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것들이 쌓인다.” 그러니 “종이 위에 잘 고정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정세랑 작가는 말합니다. 열렬하게 읽고 있는 당신, 내면의 신중함으로 읽기에서 쓰기로의 이동을 망설이는 당신을 향해서요. 5년 만에 펴낸 산문집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에 ‘이 책을 덮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트레이닝’처럼 지극히 실용적인 작가만의 노하우를 낱낱이 담은 데에는 그런 당신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당신 안에 있는 이야기를 “진중함을 버리고 탐색해보”(14쪽)도록 독려하는 마음 말이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보는 세계를 펼쳐놓을 때, 더 많은 질문과 유사답이 교차할 때 비로소 드러날 진실을 기다리는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고백하자면 제가 정세랑 작가와 함께 쓴 『하필 책이 좋아서』 역시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함께 책을 쓰자고, 당신의 이야기를 잘 쌓아보라고 산뜻하고 다정하게 손 내밀어준 덕분에 나올 수 있었던 책이었어요. 시작을 망설이고 있는, 중단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당신에게 창작자의 혼란을 가감 없이 공유하며 당신의 이야기 기계를 작동시키고자 한 정세랑 작가의 진심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었던 셈인데요. 이 에피소드를 공유한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 차례,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예요.
겹칠 듯 겹치지 않는
제사에 ‘존재하는 책들이 존재하지 않는 책들을 초대해 오기를’이라고 적었어요. “이 책을 쓴 욕망은 작가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인 듯”(204쪽)하다고도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바람으로부터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의 구상이 시작되었나요?
사람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특히 창작의 기질 같은 것을 자꾸 살피게 되어버리는데요.(웃음) 저 사람에게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왜 꺼내 놓지 않는 것일까, 종종 생각하곤 해요. 신중하고 정교한 사람들이 좋은 글을 쓰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그 신중함 자체가 발목을 잡아서 창작과 멀어지게도 하더라고요. 신중함은 양면이 있는 기질이지요. 이 책을 통해 신중함이 중심에 있어서 시작을 지나치게 깊이 고민하시는 분들을 살짝 흔들고 자극하고 싶었어요. 제가 읽고 싶은 것을 저 사람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요. 독자로서 저는 상당히 탐욕스러운 독자라서요. 어떤 사람 안에 잠들어 있는 듯한 미지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직설적인 탐욕으로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를 썼습니다.(웃음)
탐욕스러운 마음이라니요.(웃음)
워낙 집어삼키는,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독자예요. 사실 정체성이 독자 쪽에 더 가까울 때도 많은 것 같아요. 작가로서의 저는 신중하기보다는 약간 경솔한 편인데요. 경솔함에도 나름의 장단점이 있지 않나 합니다. 묵직하고 신중한 사람들과 일단 가벼운 걸음으로 시작해보는 사람들 사이의 절묘한 균형점에서 제일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오겠지요. 어떻게 신중함과 경솔함의 농도를 조절할 것인가, 하는 것이 저의 오랜 고민이기도 합니다. 함께 얘기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한껏 응원하면서 시작하죠. “마음껏 섣불러도 좋다”(14쪽)고 하면서요. 예술과 창작이라는 세계의 허들을 낮추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창작에 대한 오해를 풀어서 힘을 잃지 않도록 애쓴 마음이 있었던 것이죠?
가상의 방을 그려볼까요? 한 방의 벽면마다 모양도 크기도 소리도 다른 시계가 가득한데 각각의 시계침이 다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거예요. 리듬이 저마다 다른 거죠. 창작자들을 모아 놓으면 그런 풍경 아닐까 하거든요. 타고난 것, 닦아온 것이 이렇게까지 겹치지 않는구나 아득할 정도인 기묘한 시계 방을 자주 상상합니다. 겹칠 것 같은 순간에도 좀처럼 겹치지 않는 시계들을요.
