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기식
지난해, 『여름은 고작 계절』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서해 작가가 이번에는 단편 소설로 돌아왔다. 『얼음 녹이기』는 공연예술학부 3학년 이유성이 기말 과제로 연극을 올리기 위해 원작자인 작가 석수현을 찾아가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이다. 첫 만남부터 두 사람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 곁에서 유성의 친구 하태영도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린다. 김서해가 전하는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지금 바로 만나보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면 바로 쓰시는 편이신가요? 아니면 오래 품고 계시다가 쓰시는 편이신가요? 『얼음 녹이기』는 어느 쪽에 가까웠을까요?
『얼음 녹이기』는 비교적 갑작스럽게 시작된 작품이에요. 평소에는 무언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해 두는 편인데, 그렇다고 그 메모가 곧바로 소설이 되지는 않아요.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떤 장면이나 잔상, 정서에 가까운 것들이죠. 그런 조각들이 어느 정도 쌓여서 ‘이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재료를 꺼내기 시작해요. 보통 장편은 캐릭터를 먼저 생각하고, 단편은 사건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고들 하는데 저는 늘 장면이나 분위기에서 출발하는 편이에요. 어떤 순간의 정서나 공기를 먼저 붙잡고, 그다음에 이 이야기가 장편이 될지 단편이 될지에 따라 필요한 재료를 더해 가는 방식이죠.
이번 작품은 공연예술학부에 재학 중인 유성이 한 편의 연극을 올리며 겪게 되는 이야기였는데요, 원래도 공연예술에 관심이 많으셨을까요?
재작년과 작년에 공연예술 자료를 관리하고 서비스하는 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공연 영상을 하나씩 재생해 보고, 대본 파일과 대조하면서 제대로 된 자료인지 확인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업무는 이미 끝났는데도 계속 검수 중인 척하면서 연극을 더 보고 있었어요. 그곳이 혜화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공연도 많이 보러 다녔어요. 낭독극 같은 형식도 접하게 됐고요. 그러면서 공연예술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졌습니다.
하나의 작품을 함께 만들어 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정말 뜨겁고도 서툰 청춘처럼 느껴졌어요. 이런 청춘의 모습 안에는 작가님의 실제 경험도 담겨 있을까요?
이 작품을 쓰기 전부터 계속 ‘청춘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했어요. 저는 청춘을 ‘바보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새벽 2시에 누군가가 ‘보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사실 당장 만나지 않아도 큰일은 나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지금 당장 달려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사람, 그런 감정을 아직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인정받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고,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마음이요. 꼭 이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둘 다 사라지면 어딘가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무난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안정적인 삶일 수는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청춘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상태인 거죠.
다만 작품 속 연극 연습 과정 자체가 제 경험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에요. 무언가에 열정을 쏟아부어 본 경험이라고 하면 저에게는 글쓰기가 가장 가까운 것 같거든요. 그래서 유성이나 태영이 작품을 위해 몰두하는 모습에는 제가 글을 쓰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조금씩 스며들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녹인다’는 행위에는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마음, 또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해 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님께서는 이런 해석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제가 ‘녹인다’라는 은유를 가져온 이유는 얼음을 녹이는 일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얼음은 원래도 투명하잖아요. 형태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너머가 보이기 때문에, 마치 창문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느낌이 있죠. 그래서 얼음을 녹인다고 해서 무언가 극적으로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말씀해 주신 해석에 공감해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시간과 마음을 들여 누군가를 들여다보지만, 결국 알게 되는 건 그 사람이 생각보다 특별한 존재라기보다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일 수도 있으니까요.
작가님 작품에는 유독 여름의 향기가 짙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도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이고요.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일까요?
의외로 저는 여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굉장히 폭력적인 계절이라고 생각해요. 여름은 모든 것이 무성하게 자라고 뻗어 나가잖아요. 식물도 그렇고, 공기나 빛도 그렇고요. 저는 그런 모습이 침투하고 침범하는 힘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성장이나 갈등을 다루는 이야기에 여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여름을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계절로 떠올리지만, 저에게는 가만히 있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계절에 가까워요. 마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것처럼요.

작품에서는 사랑만큼이나 상실도 중요한 감정으로 그려지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살아오며 겪은 상실과 아픔을 어떤 방식으로 견뎌 오셨나요?
아마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사랑과 상실은 결국 분리될 수 없는 감정이라는 점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소설을 한 편 완성할 때마다 마치 어떤 시기를 졸업하는 기분을 느껴요. 그 시절의 고민과 고통, 괴로움을 작품 안에 모두 쏟아 넣고 나면 ‘이제 너는 거기 있어도 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졸업한 학교에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요. 물론 그 시간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여전히 내 일부로 남아 있지만, 적어도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글쓰기는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큰 도움이 됐어요. 상실을 없애 주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지나온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거든요.
작가님께서 유독 애정을 갖고 쓰신 장면이나 독자들이 꼭 한 번 더 들여다봐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모든 장면이 다 좋지만 특히 유성이 태영과 남동생 이야기를 하면서 싸워야 친해진다고 말하는 장면에 애정이 가요. 그 대화에서 유성과 태영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관계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어요. 여러분들도 그 장면을 읽을 때 두 사람의 관계를 한 번 더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얼음 녹이기
출판사 | 슬로우리드
여름은 고작 계절 (1주년 기념 에디션)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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