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는 이다가 집안일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서 처음 만났는데, 어느 날 회원들을 대상으로 ‘더티 & 클린 어워드’라는 이벤트가 열렸다. 회원들이 올린 사진 가운데 가장 더러운 방과 깨끗한 방을 선정해 상품을 주는 행사였다. 이다는 더티 부문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주최자가 본인이어서 상품은 못 받았다.) 사진 속 방은 충격적이었다. 언제 먹었는지 알 수 없는 컵라면 용기와 통조림 캔이 책상 위에 쌓여 있었고, 바닥에도 물건이 잔뜩 어질러져 있어 간신히 맨바닥이 드러난 곳을 보며 ‘저기가 지나가는 길이구나’ 짐작할 정도였다. 저 사람이랑 살면 청소는 내가 다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살아보니 현실은 달랐다. 이다는 내가 이사 오기 전에 집을 말끔히 치워놓았고, 웬만해선 설거지를 미루지 않았으며, 바닥에 머리카락이 보이면 먼저 청소기를 돌렸다. 러그를 박박 긁어 먼지를 털어내는 사람도 이다였다. 예전의 이다는 어디로 갔을까.
집안일은 참 이상한 노동이다. 하지 않는다고 급여가 깎이는 것도 아니고, 누가 점수를 매겨서 상벌을 내리지도 않는다. 설거지를 미룬다고 세상이 끝나지는 않고, 바닥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그 일을 계속 한다. 오늘 달성해도 내일 다시 생겨나는 퀘스트를 묵묵히 반복하면서, 집안일이라는 무한의 굴레를 살아낸다.
혼자 살았다면 ‘왜 꼭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곱씹으며 아무것도 안 했을지 모른다. 타협할 상대가 나 하나뿐이라면 어지러운 집과도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함께 살면 사정이 달라진다. 두 사람의 합의 하에 기준이 하나둘 만들어지고, 각자의 성향에 따라 집안일을 나눠 하게 된다. 일을 나누는 기준은 의외로 ‘누가 무엇을 잘하는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덜 싫어하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나는 설거지보다 요리를 덜 싫어한다. 이다는 우유갑을 펼쳐 말리는 것보다 청소를 덜 싫어한다. 그래서 요리와 쓰레기 분리배출은 내가, 설거지와 청소는 이다가 맡는다. 합리적인 역할 분담처럼 보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에는 이다의 설거지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기준에는 너무 대충 씻는 것처럼 보였고, 그릇을 놓칠 때마다 깨뜨릴까 조마조마했다. 기름기도 없는데 뜨거운 물 쓴다고, 보일러 요금 아깝다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설거지는 내가 맡은 일도 아닌데, 자꾸만 주방 쪽으로 신경이 쏠렸다. 이다는 통제광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왜일까?) 화도 내지 않고 나를 얼렀다.
“너는 설거지를 너무 열심히 해서 설거지가 힘든 거야.”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다. 뭐든 열심히 하는 것이 미덕 아닌가?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뼈를 때렸다.
“너 설거지 너무 오래 하잖아. 물도 많이 쓰고. 하수구 안 막히려면 가끔 뜨거운 물도 써야 돼. 보일러 값 아끼려다가 더 큰돈 나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장식 없는 밋밋한 그릇 하나도 대충 닦지 못했고, 싱크대 물자국까지 없애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다 보니 설거지는 점점 더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고, 내 차례가 와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기 일쑤였다. 반대로 요리는 이상하게 힘들지 않았다. 간을 보지 않아도 대충 맛이 그려졌고, 냉장고에 남은 재료만 봐도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감이 왔다. 실제로 맛이 있든 없든 이다는 군말 없이 잘 먹었다. 반찬 투정을 용납하지 않았던 이다 어머니의 밥상머리 교육이 나를 살린 셈이다. 결국 우리는 잘하는 일이 아니라 질리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맡게 되었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나도 그가 싫어하는 일을 기꺼이 하게 됐다.
