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만 깊은 한 권의 『토지』 공식 필사집 | 예스24
제가 『토지』에서 가져온 147개 글귀의 기준은 단 하나,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입니다. 인간의 본질과 세상의 모순을 『토지』는 오컴의 면도날처럼 명확하고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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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는 한국문학사의 가장 거대한 산맥이라 불린다. 작품이 지닌 문학사적 의의도 그러하지만 총 2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역시 압도적이다. 많은 이들이 언젠가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지만, 거대한 장벽 앞에서 선뜻 첫 장을 넘기지 못하거나 중도에 멈추곤 한다.

 

『토지 필사 노트』는 바로 그런 독자를 위해 탄생했다. 박경리 전작 출간 출판사인 다산북스가 선보이는, 최초의 공식 『토지』 필사집이다. 이 책은 『어른의 어휘력』,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등으로 필사 열풍을 불러일으킨 유선경 작가가 직접 엮었다. 소문난 독서광인 유선경 작가는 박경리 작가의 글을 필사하며 느낀 감정과 사랑을 듬뿍 담고, 『토지』에 대한 깊은 경탄과 이해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글귀 147편을 골라냈다. 삶의 고통과 기쁨, 인간의 욕망과 사랑, 세상의 모순과 통찰, 그리고 끝내 살아가는 힘을 이야기하는 글귀들이다. 『토지』를 읽지 않은 독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해, 누구나 부담 없이 박경리의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무엇보다 필사는 문장을 가장 깊이 읽는 방법이다. 매일 한 장씩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가며 『토지』 특유의 풍부한 말맛과 아름다운 표현, 문장의 리듬과 어휘의 결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소설이 품은 삶의 지혜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다.


두 권의 필사책을 내셨고 이번이 세 번째 책이에요. 이전에는 동서고금을 아우르며 필사 문구를 선정하셨다면 『토지 필사 노트』는 오롯이 『토지』에서만 뽑았다는 점이 다를 것 같습니다. 왜 『토지』였는지 궁금합니다.

이 인연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신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해(2025년) 봄, 『토지』를 전권 재독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제 다시 읽을 때가 됐지’. ‘한국의 셰익스피어라니까.’ 하면서 한창 재미나게 읽고 있었고, 필사 노트로 따로 엮는다거나 하는 의도는 없는 순수한 독자인 입장이었어요. 그 시점에 다산북스에서 『토지 필사 노트』를 제안받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독자들에게 마음껏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기뻤고, 반갑고 고마운 제안이었습니다. 여기서 ‘마음껏’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저작권과 관련해서라고 할 수 있어요. 이전에 두 권의 필사책을 냈는데요, 그 인용 허가 받기가 꽤 까다롭습니다. 반면에 『토지 필사 노트』는 저작권을 소유한 토지문화재단과 출판권을 가진 다산북스에서 마음껏 인용하라고 허가해 주셔서 신나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토지』의 글귀들을 오늘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맡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요즘처럼 빠르게 소비하고 쉽게 지치는 시대에 『토지』를 읽고 필사하는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순전히 개인적인 소감일 수 있습니다만, 저는 제가 지칠 때마다 혹은 살고자 하는 투지가 흐릿해질 때마다 『토지』를 읽었습니다. 『토지』를 읽으면 이상하게 ‘투지’가 생겼거든요. 저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드라마를 쓰는 작가 선배도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의식처럼 『토지』 1부를 읽는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아, 『토지』에 그런 힘이 있는가보다…… 하고 막연히 여기다 이번에 『토지 필사 노트』를 작업하면서 조금 더 체계적이랄까 『토지』와 박경리 선생님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일단 『토지』는 한민족이 가장 치욕스럽고 비참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이 『토지』를 집필한 시기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로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박경리 선생님은 그 두 개의 시대를 몸으로 살아낸 분이지요. 더해서 한국전쟁까지요. 독자가 굳이 이 점을 의식하지 않아도, 또 선생님도 의도하지 않으셨겠으나, 글에 배어있는 아우라를 결코 무시할 수 없고요. 

