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쓰홍, 퀴어이기 때문에 디아스포라가 될 수밖에 없던 삶 | 예스24
시골 가정의 아홉 번째 아이로 태어난 작가 천쓰홍의 자전적 에세이 『아홉 번째 몸』
글: 신연선 사진: 표기식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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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의 작은 시골 용징. 1976년, 그곳의 어느 집안에 아홉째 아이가 태어납니다. 누나가 일곱, 형이 하나인 천쓰홍 작가의 이야기인데요. 집안의 귀한 막내 아들인 그였지만 천쓰홍 작가는 고향으로부터 온 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고향에서 타이베이로, 다시 베를린으로. 자유가 절실했던, 퀴어인 그에게 가부장적 규율과 억압이 굳건한 고향은 상처와 차별의 땅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불량품이지만 그 편이 오히려 너무나 다행스럽다.”(21쪽)고요. 

 

자전적 에세이 『아홉 번째 몸』에서 “몸에 난 무수한 상흔”(24쪽)을 낱낱이 기록한 작가는 인터뷰에서 정직한 글쓰기로 인해 상처를 회복한 몸에 대해 말했습니다. 책을 쓰면서, 사는 동안 몸이 통과한 힘든 일과 슬픈 일, 즐거운 일 모두를 유쾌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요. “중년의 위기를 글을 쓰면서 극복했다”는 작가의 말이 근사했는데요. 여기에 더해 상처받은 몸, 고통 받고 있는 몸들을 향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가 실패한 자들이듯, 자신의 실패는 우리를 더 흥미로운 사람으로 만든다고 한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바다 말고 오직 내 바다에만 집중하자. 『아홉 번째 몸』은 누구나의 몸에 쌓인 상처를 정성스레 들여다보도록 하는 책입니다. 

 


정직한 글쓰기를 선택하자

 

『아홉 번째 몸』은 2018년에 출간한 에세이집이죠. 8년의 시간을 지나 한국에 도착했는데요. 이 시간 동안 무엇이 변했고, 변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요. 한국판 출간 소감도 들려주세요.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것은 세대가 바뀌었다는 것이기도 해서요. 다시 또 새로운 독자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올해 타이완에서도 『아홉 번째 몸』 새 버전을 출간했어요. 표지도 바꿨는데요. 첫 번째 버전은 표지 색채가 무척 밝았어요. 명랑하고, 화려한 색감이었는데 이번에는 시각적으로도 어두워졌거든요. 이런 변화도 아주 좋은 것 같아요. 

 

보통 책의 운명은, 출간하고 나면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마련이죠. 그에 비해 『아홉 번째 몸』은 타이완에서도 두 번째로 출간할 기회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출간할 수 있었어요. 굉장히 놀라운 일이고요. 그런 가운데 아무래도 가장 큰 변화라면, 제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에요.(웃음) 올해로 딱 50세가 됐거든요. 예전에 출간한 책을 지금 다시 살펴보니 나이 든 것 외에 그렇게 큰 변화는 없었구나, 나는 여전히 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나 자신을 활짝 열고, 그것을 감당하고, 말하고, 글로 쓰고자 한다."(5쪽)는 첫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후반부에 "글을 쓸 때면 스스로 자신을 정직하게 대할 것을 요구한다."(397쪽)는 문장도 등장하는데요. 자신을 활짝 열어 정직하게 쓰기가 작가님께 중요한 이유를 직접 듣고 싶어요. 

인생의 아주 긴 시간 동안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게이이기 때문에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그래야 했고요. 타이완도 한국처럼 병역을 이행해야 하는데요. 군대라는 시스템 속에서도 굉장히 오랜 시간 제 스스로를 보여주지 못하고, 마치 이성애자인 것처럼 연기해야 했어요. 사실 연기는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죠.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예를 들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기한다는 건 몹시 힘든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선택한 글쓰기 전략이 솔직해지자는 것이었어요. 정직하기를 선택하고 나서는 글쓰기가 너무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되었죠.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나만은 정직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썼더니 너무 잘 써졌어요. 

 

저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면이 독자라는 것인데요. 독자로서 다른 작가들이 쓴 에세이를 보면 느껴져요. 이 사람 그렇게 솔직하지 않은데, 별로 진실하지 않은데, 하고요. 그처럼 되지는 말자는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솔직했는지 인터넷에서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를 본 적이 있어요. 불편하다, 이렇게까지 솔직할 필요가 있냐, 하는 반응이었는데요. 저는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요. 

