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내가 되어 보기로 했다.”(5쪽)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지만, 실제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굿워크플래닛’을 이끌던 디자이너 출신 사업가 강희정 작가는 자신이 서 있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 앞에 섭니다. 사업 실패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몸을 일으키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변화였습니다. “사회적 기업가에서 버스기사로.” 무언가를 만들고 기획하며 세상에 기여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은 이제 누군가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일로 이어집니다. 사업을 정리한 뒤에는 물건을 나르고, 화장품 상자를 접고, 청소를 하는 등 몸을 쓰는 일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수고하고 땀 흘리는 일은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키고, 살아갈 이유를 조금씩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한때 사랑이라는 단어를 삶에서 지워” 버릴 만큼 사랑을 앞세운 일들로부터 상처받았던 강희정 작가는 이제 다시 사랑을 생각합니다. 거창한 사랑보다는 오늘 마주친 사람의 안녕을 바라고, 작은 마음을 지켜가는 쪽으로요. 어느덧 마을버스 기사에서 시내버스 기사가 된 그. 버스를 운전하며 틈틈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그의 작업실로 함께 가봅니다.

『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의 출간 후기를 들려주세요.
집필을 위해 과거로 떠나는 일은, 그동안 뇌를 멈춘 듯 살아왔던 제게 다시 찾아온 도전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도달해야 했던 여행지에는 인생 최대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었어요. 그 순간을 다시 마주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통과해야 했지요. 그래서인지 탈고했을 때의 기분은 긴 시간 갇혀 있던 곳에서 마침내 탈출한 듯한 감격과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한때 세상에 사랑을 말하던 사람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나는 다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7쪽)라는 고백으로 이 책은 문을 엽니다.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며 좋은 세상을 꿈꾸던 때의 사랑과, 이름 모를 승객의 안녕을 바라는 지금의 사랑은 어떻게 달라졌는지요.
그때의 사랑이 좋은 세상을 바라며 품었던 것이기에 적극적이고 대범했다면, 지금의 사랑은 승객의 안녕을 바라는 만큼 소극적이고 소박합니다. 어쩌면 하찮게 보일 만큼 작고요. 과거의 제 사랑은 진취적이었지만 목표 지향적인 성격도 강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저 멀리 있는 깃발을 잡기 위해 오늘을 포기해야 한다는 모순을 품고 있었지요. 그 모순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탓에 정작 당사자인 저는 진정한 사랑을 놓쳐야 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늘’에 있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긴 사막을 지나 저는 다시 승객의 안녕을 바라는 지금의 사랑에 이르렀습니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러울 만큼 작고 별것 없어 보이지만, 저는 이것을 ‘위대한 사랑’보다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자신했던 과거의 사랑과 달리, 지금의 사랑은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주저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작고 부족한 마음입니다.
‘버스 운행’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니 같은 노선을 매일 반복해 달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그 반복 속에서 오히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계신 것 같아요. 버스 운전석에 앉은 뒤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셨는지 궁금합니다.
아주 일상적인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이전에는 지나쳤던 소소한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눈에 담기는 만큼 마음에도 와닿게 되었어요. 그전에도 눈을 뜨고 살았겠지만, 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는 못했던 것 같거든요. 버스 운전석에 앉아 차창 밖을 바라보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참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주인과 산책하는 강아지의 경쾌한 걸음, 점심시간에 커피 한 잔씩을 손에 든 직장인들의 행복한 얼굴 같은 것들이요.
이제 무더위가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거리에서 웃는 사람들의 얼굴을 더 많이 볼 수 있겠지요. 자신도 모르게 머금은 미소들이 제 눈에 마구 포착될 것 같아요. 그런 소중한 장면들을 많이 담으며 저도 덩달아 행복해지겠지요.

