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형 번역가가 직접 그린 토니 모리슨 초상화 ⓒ 김선형
첫 책을 번역하고 있을 때 내 뱃속에는 아기가 있었다.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결혼을 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금세 임신을 했다. 사랑과 생활과 연구와 번역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사건들이 내게는 동시에 밀어닥쳤다. 배가 산더미처럼 부른 채로 세 과목의 기말 리포트를 쓰고 첫 번역 원고를 마감했다. 부른 배를 도닥도닥 쓰다듬으며 빨리 나오고 싶어도 그러면 안 돼, 엄마가 마감을 해야 하니까,라고 아기한테 속삭이곤 했다. 언제나 엄마를 많이 봐준 우리 아기는 그때도 턱없는 부탁을 잘도 들어주었다. 종강을 하고 원고를 탈고하기 무섭게 나는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겨울방학 생이다.
그때 탈고한 첫 책은 내 기억 속에서 자꾸만 자꾸만 토니 모리슨의 『파라다이스』가 된다. 기억 속에서 나는 부른 배를 안고 “그들은 백인 소녀를 제일 먼저 쏜다”는 첫 문장을 번역한다. 하지만 시간과 기억은 자주 나를 속인다. 그 기억은 허구다. 사실은 몇 년의 시차가 있다. 그 겨울 태어난 내 첫 책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소설과 에세이였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던 내 아기의 감각을 내 몸이 떠올릴 때면, 형언이 잘 닿지 않는 그 정동의 기억 곁에 여전히 늘 토니 모리슨이 있다. 소시지를 사러 간 사이 뜨거워진 차 안에서 졸지에 쌍둥이가 죽어버린 메이비스를, 슬픔으로 소멸하는 사랑하는 아가 헤이가를 지켜보는 파일러트와 리바를, 제 손으로 목숨을 앗은 아기의 유령에 쫓기는 세서를, 내가 읽고 내 손으로 한 자 한 자 옮긴 그 아프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나는 저절로 떠올린다.
출산과 양육 당시에는 내 경험을 발화할 언어가 없었다.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번역한 토니 모리슨의 소설들이 비로소 목소리를 주었다. 내가 읽은 세상의 그 어떤 이야기도 그의 소설들만큼 엄마됨의 현실을 영적이고 정동적이고 정치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토니 모리슨의 비극적 영웅은 역사와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어머니들이다. 몸으로 낳고 몸으로 사랑하고 몸으로 실패하고 몸으로 애도하는 어머니들이 서사의 힘을 쟁취한다. 형언 너머에서 밀어닥치는 엄마됨의 정동들을 토니 모리슨의 문학이 떠받아 품어주었다.
저출생이라는 말은 없던 시절이다. 마침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복돼지의 해였고 출생률은 정점을 찍었다. 종합병원 산부인과 진료실 앞 대기석이 모자라 만삭의 산모들이 늘 복도에 서서 기다렸다. 의사에게 넌지시 아기 옷으로 분홍색을 준비할까요, 하늘색을 준비할까요, 많이들 물었다. 무수한 여아들이 태어나지도 못한 채 빌러비드처럼 억울하게, 소리 없이, 부모 손에 세상을 뜨고 있었다. 진통이 왔지만 자궁은 늦게 열렸다. 병원에 갔더니 아직 시간이 있으니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하필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고장이었고 나는 6층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허덕허덕 아픈 배를 안고 한 발 한 발 계단을 올라가던 그날의 몸을 나는 기억한다.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니었던 그날의 몸, 타자의 생명을 간수하고 배출하는 그릇으로 바친 몸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하루는 길다. 산통이 시작된 첫새벽부터 아기가 태어난 늦은 밤 10시 5분까지, 내 몸은 늘어나고 두들겨지고 경직되고 또 수축했다. 진통은 불시에 무섭게 빨라졌고 내 몸은 무통마취제를 주사할 타이밍을 놓쳤다. 고통은 조수처럼 쏴아 밀려왔다 스르르 물러나다가 기어이 온통 휘감고 휘돌았다, 어느 새 몸에서 피와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몸이 투과성의 막이고 근이고 액이며, 모든 생명이 타자의 목숨과 말 그대로 뒤섞여 있다는 명징한 자각이 덮쳤다. 체취가 퍼지고 불수의적으로 몸이 멋대로 꿈틀거렸지만 더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것이 모든 몸의 현실이었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말 그대로 나를 “통과”했다. 얽힌 끈이 끊어지자 거짓말처럼 고통은 사라지고 온 몸이 투명하리만치 가벼워졌다. 한 치의 모자람 없는 완벽한 희열이 밀려왔다. 아기가 첫 울음을 터뜨렸을 때 나는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딸이라니까요,라고 내게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알아요, 호탕하게 웃어대며 내가 말했다.