 

한편으로, 살면서 겪은 세계의 여러 폭력들을 기록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럼에도 썼기 때문에 변화한 것도 있겠지요? 

글쓰기 자체가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어떠한 응어리, 고통이 있는 분이 계신다면 글쓰기를 추천해요. 실제로 심리 치료에도 글쓰기 과정이 있잖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을 쓰고 나면 알게 될 거예요. 스스로 생각하는 나보다 내가 써낸 이 글이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사실 이렇게 솔직하게 쓰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저 역시 걱정한 적이 있습니다만 쓰고 보니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치유되고, 쓰면서 더 즐거워졌습니다. 

 

『아홉 번째 몸』의 주제가 몸이죠. 이 책을 쓰면서는 그동안 겪어왔던 모든 몸들을 떠올리게 됐는데요. 힘든 일도, 슬픈 일도 있었고요. 분명히 즐거운 일도 있었어요. 그런 것을 모두 솔직하게 적고 나니 제가 굉장히 즐거운 중년이 된 것 같아요.(웃음) 남자든 여자든 중년의 위기를 겪게 마련이잖아요. 그 위기를 차를 사는 것으로 해결하는 사람도 있고요. 더 비싼 것을 사서 해결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저는 중년의 위기를 글을 쓰면서 극복했습니다. 

 

이러한 쓰기 태도가 소설을 쓸 때와 에세이를 쓸 때, 각각의 장르에 있어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에세이는 저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고요. 때문에 저 자신에 굉장히 집중합니다. 한편 소설에는 굉장히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죠. 때문에 다양한 인물들에 이입하고, 그 각각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굉장히 다양한 역할이 있잖아요. 감독이 있고요. 작가도 있고, 특수효과 팀도 있고, 메이크업 팀도 있고, 배우도 있는데요. 소설을 쓰는 작가는 혼자서 이 모든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 핵심이 바로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소설을 쓸 때는 상상력이 제일 중요합니다.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면 각각의 인물들이 한 작가의 몸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마다 다르게 살아 있어서 놀라곤 해요. 

소설의 인물을 만들 때 제가 갖고 있는 프로세스가 있는데요. 우선 중요한 인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든 인물들을 다 만나보는 겁니다. 제가 인물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역사의 경우로 예를 들어 볼게요. 통역을 하기 전에 우선 이 사람의 성별은 무엇인지, 나이가 몇인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안경을 썼는지, 먹는 것은 뭘 좋아하는지, 시계는 어떤 걸 착용하는지 등등 디테일한 것들을 표로 만들어서 알아봅니다. 모든 캐릭터에 대해서 그렇게 해요. 다양한 분야를 망라해 그 인물을 형용하는 조건들을 최대한 준비하는 거예요. 그리고 모든 캐릭터에 대해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았다, 생각하게 될 때 소설을 시작하죠. 

 

무서운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 많은 인물들이 제 신체의 일부가 된다는 거예요. 이들이 새벽 4시, 5시가 되면 저를 막 깨우거든요. “얼른 일어나, 내 이야기를 써줘.” 하면서 막 저를 깨워요. 그러니까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원고 마감 전까지의 모든 일상을 쓰고 있는 소설 속 캐릭터들과 함께 하게 되고요. 원고를 마감하는 날이 비로소 이 캐릭터들과 헤어지는 날이 됩니다. 

 


 

자유와 해방

 

『아홉 번째 몸』은 작가님이 자유와 해방이라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글들이었습니다 “베를린은 나를 인정머리를 싫어하는 까칠한 사람으로 만들었다."(152쪽)는 부분도 상쾌했고요. 용징에서 타이베이로, 다시 베를린으로 이동하는 몸은 자유를 쟁취하고자 고군분투한 몸이었다고 얘기하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타이완 사회는 굉장한 유교 사회예요. 어려서부터 공자왈 맹자왈을 가르치죠. 한국 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이들은 가르치기 좋아하시는 꼰대들이잖아요.(웃음) 이 꼰대들은 이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안 된다, 여자는 어떠해야 하고, 사회는 또 어떠해야 한다고 말해요. 타이완은 이런 발언이 아직까지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갖는 나라입니다. 그런 유교 국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독일에 갔을 때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충돌하는 부분도 있었어요. 일단 독일은 아주 개인주의적인 국가거든요. 예를 들어볼게요. 선배 누나가 저보다 먼저 독일로 이주했거든요. 독일 사람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생활했는데요. 일 때문에 급하게 시부모님한테 아이를 맡기려고 했는데 시부모님이 거절했어요. 사전에 약속된 게 아니라고 하면서요. 그 누나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죠. 타이완이라면 조부모에게 손자는 봐주겠다고 먼저 나서는 대상일 테니까요. 