사회적 기업가와 버스기사는 전혀 다른 직업처럼 보이지만, 두 일을 관통하는 작가님의 모습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의 자신을 부정했던 시간을 지나 도착한 지금,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타인을 향한 방향성인 것 같아요. 저는 분명 자기중심적인 사람인데, 왜 자꾸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돕겠다고 꼼지락대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건조해 바싹 메말라 있다가도 누군가를 도울 방법을 생각하고 강구할 때면 다시 활력이 생기는 것을 느낍니다. 아마 그것이 제 에너지의 원천인가 봐요. 말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이제는 이타심이 제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분명하게 인정하게 되었는데, 과연 저만 그런 것일까요? 어쩌면 나도, 당신도 같은 것이 아닐까요?
최근 아버지가 텔레비전에서 들었다며 제게 전해준 말이 있어요.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진짜 행복하다.” 사람은 베풀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진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타심을 원천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업을 정리한 뒤 물건을 나르고, 화장품 상자를 접고, 먼지를 닦는 등 한동안 몸을 쓰는 일을 하셨다고요. “꿈은 무너졌지만 몸은 아직 움직일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자 마음도 아주 조금씩 따라오기 시작했다”(168쪽)고 하셨고, 매트리스 청소업도 시작하셨었지요. 몸으로 다시 일어서기 시작하면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도 새롭게 만나셨을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대단해야만 비로소 ‘일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대단한 일을 해서 나를 증명할 거야’라고 다짐하곤 했고요. 지금 생각하면 오만하고 위험한 생각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오늘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깊은 함정이 숨어 있었거든요. 결코 붙잡을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무한히 질주하게 만드는, 그래서 끝내 행복할 수 없게 하는 함정이요. 이제는 일이란 아주 원초적인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만큼 수고하고 땀 흘리며 누리는 기쁨’이라고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감사하게도 제게는 여전히 몸을 움직여 일할 힘이 남아 있었습니다. 지식도, 재능도, 자본금도 없을 수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내 땀을 씨앗 삼아 무언가를 거둘 수 있지요. 그래서 노동은 감사한 기회이자 숭고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땀 흘려 일하고 그에 마땅한 대가를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은 삶의 본질에 아주 가까웠어요. 어쩌면 그것이 성취감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제는 대단한 일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수고하는 일은 언제나 하고 싶어요. 작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되었고, 그런 마음으로 일할 때 돌아오는 커다란 만족과 기쁨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인사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아니지, 인사하기 위해 이 일을 하는 편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책에서도 “당신이 정말로 안녕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30~31쪽) 인사를 건넨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처음의 그 인사를 지키고 계신가요?
네, 지금도 지키고 있어요. 때때로 현실적인 이유로 짜증이 나 있거나 마음이 흐트러질 때면 진정성 있는 인사를 되찾기 위해 몇 분 정도 잠시 공백을 갖기도 합니다. 그래도 반드시 다시 시작해요.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은 뒤 진심 어린 인사를 드리는 거죠. 요즘은 특히 상대방을 높여드리는 인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잖아요. 저 역시 기분이 좋다가도 나빠지고, 시소처럼 혹은 계절처럼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면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스스로의 덧없음이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제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오히려 인사는 더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보다 당신이 낫습니다. 당신은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버스에 타는 분이 누구든, 어르신이든 아주머니든 고등학생이든 똑같이 한껏 높여드리려고 합니다. 그분이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요. 제가 몸을 깊이 숙여 인사하면 승객분들도 맞절을 해주세요. 그 맞절을 받으면 제 마음은 다시 생기를 찾습니다. 그래서 힘들수록 인사를 더욱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가 뭐라 해도 나의 속도로 가기로. 나의 방식으로 가기로. 나의 길을 가기로.”(198쪽) 책을 읽는 많은 분께 힘이 되어줄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노선과 속도를 지켜야 하는 버스를 운전하며 오히려 ‘나의 속도’와 ‘나의 길’을 발견하셨다는 점도 인상 깊었고요. 지금 작가님께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또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내 안에 있는 꿈을 향해 나만의 방법으로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방법과 속도는 세상이 말하는 기준과 다를 수 있어요. 이제는 그 차이가 제법 크다는 사실도 받아들이는 중이고요.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뚝심 있게 걸어가려 합니다. 물론 저 역시 그 꿈이 정확히 어떤 모양인지는 아직 잘 몰라요. 나이가 들어 눈을 감게 되는 순간에는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일까요?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 같나요? 생각해 보면 제 안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작은 꿈이 하나 있습니다. 그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랑, 그 언저리’라고 답하고 싶어요. 연인이나 내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보다 조금 더 넓은 의미의 사랑이요.
저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그 꿈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딛는 일입니다. 오늘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든, 그 일을 통해 마음속 꿈을 조금씩 이루어가고 있다고 믿어요. 제가 오늘 버스 운전대를 잡고 있다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드릴을 들고 있다면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꿈에 다가가는 것이지요. 글을 쓰고 있어도,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모든 순간을 통해 차곡차곡 꿈을 완성해 가고 있다고 믿으며 사는 것. 그것이 지금의 제가 생각하는 ‘나답게 살아가는 삶’인 것 같아요.

작업을 하는 동안 함께 한 반려 [ _______ ]
아무래도 버스기사의 필수품인 선글라스와 장갑이 아닐까 싶어요. 현실에서 버스기사로서의 삶이 시작되고, 그 삶이 한 권의 이야기로 펼쳐지기까지 선글라스와 장갑은 언제나 제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이제는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불안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이전에는 안경도 장갑도 특별히 가까이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이 두 가지가 제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물건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재미있습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은 어떤 모습인지요?
저의 작업 공간은 카페라테가 있는 동네 카페예요. 아이패드나 맥북, 그리고 카페라테만 있으면 어디든 저만의 홈그라운드가 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카페라테예요. 어쩌면 노트북 같은 도구가 없어도 괜찮을지 몰라요. 카페라테 한 잔만 있다면 머릿속을 하얀 종이 삼아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따뜻한 카페라테를 앞에 두고 생각을 가만히 펼쳐놓는 시간, 그것이 저만의 집필 루틴이자 작업의 풍경입니다.
이번 책 출간 후 가장 하고 싶으셨던 일, 혹은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다면 무엇인가요?
책이 나온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제주의 동쪽 바다를 보러 가는 것이었어요. 제주 바다는 제가 가장 괴로웠던 때 아무 말 없이 저를 감싸안아 준 곳이거든요. 그곳에 대한 기억이 참 좋아요. 아직 가지 못했지만 꼭 다시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독자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 삶의 모양은 저마다 다르고, 지금 처한 상황 역시 모두 다를 거예요. 다만 혹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괜찮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졌다고 생각한 순간에 오히려 새로운 것이 시작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니 당신 안의 빛을 포기하지만 말아 주세요. 그 빛은 반드시 다시 피어날 거예요.

버스는 사람들을 목적지에 내려 주지만, 정작 나를 살아가게 하는 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런 풍경들인지도 모른다.(19~20쪽)
오늘도 나는 선택한다.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당신의 편에 서 보겠다고. 그렇게 사람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일을 내일도 계속해 보겠다고.(221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
출판사 | 브로북스
염은영
읽고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만든 책으로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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