 

사실 한국문학에 이 두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토지』에는 단순히 시대에 희생된 인물들이 살지 않아요. 그렇다고 영웅이 등장하지도 않아요.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로도 있을 보편적인 인간 군상입니다. 그들이 어떻게든, 등장인물 운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랄용천을 해서”라도 내 길을 가고자 합니다. 등장하는 600여 인물 대부분이 놀라울 정도로 어떻게든 자기의 길을 찾아내서 기어이 갑니다. 각양각색의 모양새로요. 물론 비극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한 인물도 있지만, 그들은 또 그들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지요.

 

우리가 쉽게 지친다면, 우리의 삶에 태생이나 욕망, 자유 등을 방해하는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해 요소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옷만 바꿔 입을 뿐 계속 존재하지요. 『토지』는 방해 요소들을 어떻게 없애느냐는 차원을 훌쩍 넘어 그것들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고, 견디고, 승화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들이 각 개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이야기로 펼쳐 보입니다. 박경리 선생 특유의 놀라운 통찰력과 표현력으로 말이지요. 개별자가 겪는 고통은 늘 유별하고 고유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진리이고 성 베드로시안이 했던 “아무리 어둡고 험난한 길이라도 나 이전에는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고갯길이라도 나 이전에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본 적 없는 그런 길은 없다.”라는 말도 진리입니다. 

 

『토지』는 누구나 겪음 직한 고통에 대한 해법과 위로를 줍니다. 어떤 말 한마디가 아니라 등장인물이 살아내는 방식을 통해서요. 이런 면에서 『토지』는 고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작품을 단순히 독서에 멈추지 않고 필사를 한다면 토지가 주는 힘을 더 크게 받을 수 있고, 이것을 바탕으로 내 삶을 단단하게 바로 세울 수 있지 않을까요.

 

『토지』를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먼저 ‘『토지』를 무서워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토지』가 대단한 작품인 줄 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단 분량이 방대하고요. 또 『토지』를 정치적으로 해석한 오해라든가 선입견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토지』의 문장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다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이 책은 『토지』를 한 번도 읽지 않은 예비 독자를 위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행을 선망하고 결행하는 이유가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일상을 환기할 수 있기 때문이잖아요? 이 책의 문장들을 읽고 필사하는 동안에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틀에 박힌 표현이나 어휘, 통찰력이 아니거든요. 하루에 한 장, 하루에 1~20분 정도 시간을 내서 천천히 가벼운 마음으로 필사해 보시라고, 그러다 보면 아마 저처럼 우리 집에 평사리(토지의 공간적 배경) 주민들과 함께 살아 든든해지는 기분까지 느끼게 될지 모릅니다. 『토지』는 재미있고, 정겹고, 똑똑해요. 

 

이번 책을 만들며 그간 세 번 완독하신 『토지』를 다시금 살펴보셨겠지요.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읽으셨을 듯한데, 새롭게 발견한 『토지』 그리고 박경리 문장의 매력이 무엇이었나요?

처음 읽을 때는 이야기의 전개가 궁금하니까 서사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이야기의 맥락이라든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살피게 되더라고요. 그때도 박경리 선생님의 문체가 동시대 여느 작가들과 다른 점을 느끼기는 했습니다. 인물 간의 대화가 완전히 구어체예요. (제가 또 방송작가를 오래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대로 현대 드라마에 써도 이질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요. 실제로 드라마 <토지>를 보면 소설 속 대화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긴 부분이 적지 않아요. 박경리 선생님 문체가 해석의 여지 없이 정확한 어휘, 치밀한 관찰과 공부에서 비롯된 기발한 표현력, 또 끝까지 밀어붙이는 박진감이 넘친다는 점은 처음 읽을 때부터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플롯에 약간 독특한 점이 있는데 아무리 주요한 사건이라도 길게 끌지 않아요. 꼬인 매듭을 딱 끊어냈으면 그에 대한 감상이나 미련 없이 다음 이야기로 가차 없이 넘어갑니다. 질질 끈다는 게 전혀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방식이라서 처음에는 생소했습니다. 