물론 예외도 있다. 둘 중 하나가 마감에 치여 있거나 몸져누웠을 때는 기운이 남은 쪽이 집안일을 더 한다. 피로에 절어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사람이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차마 나 몰라라 소파에 누워 농땡이를 칠 수가 없다. 결국 이다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설거지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정산을 해본다.
지난달에는 내가 원고 마감 때문에 집안일을 거의 못 했다. 자연스럽게 이다가 더 많은 일을 맡았다. 그때 진 빚을 갚으려면 설거지 두 번, 욕실 청소 한 번쯤은 내가 추가로 해야 장부가 맞는다. 같이 사는 사이에 빚이나 장부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인정머리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기억해두지 않으면 남의 노동은 너무 쉽게 당연해진다. 더구나 집안일은 매일 해도 눈에 잘 띄지 않으므로 더 신경써야 한다.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 〈부당거래〉의 대사로 잘 알려진 이 말은 인간관계의 명언처럼 쓰인다. 사람들은 대개 호의를 베푸는 쪽에 이입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원체 의심이 많아 호구가 될 걱정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의 호의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착각을 한 적이 많았다. 이런 실수를 반복할까 두려워서, 이다에게 받은 호의는 머릿속 장부에 하나하나 기입해 둔다.
우리는 이것을 ‘호의은행’이라고 부른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오 자히르』에 등장하는 개념을 빌려온 말이다. 다만 소설 속 호의은행이 세상 밖으로 흘려보내는 호의를 의미한다면, 내 호의은행은 그보다 단순하고 편협하다. 돌려받지 않을 마음으로 인류애를 베푸는 일은 바깥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나 하는 일이고, 이다에게 받은 호의는 가급적 이다에게 갚으려 한다. 마음을 더치페이하듯 숫자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잔고가 한쪽으로만 쌓이지 않도록 유의한다. 모호연의 호의은행에서 이다는 최상위 신용등급을 가진 VIP 고객이다. 그는 내게 수도 없이 빚지고, 또 그보다 훨씬 많이 갚으며 신용을 쌓아왔다.
VIP 고객을 잃지 않으려면 감사 인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집안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 노동을 할 때 그가 일과 함께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남이 일하는 동안 편히 놀고 싶다면, 입에 발린 응원이라도 건네는 것이 최소한의 성의인 것이다. 우리는 각자 맡은 일을 했을 뿐인데도 입버릇처럼 “고마워.”라고 말한다. 일평생 얼굴도 모르는 상담사에게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수없이 들어왔는데, 진짜 VIP 고객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정도야 간지러울 것도 없다.
*
더티 어워드의 강렬한 인상은 많이 흐려졌지만 설거지를 한 뒤에 수세미를 꼼꼼히 세척하는 모습이나, 내가 부려둔 과자봉지를 보고 잔소리를 하는 이다가 아직도 조금 낯설다. 의자 위에 옷으로 산을 쌓고 냉동실을 음식물쓰레기의 무덤으로 만들어버렸던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는 걸까?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때는 그럴 힘이 없었던 걸까. 정답은 아직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 둘 다 같이 사는 동안 조금씩 변했다는 것.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를 버리며 내 몫의 일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다는 자신이 생각보다 깨끗한 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온갖 살림팁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그다지 살림 고수가 될 생각은 없다. 다만 호의은행의 잔고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내 몫을 입금할 뿐이다. 이번 주 정산은 어떻게 될까? 장부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내가 음식쓰레기를 버리러 다녀와야겠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모호연
평소 가까운 물건의 생애와 쓸모에 관심이 많다. 우산수리팀 ‘호우호우’ 소속으로 우산수리 마스터가 되기 위해 매주 우산을 고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반려공구』, 『반려 물건』,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공저)가 있다. 공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을 만들어 수리 문화를 확대하는 거창한 꿈을 꾸고 있다.
이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포항에서 태어나 청소년기 내내 쉬지 않고 다이어리를 썼다. 지은 책으로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 『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어린이 탐구 생활』이 있으며, 『내 손으로, 치앙마이』,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 100퍼센트 손으로 쓰고 그린 여행 노트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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