그 경험은 그 어떤 이론과도, 그 어떤 통념과도, 그 어떤 이즘과도 어긋난다. 토니 모리슨만이 옳다. 그의 말대로 출산은 오히려 해방의 경험이었고, 내게 더 나은 자아를 선사해주었다. 그날 나는 모든 의미로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나는 늘, 세계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시시각각 세계에 존재해도 되는지, 내 자격 여부를 의심하고 필사적으로 쓸모를 입증하려 했다. 그런데 그 날 처음으로, 내가 세계와 잠시 찰칵 맞아들어 갔다. 생명을 창조하고 타자와 얽혀드는 내 몸의 힘과 한계를 치열하게 감각한 그날 처음으로, 나를 내가 아닌 다른 삶에 온전히 바쳤다 느낀 그날, 비로소 내 존재가 무한한 우주 속에 아주아주 작은 둥지를 틀었다고 느꼈다.
토니 모리슨의 문학은 우리가 세계와 화해하는 순간, 우리가 나 자신과 세계를 용서하는 어느 너그러운 순간을 향해 날아간다. 세계 속에서 우리가 육화된 사랑으로, 육화된 의미로서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늘 그 까마득한 과녁을 맞추고자 비상한다. 아무리 비참하고 잔인한 이야기들이라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그 책들은 기억 속에서 오로지 너르고 너른 사랑의 따스한 후광으로 빛난다. 고통을 거치지 않고서는, 버석한 피부, 코를 찌르는 체취와 달아오르는 체온과 새빨간 혈색, 쓰라린 심장을 감각하지 않고서는, 결단코 다다를 수 없는 온전한 존재감이다. 토니 모리슨은 우리가 우리를 바쳐 남을 돌보는 존재가 되어야 비로소 삶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자의로 이 세상에 왔으며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단언하는 사람이다.
그의 글은 파도처럼, 진통처럼, 철썩거리며 밀려들어 때리고 적시고 물러난다. 지붕에 선 보험회사 직원의 파란 날개, 눈밭에 붉게 흩어지는 장미꽃, 갑자기 시작되는 산통, 낮은 콘트랄토로 노래하는 파일러트의 목소리가 한 페이지에 담겨 있다. 그의 글은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휘말리고 빠져들어야 한다. 그 문장들은 읽을 때도 일렁이고 책을 덮은 후에도 후류가 길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저 아무 날의 아무 아침에 『솔로몬의 노래』가 내게 철썩, 또 밀려왔을 때, 나는 비로소 그 소설이 목숨을 걸고 날아오르는 두 순간 사이에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결과가 비상이 될지 낙하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지 않으면 삶은 없다. 그 결말이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는 걸, 자기만 알던 밀크맨이 제 목숨을 던지고 날아오르는 그 순간 평생 삶을 회피하던 그가 드디어 삶을 제 것으로 만들었다는 걸. 그 이후의 생사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렇게 중요한 걸 자꾸 늦게 아는 사람이다. 막무가내의 사랑과 최선의 의도로 무장하고 필사적으로 퍼덕거렸지만 나는 엄마로도, 번역가로도, 끔찍하게 서툴렀다. 어른의 삶도 엄마 노릇도 문학의 번역도 처음이었지만, 갑자기 전부 다 한꺼번에 해야 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내 꿈의 목록에 없었다. 내가 받은 그 어떤 교육도 그 삶에 맞닥뜨릴 채비를 갖춰주지 않았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고 헤아릴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 어마어마한 처음에 토니 모리슨이 나를 천천히 통과했다. 아이가 두 살, 세 살, 네 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나는 들녘출판사와 함께 토니 모리슨의 책을 계속해서 냈다. 