 

거듭 읽으면서 놀란 부분은 ‘문장이 신선하다, 대단히 신선하다!’였습니다. 다시 읽는 작품인데도 이런 느낌을 받은 경험은 처음이었는데요. 20대 시절에 처음 읽었을 때는 자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무언가 제 뇌 속의 언어 영역이 정갈하고 청량한 물에 씻기는 것 같은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이 21세기에 다시 읽힐 것을 염두에 두셨을 리는 없고, 우리의 환경이 변화한 데서 온 상대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 10~20대 청년들이 1970~80년대 팝송을 많이 찾아 듣는다고 해요. 올드팝이죠. ‘올드’가 붙었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올드하다’고 표현할 때는 (이런 표현 자체도 올드한 감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식상하다, 촌스럽다, 시대에 뒤처졌다 등의 의미를 내포해요. 올드한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올드팝을 일부러 찾아 듣는 것이 신기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답변이 놀라웠습니다. 신선하다는 거예요. 듣고 보니 그렇죠? 우리야 자주 들어 익숙하지만 청년들에게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사운드와 악기 구성, 리듬, 창법인 거예요. 저한테 『토지』가 딱 그런 느낌이었던 셈이지요. 듣던 말만 듣고, 하던 말만 하고…… 그게 아니면 이상하든가, 괴상하든가…… 이런 언어의 식상함에서 비롯된 갈증을 『토지』가 풀어줘요. 익숙한 상황인데 표현이 신선하다, 그런 점을 크게 느꼈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저의 20대 때보다 현재가 더 어휘나 표현이 빈곤한 환경이 됐다고도 할 수 있고요. 정리하면 옛날 소설인데 오히려 새롭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문장들을 이번 『토지 필사 노트』에 추려서 옮겼습니다. 

 

147개의 구절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어려우셨을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아쉽지만 넣지 못한 글귀도 있었다면 살짝 말씀해주세요.

『토지』는 기본적으로 소설, 가공의 인물들과 상황들이 얽히고설키는 이야기책입니다. 더구나 대하소설이라서 1897년부터 1945년이라는 시대 배경에, 인물 600여 명이 등장합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이토록 다양한 상황과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어떤 앞뒤 맥락에서 나온 구절이냐에 대한 설명 없이 문장 하나만으로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을 것인가였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그럴 수 있는 문장만 골라서 수록할 수는 없고요. 내용적으로 의미 있고 표현도 아름다워서 필사하는 재미를 주지만 동시에 배경 설명 없이도 현재의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문장을 추려내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추려내면서 계속 스스로에게 이거 너만 알아듣는 소리인 거 아니야? 하고 자문했고요. 

 

다른 한 가지는 『토지 필사 노트』는 모두 7개의 주제와 장으로 구분돼 있는데요. 각 장의 주제는 『토지』에 대한 비평서 등을 여러 권 참고하면서 토지의 전체적인 주제를 염두에 두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제가 정한 거란 말이죠? 이 주제에 억지로 『토지』의 문장을 끼워맞추거나 이용해서는 안 된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이 사항을 늘 의식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해 작업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최종적으로 상황과 맥락을 알아야 감동적일 수 있는 문장들은 뺄 수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끝까지 망설이다가 수록한 문장이 몇 개 있기는 합니다. 제가 너무 넣고 싶어서 넣은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아쉽지만 넣지 못한 글귀가 무엇이냐고 질문하신다면 그러니 당연히 앞뒤 맥락을 알아야 감동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만 소개하자면 9권 382쪽에 나오는 이 대목입니다. 

 

무조건 방치상태로 두자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평사리에 관한 한 자신의 집도 자연에 맡기고, 그냥 이대로 있는 불투명한 상태에서 서희는 쉽사리 일어설 수가 없는 것이다. 여러 가지 괴롭기만 한 추억 중에 다른 몇 가지, 최참판 가문의 이력과 관련이 없다면 없다고도 할 수 있는 서희 자신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여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서희는 유아적인 원망과 슬픔에 빠지곤 했었다. 

