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와 모호연의 반려인간 관찰일기
[이다X모호연 칼럼] 뇌_트워크 접속중, 대화법을 개선 중입니다 | 예스24
나는 정말로 이 친구가 좋았다. 이 관계가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심사숙고 끝에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글: 이다 사진: 모호연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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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혹시 볼일 볼 때 화장실 문을 닫지 않는 어떤 특별한 사유가 있어?” 

 

내가 잘못했다. 마음 깊이 뉘우치고 있다. 같은 상황에서 이 질문을 들었다면 나는 그 순간 수치심으로 돌연사했을지도 모른다. 이다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기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저 문장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나 역시 오래 고민했던 질문이라 저것이 내가 했던 말 그대로인 것을 안다. 그때는 어떻게 대화해야 상대방에게 내 진심이 전해질지 알 수 없었다. 

 

언니, 오빠, 그리고 부모님까지 다섯 식구가 몇십 년간 한집에 살았지만 서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가정은 처음 만나는 사회라는데 바람직한 대화의 방법을 익히기보다는 이래저래 눈치만 늘었다. 뭐든지 알아서 살펴야 하는 서열 중심의 조직에서라면 눈치는 꽤 도움되는 생존 스킬이다. 주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쓸데없는 갈등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사적인 관계에서도 유용한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눈치가 빠르면 상대의 감정에 휘둘리기 쉽다. 저 사람의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를 가늠하는 사이 내 기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결국 상대가 원하는 대로만 말하고 행동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피로가 쌓여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한 것이 점점 없어진다. 재미가 없으니 만나고 싶지 않다. “너처럼 잘 맞는 사람은 처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쁘기보다 가슴이 답답했고, 마음 어딘가에 선이 그어졌다. 회장님의 심기를 읽어내느라 독심술을 연마한 비서가 된 기분이었다. 누구도 내게 눈치를 보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다정하게 대하기’와 ‘비위 맞추기’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인생은 고독한 것이라며 치기 어린 염세에 빠져 있었다. 

 

내 뜻대로 했을 때의 결과를 통제할 수 없기에 타인의 판단에 지나치게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이면 상대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토록 믿음 없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이런 나에게 이다가 선뜻 “너, 내 룸메이트가 돼라!”를 시전한 것이다. 그 환대가 기쁘면서도 한편 걱정이 밀려왔다. 나는 정말로 이 친구가 좋았다. 이 관계가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제까지는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입을 꾹 닫고 침묵하는 것이 내 방패이자 칼이었다. 이다는 그런 식으로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예전처럼 갑자기 잠수 타서 연락을 끊고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다와 잘 지내려면 내가 솔직해져야 했다. 심사숙고 끝에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저 질문이다.

 

불편한 질문이니까 최대한 정중하게 접근한다는 방법은 이다에게 맞지 않았다. 내가 진지할수록 이다는 혼나는 어린아이처럼 겁을 먹었다. 질문을 한 순간, 나는 그를 교수대에 세워놓고 최후의 한마디를 묻는 집행인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역시 물어보지 않는 게 나았을까? 한 달이나 참지 말고 내 손으로 문을 닫을 걸 그랬나? 

 

여기,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화장실 문을 닫아도 소리는 들린다. 안 그래도 그게 신경 쓰여서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면 이다가 근처에 없을 때를 노리곤 했다……. 여기까지 글을 쓰다 말고 30분 정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다가 수치스러워할 걸 예상하면서도 어째서 영영 침묵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을까?

 

문득 예전 일들이 떠올랐다. 누구든지 문을 열고 오줌을 누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불쾌했다. 그런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싫었고, 그들의 일상적인 무신경함과 역한 냄새, 그와 함께 연상되는 더러움이 싫었다. 이다는 그들이 아닌데도, 내 과거의 망령 때문에 억울하게도 느닷없는 질문을 받게 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다. 이다가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는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폐쇄공포증”같이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10년 넘게 같이 살아보고야 알았다. 사람이 하는 행동에 항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일들은 굳이 이유를 알아내지 않고 넘어가도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온화한 표정을 짓고 상담심리사처럼 침착하게 말한다고 해서 대화가 술술 풀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다에게는 에둘러 표현하기보다 내 생각과 감정을 직선적으로 말하는 편이 훨씬 잘 통했다. 굳이 무례한 단어를 쓰거나 감정적으로만 굴지 않으면 이다는 내 말을 잘 들어줬다. 그리고 나에게도 꾸준히 질문했다. 

 

“너는 물냉이 좋아, 비냉이 좋아?” 

