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삭의 중화권 대중문화와 문학
[김이삭 칼럼] 타이완 퀴어 콘텐츠와 양안 관계 | 예스24
세계 최초로 대통령 집무실에서 드래그 퀸 공연을 한 타이완. 퀴어 문학과 최근 화제가 된 천투도우의 노래가 불러온 질문까지.
글: 김이삭
2026.07.08
작게
크게
공유

올해 1월 타이완 문학 기지의 상주 작가로 있을 때 StoryStudio(故事)의 ‘들려줄 이야기가 있어요(有故事要說)’ 팟캐스트 녹음을 하게 되었다.1 그리고 녹음 전날에 질문지를 받았을 때, 내가 이 질문에 답해도 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작가이자 화어권 문학 번역가에게 던질 법한 질문도 있었지만, 한국인이기에 던지는 질문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국 정치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2

 


그날 두 시간 동안 나눴던 이야기를 한 줄로 정리해 보자면, 한국은 타이완을 잘 모르고, 타이완도 한국을 잘 모른다는 거였다. 특히 정치가 그러했다. 한국이 한국 사회의 사회적·정치적 맥락을 바탕으로 타이완의 정치를 파악하려고 하면 오독을 할 수밖에 없고, 타이완 또한 자국의 사회적·정치적 맥락, 특히 양안 관계를 기반으로 한국의 정치를 이해하려고 하면 오독을 할 수밖에 없다.3 

 

양안 관계라고 하면 한국의 남북한 관계가 떠올라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과 타이완의 양안 관계는 한국과 북한의 남북한 관계와 달리 여전히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며, 어쩌면 (타이완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일 지도 모른다. 게다가 북한과의 모든 교류가 단절된 우리와 달리, 타이완은 중국과 민간 교류가 가능하다.

 

만약 북한이 우리보다 면적으로는 266배나 크고, 인구로는 60배나 더 많았다면, 개혁개방으로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면,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와 경제, 문화, 인적 교류도 가능했다면,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남북한 관계는 어떠한 양상을 띠게 되었을까? 과연 지금처럼 유명무실할까? 

 

아마 전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정치적 의제 중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눈에 대체 역사 소설의 설정처럼 보이는 이러한 가정은 타이완에게는 눈앞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 현실은 다른 사회적 의제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맥락이 된다.

 

퀴어 콘텐츠 역시 어느 정도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퀴어 문학에서 드래그 퀸까지

 

한국 독자에게 타이완 문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일까. 아마 『귀신들의 땅』, 『악녀서』, 『악어 노트』, 『1938 타이완 여행기』와 같은 퀴어 문학이 아닐까. 퀴어 문학은 자유와 인권, 포용을 중시하는 타이완 사회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렌즈인 동시에, 중국과는 다른 타이완의 정체성을 외부에 드러내는 상징적 기표이기도 하다.4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16에서 수상을 했던 님피아 윈드가 세계 최초로 대통령(총통) 집무실에서 드래그 퀸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5

 

님피아 윈드의 <My love letter to Taiwan> 영상


 

<Ms. Potato>와 천투도우의 인기는 퀴어 프랜들리인가, 핑크워싱인가?

 

천투도우는 소셜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중국 왕홍이자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이로 과장된 연기로 코믹한 콘텐츠를 주로 올려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 2월에 발표한 노래 <Ms. Potato>6가 강한 중독성으로 돌풍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는데, 중국 연예인들이 <Ms. Potato>의 춤을 따라 추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고, 천투도우 또한 대형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이런 천투도우가 타이완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받았을 뿐만 아니라 팬미팅까지 열었고, 이를 계기로 타이완 내부에서 적지 않은 논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타이완의 서점인 랑환 서점(瑯嬛書屋)에서는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을 맞아 “〈Ms. Potato〉는 성소수자 친화적인가, 아니면 핑크워싱인가?”라는 주제로 살롱을 열기도 했다. 

 

랑환 서점은 천투도우의 인기 현상을 두 시각으로 보기를 제안했다. 

 

천투도우의 인기를 성소수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레즈비언 가시화로 봐야 할까? 아니면 정치적 의미를 지닌 퀴어적 존재를 귀엽고 무해한 존재로 포장함으로써 정치성을 지워버린 걸로 봐야 할까? 

 

후자의 경우 더 나아가 이런 문제의식도 제기했다. 

