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인의 만화 탐독
[김해인 칼럼] 어른이 되어도 좋잖아 좋잖아
김해인 편집자가 30대가 된 뒤 비로소 정통으로 이해하게 된 만화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가령 마스다 미리의 『사토 씨의 친구』처럼.
글: 김해인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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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세요?”


언젠가 점심을 먹으며 이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원래 같으면 (날카로운 척) ‘어른’이 무엇인지 정의부터 해달라고 지적했겠지만 잠시나마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어른? 글쎄다, 썩 하고 싶지 않은 일도 군소리 없이 할 때? 어린 사람의 미숙함을 보고 화나기보다는 이해가 될 때? 좀팽이 같았던 나의 넉넉해진 아량을 새삼스레 느낄 때? 애초에 이런 질문을 듣고도 정의부터 해달라니 뭐니 별다른 반문을 하지 않게 된 게 가장 어른이 된 것 같다… 하여간 어떠한 여유와 마음씨를 바탕으로 하는 나의 ‘어른됨’을 으쓱대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분을 만나 식사를 했는데, 그분은 나보다 덜 살았지만 (아마도) 돈은 한참 많이 버는 분이었다. 가는 데 순서가 없듯 버는 데도 그다지 순서는 중요치 않은 것이다. 아이고, 현대자본주의사회야…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도 그날의 밥값은 내가 계산했다. (-₩59,000… ~서명을 해주세요~) 멋쩍어하는 그분께 “다음에 또 만나요, 그때 밥 사주세요”라고 말했지만 다음에 만나도 내가 살 생각이었다. 그러고 난 후 이번엔 조금 오래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밥을 산다는 건 벌이나 지위 같은 걸 떠나 그냥 어른이 해야 하는 일 같다. 좀 더 어른인 사람이 아끼는 아랫사람에게 그나마 가장 손쉽고 깔끔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양분을 줄 수 있는 게 밥 사기 같달까? 나도 많은 분들이 턱턱 사주신 밥을 염치 불고하고 얻어먹으며(‘어어어… 제 건 제가 낼게요… ~서명을 해주세요~ 커피는 제가 사도 될까요…?’) 이 나이가 됐으니 말이다. 

 

나잇값! 그래, 어른이 되면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거다.

 

만화도 이런 ‘나잇값’을 한다. 『하이큐!!』를 잇는 차세대 배구만화 『디그 잇』을 읽었다. 일본에서 굉장히 하입되는* 스포츠 만화이고, 1권부터 각각의 개성을 가진 훈훈한 캐릭터들이 우르르 나와 앞으로 절대 헷갈리지 말라고 또박또박 자기소개를 해주며, 저자인 요시다마루 작가는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특별 일러스트를 그릴 만큼 글로벌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이런 삼박자를 고루 갖춘 만화가 있나! 그렇지만 『디그 잇』 1권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너무 재밌고 다들 잘생겼지만 이건 날 위한 만화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건 나이든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나 이제 소년만화를 졸업하겠다는 자기도취가 아니다. 그냥 어떤 만화는 나 보라고 그려진 만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 굉장히 심취해서 보았던 만화를 지금 다시 읽으니 너무나 유치할 때, 그럴 때 역시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럼 나는 뭘 보고 뭘 물고 뭘 빨고 살란 말이냐…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도 10대와 20대를 지나 30대의 ‘나잇값’을 하는 만화도 있는 법. 어떤 만화에 더 이상 심취하지 못해 서글픈 반면, 이 나이가 되니 정통으로 이해되는 만화들도 물론 있다. 내가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카와치 하루카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진공 짝사랑 팩』이라는 단편집이었다. 그때는 이 작가가 그리고 있는 나른하고 야릇한 남자와 여자들이 사뭇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몇 년 뒤의 어느 날, 지쳐 쓰러지며 되돌아가는 한 남자의 삶이 초라해 보인다 해도 뜨개질, 햇살 같은 여주와 함께한다면 다시 행복할 수 있는 『세키네씨의 사랑』을 읽고 그의 처지에 적극적으로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너무 피곤한 어른이 되었으니까… 

