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이렇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권만 본 사람은 없다고요. 수박씨를 빼낸 자리에 생긴 수박 물웅덩이에 몸을 퐁당 담가보는 상상력(『수박 수영장』), 겨울에 만난 눈사람 친구와 함께 맞는 봄의 의미를 서정적으로 묘사한 장면(『눈아이』), 읽다 보면 성인도 여지없이 눈물을 흘리게 되는 소시지 할아버지와 개의 우정을 담은 그래픽노블까지.(『안녕』) 그렇게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궁금했습니다. 그의 작업 이야기가요.
멋진 그림책을 만나면 늘 그렇습니다. 그림책 작업이 비눗방울을 오래 간직하는 마법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짝이는 찰나에 가까워 한번 통과한 뒤에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이 비눗방울 같거든요. 그런데 누군가는 그 비눗방울을 오래 간직하는 비법을 아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어린이의 시선에 눈 맞출 수 있는 이야기를 짓고 그리는 작업이 빛나는 얇은 막 위에서 균형을 잡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바람을 타고 훌훌 날아갈 수 있을 것처럼 맑고 청량해 보이지만, 모든 작업의 뒷면에는 쉬이 정리되지 않는 각자의 분투가 있을 테니까요. 안녕달 작가의 작업실을 서면으로 방문해 보았습니다.

『복숭아와 애벌레』의 출간 후기를 들려주세요.
작년에 『수박 수영장』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은품으로 『복숭아와 애벌레』 미니북을 만들었어요. 그 후에 편집자님이 그 이야기를 정식 출간해 보자고 하셔서 그림을 다시 그리고 이야기를 더 넣어서 만들었어요. 미니북으로 한 번, 본 책으로 또 한 번, 이렇게 마감을 두 번 한 느낌이에요. 드디어 끝나서 매우 기쁩니다. 작년에는 복숭아가 나오는 책을 만든다는 핑계로 평상시에 잘 못 먹는 비싼 복숭아를 양심의 가책도 없이 신나게 사 먹었어요. 이제 복숭아를 사 먹을 핑계가 사라진 것이 너무 아쉽네요.
『수박 수영장』 10주년 기념 사은품으로 제작한 미니북
『수박 수영장』 『할머니의 여름휴가』와 함께 『복숭아와 애벌레』를 자연스럽게 ‘안녕달 여름 3부작’이라고 불러 보게 됩니다. 여름을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여름의 매력이 궁금합니다.
네, 여름 좋아해요. 제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참 많지만, 요새 가장 좋아하는 건 덥고 눅눅한 여름 공기 속에 드러누워 있는 거예요. 가만히 누워 있는 제 곁에서 수많은 생명이 쑥쑥 자라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여름이 되면 나무에 매달린 여린 잎 빛깔이 짙어지고, 크기도 커져요. 여름바람에 짙은 초록빛 잎이 흔들리고 저 혼자 나른하게 누워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여름의 그 순간이 좋아요.
작가님의 그림책은 반복과 차이, 그림의 결, 주변부의 디테일 등을 살펴보는 재미가 큽니다. 이번 책에서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아이가 작은 애벌레가 돼서 복숭아를 온몸 가득 먹는 장면도 좋지만, 책 중간에 애벌레가 아이가 돼서 뭘 했는지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어요. 일상이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라 좋아해요. 이 장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할 때 ‘애벌레가 갑자기 아이만큼 커지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어요. 집에 있다가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갈 때 세상이 갑자기 넓어지는 느낌, 내가 살던 세계가 아주 작게 느껴지고 그 너머의 세상이 새삼스럽게 보이는 느낌처럼 ‘세상이 갑자기 새로워지는 감각’을 책에 담고 싶었어요.
『복숭아와 애벌레』 본문 이미지
『복숭아와 애벌레』에는 무당벌레, 박새, 잠자리, 나비, 나방, 벌 등 날아다니는 다양한 존재가 등장합니다. 작가 소개에 “까마귀가 날아오는 산 중턱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쓰신 게 기억에 남아요. 요즘 좋아하는 일상의 풍경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희 집 창밖에 주렁주렁 핀 아카시아꽃이 흔들리면서 향기를 풍기는 늦봄 풍경도 좋고, 일하다 내려가면 있는 작은 공원에서 동그란 몸으로 훌라후프를 동글동글 돌리고 계시는 아주머니를 보는 것도 좋고, 집에 돌아오는 밤길에 작은 나방이 열심히 날아가는 걸 보는 것도 좋아요.
한 권의 그림책을 완성하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칠 텐데, 그중 특히 좋아하는 작업과 근육을 좀 더 기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좋아하는 작업 과정은 처음에 ‘이걸 만들어 봐야지’ 하고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뿐이에요.(웃음) 그 이후의 과정들은 인내하는 마음으로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하고 있어요. 다 잘하면 좋을 것 같지만 요즘 가장 기르고 싶은 능력은 글쓰기인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어서 글을 쓸 때 어려움을 느껴요. 책을 많이 읽으면 좋아진다고 해서 책을 더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복숭아와 애벌레』 장면 일부 스케치와 표지 아이디어 스케치
『안녕』 『눈, 물』과 같은 그래픽노블도 발표해 오고 계십니다. 언젠가 그래픽노블이나 그림책으로 그려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안녕』과 『눈, 물』의 시초가 되는 이야기가 있어요. 방에서 혼자 자란 아이의 이야기예요. 원래 그 이야기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서 굉장히 오래 붙들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야 할지 몰라서 여전히 들고만 있어요. 작년에도 ‘올해는 끝내야지’ 했는데 못 했고, 올해도 ‘끝내야지’ 하고는 들여다보고만 있어요. 그래도 저에게는 꼭 넘고 싶은 산 같은 이야기라서 언젠가는 완성해서 보여 드리고 싶어요.