그런데 세상에 알려진 창작자 유형은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 같아요. 특정 유형, 쉽고 직관적인 유형들이 강조되고 주목을 받지요. 치우친 모습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일을 거듭하면 거기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이 ‘나는 창작자가 아닌가 보다’ ‘창작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하지는 않을지 우려되더라고요. 실제로 이 세계는 가지각색인, 내면의 리듬을 따라 제멋대로 움직이는 세계인데 말이에요. 안쪽을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짚어 말하기 어려운 혼란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유형의 창작자도 많다고요. 이 가지런하지 않음에 대해 솔직히 말할수록 더 많은 분들이 거부감 없이 창작을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작가님의 경험이기도 할까요? 내가 갖고 있던 특정한 창작자의 모습을 무너뜨리게 되는 과정이 있었나요?
그렇죠, 처음에는 밤을 새워 쓰는 직업이 아닐까 했는데 저는 오전형이더라고요.(웃음) 또 노트북 들고 카페와 여행지를 옮겨 다니는 분들을 선망했는데, 저는 딱 제 책상에서 도저히 가지고 다니지는 못할 인체공학 키보드로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키보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미디어에서 키보드를 내달리듯 두드리는 장면이 꽤 이상하지 않나요? 다들 폭풍같이 글 쓰는 줄 알고, 그게 안 될 때 굉장히 자괴감이 들었는데 보통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물론 일 년에 한두 번 그런 날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섬주섬, 떨어진 물건을 줍듯 쓰는 날이 많은데요. 주섬주섬은 멋있지 않으니까 가려두나 봐요. 매일 똑같은 양을 써야 한다는 말도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유연하게 참고하실 필요가 있는 말 같아요. 어떤 날은 많이 쓰고, 어떤 날은 조금 쓰면서 쌓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고, 루틴이 잘 맞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방식이지만 모두에게 맞는 방식은 아닐 수 있으니까요. 여러모로 틀에 넣을 수 없는 다양한 창작자들의 방식을 얘기해보려 했어요.
예를 들어 작가님과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던 다른 창작자의 모습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이동 중에 스마트폰으로 쓰시는 분들이요. 저는 메모까지는 할 수 있지만 전체 글을 그렇게 쓰는 분들을 보고는 놀랐어요. 또 구상을 끝낸 다음 한 달 만에 쓰는 분들도 곁에서 봤어요. 육 개월 또는 일 년을 완벽하게 머릿속 세계에 빠져 있다가 거의 완성된 것을 한꺼번에 꺼내기만 하시는 거죠. 저는 루틴을 애용해도 이런 분들에게 루틴을 강요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맞지 않는 방식은 오히려 이 사람 안의 째깍째깍 하는 것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삐죽삐죽하게 테두리를 벗어나는 작가들에 대해서, 이 다채롭고 난감한 존재들에 대해서 더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심지어 한 작가 안에서도 시기별로 성향이 계속 바뀌기도 하고요.

창작자의 개성은 어떻게 탄생할까
그러한 목표를 위해서 책을 쓰는 동안 고심한 것도 있었을 텐데요.
단정 짓지 않으면서 뚜렷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단정을 지으면 그 또한 어떤 한계를 만드는 거니까요. 제가 미처 그려내지 못한 창작자의 모습은 읽는 분들이 더해 완성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강조하고 싶었던 건 읽는 이와 쓰는 이가 결합된 형태라는 점이었어요. 항상 일 대 일로 대응되지는 않지만, 읽기에 푹 빠진 사람들이 결국 쓰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쓰다가 막혔을 때 읽기로 돌아가기만큼 좋은 방법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예요.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존재의 두 얼굴이라고 느끼는데요. 읽기와 쓰기 사이의 전환에 대해 파고들어서 쓴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쓰기에 대한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읽기에 대한 책이기도 해요. 읽기를 통해 흡수한 정보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가 곧 쓰기에 닿아 있지요.
진로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용히 도사리자, 풀숲의 새끼 뱀처럼”(17-18쪽)이라고 하신 부분에서 어떤 해방감도 느껴졌거든요. 꿈이 일찍 챙겨버린 사람에게는 꿈을 숨기거나 다른 진로를 선택하거나 나아가 포기하는 것이 자칫 거짓된 것이라고 느끼기 쉬운 것 같아요. 하지만 작가님은 도사리자는 말을 부모님과 진로 갈등을 겪는 청소년 분들께 자주 해주셨다고요.
