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좋은 관계 안에서 유유히 홀로서기 | 예스24
나를 책임지는 일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아요. 이런 마음까지 더해져야 독립이 완성되는 거죠.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6.08.06
작게
크게
공유


내 주변에는 다정한 사람들이 있고,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때때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살면서 한 번은 혼자가 된다』는 관계와 좋아하는 것들을 바탕으로 일상을 가꿔가는 조금 특별한 ‘홀로서기’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 서사는 고독하거나 처절하기보다 유쾌하고 명랑하게 펼쳐져, 읽는 이에게 ‘독립’의 새로운 면모를 짚어준다. 3인에서 2인, 2인에서 1인으로 가족의 형태가 바뀌는 18여 년 동안, 저자는 물리적인 독립에서 정서적인 독립으로 방향을 이어가며 지금에 이르렀다. 저자가 말하는 온전한 혼자의 맛, 조촐한 행복의 모습이 궁금하다. 

 

홀로서기라고 하면 흔히 ‘1인 가구’를 먼저 떠올리는데, 가족 안에서의 독립 연습이라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그렇게 방향을 정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게 아닌가 싶어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지내다가 배우자와 헤어지고 나서야 ‘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거든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포함해서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즈음 등산과 글쓰기도 시작했어요. 아이는 아홉 살이었죠.

 

그때부터 2인 가족의 일상과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 감정 같은 것들을 자주 글로 옮겼던 것 같아요. 아이의 행동도 가볍게 보이지 않았고, 당시엔 그게 좋은 글감이었으니까요. 아이의 행동과 말에 지난 내 삶을 투영하고 과거 나에게 말을 걸 듯 미주알고주알 내면의 대화를 나누었어요. 아이와 제 일상뿐 아니라 등산, 친구나 지인 등 관계 안에서 일어난 일들도 자주 글로 옮겼어요. 그 경험을 아이에게 말하고 토론 비슷하게 나누게 될 때도 많았고요. 신기한 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나면서 그것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는 거예요. 내가 나를 바꾸려고 도전했던 많은 일들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는 걸 알았죠. 

 

프롤로그에 물리적인 독립과 정서적인 독립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물리적인 독립은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과 떨어뜨려 생각하기 어렵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독립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처지가 사람을 만든다고,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결국 혼자 살 수 있게 만들어준 셈이죠. 삶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게 되고 생활에 필요한 전반을 스스로 감당하는 게 결국 물리적인 독립이었어요. 

 

그에 비해 정서적인 독립은 좀 더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딸아이와 이별할 순간이 다가왔을 때 이전에 몰랐던 마음을 분명히 느꼈거든요. 우리가 서로 깊이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다는 걸요. 헤어짐이 그걸 잃는다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관계를 바탕으로 우리 둘 다 단단히 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어쩌면 이 감정은 책임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아요. 나를 책임지는 일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아요. 이런 마음까지 더해져야 독립이 완성되는 거죠. 제게는 아이가 독립 연습에 더없이 좋은 대상이었지만 그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연인, 친구, 선생님 등등 내가 소중하다 여기는 관계를 떠올려보세요. 

 

3인 에서 2인, 2인에서 1인으로 가족의 형태가 바뀌는 동안 독립을 계속해 왔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책에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 등 본가의 구성원도 등장합니다. 그 일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이혼은 부모님의 뜻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었어요. 살면서 부모 뜻을 거스른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 일을 감행했다는 것 자체가 제 삶에 의미 있는 선택이었죠. 결정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제가 져야 했으니까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제 선택이 옳았다는 걸 가족에게 처음으로 증명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도 명절에 혼자 오는 저를 자연스럽게 맞아주고 편안히 대하셨거든요. 그건 제가 자신을 건강하게 지킨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부모의 뜻에 반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 그게 홀로서기의 출발이었던 거죠. 

 

글쓰기, 등산, 독서, 요리 등 평소 애정하는 생활의 단면이 그려집니다. 이것들은 애초에 '건강한 독립'을 의식한 취미였나요? 

원래부터 등산이나 독서, 글쓰기, 요리 등을 즐겼던 건 사람은 아니었어요. 이혼 후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을 모두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방식 자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거예요. 이혼 이전, 배우자와의 갈등 이전, 더 너머에 있는 오래전의 나는 어떤 목적으로 살았는지에 대해서요. 

 

제법 큰 결정인 이혼을 성사하고 나니 다음은 조금 쉬웠어요. 잘 굴러가던 학원을 폐업하고 1년 정도 쉬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에 드는 비용을 줄여봤고요. 돈을 적게 쓰고도 기뻤던 일은 메모하고, 글로도 써봤어요. 그 과정이 내가 원래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줬어요. 저는 ‘줄어들 걱정이 없는 즐거움’을 선호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쇼핑이나 외식처럼 당장은 즐거워도 불안을 가져오는 일보다 독서, 요리, 산책, 등산, 글쓰기처럼 원하기만 하면 내일도 모레도 이어갈 수 있는 일이 저에게 느긋함과 만족감을 줘요. 그런 저를 알게 되자 생활을 중심으로 일상의 다른 부분을 조절하는 힘도 생겼죠. 