 


어릴 때는 도통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던 요시나가 후미 선생님의 만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딱 서른 살 때 선생님의 대표작이자 가상현실 역사만화 『오오쿠』를 읽었는데, 생과 사의 아이러니, 욕망과 체념, 사랑과 질투, 이상과 현실, 우리가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모순과 희로애락 같은 것들이 몇 대를 걸쳐 흐르다가 사라지고, 다시 탄생되어 반복되다가 언젠가 그 어느 날 아예 전혀 다른 곳으로 도착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진정으로 이 나이에 이 만화를 읽어서 다행이라고. 나도 어느 정도 경험을 해보았고, 그래서 인생의 진실을 엿볼 준비가 되었을 때 이 만화를 온전하게 감각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선생님의 또 다른 대표작 『어제 뭐 먹었어?』는 40대가 되면 보려고 잘 묵혀두고 있다.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환갑 게이 커플의 식사 생활은 또 얼마나 재밌을까.

 

얼마 전에 나잇값을 제대로 한 만화를 읽었다. 일단 나의 죄를 고백하자면 나는 그동안 마스다 미리 선생님의 만화에 심드렁했다. 똑같은 크기의 네 컷 연출, 둥글둥글 밋밋한 그림체, 청춘과 거리가 먼 소시민 여자 주인공이 등장해 이렇다 할 거 없는 하루를 그럭저럭 보내다가 사는 게 어떻다 저떻다 하는 말을 주고받으니 어느덧 끝나 있는 그런 만화. 달걀죽, 배추된장국, 숭늉 같은 만화… 나에게 마스다 미리 선생님의 만화는 그런 인상이었다.

 


『사토 씨의 친구』는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누가 보아도 어리지도 젊지도 않은 어른 사토 씨가 주인공이다. 회사의 후배에게 미움을 살까봐 아랫사람에게 필요한 지적도 명령도 하기 어려워하는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모동숲〉)을 통해 같은 게임을 하는 또 다른 ‘사토 씨’를 만난다. (일본에서는 ‘사토’가 김이박최씨처럼 흔한 성 중 하나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조금씩 친구라고 할 만한 사이가 되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토 씨의 일상에 붉은 등이 켜진다. 바로 단둘이 사는 어머니의 인지 저하. 소위 치매라 불리는 병의 증상이 조금씩 어머니에게 나타나며 사토 씨는 형제도, 아버지도 없이 딸로서 혼자 엄마를 모셔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돌봄은? 간병은? 치료비는? 엄마가 죽으면 이제 쭉 혼자서 살아야 하는 걸까? 혹시 내가 받을 수 있는 유산은 있을까? 아니 애초에 엄마는 앞으로 어떤 속도로 나빠질까?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속도일까? 그러니까 엄마랑 나에게, 우리의 평화에 남은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내 예상보다 너무 적으면 어떡하지? 만화에서 사토 씨가 이러한 생각들을 늘어놓진 않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사토 씨는 분명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이 책을 읽은 누군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해야만 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만남이나 인연의 유지는 억지로 쥐어짜내어 겨우 이루어지는 반면 이별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해졌다. 우리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헤어진다. 무엇보다 점으로 수렴해 갈 뿐인 존재를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런 시기를 통과하다 보면 사람은 좀 변해버린다. 아주 많이 변해버린다.

 

사토 씨는 자신의 생일에 〈모동숲〉 친구 사토 씨와 놀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런 생각을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감당하기 힘든 정도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작은 시간 단위로 행복을 느껴도 좋잖아.

좋잖아, 좋잖아.

눈물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생일날.”