 

그 이야기에 저도 놀랐지만, 이런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저는 굉장히 자유로워졌어요. 개인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타이완에서 저는 거절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한국도 비슷할 것 같은데 일언지하에 안 돼, 싫어, 말하지 못하고 글쎄,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할까, 하는 식이잖아요. 그러나 지금은 싫다는 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저에게는 더 건강한 선택이라는 것이에요. 이런 생활을 하고 나서 저는 더 자유로워지고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청춘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가장 힘들었고 비극적이었기 때문에 사실 별로 안 좋아한다.”(《씨네21》 인터뷰)고 하신 적이 있어요. 소설을 쓰는 일은 어쩌면 삶의 경험을 재해석하는 일이기도 할 텐데요. 쓰게 되면서 과거를 달리 생각하게도 되었을까요? 

세상은 청춘을 대단히 숭배합니다. 케이팝 아이돌만 해도 그렇죠. 남자 그룹이든 여자 그룹이든 대부분이 십 대예요. 한국 메이저 기획사에서 서른다섯 넘는 여성을 아이돌로 데뷔시키는 건 본 적이 없는데요. 저는 서른다섯 넘는 아이돌이 데뷔하는 것을 꼭 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성숙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은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죠. 네, 저는 청춘을 숭배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제게 청춘이 그렇게 즐겁지 않았어요. 그 시절 저는 연기를 해야 했고, 가장해야 했습니다. 중년이 되어 청춘에 관한 책을 쓰면서 당연하게도 청춘 시기를 돌이켜보게 되었는데요. 왜 이렇게 바보 같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이 드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좋은 점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좀 내려놓고 더 풍부한 지혜를 가지게 되는 것 같거든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젊어서부터 똑똑할 수 있겠죠. 그러나 똑똑하다는 것과 지혜가 풍부하다는 말이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설을 쓸 때도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지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 사회가 너무 청춘만을 숭배하지 않았으면 해요. 정말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인데요, 한국에서 서른다섯 넘는 아주 실력 있는 여자 아이돌 그룹을 만나봤으면 합니다. 

 

구체적으로 여쭤보고 싶은데요. 작가님의 소설 가운데 특별히 씀으로써 나를 변화시켰다고 할 만한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혹은 캐릭터도 좋습니다. 

『귀신들의 땅』일 거예요. 작가로서의 삶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귀신들의 땅』 이전에는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주목하지 않았는데요. 이 소설은 굉장히 다양한 언어로 번역이 되어 여러 나라에 출간되었고요. 특히 한국에서는 베스트셀러까지 되었어요. 때문에 『귀신들의 땅』이라는 소설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캐릭터, 또 캐릭터가 가진 모든 스토리가 저를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요. 제가 서울에 있잖아요. 심지어 지난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서울을 방문하고 있어요. 모두 『귀신들의 땅』 덕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소설이 저의 대표작이라고 해요. 타이완의 온라인에서는 심지어 이것이 제 작가 인생의 절정이다, 앞으로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내려가는 길 풍경이 아름다울 수도 있잖아요. 평소 등산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올라갈 때는 너무 힘들지만 내려올 때는 진짜 신나요. 저는 내려오는 것도 굉장히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귀신들의 땅』도 좋았지만 『셔터우의 세 자매』의 폭발하는 느낌은 또 달랐어요. 실제로 작가님도 『셔터우의 세 자매』를 걸작(웃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잖아요. 정말 공감하고요. 전혀 내리막이라고 생각 안 하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도 『셔터우의 세 자매』를 정말 좋아해요. 세 여자 모두가 초능력이 있고, 되게 미친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누군가 그 소설을 좋아한다고 하시면 너무 기쁘고, 진짜 안목 높으신 분이구나 생각합니다.(웃음) 

 

"나는 선천적으로 ‘람펜사우(Rampensau,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독일어)’였다."(119쪽)고 하셨어요. 만약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람펜사우인 작가님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실패한 배우로 살았을 거예요.(웃음) 맨날 오디션에 가지만 공연할 기회는 얻지 못하는 그런 배우요. 실제로 오디션에서 처참하게 망했던 경험이 많은데요. 연기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아직도 오디션을 다니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다른 인터뷰가 있었는데요. 천명관 작가님과 함께 했어요. 천명관 작가님이 감독이기도 하시잖아요. 인터뷰를 진행하시던 분이 천명관 감독님한테 저를 가리키면서 배우로 괜찮겠냐고 질문을 했는데요. 좋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냥 예의상 하신 말씀이고요.(웃음) 제가 독일에서 통역사로서 홍콩, 타이완, 중국 등 여러 나라의 감독님들을 많이 봤지만 한 번도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신 적이 없었어요. 실패가 확정된 배우인 셈이에요. 