『파라다이스』 『빌러비드』 『재즈』 『러브』 『솔로몬의 노래』, 무려 다섯 권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문학을 공부하고 토니 모리슨을 번역하던 그 시간이 내 삶의 도제 기간이었다. 토니 모리슨의 어머니들은 좋은 어머니가 되는 데 대체로 실패한다. 하지만 철두철미하게, 속속들이, 결연히, 어머니라는 정체성으로 세계를 헤쳐나간다. 나는 어머니의 삶이 결코, 결코 반쪽짜리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그의 글을 번역하며 흡수했고 알게 모르게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나는 토니 모리슨에게 문학을 배웠고 토니 모리슨으로 번역을 배웠고 토니 모리슨의 마르지 않는 사랑에 잠겨 돌봄을 배웠다.
기억과 상상이 재구성한 내 생애 서사에서 문학의 번역은 엄마됨의 경험, 그리고 토니 모리슨과 동시에 출발한다. 엄마됨과 문학의 번역과 토니 모리슨은 감각적으로 또 비유적으로 서로 교차하고 겹쳐진다. 타자의 그릇으로 내 몸과 마음을 내어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타자의 언어가 나를 통과해 새로운 형태로 생성된다. 한 자 한 자 남의 언어를 옮기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나의 몸을, 한탄스러운 유한성을 감각한다. 손가락 마디의 욱신거리는 통증과 굳어지는 어깨의 근육이 비명을 지를 때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일은 끝나고 마지막 단어가 하얀 여백을 채운다. 고통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해방감이, 자유가, 그리하여 더 나은 자아에 다가선다는 보람이 밀려든다. 몸 없는 원고는 이내 편집과 제본을 거쳐 내 손 안에 잡히는 단단한 물성의 책이 되어 돌아온다. 책등을 쓸어보고 표지를 더듬는 순간 잠시 나는 모자람 없이 행복하다.
무수한 작가들이 글쓰기를 출산에 비유했다. 나는 번역이야말로 모든 글쓰기 중에서 출산에 가장 가까운 글쓰기라고 느낀다. 번역은 일정 시간 타자를 내 안에 품고 돌보다가 세상에 내보내는 글쓰기다. 출산과 번역의 과정에서 모체와 번역가는 기능적인 인큐베이터에 그치지 않는다. 모체와 번역가는 그 과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고 자아를 실현한다. 최근의 연구들에 따르면 태아의 세포는 모체에 남아 유전자의 일부를 영원히 바꾼다고 한다. 내 몸 속의 아이는 내 것이 아니고 온전한 타자였지만 그가 나를 거쳐 간 후 나는 정말로 다른 사람, 내가 조금 더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번역도 그렇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가 번역한 텍스트들은 모두 내 안에 남아 나를 바꾸었다. 그리고 토니 모리슨을 거친 후 나는 분명 조금은 더 좋은 번역가가 되었다. 나의 딸과 나의 작가들, 나를 통과한 여자들을 통해서 나는 비로소 내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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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번역가. 영어권 문학을 연구, 강의, 번역한다. 메리 셸리, 수전 손택, 토니 모리슨, 비비언 고닉, 실비아 플라스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2010년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쓴 책으로 『디어 제인 오스틴: 젊은 소설가의 초상』과 『나만 아는 단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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