어요. 세 명의 배우들도 훌륭한 배우이자 동시에 현장의 좋은 동료였어요. 여러 환경과 사람의 조합이 저를 열리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열린 눈으로 현장을 볼 수 있게 되고,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니까 그들이 하는 일이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나와 역동적으로 엮이는 경험을 하면서 ‘각자 한 명 한 명이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늘 있던 일이에요. 예를 들어 “레디” 하면 “잠깐만요. 조명 1분만요”, “헤어 10초만요” 하는 순간들이요. 예전에는 그냥 기다렸다면, 이제는 ‘저 사람은 지금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모두가 자기를 걸고 서로에게 ‘레디, 액션, 컷, 오케이’를 외치고 있구나. 모두가 자기 선택을 변명 없이 드러내고 있는 거잖아요. 그 순간이 참 좋았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는 일터에 저도 일하러 온 거고요.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일을 하는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에게 글쓰기는 반드시 요구되는 능력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끝내 쓰고 싶어 하고, 놓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계속 신체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을 하고 계신데, 오직 글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 있다고 느끼시나요?

글을 쓴다거나 말을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언어를 통해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언어가 생각을 앞질러 가기도 해요. 알고 있는 걸 쓰기 위해 시작했는데, 갑자기 글쓰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게 생겨버리기도 하니까요. 연기로 이야기하자면 어떤 인물을 연기하다가 나중에는 “인물이 나를 끌고 갔다”고 표현하는 배우들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알고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모르는 길로 이끌어주는 것이 글쓰기에서는 언어인 것 같아요. 글쓰기를 통해서만 알게 되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어요.

 

또 한편으로 글쓰기는 내가 삶에 깨어 있는지, 내 일에 깨어 있는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좋은 바로미터가 되어 주기도 해요. 글쓰기가 안 될 때는 그래서 경각심을 갖게 돼요. 일을 좀 줄여본다거나,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간단한 의뢰가 들어왔을 때 써보려고 노력한다거나. 글쓰기의 근육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글쓰기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일이라기보다 배우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겠네요.

그런데 써놓고 안 내놓은 적은 없어요.(웃음) 독자를 상정했을 때 잘 써집니다.

 

독자와 함께 쓰는 거네요.

제 글을 보면 늘 독자를 호명해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계시죠? 거기 계시죠?” 이렇게요. 그래서 청탁이 좋은 기회이기도 해요. 물론 정말 쓸 수 없는 상태일 때는 고사하는 경우도 많고요.

 

배우님은 연기뿐 아니라 공부하고, 인터뷰하고, 쓰고, 기획하는 일까지 계속해 오셨어요.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반대로 ‘이것은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기준도 있나요?

이것이 참 정반대라서 당황스럽지만, 기준이 없습니다.(웃음) 이것을 하기 위해 저것을 버린다는 기준 같은 건 없어요. 다만 열심히 어떤 일들을 해오면서 누락된 삶이 있는 거죠. 억지로 배제했다기보다 누락된 순간들이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올여름 휴가도 누락됐습니다.(웃음) 휴가를 갈 수 있는 3~4일이 없었냐 하면 있었어요. 그런데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었던 거죠. 어떤 순간에는 내 삶의 포커스에 따라서 그냥 자동 탈락되어버리는 것들이 있어요.

 

저는 늘 모든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되는 길을 택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건 하나의 삶의 방식인 거잖아요. 젊을 때는 다른 방식이 있다는 걸 몰랐던 것 같아요. 열심히 살고, 제도 교육을 받고, 그러면서 제가 체득한 삶의 방식이 그것이었던 거죠. 그런데 예술과 함께 살면서 다른 방식으로 보는 법,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이 있다는 걸 몸으로 차근차근 알게 됐어요. 다른 삶의 방식을 더 배우고 싶어요. 삶의 방식과 태도도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지금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것들은 무엇인가요?

그동안 탈락해온 것이 무엇인지를 좀 되짚어보고 싶어요. 최근에는 ‘골몰해보겠다’고 미리 결정해 버렸어요.(웃음) 연기에서도 저는 늘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걸 좋아했어요.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니까 ‘지금 이 시대의 사람, 지금 이 시대의 세계, 지금 이 시대에 관계 맺는 방식을 구현하기에 좋은 연기 방법론은 뭘까?’ 계속 생각했어요. 연기라는 게 인간과 세계가 관계 맺는 방식을 드러내는 거라면, ‘지금의 방식은 뭐지?’ 하면서 새로운 연기 방법론을 계속 모색해 온 삶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마치 어제까지 했던 것이 오늘은 낡은 것이 된 것처럼, 발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듯 계속 털어내면서 새로운 것들을 배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때 진흙을 털면서 구두까지 벗겨진 게 아닌가. 지금 나는 맨발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최근에는 20대 때부터 써온 연기 관련 메모들, 읽었던 책들, 강의 자료 같은 걸 전부 꺼내놨어요.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려고요.




누가 누굴 싫어해요

 

20대 때부터 쌓아온 연기 공부를 다시 들여다보신다고 하니, 30대 김신록의 정체성이었던 ‘워크숍 리더’를 짚고 싶어요. 다시 배우고 공부하는 시간이 앞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로도 이어질까요?

예전에는 ‘하고, 배우고, 가르치고’라는 세 개의 바퀴를 잘 굴려보는 것이 모토였다면 지금은 다시 ‘배우고’인 것 같아요. 그리고 ‘가르치고’ 대신 ‘공유하고’라고 할까요? 제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함께 모인 사람들도 자기 것을 공유하는 거죠. 더 이상 도제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어떤 마스터의 방법론을 사사받는 방식만으로는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인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 마스터의 것이라고 배우고 있는 것들도 대부분 20세기 초중반의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세계와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저도 다시 원천으로 돌아가 그것들을 되짚어보는 작업을 하겠지만요.