 

중국 정부가 퀴어를 '허용'하는 듯한 다원적 이미지를 내세워서 여성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문제를 희석한 건 아닐까. 어쩌면 이는 훨씬 더 교묘한 정치 선전이자 통일전선 전략일 수도 있지 않을까.7

 

위와 같은 문제의식이 타당한지, 실제로 그러한 의도가 있었는지는 외부에 있는 사람이 쉽게 판단하거나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천투도우를 둘러싼 타이완 내부의 논쟁이 '통일전선 전략'에 대한 경계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은, 적어도 타이완에서는 퀴어 콘텐츠도 양안 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Ms. Potato>의 뮤직비디오




 

1 2014년에 설립된 StoryStudio는 원래 역사·문화 칼럼 플랫폼이었으며 강연, 강좌, 포럼, 전시, 워크숍, 세미나, 역사와 문화 답사 프로그램 등 영역을 확장했다. 박물관과 방송국, 공공기관 등 다양한 곳과 협업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가 지닌 매력과 가치를 알리는 데에 힘쓰고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질문을 잘 받지 않는 편이다. 내가 평소에 큰 관심을 두는 의제가 아니라면, 말을 아끼는 편이랄까. 한국 내에서 한국에 대해 논하는 거라면 좀 더 자유롭겠지만, 해외에서 한국에 대해서 논하거나 한국에서 해외에 대해서 논할 때는(지금 쓰고 있는 칼럼처럼 말이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 의견이 과대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팟캐스트를 녹음하면서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며 내가 관찰한 바를 기반으로 내 생각을 말할 수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 관점일 뿐이며 다른 한국인들을 대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3 한국의 ‘반중’과 타이완의 ‘반중’도 맥락이 좀 다르다. 나는 한국의 ‘반중’이 제국주의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면모를 지닌 중국 정부를 향한 비판보다는 조선족, 화교 등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을 향한 혐오와 더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전혀 다른 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이해하려 한다면 다음 기사에서 다룬 오독을 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중국 정부가 퀴어를 전면 금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퀴어 의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힘을 실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타이완에서 퀴어 의제가 사회적 지지를 크게 받을수록,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타이완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과 구별되는 문화적·정치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로도 기능하게 된다. 다만 중국 정부의 입장이 이러하다고 해서 퀴어 콘텐츠 자체가 중국에서 아예 금지되었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2021년 중국 국가광파전시총국(광전총국)은 "娘炮(냥파오)" 등 왜곡된 미적 기준을 단호히 배격한다는 통지를 발표했다. 그러나 중국 사회에서 퀴어 콘텐츠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여전히 많은 퀴어 왕홍(인플루언서)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퀴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콘텐츠도 꾸준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중국 검열 시스템 내부에 있지 않기 때문에 퀴어 콘텐츠가 이러한 정부 입장에 영향을 얼마나 받는 것인지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또한 콘텐츠 검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워낙 많기에 ‘퀴어’ 요소 하나만을 가지고 현상을 파악하는 건 오독할 가능성이 크다. 


김소라, "‘세계 최초’ 대통령 집무실에서 ‘드랙퀸 공연’ 개최한 이 나라", 서울신문, 2024.05.17 (기사 보기)


천투도우(陈土豆)의 투도우(土豆)는 감자라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천투도우’의 이름조차 양안 관계를 닮았다. ‘투도우’는 중국에서 감자를 뜻하지만, 타이완에서는 땅콩을 의미한다. 반면 타이완에서는 감자를 ‘마링수(馬鈴薯)’라고 부른다. 이처럼 ‘천투도우’의 이름 자체가 중국식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최근 타이완 출판계에서 중국식 어휘 사용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귀신들의 땅

<천쓰홍> 저/<김태성> 역

출판사 | 민음사

악녀서

<천쉐> 저/<김태성> 역

출판사 | 글항아리

악어 노트

<추먀오진> 저/<방철환> 역

출판사 | 움직씨

1938 타이완 여행기

<양솽쯔> 저/<김이삭> 역

출판사 | 마티스블루

Writer Avatar

김이삭

평범한 시민이자 소설가 그리고 번역가. 중화권 장르 소설과 웹소설, 희곡을 번역했으며 한중 작가 대담, 중국희곡 낭독 공연, 한국-타이완 연극 교류 등 국제 문화 교류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한성부, 달 밝은 밤에』, 『감찰무녀전』,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등이, 역서로는 『여신 뷔페』, 『다시, 몸으로』 등이 있다. 홍콩 영화와 중국 드라마, 타이완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서강대에서 중국문화와 신문방송을, 동 대학원에서는 중국희곡을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