 

언젠가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친구를 만나고 시시덕거려도 되는 걸까? 나는 이제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처지고 그 사람은 너무너무 아파하고 있는데, 도저히 기쁘거나 즐거워도 될 만한 상황이 아닌데, 내가 지금 웃어도 되는 걸까? 그럼 난 언제 다시 웃어도 되는 걸까? ‘다시’? 그렇지만 나는 작은 행복에 겨워 울며 집으로 돌아가는 사토 씨가 그 순간의 행복을 속 편히 누리길 바랐다. 지금 당신이 기쁜 건 진짜잖아. 슬픔만 진짜가 아니라 생일날 게임 친구와 만나 노는 기쁨 역시 진짜잖아! 그래도 된다고, 그렇게 사는 거라고 사토 씨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울컥 솟아오른 그 마음은 뭐였을까? 나는 사토 씨의 기쁨을 비는 동안 삶에는 슬픔이 있고 기쁨도 있는데 그것이 차원을 달리해서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였다. 모두가 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거다. 슬픔만 느끼는 나도 없고 기쁨만 느끼는 나도 없다. 나는 슬퍼도 되고 동시에 기뻐도 된다. 슬픔이 다 가신 어느 날 다시 웃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기쁘다면 기쁘게 웃는 것이다. 비록 나 역시 슬픔과 불안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지만 그래도 아주 작은 단위로 기쁨을 발견한다면 그 순간만은 꼭 기쁘다고 단언할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지금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이 원고를 쓰고 있다. “출출하지 않아요?” 다정하게 물은 친구는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하러 갔고 빵이 준비되는 사이 정말 딱 맞추어 이 글은 끝맺어질 것 같다. 어쩜 이런 우연이. 할 일을 다 해서 주어지는 상인가. 이 원고를 울지 않고 다 쓴 것도 스스로 대견한데 말이야. 이제 한 5분 뒤에 빵이 나오겠지? 

 

이것 봐. 

좋잖아, 좋잖아. 

빵 냄새를 맡으며 글을 맺는 나의 토요일. 




* 영어 ‘hype’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는 의미로 주로 SNS에서 사용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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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네씨의 사랑 1

<카와치 하루카> 글,그림

출판사 | 삼양(만화)

오오쿠 1

<요시나가 후미> 글,그림

출판사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사토 씨의 친구

<마스다 미리> 글,그림/<박정임> 역

출판사 |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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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인

만화 편집자. 출판사 스위밍꿀에서 에세이 『펀치: 어떤 만화 편집자 이야기』(2024)를 냈다. 집 가서 만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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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나가 후미

『서양골동 양과자점』의 작가 요시나가 후미는 만화가이다. 도쿄에서 태어나 게이오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94년에 『달과 샌들(月とサンダル)』로 데뷔하였으며, 『서양골동양과자점(西洋骨董洋菓子店)』을 발표하기 전까지 주로 BL 만화를 그렸고, 『슬램덩크(Slam Dunk)』와 『은하영웅전설』을 패러디한 동인지와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패러디한 동인지를 내기도 했다. 시원시원한 컷 분할과 느슨하고 편안한 펜터치로 자유롭게 스케치한 듯한 요시나가 후미의 그림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간단한 표현만으로도 충분한 감정을 담는 그런 스타일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파격적인 사건을 바라보는 관조적이고 일상적인 시선은 작가의 작품을 더욱 깊이있게 만든다. 완벽해 보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캐릭터들로, 상처투성이인 삶을 살아가는 서로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모습을 그리는 그녀만의 화법은 독자들과의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서양골동양과자점』은 만화가로서의 그녀의 입지를 올려준 작품이었다. 이따금씩 숨어있는 개그적 요소와 캐릭터들의 사연을 천천히 풀어가는 스토리라인, 그리고 희망의 메세지를 담은 잔잔한 마무리 등 그녀의 장점이 최대로 발휘된 이 작품은 동성애적 색깔을 머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독자의 마음 속에 부드럽게 침범하여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아직도 건재한 인기를 보여주는 듯 애장판이 발간되고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 우리나라에서는 영화로 새롭게 탄생하는 등, 작품이 나온지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대중 속에 꾸준히 퍼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