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제정 100주년 - 세상을 밝힌 우리의 한글
올해는 한글날을 제정한 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1926년에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해 '가갸날'이 처음 제정되었고, 1928년에 ‘한글날’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광복 이후 10월 9일이 ‘한글날’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아, 한글을 가장 가까이에서 다루는 국어사전 편집자와 함께 우리말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성재 보리출판사 편집자

사전 편집 업무만의 특성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저는 보리에서 『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을 편집한 김성재라고 합니다. 사전을 만든 지 십 년 남짓 되다 보니, 힘들었던 일이 먼저 떠올라요.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쪽마다 아랫선을 맞추려고 용례를 빼거나 새로 보태야 했던 일이에요. 저는 사전을 볼 때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참 불편했거든요. 그래서 글씨를 크게 하고, 올림말 사이에도 여백을 두었는데, 읽기는 편해진 대신 편집할 때는 무척 고생했지요. 사전은 여느 책과 달리 낱말 뜻풀이와 용례 들을 하나하나 따져 봐야 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어요. 삼 년 동안 그렇게 사전을 만들고 나니, 한동안은 여느 책을 편집할 때도 사전처럼 낱말과 문장을 따져 보게 되더라고요.
『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은 여느 사전하고 다른 점이 많아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한 행사에 가제본을 가져가 사람들 반응을 살펴보았어요. 저마다 사전을 보는 방식이 달랐는데, 한 분은 사전을 넘기다가 ‘뜨다’라는 말이 열두 가지나 된다며 이 말을 우리가 참 많이 쓰나 보다 하셨어요. 사전을 편집한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었지요. 초판이 나온 뒤에는 독자들이 오탈자를 알려주거나, 평소 알던 국어 문법과 다른 점을 물어 오기도 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고 오탈자뿐 아니라 마침표가 두 번 찍힌 곳까지 찾아 보내주신 분도 계셨어요. 사전도 독자들이 함께 완성한다는 것을 그때 새삼 깨달았어요.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편집자님에게 한글이 주는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한글이 지닌 큰 가치는, 평범한 백성들,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자기 삶과 마음을 글로 남길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한문을 배우거나 한문으로 글을 쓰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어요. 특히 여성들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글로 나타내기 어려웠지요. 한글이 널리 쓰이면서 여성들은 한글로 편지를 쓰며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자기 삶을 기록할 수 있게 된 거지요. 그 글에는 공식 기록에서 만나기 어려운 생활과 감정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입말로 쓰던 생생하고 아름다운 우리말도 담겨 있어요.
더 많은 사람이 자기 목소리로 자기 삶을 기록할 수 있게 한 문자, 그것이 한글이 지닌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김성재 편집자의 작업 풍경
업무를 하실 때 자주 사용하시는 물건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사전을 편집할 때뿐 아니라 평소 교정, 교열을 할 때도 『바른 말글 사전』과 『연세 한국어사전』을 곁에 두고 찾아봐요. 『바른 말글 사전』은 한자말이나 번역투, 특히 일본식 한자말을 우리 말법에 맞게 다듬을 때 유용해요. 『연세 한국어사전』은 낱말뿐 아니라 조사와 어미 쓰임도 자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해 놓았어요. ‘그런데’와 ‘하지만’, 조사 ‘-에’와 ‘-에서’, 종결어미 ‘-아’와 ‘-지’처럼 쓰임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을 살필 때 큰 도움이 됩니다. 되도록 우리 말법에 맞게 문장을 쓰고, 우리말이 지닌 뜻과 말맛을 잘 살려 다듬으려고 늘 곁에 두는 사전들이지요.
평소 곁에 두고 참고하는 사전들
수많은 단어 중 독자들에게 알려주고픈 우리말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우리말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살림’이에요. 살림을 해야 하는 처지다 보니 처음에는 ‘살림’이라는 말이 좀 싫었어요. ‘살림’ 하면 여성들에게 숙명처럼 주어진 집안일이 떠오르니까요. 그런데 살아가면서 그 말이 차츰 좋아졌어요. 이제 제게 살림은 단지 집안일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일’로 다가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살려고 애쓰지요. 그런데 사람은 때로 자기 삶을 놓기도 하고, 살려고 애쓰는 생명을 무심히 내버려두어 죽게도 합니다. 그런 일이 우리 둘레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걸 보면서 ‘살림’이라는 말이 새삼 귀하게 느껴졌어요. 나를 살리고, 다른 생명을 살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을 살피고 살리는 일. 그런 마음과 보살핌을 두루 담을 수 있는 말이 ‘살림’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도 한글의 소중함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글의 소중함을 이어가려면 그 글자에 담긴 우리말도 아울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할머니가 쓰시던 생생한 입말이며 지역에서 쓰던 말도 쓰는 사람이 줄면서 차츰 사라지고 있고요. 말은 사람들 삶 속에서 쓰고 나눌 때 살아나는 거지요.
그래서 사라져 가는 말을 찾아 기록하는 한편, 오늘날 새로 생겨나는 말에도 귀 기울여야 해요. 소통 방식이 달라지더라도 세대와 세대가 서로 말을 나누고, 다양한 우리말을 읽고 썼으면 해요. 한글의 소중함을 이어가는 일은 결국 우리 삶이 담긴 말을 풍성하게 살려 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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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
출판사 |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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