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근미래 노벨라를 써오던 이소호가 첫 오토픽션 장편으로 돌아왔다. 한 해에 시집·산문집·소설을 모두 내는 다장르 작가의, 가장 초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이번 무대는 미래가 아니라 빚이다.
『이자만큼 성실하게』는 지금까지 쓰신 소설(『나의 미치광이 이웃』, 『세 평짜리 숲』)과는 확연히 다른 세계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SF 장르가 아닌 오토픽션 장르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작년 여름,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다른 장르소설을 쓰고 있었어요. 디스토피아 세계의 두 여성이 온라인에서 디스크를 모으다가, 파일 검색을 통해 한 사람을 찾아 현실로 나서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막상 써보니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온라인과 현실의 경계를 표현하면서 그 호흡을 장르소설의 문법으로 끌고 가는 일이, 당시의 저에게는 아직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완성도도 너무 떨어졌고,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자꾸 멈칫멈칫하게 됐어요. 그건 제 작법과는 맞지 않거든요. 저는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조립한 다음, 한 번에 쏟아내듯 쓰는 편이에요. 그 작품도 이미 머릿속에서 전부 조립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써보니 아직 불완전했던 거죠.
지금의 소설을 처음 쓴 날짜도 정확히 기억해요. 1월 27일이었어요. 당시 저는 문학과지성사에서 가을에 출간될 시집 원고에 실린 「파산」이라는 시를 다듬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외국인 지인이 그 시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면서, 이 이야기를 긴 소설로 쓸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어요. 그 말을 듣고 급하게 이야기의 골조를 짰고, 그렇게 시작한 작품이 지금의 소설이에요.
그때는 정말 먹지도 자지도 않고 썼어요. 소설 속 수진이처럼요. 쇼핑을 좋아한다는 것, 할아버지가 이민자라는 것, 제가 뉴욕에 갔던 일, 등단하고 상을 받은 일처럼 소설 속 굵직한 사건들은 대부분 사실이에요. 하지만 수진이라는 인물 자체는 도스토옙스키의 「도박꾼」을 떠올리며 만들었어요. 지금 이 시대에 「도박꾼」 같은 빚쟁이 여자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했죠.
처음에는 아주 단순했어요. 한 여자가 파산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돈과 욕망에 휘둘리고, 계속 잘못된 선택을 하며, 자기 삶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여자요. 하지만 독자가 그 여자를 절대로 미워할 수는 없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것이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였어요.
‘빚’을 무대로 하는 이번 소설을 내 인생 최고의 거짓말이라 칭하셨습니다. 작가 이소호의 첫 번째 거짓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엄마, 아빠, 저를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말이 아니었을까요?
글쎄요. “사랑해요”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잘못했어요”였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것 역시 거짓말이었을 것 같아요.
원래 가장 큰 거짓말은 “다시는 안 그럴게요”잖아요.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니까요. 하나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이 다시 다음 거짓말을 낳으면서 계속 불어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결국 무언가가 만들어지잖아요.
어쩌면 저는 지금, 그렇게 불어난 거짓말들로 작가가 된 것이 아닐까요?
소설은 1부 ‘빚지기’, 2부 ‘빚치기’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빚이었던 삼각김밥 800원이 2,900만 원으로 불어나는 1부가 순식간에 끝나고, 좀 더 긴 호흡의 2부가 시작되는데요. 분량 구성에 대해 의도하신 바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일부러 그렇게 썼어요. 빚을 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거든요. 그런데 그 빚을 갚는 데에는 억겁의 시간이 걸려요. 학자금 대출도 그렇고, 부동산 대출도 그래요.
삶도 비슷한 것 같아요. 약속하는 건 순간이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건 어렵잖아요. 사랑한다는 말은 쉽지만, 그 사랑을 책임지는 일은 어렵고요.
작가로서도 마찬가지예요. 책을 내기 위해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건 한순간이에요. 하지만 그 책을 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죠. 책은 완성된 뒤에도 독자에게 건너가고, 누군가의 책장에 꽂히고, 그곳에 오래 남아요. 계약하는 순간에 비해, 책을 쓰고 건네고 남기는 시간은 정말, 정말 긴 것 같아요.
주인공 수진의 곁에는 그를 향해 매 순간 계산기를 두드리는 도윤과, 딸의 무능함을 멋대로 품평하는 미경이 있습니다. 수진 곁에 선 독자로서 수진이 그들과 벽을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수진이 끝내 그들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수진이라는 인물이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수진이 계산적인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을 거예요. 설령 예술을 선택했더라도, 나중에 가장 높은 상품 가치를 지닐 만한 분야를 골랐겠죠. 하지만 수진은 그러지 않았어요. 자기 삶도, 곁에 있는 사람도 손익을 따져 선택하는 인물이 아니기에 미경과 도윤에게 끊임없이 품평당하면서도 끝내 그들을 떠나지 못하는 거죠.
