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주자는 ‘금요일 밤’을 두려워하는가? | 예스24
차별과 소외는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도록 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만나게 하기도 합니다.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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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는 전직 기자 남은주가 베를린 피난자 숙소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겪은 이주와 돌봄의 기록이다. 중년의 여성 이주자이자 미성년 딸의 엄마인 저자는 공공 시스템이 멈춘 금요일 밤마다 찾아오는 피난자들과 함께하며, 차별과 불안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의 연대를 목격한다. 전란과 박해를 피해 온 이들이 서로를 연결하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일구는 이야기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진정한 환대와 연대의 가치를 일깨운다.

 

 

‘50’이라는 나이에 왜 베를린으로의 유학과 이주를 결심하셨나요? 유학을 결심할 때 설렘과 두려움은 무엇이었나요?

당시 제가 다니던 신문사의 연수 프로그램으로 베를린에 온 뒤, 퇴사 후 베를린에서 먹고 살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한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아도 유럽지역을 취재해서 필요한 매체들에 기사를 보내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독일 사회와의 교류도, 취재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 기자이자 돌봄 노동자로 일하는 프레데릭 발린,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게이너 아놀드의 글을 읽었습니다. 제게는 돌봄 노동자면서 작가인 이들이 몸소 시범을 보여준 선배들이자 진로 상담원들이었습니다. 결국 돌보는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삶을 상상하며 나이 오십에 독일 한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충동적인 결심이었던 탓에 사회복지사가 제 적성에 맞을지, 제가 과연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할 수 있는 저는 대학을 다니면서도 내내 의심했고 아직도 그렇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독일 사회에서 겪은 당혹스러웠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팬데믹 당시 신문에서 산처럼 관이 쌓인 독일의 어떤 마을 사진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시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장의사는 관에 손소독제를 바른 뒤 랩으로 둘둘 말아두고 화장장 앞에 쌓아두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독일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은 지역을 짚어보면 공교롭게도 구 동독 지역과 일치했습니다. 공동체 문화가 강하고, 정부 주도 방역을 믿지 않으며, 백신을 거부하는 등의 이유가 있다고 당시 기사에서 분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독일 선거에서 극우가 신승하는 지역들은 이때의 지도와 상당히 일치합니다. 제게 팬데믹은 앞으로 세계가 동시에 같은 병을 앓게 되리라는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제목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금요일 밤’이라는 시간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금요일 밤에 보게 되는 독일 사회의 민낯은 어떤가요?

제가 사회복지사 실습생으로 일했던 베를린 난민 공동 숙소의 금요일에는 정규직 직원들은 휴가를 내고 실습생인 저와 비정규직 인원들만 일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유독 그때 사건 사고들이 많이 생기고 이 사건들이 피난자들이 겪는 문제를 돋보기처럼 보여줍니다. 복지 대상인 피난자들을 여러 지원 시스템에 연결해야 하는데, 금요일에는 아무 곳에도 연결할 수가 없습니다. 정부 기관이나 단체들은 금요일 오후만 되어도 연락이 잘 닿지 않습니다. 출근을 해도 민원을 더 이상 받지 않고 일주일 업무를 정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밤은 돌봄이 궁지에 몰리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일부 피난자들은 정신적 위기 상황에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출근한 평일에는 심리적 안정상태를 보이다가 금요일쯤 되면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밤은 공공 시스템에서 밀려난 자들이 마주치는 막다른 골목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를린에서 ‘이주자’이자 ‘주변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겪으며, 그 이전의 삶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제외되는 거지요. 원래도 이주자는 한 사회의 그림자이기 쉬운데 나이 든 여성 이주자의 존재는 아예 지워집니다. 그런데 그림자로, 사회의 유령처럼 살게 되면서 제가 느낀 자유로움도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잘 보이고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령이 되면 남들이 못 가는 곳에 갈 수 있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존재들도 보게 되는 것처럼요. 차별과 소외는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도록 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만나게 하기도 합니다.

 

최근 극우 포퓰리즘이 유럽을 휩쓰는 상황 속에서 '서로를 돌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왜 중요할까요? 이주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만나며 저자님이 생각하게 된 '진정한 환대'란 무엇인가요?

극우적 사고의 핵심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는 ‘정상인’만이 돌볼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주자는 복지제도의 과실을 훔쳐가는 사람으로, 장애인은 복지제도에 부담이 되는 열등하거나 위험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장애인들은 누구보다 강력한 삶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주자들이 백인과 다른 특별한 아름다움과 문화적 배경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요. 사람을 성과에 따라 등급으로 나누지 말고, 우리 모두가 각자 특별하고 고유한 존재라는 말을 들려준다면 환대하는 사회일 것입니다. 

 

이주 1.5세대인 딸이 겪은 언어적, 문화적 단절을 지켜보는 부모로서 가장 마음 아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 책을 읽고 있을 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자란 곳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의 세계에 대해 저도 잘 모릅니다. 많은 이주자들은 출신 국가의 문화와 지혜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이 길러진 방식대로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려 하다가 그것 때문에 아이들과 충돌합니다. 저도 그랬고요. 이주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 출신 국가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무게감, 독일 사회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절박함, 어느 쪽도 겪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다 소용없고 결국엔 아이가 택할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독자들에게 '이주'라는 선택지를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조언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먼저 통계를 찾아보세요. 우리 대부분은 통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실은 통계대로만 살 수 있어도 감사하죠. 유럽연합통계국 조사를 보면 유럽 밖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유럽에서 일자리를 구할 때 40%가 자신의 학력보다 낮은 일자리에 종사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많은 이주자들이 학력이나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주경험자로서는 국경을 넘어가도 이전 사회의 맥락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다. 이주란 익숙한 사회와 관계 맥락에서 벗어나겠다는 결단이지만, 실은 완전한 단절이란 불가능합니다. 도착국가에 완전히 융화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미 서부에는 한국식 무당들이 있어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점을 봐준다고 합니다. 베를린에는 한국에서 오신 스님이 불법을 설하는 절이 있습니다. 반대로 다시 귀국한다고 해도 출발하기 전의 나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두 나라와 문화 사이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 경계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빚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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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