스무 살에 체계적인 예술 교육을 받기 시작하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여러 가지 삶의 요소들이 그것을 방해할 때가 많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른 영역은 몰라도 글쓰기만은 우회하고 헤맬 때 남다른 개성이 얻어지는 것 같아요. 다른 공부를 하고 다른 일을 하고 다른 경험을 하면서 얻은 자연스러운 색채나 향기 같은 것이 분명히 글에 스며들 것이기에 직선으로 걷고 있지 않다고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책에도 썼지만 주변의 반대가 고민이라면, 이상한 비유일지 몰라도 풀숲의 새끼 뱀처럼 몰래 쓰다가 데뷔한 후에 뜻을 전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불안정한 분야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들도,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도 고루 있겠지요. 그러한 압력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소모할 에너지를 내밀하게 돌려 글쓰기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글쓰기, 나아가 모든 종류의 창작은 참 이상한 영역 같아요. 창작가의 모든 경험, 심지어 아주 싫었던 경험까지도 양분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작가님은 그러니까 삶의 궤적이 갈팡질팡이었더라도 그것까지 영감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는 얘기를 하고 계세요. “실패는 실패로 고정되지 않는다.”(181쪽)는 문장이 그래서 중요하겠고요.
그 문장은 비유라기보다는 직접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엎어진 프로젝트의 작업물을 근거 삼아 다음 프로젝트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거든요. 프로젝트가 무산된다 해도 쌓이고 연결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실패가 그다지 두렵지 않아졌습니다.(웃음)
어떤 사람이 쓰는가, 질문해본다면 「쓰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기질이 있을까?」 챕터에 해당하는 분들일 거예요. 쓰고 싶은 독자 분들이 있다면 꼭 이 부분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은데요. 작가님은 실제로 어떤 분들을 만나면 “쓰세요”라고 말 건네고 싶어지나요?
요즘 들어는 특히 정보를 직접 응축하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 긴 글을 쓰시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정보라는 게 그렇잖아요. 다른 사람 혹은 기계 같은 것이 응축한 정보는 일종의 가공식품 비슷한 것이라, 가공식품으로 아무리 요리를 해봤자 아주 특색 있는 게 나오기는 힘들 듯 글도 밋밋해지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기만이 아는 정원에서, 농원에서 열매를 막 따온 것 같은 생생한 정보가 있어요. 직접 추적하고 발견한 원재료부터 다르고, 그걸 스스로 소화해내는 방식도 다르니 점점 두드러지는 거죠. 두드러짐의 격차가 한층 벌어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여간 바깥 세상을 살아 있는 자신만의 인식 체계로 걸러낸 다음, 반죽에 손을 깊이 넣어 빚어내는 글들이 재밌어요. 그런 재밌는 분들에게 특히 더 써달라고 하고 싶어집니다.
후반부에서 AI 관련 이야기도 하셨는데요. 보다 생생한 인간적인 경험, 극히 개인의 발견 같은 것들이 지금과 같은 시대에 더 드러나 보이나 봐요.
기시감 없는 진짜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 신선하게 느껴질 줄 몰랐습니다. 헤아려보면 ‘기시감을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하는 것’까지가 프로의 덕목이 아닐까 해요.

자기만의 고요를 얻어낸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주제 찾기나 캐릭터 그리기처럼 어쩌면 작가님의 창작 비법일지도 모를 것들을 친절하고 좋은 선생님처럼 풀어놓았거든요. 심지어 작가가 된 이후의 경우까지 말이에요. 작가님이 체험으로 터득한 것을 다 공개했던 마음도 궁금합니다.
부제가 ‘혼란을 끌어안는 쓰기에 대하여’인 이유는, 제가 쓰는 내내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이게 맞나, 정말 이 방향인가, 이렇게 방향을 바꿔도 되나, 혼란 다음 혼란이었어요. 상상했던 것과 실제가 다를 수 있다는 것, 크고 작은 위험과 곤경도 없지 않다는 것을 얘기해야 할 듯했습니다. 저는 백지 상태로 진입했다가 충격을 받은 부분들이 있는데, 이 책이 일종의 준비책으로 기능하면 좋겠어요. 제가 겪었던 혼란들을 덜 겪으시면 하는 마음이지만, 각자가 겪어야 할 혼란의 할당량이 있겠죠. 새로 쓰실 분들은 또 이 시대만의 혼란들을 소화해내셔야 할 테고, 그 혼란이야말로 창작의 주요 요소일지도요. 그 점을 감수하고 십수 년 전의 저 자신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터놓고 해보았어요. 책에 담은 이야기를 정답이라 여기고 담았다기보다는, 그저 간절한 귀띔 삼아 담았습니다.