 

홀로서기는 현재를 긍정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다면 현재 작가님 앞에 놓인 인생의 과제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지금의 생활을 잘 유지해 가는 것?! 아침에 눈을 떠서 어제 읽다 만 책을 펼쳐 들고, 토요일에는 배낭을 싸면서 ‘왜 기어이 산에 오르려 하나’ 스스로 되묻는 시간, 등산을 마치고 돌아온 일요일 밤에 ‘살아 돌아왔으니 다행이야’ 하고 잠드는 생활, 그 모든 것들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어요. 그 생활을 위해 과외도 기꺼운 마음으로 하는 거고요. 

 

비슷한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셨어요.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라시나요? 

잠깐 등산 이야기를 하자면요. 저는 산에 다니며 이제까지 제가 얼마나 자의식에 갇혀 살았는지 알았어요. 내가 모르는 곳에 이토록 생명력 넘치는 세계가 있다니! 그때 알았어요. 제가 아는 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요. 이제껏 이게 전부라고, 이 길이 끝이라고 자주 판단했다는 것도 알았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구도 봐주지 않아도, 자기 힘으로 힘껏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작은 틀 속에 갇힌 저를 밖으로 꺼내줬어요. 

 

깊은 상실감은 하나의 생각에 빠져서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해서 찾아오는 감정일지 몰라요. 그런 분들이 이 책을 읽어주신다면 감사할 거예요. 그리고 그분들이 자의식을 깨부수고 나올 만한 나름의 동력을 찾길 바라요. 그 삶이 일상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온전한 혼자가 되는 연습에 도움이 되었던 책 몇 권을 소개해 주세요.  

아래 책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공적인 영역으로 완성되는 삶도 있다 -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저, 한길사 펴냄)

한나 아렌트 사상의 흥미로운 기술 - 『한나 아렌트 평전』 (사만다 로즈 힐 저, 혜다 펴냄)

한 사람의 삶을 둘러싼 가족 그리고 인생 - 『스토너』 (존 윌리엄스 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독자적인 관점으로 삶의 방식을 말하는 책 -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저, 다산초당 펴냄)

내면의 깊이를 더해 풍요로운 삶으로 가는 길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저, 유노북스 펴냄)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Writer Avatar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Writer Avatar

존 윌리엄스

1922년 8월 29일, 텍사스 주 클락스빌에서 태어났으며 윌리엄스는 덴버 대학교에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미주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54년에 덴버 대학교로 돌아와 30년 동안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쳤다.어릴 때부터 연기와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고 사우스웨스트의 신문사와 라디오 방송국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공군 소속으로 중국, 버마, 인도에서 복무했다. 미국 공군 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한 윌리엄스는 복무 기간 동안 1948년 발표한 그의 첫 소설 『오직 밤뿐인』의 초안을 작성한다. 전쟁이 끝난 후 콜로라도 덴버로 이주한 그는 덴버 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 시기에 소설 『오직 밤뿐인』과 시집 『The Broken Landscape』를 출간한다. 이후 미주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54년 다시 덴버 대학교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교수의 길을 걷는다. 1960년 출간한 그의 두 번째 소설 『도살자의 건널목Butcher’s Crossing』은 1870년대 캔자스 개척자의 삶을 다룬 작품이었으며, 이후 두 번째 시집 『The Necessary Lie』도 발표하였다. 윌리엄스의 세 번째 소설은 미주리 대학교 영문학 교수의 삶을 다룬 『스토너』였고 1965년 출간되었다. 네 번째 소설은 1972년 발표한 로마의 가장 폭력적인 시대를 다룬 『아우구스투스』인데 그는 이 작품으로 전미도서 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윌리엄스는 1985년 덴버 대학교에서 은퇴한 후 1994년 아칸소 페이예트빌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집필 중이던 소설은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저서로는 『오로지 밤뿐 Nothing But the Night』(1948), 『도살자의 건널목 Butcher's Crossing』(1960),『스토너 Stoner』(1965), 『아우구스투스 Augustus』(1972) 총 네 편의 소설과 두 권의 시집을 발표했으며, 영국 르네상스 시대 시선집을 편집했다.