작업을 하는 동안 함께 한 반려 [ _______ ]
반려동물은 아니지만 작업하는 동안 이웃해 사는 새와 함께했어요. 제가 산 중턱에 살다 보니까 나무가 많아서 새를 되게 많이 봐요. 그래서 겨울에 먹이가 없는 시기에 창가에 먹이를 조금씩 줬어요. ‘까마귀는 똑똑하니까 계속 먹이를 주면 나를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는데 정작 까마귀는 제가 준 먹이를 안 먹고 다른 새들이 자주 먹이를 먹으러 왔어요. 그러다 보니 새는 저를 못 알아보겠지만 제가 알아보는 새들이 생겼어요. 봄부터는 새들이 스스로 먹이 활동을 하도록 물그릇만 놔두었는데, 매일 오던 직박구리가 그 물그릇에서 물을 마시고 몸도 씻어요. 까마귀가 그 물그릇 밑에 붙여 놓은 테이프를 떼어 가기도 해서 저 혼자 웃겨 하고 있어요.
작업을 하는 동안 찾아온 곤줄박이와 『복숭아와 애벌레』 작업 당시 책상 풍경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복숭아와 애벌레』를 그릴 때는 주로 집에서 작업을 했어요. 집에서 가장 큰 창 앞으로 식탁을 끌고 와서 그 앞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겨울에는 창밖에 새가 날아와서 제가 놓은 먹이를 먹고 있는 걸 보면서 일했어요. 마감할 때는 일이 많아서 계속 집 밖에 못 나가고 그림만 그리게 돼요. 그림 그리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창밖에 새가 있으면 엄청 기뻤어요. 저에게는 새가 아주 귀여운 손님 같았어요.
이번 책 출간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집 앞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해요. 한동안 도서관이 공사를 하느라 문을 닫아서, 책 10권을 한꺼번에 빌려주셨어요. ‘다 읽어야지’ 하면서 조금 읽고 여기저기에 두기를 반복해서 집 안 곳곳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놓여 있어요. 이제 곧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여는데, 아직도 못다 읽었어요. 그동안은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못 읽었는데, 책이 출간되면 빌려온 책을 모두 읽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반납하고 싶어요. 아······. 그런데 아무래도 못할 것 같네요. 제가 주제넘게 너무 두껍고 어려운 책을 빌려온 것 같아요.
작업을 하는 동안 재미있게 본 타인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과 냠냠』이라는 그림책이에요. 아기들이 보는 보드북이라 짧은 내용이 단순한 형태의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요. 그림이 무척 예쁘고 책 크기도 아담해요. 『복숭아와 애벌레』를 만들 때 ‘이렇게 귀여운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앞에 놓고 일했어요. 제가 그 책만큼 작은 판형으로 『복숭아와 애벌레』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출판사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어요.

"우아! 복숭아 향이 나는 똥이라니. 진짜 좋은데?"
"그럼 내가 바꿔줄까?"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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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