『하필 책이 좋아서』도 그렇고, 작가님의 산문에서는 확실히 지금 작가님이 품고 있는 화두를 독자와 같이 얘기해 보고 싶다는 ‘말 걸기’의 의도가 중요하게 자리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야기와 책이 긴 형태의 대화라고 생각해요. 느리지만 이어지고 마는 대화 속에 머무르려는 의지를 지닌 이들이 읽기와 쓰기를 택한다고도요.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는 사람들을 떠올려요.
그 대화의 상대는 어떤 사람인가요? 책에서 내내 ‘당신’을 호명했잖아요. 쓰면서 어떤 구체적인 얼굴을 상상했어요?
완전히 집중해 고요에 잠긴 표정이 사람들에게 있잖아요. 이 고요란 것은 사실 싸워서 얻어낸 고요일 테고요. 힘겹게 자신만의 투명한 성을 쌓아 올린 사람들에게 편지 쓰듯이 책을 보내고 싶어요.
엄청난 동료의 마음이고, 우정의 마음이네요.
네, 그 마음과 더 재미있는 걸 읽고 싶다는 탐욕스러운 마음이 동시에 있죠.(웃음)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는 완곡한 표현이고, 그 완곡함을 걷어내면 튀어나오는 ‘당신이 쓸 차례다’(웃음)가 진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싸우듯 얻어낸 고요함 말씀을 하셨는데요. 온전히 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두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도 했잖아요. “이기적이고 유난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로 조각나지 않은 시간을 획득해야 한다.”(115쪽)고요.
두 시간은 싸워볼 만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거든요. 바쁘기 그지없는 현대인에게 네 시간까지는 무리라도, 두 시간은 노려볼 만한 목표지요. 결국 냉정한 거절과 가지치기를 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라고 봅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거절하고, 하고 싶은 경험도 거절해야 조각 시간을 모아 통으로 쓰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나 고민해 왔습니다.
유재석 씨가 어느 예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꾸 이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떠오르네요. 정말로 집중해서 하고자 하는 걸 하려면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거겠죠.
끝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나머지를 버려야 하나 봐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전부 가질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 같아 경계심이 들어요. 창작에도 선택과 버리기가 필수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 경우 꽤 좋아하지만 후순위로 넘어가곤 하는 선택에 어떤 것이 있나요?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있지만 장편 쓰는 시기에는 만나지 못해요. 작업이 끝나면 만나기는 하는데 그 틈이 얼마 되지 않는 느낌이라 아쉬워요.

“조각 거울들이 저마다 빛내며 만드는 모자이크”
쓰기를 ‘시작’하는 것과 ‘완성’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 같아요. 완성의 순간에 느끼는 희열을 제일 좋아한다고도 말씀하셨는데요. 글이 막혔을 때 생각지도 못하게 뚫린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주로 제 책상에서 쓰지만 끝부분을 쓸 때처럼 집중해야 할 때는 숙소를 빌려서 작업할 때도 있어요. 노트북이나 노트 등을 두고 간 다음, 그 숙소에 있는 볼펜과 메모 패드로 쓰는 거예요. 세상에 쓰기의 도구가 그것만 남은 것처럼 일부러 만든 한정적인 조건 속에서 쓰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작업이 잘되면 좋겠지만 탁 막혔을 때는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과감하게 장소를 옮겨보는 거죠. 그런 면에서 국내 여행을 빈번히 갑니다. 긴 여행은 작업 리듬을 끊고는 하지만, 2~3일 짧게 다른 곳에서 글을 쓰면 적절한 환기가 되더라고요.
언뜻 쓰는 것을 한자리에 앉아서 키보드와 모니터를 이용할 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쓰는 나를 계속 어딘가로 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거군요.
과하지 않은 자극을 주는 거죠. 내 몸과 마음에 바람이 필요한가, 파도가 필요한가, 살피며 자기 자신을 흔들어 보는 일이 필요해요. 산책도 자주 하는데요. 영감은 혈액순환에서 오지 않나 해요. 마음만큼이나 몸으로 쓰는 것이니까요.