Writer Avatar

강용수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동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서양 철학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받고,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랜 시간 인생의 무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학창 시절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삶과 죽음의 번뇌》를 감동 깊게 읽고, 그에게 영향을 받아 철학의 길로 들어선 니체처럼 인생의 허무주의를 넘어서는 방법을 계속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연구와 강의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 철학을 바탕으로 자기 긍정과 행복을 위한 방법을 전하고 있다. 2002년 박사 논문 「Nietzsches Kulturphilosophie」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니체 스튜디엔에서 “거대한 과제”라는 평을 받으며 동양인의 책으로 유일하게 소개되었다. 2014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으로 기존의 염세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탈피해 행복과 욕망의 관계로 진정한 행복에 다다르는 방법을 소개했다. 2015년 쇼펜하우어의 철학 상담과 니체의 철학 상담을 「실존주의 철학과 철학상담」으로 소개했다. 2019년에는 「니체의 정의론에 대한 연구」로 대한철학회가 수여하는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중점연구소의 연구 교수로 3년간 ‘인간의 행복의 조건’에 대해 공동 연구했다. 저서로 《니체 작품의 재구성》, 《니체의 『도덕의 계보』 읽기》, 《Nietzsches Kulturphilosophie》, 《쇼펜하우어가 들려주는 의지 이야기》 등이 있으며 역서로 《유고(1876년~1877/78년 겨울) 유고(1978년 봄~1879년 11월)》이 있다.

Writer Avatar

한나 아렌트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는데, 이때 어머니를 통해 유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조숙하고 명석했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했지만,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 청강을 거쳐 1924년 마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지만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실존철학자 야스퍼스의 지도 아래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1929)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9년 스테른(Gunter Stern, 1936년 이혼)과 결혼하여 베를린에 정착한다. 이후 아렌트는 정치적 억압과 유대인 박해가 첨차 심해지던 독일에서 시온주의자들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뒤, 1933년 모든 것을 뒤로하고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 망명 후 발터 벤야민 등 많은 지식인을 만나 유대인 운동을 하던 아렌트는 다시 수용소에 갇혔다가 1940년에, 아렌트는 독일 시인이자 철학자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결혼했다. 1941년에는 아렌트를 포함하여 2500명 정도 되는 유대계 망명자들에게 불법으로 비자를 발행해 준 미국 외교관 하이램 빙엄 4세의 도움으로 남편과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아렌트는 1951년에 이르러서야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되는데, 1959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완전한 교수직에 지명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경험한 18년간의 무국적자 경험을 바탕으로 첫 번째 주저인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을 출간하고, 더불어 정치이론가로서 정치현상의 근본적 의미를 밝히는 데 전념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사상가의 길을 걷는다. 이후 『라헬 바른하겐 : 유대인 여성의 삶』(Rahel Varnhagen : The Life of a Jewish Woman, 1958),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 『과거와 미래 사이』(Between Past and Future, 196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진부성에 대한 보고』(Eichman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1963), 『혁명론』(On Revolution, 1963),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Men in Dark Times, 1968), 『공화국의 위기』(Crises of the Republic: Lying in Politics, 1969), 『시민적 불복종』(Civil Disobedience, 1969), 『폭력의 세기』(On Violence, 1969) 등 중요 저작들을 연이어 출간한다. 이 가운데 『혁명론』에는 아렌트의 최종적인 '정치' 사상이 담겨 있는데, 그가 1956년 헝가리 혁명을 계기로 혁명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프린스턴 대학 세미나에서 「미국과 혁명정신」이란 주제로 강연한 것을 정리해서 완결지은 것이다. 『혁명론』은 '새로운 시작' 과 자유를 기리는 혁명송이자, 정치학도들에게 다양한 정치적 통찰력을 제공하는 귀중한 교과서로서 의미 있는 저작이다. 아렌트는 1973년 에버딘 대학에서 '정신의 삶―사유'라는 주제로 기퍼드 강의를 요청받은 후 사유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이듬해 '정신의 삶―의지'라는 주제로 다시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 연구를 진행했다. '정신의 삶―판단'이라는 주제로 정신의 삶 3부작의 마지막 연구를 진행하던 중 1975년 12월 심근경색으로 생을 마쳤으며, 남편이 오랫동안 강의한 뉴욕주 허드슨 강 유역 애넌데일(Annandale-on-Hudson, New York)에 있는 바드 대학에 묻혔다. 그녀의 사후 『정신의 삶―사유』와 『정신의 삶―의지』가 1978년 출간되었으며, 완성되지 않은 3부에 해당하는 「판단」 부분은 유고집으로 『칸트 정치철학 강의』라는 제목으로 1982년 출간되었다. 그후 이미 발표된 글들 및 미발표 원고 등을 주제별로 편집하여 『이해에 대한 에세이』(1994), 『책임과 판단』(2003), 『정치의 약속』(2005), 『유대적 저술』(2007), 『문학과 문화에 대한 성찰』(2007) 등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