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좋아하는 것이 있는 쪽으로 기꺼이 움직이는 마음만으로 자신만의 도쿄 지도를 그려낸 임진아의 여행 에세이 『아직, 도쿄』가 2026년 7월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임진아에게 도쿄는 여전히 걷게 하는 도시이자 ‘좋아하는 것이 있기에 스스로 감동받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도시다. 지금의 일상과 다르지 않은 도시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의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여행법에 대해 들어본다.
이번에 유유히에서 『아직, 도쿄』 개정증보판을 출간했습니다. 작가님의 출간 소감과 함께, 『아직, 도쿄』 책을 작업하면서 든 소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2016년에 쓰기 시작했던 여행기가 2026년이라는 이 말도 안 되는 숫자인 올해 다시 선보이게 되어 너무너무 기쁩니다. 저는 책으로 계속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고, 그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참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의 세상은 점점 달라지고 어려워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전에 썼던 여행기를 다시 선보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어려우면서도 또 재밌는 일이더라고요. 그 당시에 제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다시 한 번 읽는 계기가 되었어요. 여행기라고 해서 특정 장소나 시기에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고유한 아무 날의 순간을 썼기에, 지금까지 읽힐 수 있구나 하는 발견도 있었고요. 그때 정해놓았던 어떤 작은 철칙 같은 것들이 지금에 와서도 되게 소중한 지점이 되었구나 싶어서 기뻤습니다.
『아직, 도쿄』의 표지부터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이 책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의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여행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런 장소가 바로 이 표지의 장소였지요.
책 속의 그림들을 물론 다 좋아하지만, 이 그림이 가장 애정이 있는 장소였어요. 혼자 도쿄로 처음 여행을 갔을 때 가장 먼저 도착했던 곳이기도 하고, 그 여행 마지막에 공항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갔던 곳이기도 하고,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곳에 드디어 도착한 순간이기도 해서 이 그림으로 표지가 되면 좋겠다고 제가 먼저 이야기를 드렸어요.
영화 〈카페 뤼미에르〉에 나온 장소여서 저에게 뭔가 되게 소중했거든요. 이 영화는 처음 보고 나서부터 너무너무 좋아서 영화관에서도 보고 DVD를 사서 계속 노래처럼 제 일상에 틀어놓는 영화였어요.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기에 서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살았는데 막연히 제가 들어갈 수 없는 어떤 높은 건물 옥상에서 촬영했을 수도 있겠다 상상만 했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찾기 쉬웠어요. 오차노미즈역에서 나오자마자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만날 수 있는 다리였다는 게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지금 개정판 부제로 ‘좋아하는 것이 있기에 스스로 감동받는 삶’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문장을 그때 그 순간에 인스타그램에 처음으로 올렸었고요. 저에게는 소중한 곳이 표지가 되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아직, 도쿄』 속에는 일본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뮤지션,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까지 작가님만의 다양한 취향을 엿볼 수 있었고 그 내공이 매우 깊다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져요. 작가님이 이런 문화적 취향을 갖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었을까요?
아마 중고등학교 때부터였지 싶어요. 저와 동년배인 보아 씨가 일본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되게 재밌다고 생각했고, 주로 노래를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이대 앞에 ‘제이피아’도 종종 찾아갔고요(웃음).
저는 뭔가 하나가 좋으면 끝까지 들어보고, 천 번은 들어보고 하는 성격이어서 좋아하는 걸 발견하고 찾아보고 반가워하며 계속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계속 살다 보니까 지금도 도쿄에 오늘 당장 가더라도 내가 좋아할 만한 무언가는 분명히 있다, 전시든 영화든 공연이든 하물며 그냥 좋아하는 뮤지션이 운영하는 카페에 가도 된다는 생각이 있죠. 그래서 도쿄는 제가 좋아하는 게 분명히 있는 도시인 것 같아요.
더불어 『아직, 도쿄』 에는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 살짝살짝 엿보이는 것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였어요. 문구점 ‘사브로’에 갔을 때 떠올렸던 문방구 주인 아주머니와의 사연도 특별한 우정으로 느껴졌고요.
어렸을 때 집이 막 이사를 했고,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부모님이 모두 바쁘셔서 집에 가면 어차피 혼자 있어야 했어요. 그게 싫으니까 학교 앞 문방구에서 최대한 늦게까지 머물렀던 것 같아요. 그러면 지금은 동네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 주인 아주머니가 뽑기나 오락기 할 때 앉는 작은 의자를 무심하게 놔주시고, 거기에 앉아 전단지나 전봇대에 있는 글자를 같이 읽곤 했어요. 저에게는 ‘문구점’이라는 곳이 그런 그리움이 있는 곳이다 보니까 레트로라고 불릴 법한 문구들을 다양하게 많이 팔고 있는 도쿄 문구점에서 그 추억이 떠올랐던 것 같아요.