 

지금 자기만의 방법론을 모두가 발견하거나 개발할 수 있는 거죠. ‘너의 방법론은 뭐야? 나의 방법론은 뭘까?’ 아직 일가를 이루지 못했어도 자기만의 방법론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서로의 방법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배우고 가르치는 거죠. 그런 워크숍을 안 한 지 3~4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제가 원천으로 돌아가는 작업을 다시 하는 과정에서, 혹은 그 작업을 하고 나면 또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죠. 그게 워크숍의 방식일지, 글쓰기일지는 모르겠지만요.

 

배우님의 이력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생겼을 때 그쪽으로 직접 움직여온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배우님은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또 그것을 믿고 움직여올 수 있었나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에요.(웃음) 인터뷰할 때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뭔가요?”, “좋아하는 게 뭔가요?” 이런 거예요.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늘 하는 대답은 그냥 “연기 좋아합니다. 남편 좋아합니다.” 이 두 개예요.

 

그럼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여러 가지 이유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거기에는 당연히 하고 싶은 마음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 시절의 유행도 있고, 내 수중에 가진 돈도 있고, 스승님이 권해주신 것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다 포함돼서 그냥 어떤 일들이 일어난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말했던 불안이나 충동성 같은 개인의 기질도 있고요. 뉴욕의 시티 컴퍼니 워크숍에 참여하러 간 것도 마찬가지예요. 참여해보니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커졌는데, 그 극단에서 다음 해 처음으로 실기 학교를 연다고 하는 거예요. 그 순간 ‘이건 해야 해’ 하는 마음이 들어 나머지는 다 불도저처럼 밀어버렸어요. 그런데 이걸 정말 추진력이라고 봐야 할지, 불안이라고 봐야 할지, 충동이라고 봐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떤 단정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추구한다’거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진행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런 면도 물론 있겠지만, 수많은 행위자들의 조합으로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물론 그 코어에는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겠죠.

 

최근에 내리게 된 결론인 거죠? 그전까지는 추진력이라고 생각하셨고요.

맞아요. ‘내가 그 과정에서 잃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지만, 그래도 나는 추진력이 있지.’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추진력이라는 건 굉장히 자발적인 감각이잖아요. 적어도 저한테 일어난 일들을 정말 정직하게 되짚어보면 많은 부분이 충동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게 맞나?’ 싶다가도 ‘시작한 김에 밀고 나가!’ 하고.(웃음) 굉장히 빠르게 진행하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추진력으로 보이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배우님을 굉장히 진취적이고, 모든 일을 계획대로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그렇게 봐줄 때 좋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기 계획대로, 자기가 정한 대로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좌절하기도 하고요. ‘오늘도 안 된다. 나는 이래서 안 된다.’ 생각할 때도 많죠.

 

그럼에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자기 자신을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누가 누굴 싫어해요.(웃음)

 

나를 미워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도 하세요?

이것도 제가 좀 점검해 봐야 할 문제인데, 저는 자기 연민을 싫어해요. 자기 연민하는 노래도 싫어하고요. ‘내 아픔……’ 이런 걸 싫어해요.(웃음) 그런데 뭐든 싫어하는 것의 이면에는 내가 그런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지금 제가 알고 있는 저는 자기 연민을 좀 경계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저를 좋아해요.

 

그게 다른 지점인 것 같아요. 보통은 끝에 가서 ‘이런 내가 싫어’가 되잖아요.

시티 컴퍼니 실기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몸을 통해 찾아가는 훈련을 많이 했어요. 덕분에 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경험이 많았어요. 그때 네덜란드에서 온 광대 전문가가 특강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빨간 코를 한 광대가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몬스터’를 깨우는 메소드를 가진 분이었어요. 한 친구가 앞에 나가자 그분이 질문을 했어요. “네 안에 있는 몬스터를 들여다봐. 그 몬스터의 이름이 뭐야? 어떻게 생겼어?” 그 친구가 자기 안의 몬스터를 설명하는데 정말 거대하고, 대머리에, 큰 성기를 가진 거대한 존재였어요. 그걸 들으면서 저는 ‘저 친구는 몬스터마저 어쩜 저렇게 창의적이고 그럴듯할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 차례가 됐어요. 딱 들여다봤는데 정말 충치처럼 생긴 깡마르고 새까맣고 조그마한 애가 책상 다리에 딱 붙어 숨어 있는 거예요. 이름이 뭐냐고 했더니 ‘까짜’라는 거예요. ‘나는 왜 몬스터마저 이 모양인가!?’ 생각했죠. 그때의 저는 저를 뭐든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 안의 몬스터조차 왜 저렇게 볼품없을까 생각했고요. 그런데 나중에는 그 ‘까짜’가 너무 귀엽고, 좀 안쓰럽기도 해졌어요. 그렇게 전환되어가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까짜’를 바라보는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 것이군요.

그러다 결국 그 ‘까짜’를 귀여워하게 되는 데까지 왔어요.(웃음) 저는 예술 안팎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예술과 부딪히며 살아온 삶이 결국 저를 ‘까짜’를 귀여워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아요. 그래서 제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게 온전하고 충만한 감각은 아닐지라도, 정말 절룩거리는 마음으로, 나를 긍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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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은영

읽고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만든 책으로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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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식

사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