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후의 모서리를 접은 시
[큐레이션] 한 번 꼭 쥐었다 놓은 손수건처럼 ㅡ 마지막화
열네 번의 원고를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는 것은, “지면에서 또 뵙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간단하지만 시를 내내 지켜보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해보는 것이기도 하겠다.
글: 서윤후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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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료 시인들을 만나면 빠짐없이 나누는 대화가 있다. “요즘 시집이 너무 많이 나와서 따라 읽을 수가 없어요.” “따라 읽기 참 힘들죠.” 그러나 이윽고 신간이라면 일단 사두기는 한다면서 웃고 떠들다 헤어진다. 예전엔 엄살이라고 느꼈으나, 속도에 치이며 뒤따라가는 양상으로 독서를 하는 일에 부채감을 안고 있던 터라 공감이 갔다. 곧이어 시를 따라 읽지 못해 들어차는 이상한 책임을 떠올렸다. 막 등단했을 때, 동료 시인들이나 평론가와 메일을 주고받으면 말미에 언제나 이런 말이 안부처럼 적혀 있었다. “지면에서 또 뵙겠습니다.” 밥이나 한 번 먹자는 말처럼 빈번하게 쓰이는 아득한 인사라서 썩 다가오는 인사는 아니었으나, 이제는 지면에서라도 만날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귀신처럼 실실거리며 웃곤 한다. 따라 읽는다고 생각하면 어떤 트랙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다 한참을 뒤처져서는, 시집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같은 트랙을 돌고 있다는 것. 이 레이스를 멈출 수 있는 총성도 오직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긴박함이 책장마다 숨 쉬고 있다.

 

도서관에서 시 창작 수업을 하고 있다. PPT로 크게 띄운 시를 함께 읽고 감상을 나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1941년생부터 1993년생까지. 우리는 시를 모국어처럼 말하고 쓴다. 시 앞에서는 모두가 망설임이다. 여기에 무슨 희망이라도 있는 것처럼 함께 수풀을 건너고 서로의 시를 따라 읽는다. 함께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질문이 끊이질 않아 늦게 끝나는 날도 있다. 시 때문에 우리가 처음 만나 따라 읽는 사이가 되어 헤어진다는 것이 조금 감동적일 때도 있다. 내 트랙에는 말없이 걷고, 뛰는 이들로 북적인다. 시의 바통은 모두, 그들의 손에 쥐여져 있다.

 

지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시집들은 여전히 나의 트랙을 함께 돌고 있는 아름다운 보폭이다. 손에 잡히지 않아서 좋은 술래들이다. 안다고 단언할 수 없고, 그저 ‘알 것만 같다’는 아스라한 감각이 시의 선물이다. 그것을 감히 희망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시가 한 번 꼭 쥐었다 놓은 손수건처럼 구겨졌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얼굴일 것이다.

 


『하얀 마음을 가지게 해주세요』

조해주 저 | 문학동네

 

새의 목표는

깨뜨려서 깨우기

그건 그 새만의 방식이어서

 

그는 뒤척였지

바깥에서 보면 악몽에 찡그리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핏줄처럼 금이 자라고 있었지

 

꿈을 깨고 나오는 이마의 분명함으로

 

있는 힘껏 밀었지

넘어질 것이 넘어질 때까지

엎질러질 것이 엎질러질 때까지

 

손을 뻗어 붙잡듯이 새를 날려보내는 꿈

 

흠뻑 젖은 새는 온몸을 털어내었네

 

그간의 일을 다 잊은 듯이 날아가고

 

(조해주, 「유리된 느낌」의 부분, 『하얀 마음을 가지게 해주세요』 16-17쪽)

 

새와 깨트림이 서로 자연스럽게 호응하는 것은 새에게는 비행이 있고 착지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유리되다’는 따로 떨어지게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이 시에서는 깨트림을 간직한 유리의 성질까지 함께 포개어 보고 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것이 시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새의 자리에 시를 갖다 댄다. 그렇다면 “시의 목표는 깨트려서 깨우기”. 시에서 등장하는 이마에 대한 진술들을 편애하는 편이다. 그것은 단단한 것에 가장 먼저 갖다 대는 인간의 명징한 벽이기도 하기에. 새가 온몸을 털고 날아가면서 끝나기에 이 시는 잠들어 있는 것을 찾아간 것처럼 느껴진다. 날려보내고, 털어내고, 날아가고, 밀고, 넘어지고, 엎질러질 때까지 계속되는 새의 운동성에 있는 힘껏 깨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조해주 시인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중력 없는 문장들이 우리의 균열로 고이게 되는 지점을 좋아한다. 이번 시집은 다양한 이야기를 입고 더 멀리, 더 깊이 내려앉는다. 어긋남이나 균열이 어떻게 다시 접합될 수도 있는지 보여주는 이번 세 번째 시집에 하얀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 마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유리창을 향해/ 던지려고”(「예의에 대하여」) 투명한 유리를 조준하는, 공만 한 주먹을 쥔 한 사람을 생각한다.