 

왜 나만 혼자 남겨두셨소. 모두 다 어깨의 짐을 풀어놓고 나한테만 떠맡겨놓고 가시지 않았습니까? 형식이지만 최씨네 가문 …… 이제 뼈대는 세우지 않았소? 그러나 내가 받은 수모, 상처, 설움, 아아 나는 지치고 피곤하고 더 이상은 부대끼고 싶지가 않소. 그 부끄럽고 끔찍스럽고 저주스런 일을 지우고 싶소! 지워주시오! 지워주시오!’

 

철부지처럼 훌쩍훌쩍 울고 싶은 심정을 외면하듯 서희는 평사리를 외면하는 것이다. 

 

이 대목만 따로 떼어놓고 읽으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서희의 캐릭터와 동떨어져 있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이 상황은 서희의 모든 복수가 승리로 끝나고 평사리의 땅과 가택을 모두 되찾은 다음입니다. 그런데 정작 서희는 자신의 옛집은 물론이고 평사리에도 가지 않고 진주에서 살아요. 서희의 통한이 처음으로 터져 나오는 장면이지요. 이 대목을 통해서 그토록 강인했던 서희가 그동안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느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거예요. 

 

『토지 필사 노트』를 만들며 작가님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제 성향이 일생 ‘가장’, ‘제일’, ‘최고’…… 이런 게 없어요.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그런 식입니다. 반대로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고 그러기도 합니다. 『토지 필사 노트』에 수록한 문장들 모두 제게는 보물들이라서 ‘가장’, ‘제일’, ‘최고’를 딱 고르기는 어렵습니다만, 작업을 모두 마친 다음에도 내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맴돌았던 대목이 있습니다. 

 

한복아, 또 오니라아.” 

 

예사로운 말이지요. 그런데 깍쟁이 영만이가 한복이한테 그 말을 한 앞뒤 상황을 알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그 외에 이번 책의 차례가 무척 깁니다만, 모두 토지에 나오는 글귀들을 짤막하게 제목으로 삼았거든요? 차례를 보면서 명언집이 아닌가…… 혼자 감탄하곤 합니다. 몇 개만 옮겨볼까요?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가슴에 박힌 멍이 일렁이는 것이다.’, ‘정이란 생명이 움직이는 근본이오.’, ‘산 보듯 강 보듯, 어 가자!’, ‘희망 그 자체를 겁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망하는 것만으로 생명을 지탱할 수 있었다.’, ‘칼을 뽑지 못하고 바늘을 뽑았다.’, ‘오고 있는 자는 또 갈 것이요, 가고 있는 자는 다시 올 것이다.’ 등등…….

 

덧붙여 이 책의 프롤로그로 인용한, 박경리 선생님이 1973년판 토지의 「자서」 중 이 대목에 깊이 공감하고 경의를 표했습니다. 

 

진실이 머문 강물 저켠을 향해 한 치도 헤어나갈 수 없는 허수아비의 언어, 그럼에도 언어에 사로잡혀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은 그것만이 강을 건널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전율 없이 그 말을 되풀이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저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 운명을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서 가슴이 저릿했습니다. 

 

문장을 선정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의 독자들에게 특히 필요한 주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제가 한 번밖에 살고 있지 않아서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정신적으로 굉장히 위태로운 시대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미 적신호를 켰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단순히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예전에 없던 것이 연속적으로 생겨나 주류가 되기 때문에라기보다는……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류의 역사에서 되풀이된 일이기 때문에요.

