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경계가 우리의 마음까지 갈라놓을 수 있을까? 청소년들이 만들어 갈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믿음직한 질문을 담아 왔던 신예 이새벽 작가가 『물에 발을 담근 채』로 독자들을 만난다. 『물에 발을 담근 채』는 청소년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첫사랑의 실패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그려 냈다. 인간만이 아닌, 비인간의 성장에 대해 깊이 고민한 이새벽 작가의 시선이 돋보인다.
작가님, 한낙원과학소설상,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수상 이후 독자들과 만나는 첫 단독작입니다. 『물에 발을 담근 채』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물에 발을 담근 채』는 사실 이전에 한낙원과학소설상을 통해 발표했던 「영의 자리」를 반성하며 구상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영의 자리」에는 『물에 발을 담근 채』의 주인공 ‘성빈’과 같이 안드로이드인 ‘도아’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소설을 쓴 뒤 한참이 지나 다시 읽으며 제가 도아라는 인물을 너무나도 안드로이처럼 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영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인물은 오직 인간인 ‘수아’뿐입니다. 도아는 이야기의 흐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러한 수아와 도아의 차이가 제가 가진 편견 때문이 아닐까 점검해 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성장하는, 성빈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들어오면 결코 같은 이야기가 될 수 없는 성빈의 이야기를 써 보고자 했습니다.
연과 성빈이 처음 만나고 마음을 나누게 되는 공간은 도예부입니다. 도예는 근미래 배경과 다소 멀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안드로이드와 도예를 결합하게 되었나요?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안드로이드가 성장을 이루는 이야기를 쓰고자 하며 성장이란 무엇일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내린 결론은 성장은 자신의 부족한 면, 부정적인 면을 인식하고 그럼에도 그것이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라면 부족함을 결함으로 여기고 그 결함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성장이 아닌 ‘업데이트’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아주 매끄러운 방식이죠. 이런 매끄러움 속에서 결함을 품는 사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백자를 떠올렸습니다.
성빈이 자신이 갖게 된 인간을 향한 악의를 받아들이는 일과 백자가 매끄러운 표면 안에 남겨진 얼룩으로 고유한 것이 되는 일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백자의 이러한 얼룩의 탄생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불과 바람이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우연은 사람에게나 안드로이드에게나 공평하게 작용하니까요. 성빈이 백자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제게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안드로이드 성빈을 향한 인간들의 차별은 곧 ‘다름’에 관한 차별로 다가왔습니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다루면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무엇인가요?
억지로 다름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구태여 다른 부분을 찾아내는 일은 비인간 인물을 쓸 때 쉽게 하게 되는 실수라고 느껴요. 차이에서 출발해 차별이라는 갈등을 거쳐 그것의 봉합이나 화합으로 나아가는 것도 물론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 될 수 있겠지만, 저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싶었어요. 사실 성빈과 인간의 차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 안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찾아내는 일, 그리고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빈에 의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조건이었던 것 같아요. 쓸 때는 이렇게까지 의식하고 고민하지 않았지만, 쓰고 나서 보니 그렇습니다.
연과 성빈이 현실이 아닌 가상 공간에서 다시 만나며, 새로운 앞날을 기약하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처음부터 이들의 재회 장소를 가상 공간으로 설정하셨을까요?
무책임한 작가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야기를 쓸 때 아무것도 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인물들이 어디로 가는지 그냥 지켜보는 편이에요. 그래서 소설의 초반부를 쓸 때는 저도 연이 어떤 아이인지, 성빈이 어떤 아이인지 몰랐습니다. 제게 소설을 쓰는 일은 그 아이들을 알아 가는 과정이거든요. 그렇게 알게 된 아이들이 자기 의지대로 나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인물들이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 채 헤매기만 할 때면 저도 아주 답답해지는데요, 다행히 이번 소설의 주인공인 연과 성빈은 자기 길이 어디인지 비교적 잘 아는 아이들이었습니다. 평생 남을 흉내 내는 일을 연습한 연에게 가상 공간에서의 역할극은 아주 매력적인 놀이이지 않았을까요? 또한 연을 감추고 있는 필터를 단숨에 전부 벗겨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성빈이지 않을까요? 제게는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연이 성빈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은 함께 물에 ‘손’을 담그는 때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제목이 왜 『물에 발을 담근 채』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자립(自立)이란 말이 있듯이 성장은 종종 홀로 ‘서는’ 일로 표현되곤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뽀송뽀송하고 단단한 땅 위에만 서는 일이 성장은 아니겠지요. 어쩌면 더럽고 축축한 물웅덩이에 한쪽 발을 걸친 채 서 있어야 하는 때도 있을 거예요. 앞서 제가 성장을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었지요. 내 발이 무엇을 딛고 서 있는지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저는 성장의 이미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성빈과 연은 각각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인식하고 결말에 가면 자신이 어떤 축축함과 질척거림 속에서 성장하게 되었는지 아는 아이들입니다. 두 아이의 성장을 보여 주기에 알맞은 표현이라 생각해 지금의 제목으로 결정했습니다.
작품을 쓰면서 작가님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던 장면이나 문장은 무엇인가요?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성빈이 물수제비를 하고 연에게 복수를 이야기해 주는 장면이요. 성빈의 물수제비는 처음에는 성공하고 두 번째는 실패하는데요. 많이 연습한다면 물론 원하는 만큼 돌을 튀게 만들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물수제비는 우연에 많이 기대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돌의 모양, 수면의 상태, 바람의 흐름 등 돌이 튀는 수에 영향을 줄 만한 자연적 요소가 많으니까요. 성빈의 복수 또한 이렇게 이뤄지겠죠. 또한 도예도 그렇고요. 성빈이 계속해서 우연 속에 있으며 자신의 의지를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한 장면이라 좋아합니다.
성빈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는 모두가 인간으로 대해 왔으면서도, 단칼에 인간과 다르다고 선을 긋고 급기야 성빈은 그런 인간들의 태도를 학습합니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인간다움’이 궁금합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알고 싶어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있는데요, 쓰다 보니 더더욱 모르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감정이 바로 인간과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를 구별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만 성빈이 말했듯이 “인간의 감정이란 결국 신경전달물질이 전달된 결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지금으로선 우리가 갖고 있는 인간이라는 자각, 그리고 거기서부터 오는 부끄러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놓지 않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부끄러움과 반성, 반성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물에 발을 담근 채
출판사 | 사계절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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