 

배우가 안 된 게 너무나 다행이에요. 문학계에 큰 손실일 뻔했어요. 

감사합니다.(웃음) 

 

 

 

글이 되는 고통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사회에 혐오가 만연해 있잖아요. 그것에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고요. 관련해서 고민하게 될 때 “편협함은 문맹과 다름없다. 마음의 그릇이 작으면 사랑도 없고 타자를 수용하지 못한다.”(189쪽)고 한 부분을 기억하면 어떨까 싶어요. 

차별의 말을 실생활에서 크게 하는 사람은 없는데, 인터넷 공간에서는 소리 높여 차별의 말을 합니다. 문제는 지금 사회가 인터넷을 떠나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이죠. 매일 그런 혐오의 말을 볼 수밖에 없어요. 한 가지 해결 방법이 있는데요. 독서입니다. 아마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방법일 것 같지만요.(웃음) 종이책이든 오디오북이든 전자책이든 책 한 권을 완성하는 과정은 독자가 스스로 끝까지 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스파이더맨처럼 힘이 있고, 변신을 하는 것만이 초능력이 아니에요. 독서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초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우리는 이미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독서는 고독하긴 하지만 나와 대화하는 것이고요. 인터넷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소음이 너무 많아요. 소음을 피해 굉장히 멋진 소설 하나 읽기를 꼭 권하고 싶어요. 

 

늘 추천하는 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인데요. 19세기에 쓴 소설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정서와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제인 오스틴이 집필할 당시는 타자기도, 컴퓨터도, AI도 없었죠. 자기 방도 없을 정도로 가난했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요. 물질적인 제약이 있는 환경에서도 역작을 써냈습니다. 현대 작가들은 AI도, 컴퓨터도, 온갖 장비가 다 있는데도 『오만과 편견』에 견줄 만한 작품을 써내지 못하고 있어요. 가장 큰 이유가 상상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굉장히 효과적인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말을 들을 사람은 없겠죠.(웃음) 

 

작가님은 독일에 있는 타이완 사람이잖아요. 독일에 사는 아시안으로서 차별적 인터넷 문화로 인한 선동적인 언어를 목격한 경험이 많으실 것 같아요. 

20년 넘게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직접적으로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행운이기도 하겠죠. 아니면 독일어를 전혀 몰랐을 때 그런 일이 있었는데 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고요. 어느 정도는 무지해서 순조롭게 문제들을 비껴갈 수 있는 것도 행운 같아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경험이 있었어요. 2023년에 아이오와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IWP)에 참여했을 때예요. 아시아 작가들과 한국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요. 누군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막 욕을 했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살아야겠다는 것이었어요. 미국이니까, 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다른 작가들과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죠. 함께 있던 아시아 작가 중에 영어를 못 알아듣는 분들도 계셔서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해주는데요. 그러면서 비로소 화가 났어요. 그 분노가 창작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목소리 높여 하는 것이 작가의 큰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안전하게 자기 몸을 지키는 것이고요. 

 