 


『무서운 이야기』

김행숙 저 | 문학과지성사


 

그러나

빈 의자들 가운데서

단 한 개의 의자에 앉아 있으면

혼자 살아남았다는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된다

팔걸이를 꼭 붙들게 된다

 

그리고

과거에서 온 사람들은

온종일 과거를 생각했다

왔던 길로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뻘뻘 땀을 흘리며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할 것이다

 

(김행숙, 「2020년」 부분, 『무서운 이야기』 14-15쪽)

 

시에 ‘의자’가 나와서 말인데, 시집 『에코의 초상』에 수록되어 있는 「천사에게」라는 시가 불현듯 떠올랐다. 천국에도 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화자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시. 의자가 여기에도 있고 거기에도 있는 일이 좋은 뜻일까 나쁜 뜻일까, 이 시가 인간을 사랑하느냐고 묻고 대답을 기다리던 「천사에게」라는 시와 연결되어 읽혔기 때문이다. 수많은 의자들이 비어 있고, 그중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있을 때의 살아남았다는 기분이 안도가 아니라 “무서운 기분”이라는 것, 이번 시집에서 불러오는 공포라는 주제가 많은 이야기를 빗나가게 하고 새로운 궤적을 태어나게 한다. ‘2020년’이라는 매우 가까운 과거라 할지라도 “왔던 길로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라는 방법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나간 시간이 ‘시간’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나온 것임에도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혼자 살아남은 기분을 안고 홀로 의자에 앉아 있는 자가 감당하게 될 몫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에 찾아드는 공포. 그러나 시인의 다른 시편들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2049년이나 12월 32일, 내일과 같이 앞서 있는 시간들에는 기다리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만든 그 기다림이 계속될 것이라는 공포.


 

『거기 호랑이가 있다고』

엄원태 저 | 문학동네

 

창문은 오늘도 말이 없었다

 

바라보노라면 창문은

반투명 유리로 이뤄졌지만

한참 동안

그 너머를 가만히 내다보는 시선이 있음을 아는 눈치다

 

남은 여름이

한낮 열기를 조금씩 식혀갈 무렵

강을 건너가려는 마음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중략)

 

때론 기다림마저 잊어버려야 그건 오는 것이다

 

노을이 물들어서야

결국 오고야 만다는 것을

 

창문은 말없이.

다만 열중해서,

 

증명하고 있다

 

(엄원태, 「창문에게 희망을」 부분, 『거기 호랑이가 있다고』 14-15쪽)

 

엄원태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많은 것을 응시하고, 그 ‘응시’가 닿지 않는 존재들이 살아내고 있는 시간을 증명하는 듯한 시들이 눈에 띈다. 발언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존재들을 유의미하게 호명하고 시적인 사유로 함께 데려가려는 발견이야말로 시적인 것이라고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 깨트려서 깨우는 방법으로서의 새가 날아다니는 창문 하나를 본다. 화자는 말이 없는 창문 한 장에게 어떤 희망을 내걸고 있는데 그것은 “때론 기다림마저 잊어버려야” 온다는 사실이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일과 말 없는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어떤 화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창문에 비친 자신에게 내거는 희망처럼 느껴질 때면, 이때의 희망은 절망을 딛고 올라섰거나 깨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재질이다. 세상에 태어난 많은 시들이, 이와 같이 저마다의 창문을 통과하고 기다렸던 일의 증명이라고 생각하면, 창문 한 장의 시집이 보여주는 풍경에게 기다림을 내걸고 읽는 이는 다시 시집 바깥의 세상으로 돌아가 그 기다림을 잊는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기다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열네 번의 원고를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는 것은, “지면에서 또 뵙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간단하지만 시를 내내 지켜보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해보는 것이기도 하겠다. 우리가 읽는 사람이어서 읽는 이의 읽은 시 앞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마감이 아니라 좋은 약속이었다고 여겨지겠다. 잘 읽고 있다는 인사를 자주 받았던 시간에, 나는 어떤 시집을 꺼내 와 읽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내 트랙의 반짝이는 흰 운동화들처럼, 함께 따라 읽는다는 마음이 왠지 안심이 된다. 거기에 무엇이 있을 줄 알고? 이 헤맴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한 번 꼭 쥐었다 놓은 손수건의 얼굴을 하고, 따라 읽는 중.




지금까지 <서윤후의 모서리를 접은 시> 연재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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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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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dong23

2026.09.28

벌써 마지막이라니....ㅠㅠ 추천해주시는 시집을 따라 읽던 독자로서 무척 공감하고 애틋해지는 글이었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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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

<김행숙>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거기 호랑이가 있다고

<엄원태>

출판사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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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후

2009년 『현대시』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휴가저택』 『소소소』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나쁘게 눈부시기』와 산문집 『햇빛세입자』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쓰기 일기』 『고양이와 시』가 있다. 시에게 마음을 들키는 일을 좋아하며 책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