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본은 없었을지 몰라도 열정과 낭만만큼은 차고 넘쳤던 방송 제작 현장의 이야기. 『무근본 음악방송 제작기』는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는 '음악 덕후' 방송작가가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최선을 다해 부딪쳐온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분투의 기록입니다. 때로는 경쾌한 웃음을, 때로는 코끝 찡한 감동을 선사하며 아티스트와 대중음악평론가의 뜨거운 추천을 받은 이 책.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순수한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전하는 작가님의 특별한 음악과 무대 이야기를 인터뷰로 들어봅니다.
브런치 대상 수상과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일을 하고 계셨나요? 어떤 기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11월의 어느 화요일로 기억해요. 라디오 원고를 막 넘기고 한숨 돌리던 점심 무렵에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한 통 왔어요. 제목만 보면 수상 소식보다는 광고에 가까웠죠. 별생각 없이 열었는데, 제가 브런치북 대상 후보로 선정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더라고요. 메일 제목은 소박했는데 내용은 전혀 소박하지 않았어요.
방송을 만들면서 큰 상을 받은 분들에게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을 참 많이 했어요. 그러면 의외로 많은 분이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고 답하셨죠. 그때는 상투적인 소감인 줄 알았는데, 막상 제 일이 되니 단박에 이해됐어요. 안내문을 몇 번이나 읽고도 ‘이거 광고인가?’ 하는 의심이 가시지 않아서 담당자분께 사실이 맞느냐고 다시 메일까지 보냈으니까요.
제가 수없이 던졌던 질문의 답을 몸소 체험한 셈이죠. 기쁘다기보다 처음에는 얼떨떨했어요. 게다가 공식 발표일까지 대외비를 지켜달라는 문구가 있더라고요. 당장 온 세상에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에 내는 순간 행운이 달아날 것 같아 혼자 입을 꾹 다물고 메일만 열어보고 또 열어봤어요. 아마 태어나서 가장 행복하게 입이 근질거렸던 시간이었을 거예요.
책을 내는 경험은 방송을 만드는 경험과는 또 달랐을 것 같아요. 내 경험과 원고가 책이라는 물성으로 변해가는 경험이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합니다.
정말 달랐어요. 매일 방송 원고를 쓰는 사람이니 글 쓰는 일 하나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정적인 함정이 있었어요. 방송작가가 주로 쓰는 것은 소리 내어 전달될 ‘말’이고, 책에 남는 것은 독자가 눈으로 읽을 ‘글’이잖아요. 저는 문장에 호흡과 리듬을 싣는 데 익숙해서 책을 쓰다가도 어느새 진행자가 읽기 좋은 구어체로 돌아가곤 했어요. 그렇다고 문어체로 반듯하게 고치면 이번에는 제 목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고요. 말과 글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분량 맞추기도 쉽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출판사가 제시한 분량을 이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다 채우나 걱정했는데, 쓰다 보니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어요. 나중에는 누구보다 맹렬하게 원고를 줄이고 있더라고요.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모두 책에 필요한 것은 아니었어요. 아끼는 곁가지를 쳐내고, 비슷한 감정은 하나로 모으고, 마음에 드는 문장도 제자리가 아니면 보내줘야 했죠. 그런데 제 손으로 쓴 원고를 제 손으로 버리는 일이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때 편집자님의 조언에 많이 의지했어요. 방송을 오래 하며 배운 게 있다면, 좋은 결과물은 각 분야의 전문성을 믿을 때 나온다는 사실이에요. 방송 경력은 20년이 넘지만 출판에서는 완전한 신인이었으니, 이번에는 편집자님의 판단을 믿고 따라가 보기로 했죠. 덕분에 원고를 완성한다는 건 끝까지 쓰는 일인 동시에, 끝내 잘 버리는 일이라는 것도 배웠어요.
원고가 점점 책의 몸을 얻어가는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편집자님은 넘치는 이야기에서 꼭 필요한 것을 골라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주셨고, 디자이너님은 글에 표정과 호흡을 입혀주셨어요. 두 분 외에도 제가 모르는 곳에서 더 많은 분들이 책 한권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계시겠죠? 그 모습을 보면서 방송 무대 뒤에서 출연자가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뛰던 저와 스태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늘 누군가를 빛내는 쪽에 있던 제가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손길 덕분에 빛나는 사람이 된 거죠.
책은 작가 혼자 만드는 줄 알았는데, 방송과 마찬가지로 멋진 팀플레이더라고요. 다만 이번에는 제가 무대 뒤가 아니라 조금 앞쪽에 서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낯설고, 그래서 더 고마워요.