책에는 디아스포라로서 느끼는 감각도 종종 등장하죠. 이러한 위치성이 작가님의 또 다른 정체성이기도 한 동지(同志, 중화권에서 퀴어를 통칭하는 용어)의 감각과 연결되면서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이야기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두 가지 작가님 삶의 조건이 작가님의 시선에 어떠한 렌즈로 작용하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소수라는 것을 알았어요. 어느 소수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수라는 것을요. 이것은 자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먼저 얘기해준 것이었는데요. 너는 다른 남자들과 달라, 비정상이야, 하는 말을 계속 들었기 때문에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안 거예요. 다른 남자들과 달리 노래를 좋아하고, 춤 추기를 좋아하고, 미술과 글쓰기를 좋아했으니까요. 엄마도 남자들은 이런 거 하면 안 돼, 나가서 공 차고 애들이랑 싸워라, 했고요. 워낙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진짜 나는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50세가 돼서 돌아보니까요. 저의 그러한 다름이 글쓰기에 굉장한 이점이라는 것을 느껴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만약 제가 이성애 남성이었으면 별로 안 좋은 남자였을 것 같아요. 친형을 보면 알 수 있거든요. 형은 정상이었기 때문에 어떤 고생도 하지 않았고요. 저는 비정상이었기 때문에 갖가지 차별을 겪었습니다. 형은 그래서 떠나지 않아도 됐고요. 저는 떠나야만 했습니다. 저는 동지였기 때문에 디아스포라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과 저는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서로 전혀 다른 남자가 된 거예요. 결국 제가 게이이고 그에 더해 디아스포라로서의 체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의 글이 더 재미있어졌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니 만약 당신이 소수라면, 고통받고 계시다면, 잘 됐습니다. 글쓰기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타인의 말에, 시선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어요. “자신의 생활, 자신의 안개 바다만이, 비로소 진실이다.”(405쪽)라는 문장을 통해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써요. 또 타인을 질투하는데 오직 그 사람이 영위하는 영광만을 질투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노력했고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질투하지 않아요. 이런 건 전혀 의미가 없어요. 그것은 그 사람의 바다이지 내 바다가 아니거든요.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 받았을 때 아마 많은 분들이 질투했을 거예요. 왜 저 전화를 받는 사람이 내가 아니야, 하면서요. 하지만 정작 그 영광이 자신한테 간다고 한들 그건 다른 사람의 바다를 내 몸에 가지는 것일 뿐이에요. 내 그릇에 맞지 않는 영광은 그냥 쓰나미가 되겠죠. 게다가 타이완 사람들은 질투도 많이 하고, 남의 생활에 간섭도 많이 해요. 얼마 버니, 결혼은 언제 할래, 아이는 언제 낳을래, 하고요.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부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바다에 신경 쓰지 말고 내 바다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실패를 인정한다면

 

작년 방한 때 서울과 관련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하셨어요.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요? 기다리고 있습니다.(웃음) 

다 썼어요. 타이완에서 12월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출간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원고를 몇몇 동료 작가들에게 보여줬는데요. 다 울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쓴 사랑 이야기예요. 

 

솔직하게, 정직하게 쓰기는 이 소설에도 해당되겠죠? 작가님의 이야기도 많이 담겼을까요? 

그동안 쓴 소설 중 제일 솔직할 거예요. 그렇지만 프롤로그도 에필로그도 쓰지 않았는데요. 설명을 하지 않고 싶었어요. 이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거든요. 그럼에도 읽으시면 ‘이거 작가구나’ 하실 것 같아요. 그건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귀신들의 땅』에 살인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어떤 사람들은 제가 독일에서 살인한 줄 알더라고요.(웃음) 친척이나 사촌까지도 제가 독일에서 진짜 수감 생활을 몇 년 한 줄 알고 있어요. 저는 이미 포기했고요. 만약 누군가 제 소설을 보고 진짜 저라고 생각한다면 칭찬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에 했던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영원히 소설 속에 실패자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독자들도 용감하게, 자신이 실패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좋겠어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좌절하고, 실패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실패란 결함이 많고, 신체적으로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일 텐데요. 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마음이 끌리는, 이입되는 것은 결함 많은 인물입니다. 만약 어떤 인물이 크게 성공한, 완벽한 사람이라면 독자든 작가든 모두 이 생각부터 할 거예요. ‘과연 이 사람의 어둠은 무엇일까.’ 정말로 결함이 하나도 없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겠죠. 여러분이 저의 이런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면, 당신이 당신 자신의 결함, 당신의 실패를 수용했다는 것이 당신을 더욱더 흥미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제 주인공들이 늘 실패한 사람인 것은 그런 캐릭터야말로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요. 독자 역시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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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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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루피

2026.07.11

<귀신들의 땅> 지금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들어 왔어요.
천쓰홍 작가님 <아홉 번째 몸> 출간 축하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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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arie

2026.07.06

내 인생 최고의 대만 소설이
<귀신들의 땅>입니다.
천쓰홍 작가의 다른 모든 소설도 읽었는데요.
올해 말에 출간할 예정인 소설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자전적 에세이 <아홉 번째 몸>출간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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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몸

<천쓰홍> 저/<김태성> 역

출판사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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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 장편소설 『구름이 겹치면』, 에세이 『하필 책이 좋아서』(공저)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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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식

사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