이 책은 어쩌면 ‘쓰는 삶이 이렇게 좋다(웃음)’고 역설하는 책 같기도 해요.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상상하곤 하거든요. 작가님은 “조각 거울들이 저마다 빛내며 만드는 모자이크가 중요하다”(41쪽)는 점을 짚으셨어요.
쓰는 사람들이 집중해서 떠올리는 질문은 답이 아직 없는 질문일 때가 잦잖아요. 그렇다고 낙담한 채 쓰지 않는 길을 택하기보다는 유사답이라도 찾아서 그 조각들을 서로 맞춰보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각자의 조각을 모아 비교하는 일에 작지 않은 의미가 있고, 거기서 또 다음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답 없음에 놓아버리는 게 아니라 그래도 끝까지 매달리고 싶어요.
그리고 시간은, 삶은 아차 하면 그냥 흘러버리는 것 같아요. 흘러가는 것들에 저항하며 요철을 만들다보면 고이고 남고 쌓이는 것들이 분명 있지 않나 합니다. 요철, 마찰, 저항…… 뭐라고 부르든 그걸 만들어서 흩어지는 시간을 덜 흩어지게 하는 일이 창작 아닐까 생각해요. 더 많은 분들이 창작을 생활에 안착시키시면 좋겠어요.
“삶의 밀도는 천차만별”(31쪽)이라고도 했죠. 나의 어떤 시절이 그 작품에 담겨 있다고 느낀다고 했고요.
압축의 과정을 거치면 기억과 감정이 훨씬 많이 담기더라고요. 일기에는 일어난 일이나 생각을 압축을 거의 하지 않고 쓰잖아요. 그런데 형식을 택하고 진하고 단단한 세부를 위해 공들여 채워나가다보면, 그 시점의 자신이 빼곡하게 들어가게 되죠. 그렇게 완성한 작품을 시간이 지나 다시 펼치면 언제든 창작 시점으로, 시간 여행을 하듯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해요. 독특한 경험이라 꼭 해보셨으면 해요.
쓰지 않으면 모르는 감각 같기는 해요.
한 번만 완성하시면 그다음 번은 훨씬 쉬워집니다. 딱 한 번만 완성해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나저나 “돈벼락을 맞으면 꼭 한 번 실현시켜보고 싶은 꿈”(22쪽)으로 북토크 전용공간을 상상하고 계시다고요?
아주 구체적인 구상이 있어요. 내부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도 있어요.(웃음) 일단 북토크만 해도 공간을 예약하지 못해 난항이 큽니다. 특히 어느 규모 이상은 더 그렇고요. 지금보다 문턱이 낮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로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이 늘었으면 해요. 수익이 곧바로 나지 않더라도 의미 있고 실험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해요. 회사나 기관을 통하지 않고 창작자 여럿이 모여 경계를 넘나들며 이것저것 재미있는 일들을 마구 꾸며볼 수 있는 공간, 듣기만 해도 좋지 않나요?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이 끝없이 많고, 여러 구상이 있는데 계산을 해보니 쉽지 않겠더라고요. 공간을 자유로이 유지하면서도 초대한 분들에게는 출연료 등을 제대로 드리고 싶으니까요. 모객이 얼마나 됐는지, 무엇이 얼마나 팔렸는지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공간이 가능하려면 복권에 연달아 당첨되어야 할 수준이라서……(웃음). 그래도 이 꿈은 계속 품고 있으려고요. 또 모르잖아요.
만약 어느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동료가 되어 나타나면 어떨 것 같으세요?
실제로 지금까지 몇 분을 그렇게 뵙고 인사한 적이 있는데요. 그 빈도가 약간만 늘어나도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이 몇 분 만이라도 더 자극해서, 그분들이 쓰는 쪽으로 몇 걸음만 움직여보신다면 바랄 게 없겠어요. 친구를 설득하듯 설득하는 책이니, 부담 없이 읽어주셨으면 해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
출판사 | 마음산책
하필 책이 좋아서
출판사 | 북노마드
신연선
읽고 씁니다. 장편소설 『구름이 겹치면』, 에세이 『하필 책이 좋아서』(공저)를 출간했습니다.
표기식
사진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