『무근본 음악방송 제작기』는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방송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당사자가 세밀하게 알려주는 직업 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직업 일기가 곧 분투기가 되겠죠. 시사 교양부터 FM 라디오까지 많은 방송 제작에 참여하셨을 텐데, ‘음악방송 제작기’를 책으로 쓴 특별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방송은 오랫동안 제 일상이자 밥벌이의 수단이었어요. 회사원이 사무실로 가고 운동선수가 체육관으로 향하듯, 저는 방송국과 녹화장으로 갔어요. 연차가 쌓이면서 일의 흐름도 익숙해졌고 ‘이 정도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죠. 그런데 이 음악방송은 달랐어요. 무엇보다 제가 너무 만들고 싶었던 프로그램이었고, 동시에 매일이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대개 처음 가는 길에도 매뉴얼이나 길을 알려줄 선배가 있기 마련인데 당시 저희에게는 참고할 공식도 경험자도 없었어요. 결국 어깨너머로 본 것과 오랜 방송 생활에서 익힌 감각, ‘이렇게 하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하나씩 시험하며 우리만의 방식을 만들어야 했어요. 연차는 꽤 쌓였지만 음악방송 앞에서는 매번 신입 같았어요. 말하자면 경력직 신입사원이었죠.
열정만큼 자주 흔들렸고, 사람을 놓치기도 하고 뜻밖의 사람을 얻기도 했어요. 그래도 시간이 흐르자 우리가 더듬더듬 찾아낸 방식이 오답만은 아니었다는 순간들이 찾아왔죠. ‘우리가 해온 게 맞았구나’ 싶을 때의 기쁨은 정말 말도 못 해요. 이 프로그램은 제가 가장 많이 좋아했고, 가장 많이 흔들렸으며, 결국 가장 많이 성장한 현장이었어요. 그래서 잘된 결과만 자랑하기보다 서툴고 치열했던 과정까지 남기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고요. 이상하죠. 그렇게 고생했는데 지금 가장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프로그램이에요. 사람은 역시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고생까지 꽤 그럴듯한 추억으로 편집하나 봐요.
인디신의 아티스트를 섭외할 때 작가님만의 기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라이징 스타도 알려주세요.
첫 번째 기준은 단연 음악이에요. 노래와 연주가 좋아야 하고, 목소리나 사운드만 들어도 ‘이 팀이다’ 하고 기억할 수 있어야 했어요. 대중성이 있는 팀도 반가웠지만, 신인이나 아직 덜 알려진 뮤지션을 찾을 때는 특히 자기 색깔이 분명한지를 중요하게 봤어요. 잘 알려진 헤드라이너가 프로그램의 문을 열어준다면, 낯선 뮤지션은 시청자에게 새로운 취향을 찾아주는 식으로 전체 라인업의 균형도 맞췄어요.
또 제 취향만 믿지는 않았어요. 아무리 음악을 좋아해도 사람은 결국 듣던 음악을 반복해서 듣기 쉽잖아요. 그래서 음악 팬들의 귀를 많이 빌렸어요.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좋은 팀을 기가 막히게 발견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커뮤니티에서 조용히 입소문이 나는 팀을 찾아 듣고, 페스티벌의 작은 무대와 신인 경연도 유심히 살폈어요. 음원 한두 곡만 듣기보다 라이브에서 어떤 에너지를 보여주는지도 중요하게 봤고요. 섭외는 유명한 사람을 데려오는 일이라기보다, 지금 소개할 이유가 있는 음악을 발견하는 일에 가까웠어요.