『아직, 도쿄』를 읽으면서 도쿄에 전시만을 보는 여행을 떠날 수도 있구나 깨닫기도 했어요. 「긴 시간이 흐르는 작은 미술관 - 치히로 미술관」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님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글이기도 했고요. “액자 가까이에 눈을 댈 수밖에 없는 원화들을 보는 시간은 한없이 모자랐다. 그저 모니터로 보거나 지면에 인쇄된 그림만 볼 때와는 그 감동의 폭이 달랐다. 모든 순간에 공을 들이는 작업 과정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천천히 눈에 담았다. 먹선에 조금 삐져나와 있는 채색을 발견할 때면 남들과 다른 웃음을 보이며.”(226쪽)
그 당시가 그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구나 하고 저에게도 새삼스레 읽혔어요. 어떤 그림을 내가 그리고 싶은지, 그림을 어떻게 대하고 싶은지 이런 태도들이 곳곳에 나와 있더라고요. 전시 ‘무라카미 하루키와 일러스트레이터’는 2016년 5월~8월에 열린 전시였어요. 전시 소식을 알고 나서 처음으로 이건 안 가면 안 되겠다 싶어서 티켓을 끊고 일주일 동안 도쿄에 머물렀어요. 그러면서 이 전시만 세 번을 보았거든요. 물론 다른 곳도 볼 게 많았지만, 이 전시가 끝나면 영원히 못 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또 하루키랑 같이 협업했던 작가들이 다 함께 모여서 전시를 하는 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이 전시가 있던 치히로 미술관은 그 장소만의 분위기가 있어요. 그래서 도쿄에 갈 때면 산책하듯 들르게 돼요.
『아직, 도쿄』 속 임진아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내가 지워진 파스타 가게 - 시티 컨트리 시티」를 고르고 싶어요. 글이 시작될 때 들어가 있는 그림을 보면 맨 앞에 떠들고 있는 저와 그런 저를 보고 있는 제가 그려져 있는데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사회 초년생 때의 저를 생각하고 있는 글이 담겨 있는, 그러니까 이 글을 쓴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20년 전의 저를 생각하는 꼭지가 되었죠.
『아직, 도쿄』 148쪽
이번에 개정증보판을 준비하면서 여기에 새로 쓴 부분이 있어요.
“출장의 일정은 꽤나 정신없었으나 시모키타자와에서의 시간만큼은 느긋했다. 첫 시모키타자와일 뿐만 아니라 첫 도쿄였기에, 아무리 일로 간 도시여도 내심 손을 뻗고 싶은 순간들과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중고 레코드숍 디스크 유니온 시모키타점에서 그간 벼르던 앨범들을 잔뜩 샀다. 스카밴드 더 마이스티스의 앨범을 찾으며 난생처음으로 일본어 회화를 시도했다. 지금도 그때의 친절한 점원분이 알려준 앨범 속 최애 곡을 들으면 디스크 유니온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쉬러 간 어떤 카페는 마침 라이브가 있어서 돌아 나오기도 했고, 한적한 골목에서는 밴드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시모키타자와는 그런 동네였다. 도쿄에 처음 도착한 코로 낯선 마을의 냄새를 킁킁대며 맡을 뿐이었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153~154쪽)
20년 전의 이야기를 10년 전에 진하게 회상하고 있는 이야기다 보니까 각별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출장 이야기를 살짝 넣어볼까 해서 추가로 써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처럼,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으로 도쿄를 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작가님이 건네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나에게 이벤트를 선사하는 마음으로 떠나자고 말하고 싶어요. 여행 계획을 짤 때는 그간 나의 취향을 먼저 들여다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도시에 있는 낯선 무언가를 막연히 찾기보다는, 또 깜짝 놀랄 무언가를 마냥 기대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어떤 것에 마음이 열렸는지, 좋아할 만한 게 무언지 감각할 때 찾아가고 싶은 장소와 순간이 생기더라고요. 혼자 다니는 여행의 장점이 바로 그런 것이니까요.
공연이나 전시, 영화 기획전 같은 뚜렷한 이벤트도 좋고,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최초로 만든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가는 것도 나에게 특별한 이벤트가 되지요. 저에게 그런 장소가 도쿄였고, 또 누군가는 다른 도시가 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여행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기도 하면서, 여행 앞에서는 언제까지나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싶어요. 혼자 떠나기 시작하면서 아무런 날에 떠나도 즐거울 수 있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처음 겪는 일이 무수히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삶에 심드렁해지지 않게 해주는 도시가 있다는 건 내 삶에 좋은 일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여행기 책을 쓴 게 아닐까 해요. 혼자 떠나는 여행이 심심할 것 같다면, 『아직, 도쿄』를 동행자로 데려가주세요. 좋은 말동무가 되어줄 거예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아직, 도쿄
출판사 | 유유히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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