“카페 안쪽 자리가 좋아, 바깥쪽 자리가 더 좋아?” 

 

웬만하면 많은 것을 상대방의 선택에 맡겨왔던 나는 대답을 머뭇거린다. 그러면 이다는 말한다. 오래 생각해도 괜찮다고. 너도 분명히 ‘아무거나’ 말고 더 좋아하는 게 있을 거라고. 가끔은 싫다는데도 선택을 강요하면서 마치 밥 안 먹는 개를 훈련하듯 엄중한 얼굴로 내 입에서 “나는 이게 더 좋아.”라는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이다의 속마음을 유추하는 것보다 나에 대해 파악하고 얘기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별것 아닌 질문에도 상대가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습관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 질문세례를 받다 보니 귀찮으면서도 점점 대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졌다. 동시에 이다의 취향과 습관도 하나둘 의미 있게 새겨졌다. 대화가 꼭 깊고 진지할 필요는 없었다. 함께 지내며 서로에 대한 크고 작은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만으로도 대화는 조금씩 편해졌다. 

 

같이 산 지 10년쯤 되니 대화숙련도가 높아지다 못해 가끔은 뇌-트워크가 가능해졌다. 어떤 식당에 들어갔다가도 아무 말 없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바깥으로 나온다. 머릿속으로는 대충 이런 대화가 오간다. ‘생각보다 비싼데.’ ‘테이블도 끈적하고 냄새 난다.’ ‘다른 데 가자.’ 전철을 탔을 때도 마찬가지다. ‘저기 수상한 사람 있다. 행동거지가 쎄한데.’ ‘다른 데로 갈까?’ ‘그래.’ 뚜벅뚜벅 다른 칸으로 옮기고 나서야 입이 열린다. 

 

가끔은 이런 일도 있다. 이다가 출장 짐을 싸다 말고 묻는다. 


“내가 그거 가방에 챙겼는지 확인해볼래?” 

“알았어.” 


단어가 생각 안 나는데 일단 묻고 보는 사람도 어이가 없지만, 즉각 알았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거”가 손소독제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 이다가 물어도 “그러게?”라는 답으로 얼버무릴 뿐이다. 그럴 때마다 대하사극 「여인천하」가 떠오른다. 문정왕후와 정난정은 종종 대사 없이 눈빛으로만 대화를 주고받는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저게 무슨 연출인가 싶지만, 극에 몰입하고 있으면 어쩐지 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신분을 뛰어넘어 생사를 함께하는 동지라면 저 정도 뇌-트워크는 되지 않겠냐고 납득하게 된다. 

 

동거는 서로의 인생에 크게 관여하는 일이다. 상대의 행동 패턴에 익숙해지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집중하면 말보다 빠르게 상황의 맥락을 읽게 된다. 구구절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다가 말하는 “그거”가 손소독제라고 판단할 만한 사고의 흐름이 내 안에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 속도가 인지하지 못할 만큼 빠른 탓에 텔레파시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다만 뇌-트워크도 인터넷 공유기처럼 신호가 끊길 때가 있어서, 그럴 때는 다시 또렷한 언어로 얘기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거니 지레짐작하면서 대화에 소홀하면 다시금 오해와 충돌이 발생하고 만다. 10년을 같이 살아도 가끔은 재부팅이 필요하다. 

 

대화법을 개선하는 일은 서로의 말하는 방식을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먼저 알아가기 위한 훈련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아메리카노인지 플랫화이트인지, 무엇이 좋고 무엇은 싫다고 말하는 연습을 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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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tz

2026.09.18

두 분의 우정 영원하길…! 넘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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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림

2026.09.16

맞아요. 뇌트워크 필요해요.. 소통 너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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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pongoing

2026.09.15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뇌트워크이야기…
감동적이에요 ㅠㅜ💚특히 신호가 끊길때도 있다는 점과 재부팅도 필요하다는 점이 오히려 안심이에요🥹 번거롭고 따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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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포항에서 태어나 청소년기 내내 쉬지 않고 다이어리를 썼다. 지은 책으로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 『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어린이 탐구 생활』이 있으며, 『내 손으로, 치앙마이』,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 100퍼센트 손으로 쓰고 그린 여행 노트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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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연

평소 가까운 물건의 생애와 쓸모에 관심이 많다. 우산수리팀 ‘호우호우’ 소속으로 우산수리 마스터가 되기 위해 매주 우산을 고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반려공구』, 『반려 물건』,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공저)가 있다. 공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을 만들어 수리 문화를 확대하는 거창한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