 

그런데 그때와 지금 분명하게 다른 사실이 있어요. 그때는 ‘함께’였지만 지금은 ‘각자’라는 점입니다. 이 점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고 위태롭게 만들어요. 이런 현상이 자발적인 것도 있겠지만 시대적 환경이 그렇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꺼내어 상담하거나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상대가 없어요. 예전에는 이런 역할을 부모나 선생, 선배, 혹은 친구가 해주었다면 지금은 서로가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저 역시 많은 책을 읽으면서 해법을 풀었지만 『토지』는…… 이것이 어쩌면 소설과 인문서의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해법을 말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투지를 끌어내 주는 거예요.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요. 아주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기 때문에 세상과 인간에 대해 시야가 넓어지고요. 박경리 선생님은 아주 가차 없이 묘사하고 표현하셨거든요. 그에 따라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생깁니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고귀함을 눈물이 날 정도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저한테는 『토지』가 우리 집에 있는 살붙이 같아요. 

 

지금의 독자들에게 특히 필요한 주제라고 한다면 냉철함과 연민이라고 생각해요. 두 가지 덕목을 갖출 수 있다면 이 위태로운 시대를 단단하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필사 노트가 그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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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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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1926년 10월 28일(음력)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50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하고, 『표류도』(1959), 『김약국의 딸들』(1962)을 비롯하여 『파시』(1964), 『시장과 전장』(1965)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하여 4만 여장 분량의 작품으로 26년 만인 1994년에 완성하였다. 박경리 개인에게나 한국문학에 있어서나 기념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원고지 분량에 걸맞게 6백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시간적으로는 1897년부터 1945년까지라는 한국사회의 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격동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동학혁명에서 외세의 침략, 신분질서의 와해, 개화와 수구, 국권 침탈,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종적인 축으로 하여 진주와 간도(만주), 경성, 일본 등으로 삶의 영역이 확대되고 윤씨 부인과 최치수, 최서희로 이어지는 최참판댁과 연결되어 삶을 엮어가는 평사리의 주민들, 김길상이나 김환을 중심으로 한 민족운동에 투신하는 인물들, 최참판댁의 전이과정 속에서 부침하는 신지식인들 등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이 형상화되어 있다.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土地)』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의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에 선정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문학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으며, 연세대학교에서 용재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1996년부터 토지문화관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현대문학 신인상, 한국여류문학상, 월탄문학상, 인촌상, 호암 예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칠레 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 기념 메달’을 수여 받았다. 박경리의 문학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소외문제, 낭만적 사랑에서 생명사상으로의 흐름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다. 그 생명사상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바로 '토지'이다. 박경리에 의하면 '존엄성은 바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파시』 제1권, 131면, 1993)인데 그의 작품에서 이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생명본능 이상으로 중요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게 하는 기존의 관습과 제도 및 권력과 집단에 대한 비판, 욕망의 노예가 되어 존엄성을 상실한 인간들에 대한 멸시와 혐오는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존엄성을 상실할 때에 바로 한이 등장하는 것이며 이 한을 풀어가는 과정이 곧 박경리 문학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김은철 상지대 국문과 교수) 지금까지 이 작품에 대한 여러 논의들, 즉 역사소설인가 아닌가가 문제시 되었다거나 농민소설로서의 면모가 부각되었다거나 총괄체 소설, 가족사 소설, 민족사 소설, 총체소설 등의 다양한 장르로 규정되어 온 것은 곧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서사구조, 다양한 층위의 세계가 중층적인 구조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문학뿐 아니라 환경과 생태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1999년 원주 오봉산 기슭에 토지문화관을 세우고,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2003)하고,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로 엮은 환경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2004)도 출간하는 등 사회와 인간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놓치 않았다. 2008년 5월5일 향년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한국현대문학의 영원한 고향으로 남았다. 타계 이후 정부에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장편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를 [현대문학]에 연재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수필집 『Q씨에게』, 『원주통신』, 『만리장성의 나라』,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생명의 아픔』 등과 시집으로는 『못 떠나는 배』, 『도시의 고양이들』, 『우리들의 시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등이 있다. 그밖의 주요작품에 『나비와 엉겅퀴』, 『영원의 반려』, 『단층(單層)』, 『노을진 들녘』, 『신교수의 부인』 등이 있고, 시집에 『애가』가 있다.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되었으며 시인 김지하가 사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