아이러니한 것은 미경과 도윤이 수진을 무능하다고 평가한다는 점이에요. 만섭과 옥분은 부를 일구어 미경을 부유하게 키웠어요. 미경은 초등학생 때부터 무용을 전공했지만 좋은 무용단에 들어가지 못한 채 곧바로 결혼했죠. 그런데도 만섭과 옥분은 단 한 번도 미경을 무능하다고 품평하지 않았어요. 미경이 실패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실패를 실패로 규정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부모가 만들어놓은 부 덕분이었으니까요.
흔히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하잖아요. 그 집안에서 마지막 삼대가 바로 수진이에요. 만섭과 옥분이 만든 부 안에서 미경은 예술을 선택하고도 보호받을 수 있었지만, 그 부가 소진되어가는 시점에 놓인 수진의 예술은 곧바로 무능으로 평가돼요. 미경은 자신이 누렸던 실패의 여유를 딸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셈이죠.
수진은 문학상을 받고 국제 문학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등 미경보다 분명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어요. 하지만 결국 돈 앞에서는 그 성취마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죠. 물론 수진의 쇼핑 중독도 한몫했고요. 저는 이것을 개인의 능력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 예술계의 구조적 문제와, 더불어 삼대에 걸쳐 이어지고 소진되어온 부의 역사와 함께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후반부의 논문(「순수 예술가의 경제적 구조에 관한 비교 연구―시인 이수진의 사례를 중심으로」)이 기억에 남습니다. 타이포그래피 등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아끼지 않은 작가님의 시가 겹쳐 보이기도 했는데요. 소설에서 시도한 또 다른 요소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논문, 정말 재미있었죠. 저도 쓰면서 무척 즐거웠어요. GPT가 이것저것 잘 알려주더라고요.
원래는 더 재미있는 장치를 많이 넣고 싶었어요. 영수증도 그렇고, 사실 다른 버전도 여러 개 만들어봤는데 그건 비밀이고요. 거지방 단체 채팅방을 구현한 부분이나, “수진 씨, 고립을 즐기세요”라고 쓰고 ‘수진’이라는 글자로 감옥을 만든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언젠가 개정판을 내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더 멋진 감옥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시집 『캣콜링』 출간 이후 산문, 소설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 오셨습니다. 시나 산문과 달리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소설의 역할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소설은 몸이 필요하다는 말을 쓴 적이 있어요. 말보다는 몸에 가까운 장르라고 생각해요. 몸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는 때로 아주 거대한 부피의 몸이 필요하거든요.
이 이야기를 시집으로 쓰라고 했다면 저는 아마 쓰지 못했을 거예요. 한 사람의 삶을 이토록 비참하고 미시적으로, 또 수직적으로 파헤쳐나가는 일은 시로는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한 인물의 삶 속으로 오래 들어가 그 사람의 몸과 시간, 감정과 선택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소설만이 지닌 재미이자 묘미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제가 ‘여성’과 ‘이방인’, ‘폭력’에 관해 이야기해왔다면, 이번 작품은 제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듯한 기분으로 썼어요. 한 독자분이 “이소호니까 여기까지 쓰는구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캣콜링』부터 지금까지 켜켜이 써온 이야기들이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져서, 독자들이 배신감을 느끼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그런데 소설 독자분들은 조금 다른 지점에서 더 많이 놀라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장르소설로 읽다가, 그것이 오토픽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요. 저에게 소설은 그렇게 제가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위치로 이동해보는 장르이기도 해요. 피해자의 자리에서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해자의 위치까지 들어가보고,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모순과 불편함을 끝까지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이자만큼 성실하게』를 읽은 후 작가님의 세계를 더 알고 싶을 독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소설은 애초에 트릴로지 시리즈의 한 작품으로 기획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자만큼 성실하게』가 첫 번째라면, 두 번째 세 번째는 어떤 내용을 품고 있을까요.
에세이 중에서는 민음사의 『쓰는 생각 사는 핑계』를 추천해드려요, 제가 쇼핑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집으로는 곧 나올 문학과지성사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죽어요』를 추천드립니다. 정말 재미있을 거예요.
옥분과 만섭의 세계관이 궁금하시다면 문학과지성사의 『홈 스위트 홈』을 먼저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제가 기획한 시리즈는 ‘브로큰 트릴로지’입니다. 『이자만큼 성실하게』는 누군가가 돈으로 부서졌다는 이야기인데 『노 땡스』는 언어로 부서지는, 『더블링』은 ‘몸’이 부서지는 이야기입니다. 다 읽으면 조금 놀라실 수 있어요. 다시 첫 권으로 되돌아가서 읽으셔야 하거든요. 『노 땡스』는 벌써 탈고를 끝냈습니다. 기대해주세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자만큼 성실하게
출판사 | 교유서가
나의 미치광이 이웃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세 평짜리 숲
출판사 | 자음과모음
캣콜링
출판사 | 민음사
쓰는 생각 사는 핑계
출판사 | 민음사
홈 스위트 홈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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