요즘 눈여겨보는 뮤지션을 묻는 질문이 사실 가장 어렵네요. 한 팀을 말하면 다른 팀에게 미안하고,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팀을 다 말하면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도 요즘에는 크르르, 심아일랜드, 캔트비블루, 리도어, 공원, 매미, 박소은의 음악을 자주 들어요. 밴드와 솔로 뮤지션이 섞여 있고, 조용히 마음을 건드리는 음악부터 무대의 공기를 단숨에 바꾸는 록까지 결도 제각각이에요. 그래도 자기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밀고 간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저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 그렇게 최애가 자주 늘어나요. 좋은 뮤지션을 남보다 한발 먼저 발견하겠다는 야망도 있고요. 훗날 그들이 아주 유명해졌을 때 “나는 진작 알고 있었는데”라고 슬쩍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방송작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력을 다하는 직업 같습니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지만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을 때도 많아 속상한 날 때도 많았을 텐데요. 의연해지기 위해 작가님이 맷집을 키운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즉효가 있는 방법부터 말씀드리면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를 틀고 목청껏 따라 불러요. 스트레스의 강도에 따라 재생 횟수가 달라져요. 노래 속 ‘닥쳐’를 몇 번 힘주어 외치고 나면 적어도 호흡은 좀 편안해져요. 아주 우아한 회복법은 아니지만 효과는 확실해요. 물론 노래 한 곡으로 다 풀리지 않는 날도 많아요. 방송은 화면에 보이는 사람에게 시선과 박수가 모이는 일이잖아요. 작가는 출연자가 가장 아름다운 서사로 시청자에게 보이도록 뒤에서 애쓰는 사람이고요. 일은 많이 하지만 주목받는 자리는 아니죠. 연차가 쌓인다고 저절로 의연해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지금도 상처받을 때는 상처받아요. 대신 한 공간에서 받은 평가가 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해요. 방송국에서 마음이 다치면 일단 그곳을 빠르게 벗어나요. 가까운 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보거나 공연장에서 다른 사람의 세계에 푹 빠져요. 저는 그걸 혼자 ‘예술 샤워’라고 불러요. 공간을 옮기고 좋은 것을 오래 보고 있으면 엉켜 있던 감정이 조금씩 풀리더라고요.
그래도 안 되면 돈을 써요. 마음이 아직 갑옷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좋은 겉옷이라도 사 입는 거죠. ‘이 돈을 쓰게 해준 것도 결국 이 일이지’ 생각하면 희한하게 감사한 마음도 조금 생겨요. 덕분에 맷집과 옷장이 함께 늘었어요. 의연함이란 상처가 나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나를 다시 일으키는 방법을 여러 개 마련해두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방송작가의 일은 매끄러운 날보다 울퉁불퉁한 날이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애정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은데요. 음악방송을 하며 가장 힘을 얻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일까요?
결국 ‘마음이 닿았구나’ 하고 느낀 순간들이었어요. 사실 저에게도 뮤지션은 조금 어려운 존재였어요. 왠지 저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출연을 마친 뮤지션이 진심 어린 후기를 남기거나 자신의 SNS와 라이브 방송에서 우리 프로그램을 좋게 이야기해줄 때면 그 거리가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우리가 건넨 마음을 그들도 정확히 알아봐 준 것 같아서 큰 힘이 됐어요.
이번에 책을 만들면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어요. 방송을 함께했던 뮤지션들께 책에 실을 마지막 한마디를 부탁드렸는데, 너무나 흔쾌히 한 문장씩 보내주셨어요. 방송이 끝난 뒤 이미 잊히고도 남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그때를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우리가 함께 만든 시간이 저만의 추억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고마웠어요. 보내주신 문장을 하나씩 읽다가 저 혼자 또 한참 뭉클했잖아요.
방송 곳곳에 심어둔 장치들을 팬들이 발견했을 때도 행복했어요. 화면에 몇 초 스쳐 가는 장면과 선곡의 순서까지 누군가는 한 땀 한 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이걸 찾아냈다고?’ 싶어 놀라면서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인 품이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주 정확하게 착륙했으니까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남는 말은 “이 노래로 힘을 얻었다”였어요. 시청자가 새로운 뮤지션을 알게 되고, 그 노래가 힘든 하루를 건너게 했다는 후기를 보면 우리가 왜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가 다시 선명해졌어요. 방송은 끝났어도 그날 소개한 노래는 누군가의 하루에 남아 있었던 거잖아요. 그 짧고 정확한 연결의 순간들이 울퉁불퉁한 날을 견디게 했고, 다음 방송을 다시 준비하게 했어요.
마지막으로 『무근본 음악방송 제작기』를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겠나요? 독자님들께 한 말씀도 부탁드립니다.
우선 〈콘서트 문화창고〉를 기억하는 모든 분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방송을 함께 만든 사람들, 무대에 섰던 뮤지션들, 객석과 화면 앞을 지켜준 팬들에게는 우리가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무대 뒤편의 이야기가 될 거예요. 음악과 공연을 사랑하는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어요. 한 곡의 노래와 한 번의 무대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과 손이 움직이는지 함께 봐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방송계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목은 음악방송 제작기지만, 이 책은 결국 일어섬의 이야기예요. 좋아하는 일이 있는데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 한 번의 실패를 마지막 결론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이 책을 덮을 때, ‘뭐 어때, 다시 하면 되지.’ 하는 마음 한 줌쯤 챙겨 가신다면 좋겠습니다. 물론 재미도요. 즐겁게 읽어주세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무근본 음악방송 제작기
출판사 | 안온북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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